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16화 (497/877)

분수.

새벽 4시.

여원은 작은 접이식 의자를 옮겨다 분숫가에 앉아 손을 떨면서 큰 거위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녀는 먹이를 먹이면서 허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향만원아, 넌 진짜 행복하겠다. 봐봐, 아무 일도 안 하고 누워서도 먹을 게 있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상사도 없고, 일하라고 쪼는 사장도 없고······.”

큰 거위는 먹이를 쪼더니 나른하게 목을 돌렸다.

여원은 억지로 큰 거위 목을 바로 했다.

“향만원, 제대로 안 할래? 먹이 주는데도 안 먹고. 왜? 낮에 아이들이 주는 간식 먹으려고? 간식은 몸에 안 좋다. 너 전에 소화불량이었지? 의사가 뭐랬어? 먹이 제대로 안 먹고 간식만 먹다가는 오리구이 된다.”

큰 거위는 힐끔 그를 보더니 힘껏 눈을 감았다.

“향만원. 아니지? 너 지금 나 무시하냐? 먹이도 챙겨주는데 눈길도 안 주다니.”

이야기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목소리까지 덜덜 떨렸다.

“그냥 자고 싶은 거겠죠.”

멀리 어두운 곳에서 유유히 목소리가 들렸다.

어둠에서 꼬질꼬질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걸어 나왔다. 바로 일반 외과 치프 레지던트 이가황이었다.

이가황은 허약하게 생겼고 얼굴에 살도 없었다. 그는 여원보다 일 년 늦게 병원에 들어왔고 역시 올해 치프 레지던트가 되었다. 이제 반년만 버티면 주치의 자격이 생긴다.

여원에 비해서 이가황은 순조로운 편이었다. 일반 외과는 지위와 수입 모두 응급의학과보다 조금 높았다. 그래서 이가황은 여원 앞에서 언제나 우월감을 느꼈다. 응급의학과를 제외하고 일반 외과가 무시할 수 있는 진료과는 많지 않았다.

늘 이가황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원은 지금도 별로 좋은 얼굴이 아니었고 무시하는 듯 힐끔 그를 봤다.

“다 너처럼 게을러터진 줄 아냐? 야, 가운에 그 누런 건 뭐야.”

게으르다는 말에 반박하려던 이가황은 뭐가 떠오른 듯 고개를 숙였고, 옷자락에 진한 누런 자국이 있는 걸 발견했다.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던 이가황은 역겹다는 표정을 짓더니 바로 가운을 벗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게 왜 묻었지.”

“장 수술했냐?”

자국 모양을 본 여원은 손으로 폭발하는 모습을 흉내 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분사형이니 튀어도 이상할 거 없지. 전에 환자 하나는 대장에 있던 똥덩어리가 뿜어나와서 벽에 붙었지. 탄력까지 있어서 의사 등에도 달라붙었어.”

“아예. 전 이만······.”

못 들어주겠다는 듯 뒤를 돌던 이가황이 다시 한마디 했다.

“향만원 그만 괴롭혀요. 거위도 자야죠. 새벽 4시에 밥 먹으라니. 정상적인 거위면 못 견디지. 물지 않는 것만 해도 참사랑이에요.”

“참사랑 같은 소리 하네.”

여원이 큰 거위 머리를 툭 내리쳤다.

“나는 새벽 4시에 출근도 한다. 넌 자느라고 밥을 안 먹는다고?”

비몽사몽 잠들었던 큰 거위는 깜짝 놀라서 물려고 입을 벌리다가 여원인 걸 보고는 불쌍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가황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향만원이 뭘 안다고 그래요? 선생님이 새벽 4시에 출근하는 건 하는 거고, 새벽 4시에 자는 건 정상이잖아요. 게다가 응급의학과 정말로 그렇게 바빠요? 이 시간에 출근할 정도로?”

여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능 선생이 며칠 쉴 준비 하느라, 침대 채워야 해서 그래.”

“채워······.”

이가황이 혀를 끌끌 찼다.

“보너스 굉장하겠네요. 아니 그게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힘들어 죽을 때까지 일하면 안 되지. 팀에 의사 많은 거 같던데, 좀 바꾸면 안 돼요?”

“내가 왜 바꿔!”

여원은 바로 언짢아졌다.

“나는 치프 레지던트야. 내 아래 레지던트가 수술하려면 내 시체를 밟고 하라고 해.”

“시체 밟아야 하는 건 선생님이겠죠.”

이가황은 여원을 힐끔 보더니 그렇게 말하고는 누런 가운을 들고 냉큼 도망갔다.

여원은 콧방귀를 뀌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엄숙한 얼굴로 큰 거위에게 물었다.

“정말 안 먹어? 새벽 4시에 먹이 주러 온 수고를 생각해주지 않겠니?”

큰 거위는 목을 늘어뜨리고 눈을 다시 감았다.

“응? 소리도 안 내네. 혹시 어디 아픈가. 체온 좀 재보자.”

여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체온계를 꺼냈다.

체온계라는 말을 들은 큰 거위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어 도망가려고 날개를 펼쳤지만, 이미 늦었다.

여원은 단번에 큰 거위의 날개를 잡아채 들어 올려 항문을 드러내고는 바로 체온계를 집어넣었다.

꽥!

큰 거위는 무력하게 목을 축 늘어뜨리고 저항을 포기했다.

이가황은 멀리 복도 입구에 서서 까치발을 하고 그쪽을 바라보다가 마침 그 장면을 보고 즉시 도망쳤다.

운화병원 응급센터 병실이 가득 채워지고 무신 시 1 병원, 2 병원 등 창서성 진료과 병실이 채워지는 날, 능연과 전칠은 작은삼촌이 보낸 전용기를 탔다.

마연린과 여원, 그리고 전칠 작은삼촌의 주방장들은 함께 그 뒤에 있는 두 번째 전용기를 탔다.

비행기 객실 안 인테리어는 호화한데 단순했고, 다만 각종 그림, 색깔이 화려한 미술 작품이 너무 두드러졌다. 특히 편안하게 의자에 앉은 능연은 알록달록 컬러가 화려한 도안을 보면서 꽤 어색함을 느꼈다.

능연의 표정을 알아챈 전칠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이거 작은삼촌이 대가들을 모셔서 그린 건데, 사정이 좀 있어요.”

“사정이요?”

“저기 중간에 있는 거 보세요. 특별한 점 없어요?”

능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 가죽에 덮인 객실 중간에도 마찬가지로 정신 사나운 색들이 난무했다.

“사촌 동생이 그런 거예요. 그때 뭐 축하할 일이 있었는데, 사촌 동생이 물감을 들고 와서 마구 칠해댔죠. 이미 저렇게 됐을 때야 알게 됐어요. 삼촌은 원래 지우려고 했는데, 현장에 있던 예술가 하나가 사촌 동생이 재능이 있다고. 그래서 결국 그대로 두기로 한 거죠. 그리고 저 그림과 어울리게 하려고 화가를 불러다 비슷하게 그린 거예요. 어때요? 재미있죠?”

능연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삼촌 좀 바보 같으시네요.”

“다들 그렇게 이야기했죠. 그래도 농업일은 잘해요. 인내심이 있거든요. 당신이 보기엔 어때요?”

“인내심은 있는 거 같네요. 무릎 다친 지 2년이나 됐는데 수술을 안 한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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