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에 자리 잡은 전국정의 저택 1, 2킬로미터 바로 뒤에 산맥의 완만한 언덕이 있었다. 산을 끼고 물 가까이 있는 곳이라 보고 있으면 매우 편안했다.
규모도 적은 편이 아니어서, 메인 건물 한 채, 작은 건물 두 채에 백 명은 수용할 수 있어서 파티를 열기 매우 좋은 구조였다.
저택 주변에 목장이 있고 마장, 양조장 등도 있어서 사람을 만 명도 풀어 놓을 수 있었다.
사파리 수트를 입은 노준걸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고, 적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온 김에 잘 놀고 가세요. 중국에서 이런 목장 볼 기회 없죠?”
“네. 그쪽은 이런 목장 있나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는 능연의 말에 노준걸이 멈칫했다.
“그야 만들고 싶으면 바로 만들죠.”
“허풍이에요.”
전칠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집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3층 쓸 거예요. 노가 셋째는 멀리 배치해 주세요.”
“네.”
야무져 보이는 나이든 중국인 집사는 자상한 모습으로 바로 대답했다.
노준걸의 얼굴이 당장 흐려졌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전칠의 말대로 그는 노가 셋째일 뿐이었다.
“삼촌은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국정 선생이 풍성한 파티를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여러분을 잘 모셔야 한다고. 이번에 소도 400킬로 떨어진 곳에서 특별히 받아온 겁니다. 몸이 아주 실해요.”
“전국정 씨는 집에서 수술할 생각인가요? 그럴 만한 장비가 있나요?”
능연이 틈을 타 물었다.
“옆 마을에 국정 자선 병원이 있습니다. 국정 선생이 후원했지요. 거기서 수술하면 됩니다. 필요하면 기구를 사도 됩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집사는 조금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쿠파에 전엔 진료소도 없었어요. 부자들은 아예 헬리콥터를 타고 큰 도시로 갔죠. 현지에서 진찰 받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정국 선생이 후원해서 병원을 지은 다음부터 근처 주민들이 정상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었죠.”
“브라질이 이렇게 어렵습니까?”
마연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집사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쿠파에 상주하는 주민은 3, 4백 명밖에 되지 않아요. 명절이나 되어야 2, 3천 명 모일까. 중국 마을 규모랑 비슷하죠. 게다가 다들 멀리 떨어져서 살고 차가 있어서 국정 자선 병원 설립 전엔 약국밖에 없었답니다.”
“그럼 정말 중국 마을이 더 나은 곳도 있겠군요.”
그렇게 한마디 한 마연린이 또 궁금한 듯 물었다.
“국정 자선 병원 규모는요?”
“큽니다! 지금 의료진 30명, 수술실 두 개, MRI 같은 첨단 설비도 있어요.”
집사는 가보 소개하듯 병원 소개를 했다.
“팔채향 분원 기시감이 드는데요? 물론 팔채향 분원엔 MRI는 과분하지만. CT도 못 살 정도니까.”
마연린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여원을 향해 말했다.
“팔채향 분원엔 의사가 겨우 두어 명이잖아. X-ray 한 대. 제일 많이 하는 수술도 충수염이나 담낭염이 아니라 데브리망에 티눈이라고.”
“그래도 수술실 두 개잖아요. 환자는 팔채향 분원이 더 많겠다.”
마연린은 휘황찬란한 전가 저택을 보며 어쩐지 자꾸 팔채향 분원과 국정 자선 병원을 비교하고 싶었다.
여원은 곁눈으로 마연린을 바라봤다.
“너 능 선생 밑에 오래 못 있겠다.”
“무슨 말입니까?”
마연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여원의 정수리를 바라봤다.
“좋은 병원인지 아닌지 판단하면서 수술실 몇 개냐, 환자 몇 명이냐를 따지다니. 말이 돼? 팔채향 병원은 수술실을 계속 굴리는 게 불가능해. 하루에 수술 두 건 하는 수술실은 이미 대단한 거라고, 연이어 수술하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수술실이 더 많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연린이 반문했다.
“연이어 수술하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말은, 팔채향 같은 병원에만 해당하는 말이야. 정규 병원 말고. 게다가 국정 자선 병원엔 의료진이 30명이라니까 수술실 두 개는 굴릴 수 있겠지.”
여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마연린에게 경고했다.
“능 선생 곤란할 일 만들지 마. 여기 중국말 알아듣는 사람 많아. 그리고 의사도 있다고.”
마연린은 여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사파리 수트남이 데리고 온 의사와 마침 눈이 마주쳤다.
마연린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목욕탕 자존심 대결하듯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다.
주임과 부주임인 세 의사는 마연린의 기세에 눌렸다.
“다들 우선 좀 쉬세요. 저녁에 전국정 선생이 환영 파티를 마련했습니다. 내일 국정 선생 검사하고 치료 방안을 정하면 됩니다.”
집사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언제 강약 조절해야 하는지도 잘 알았다.
사파리 수트남이 데리고 온 의사는 차분했다. 이번 출장 수술이 좀 멀긴 해도, 익숙한 일이었고 궁금할 것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능연은 미간을 좁혔다.
“저는 비행기에서 푹 쉬었습니다.”
“그럼 먼저 연회장으로 가시지요. 서비스할 사람 두 명 배정하겠습니다.”
집사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바로 전국정 씨 치료하면 안 되나요?”
“죄송합니다. 안 됩니다.”
능연은 시간을 아끼고 싶었지만, 집사가 살며시 고집을 부렸다.
말 속에 담긴 뜻을 알아들은 전칠이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바로 치료하는 게 아니라고요? 다른 의사도 부르셨어요?”
“국정 선생을 이해해 주세요. 무릎 때문에 줄곧 고민하다가 이제야 수술을 결정하셨잖습니까. 통증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그래서 여러 의견을 참고하고 싶으신 거죠. 마침 금원 개발 금승재 선생이 국정 선생 상황을 듣고는 의사를 보냈습니다. 원래 거절하려고 하셨는데, 상대가 고집을 부려서요. 그래서 의사가 벌써 출발해서 내일 도착합니다.”
“환자는 의사를 고를 권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능연이 담담했다.
최근 일 년 넘게 창서성 각지에서 출장 수술하면서 모두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출장 수술 의사 초빙 역시 최근 몇 년에 많아진 것이라, 능연을 미심쩍어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더 많았다.
능연은 그런 일에 평상심을 유지했다. 출장 수술을 결정하는 환자와 보호자는 늘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게 오히려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환자의 정확한 판단이 꼭 치료에 가장 유리한 결정은 아닐 수 있지만, 의사는 그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요. 가서 고기 먹어요.”
능연이 담담하게 손을 휘저었고, 능연의 개의치 않는 걸 본 전칠도 바로 기분이 좋아져서 즉시 능연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옆에 있던 노가 셋째가 무언가 이야기하려는 듯 눈을 둥글게 떴다.
“좀 비켜주세요. 라운드 씨.”
마연린이 노준걸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쳤다.
노준걸은 한참 멍하니 있다가 겨우 라운드숄더라서 ‘라운드 씨’인 걸 알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당신들 제대로 해서 내 체면 살려야 해!”
노준걸은 뒤에 서 있는 세 의사를 향해 이를 갈며 말했다.
세 의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말없이 흩어졌다. 노가 체면과 돈을 보고 온 것이라 노준걸의 멍청한 말을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멀리 떨어진 세 사람의 목소리가 웅성웅성 들렸다.
“운화병원 능연이야.”
“응, 유위신 수술한 의사.”
“요즘은 간 절제 위주로 수술한다던데, 왜 갑자기 무릎 수술하러 온 걸까요?”
“축이 얼마나 쟬 추켜세우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무릎만으로 충분히 먹고 산다고.”
“괜히 왔네.”
“싸우면서 정든다잖아. 이따 술 한잔하면서 친해지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