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국정 자선 병원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한 면이 통유리로 된 회의실에서 다들 모여 전국정의 무릎 원본 사진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논의하고 있었다.
회의실 어두운 구석에 이름 모를 교목 위에 에피프레넘이 4, 5m 높이까지 뻗어서 꽤 큰 범위를 차지했다.
원산지 환경과 비슷한 남미로 돌아온 에피프레넘은 ‘마귀 등나무’라는 별명대로 돌아가 초 강력한 번식 능력을 보이며 가볍게 교목을 억눌렀다.
그때, 타닥타닥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가 국정 자선 병원 승강장에 착륙했다.
마연린이 통유리 창 앞으로 다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폈고, 그때 병원 사람이 영어로 크게 고함쳤다.
“환자입니다. 슬관절 손상, 바로 수술실로!”
마연린이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곁에 있던 여원에게 물었다.
“제가 영어가 딸려서요. 슬관절 손상이라는 거 맞죠? 아니면 무릎 부러졌다는 거예요?”
“슬관절 손상.”
“슬관절 손상도 헬기로 보낸다고요? 브라질 사람 돈도 많네.”
마연린의 비웃는 듯한 말투에 여원이 깔깔 웃으며 입을 삐죽였다.
“저것보다 못한 상태도 헬기로 병원 가는 사람 많거든.”
마연린의 눈이 축 늘어졌다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요. 구급차를 부를지 말지는 응급 상태에 달렸지만, 헬기는 돈이죠. 그러니까 선생님이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부자들의 세상은 우리가 아는 거랑 다르겠죠. 어쩌면 개털에 생길 이 처리하려고 헬기를 부를 수도 있겠네요.”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여원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 개한테 이가 생겼다면 헬기를 부를 리가 없지. 헬기에 이가 다 번지면 어쩌려고.”
“맞네요. 헬기에 이가 번지면 큰일이죠.”
그때 국정 자선 병원 의사가 회의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슬관절 손상 환자가 응급으로 들어왔습니다. 괜찮으시면 좀 도와주세요.”
집사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능연을 불렀다.
“능 선생님, 여기 의사 선생님을 따라가서 환자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여기서 수술해도 됩니까?”
딱히 사양할 생각은 없는 능연은 그저 한 가지를 확인했다.
“여긴 내 구역이니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전국정은 자신에 가득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말을 이었다.
“능 선생, 마음 놓고 수술하시오. 이따 제부 한 마리 잡아서 우리 농장 고기 맛보여드리지.”
“어제 먹었습니다.”
“어제는 어제고. 브라질 소고기도 맛있긴 하지만, 제부는 더 맛있지요. 제부는 인도 소입니다. 목에 낙타 같은 혹이 있어서 혹소라고 부르지요. 브라질은 제부 양식으로 큰돈을 벌었답니다. 지금은 세계 제일 소고기 수출국이 되었고, 그 바람에 제부 값도 만 달러까지 올랐죠. 아까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니까요. 나는 종우(種牛)를 사고 싶은데 아무리 설득해도 안 판다지 않겠소. 나이 든 외국 놈이랑 사업하려면 이런 식이지. 천천히 해야 한다니까······.”
능연은 더 들어줄 인내심을 잃고는,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바로 돌아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집사는 소식을 전하러 온 의사를 향해 어서 따라가라고 손짓했다.
능연은 그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환자를 만나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일 년 넘게 치료를 회피한 슬관절 환자였다.
능연은 마찬가지로 신체 검진하고 몇 초 동안 가상 인간을 사용하며 가볍게 살펴보고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국내 탈의실과 달리 국정 자선 병원 탈의실 앞엔 열쇠와 수술복을 관리하는 간호사가 없어서 물건을 받으려고 간호사와 실랑이할 필요가 없었다.
수술복은 셀프였고, 동전을 넣고 깨끗한 수술복을 받은 다음에 더러워지면 다시 집어넣었다. 돈은 돌려주지 않으니, 세탁비인 셈이었다.
능연은 옷의 청결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는 칸막이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 손을 씻었다. 여원과 마연린은 이미 수술실로 들어가 준비하기 시작했다.
통역 두 명도 수술실에 들어갔다.
국정 자선 병원의 재원은 충분했지만 전국정이 통역을 많이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오로지 수술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 환경을 오염시킬까 봐서였다.
전국정도 휠체어에 탄 채 시중받아 슬그머니 2층 참관실로 들어갔다.
물론 슬그머니라는 건 그의 생각이고, 1층에서 작업하는 의사들은 고개만 들어도 참관실에 몰린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의사 서른 명에 수술실 두 개밖에 없는 병원에 참관실 달린 수술실이 있다니. 이게 무슨 돈지랄이야. 돈 많은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우리 응급센터에도 수술실은 네 개밖에 없잖아. 곽 주임님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마연린이 나지막이 툴툴대는 모습에 여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생리식염수.”
“미러.”
“들어 주세요.”
능연은 다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아랑곳하지 않고 제 수술을 진행했고, 명령은 여전히 간결했다.
간호사도 국내에서 뽑아온 간호사였고, 능연의 옆모습 때문에 일이 잘 안 되는 것 말고는 제법 손발이 잘 맞았다.
20분 만에 능연은 환자가 일 년 넘게 앓아온 슬관절 내부를 깔끔하게 새로 정돈했다.
관절경은 원래 몇 가지 내시경 중에 가장 간단했고, 슬관절경은 더욱 간단했다. 능연은 그랜드마스터급 반월판 성형술, 전문가급 슬관절 스킬이 있으니, 손쉽게 환자의 슬관절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전국정은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이 2층에서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흥미진진했고 또 쉴 새 없이 이 주임에게 질문했다.
나중에는 이 주임도 그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 자격증 없는 밤놀이 가이드처럼 알아서 설명했다.
“끝났습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요.”
능연은 언제나 그랬듯이 핵심 부분만 진행하고 마무리 부분을 넘겼다. 초짜 의사도 훈련이 필요했다. 마무리 작업조차 넘기지 않는다면 성장할 방법이 없다.
누구나 잘생기게 태어날 수 없는 것처럼, 누구나 시스템이 있는 건 아니니까.
“다 했다고?”
이제야 조금 감이 잡힐 것 같던 전정국은 능연이 장갑을 벗는 모습에 다급하게 이 주임에게 물었다.
“끝입니다.”
이 주임의 얼굴에 감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잘한 겁니까?”
“매우요. 전 선생님은 디테일을 모르시니까······. 음, 이렇게 설명해 드리죠. 능 선생이 수술을 이토록 순조롭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사들의 교과서로 쓸 수 있습니다.”
자격증 없는 밤놀이 가이드 노릇에 익숙해진 이 주임은 두어 마디로 바로 전정국을 이해시켰다.
“그럼 환자가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환자 예전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수술만 따지면 잘 쉬고 재활만 잘하면 일상생활은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경기는 모르겠지만요.”
“여기서는 말 타는 것도 일상생활에 속합니다.”
“문제없습니다. 그것보다 더한 것도 가능해요.”
“그렇습니까······.”
생각에 잠겨있던 전정국이 집사를 바라봤다.
“돌아가서 큰 제부 한 마리 잡게. 밤에 능 선생 대접하게.”
그러자 집사가 매우 놀랐다.
“국정 선생님, 그 큰 제부는 새해에 잡을 거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큰 제부는 ‘정’ 목장에서 육질이 가장 좋은 소였고, 표준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한 마리 잡으면 몇 달 동안 그 뒤를 이을 소를 키우지 못한다.
그러나 전정국은 손을 휘휘 내둘렀다.
“능 선생 실력이라면 좋은 소를 대접해야지. 저녁 식사 늦지 않게 어서 가서 준비하게.”
“네.”
집사는 눈을 번쩍이며 밖으로 나가면서 지난번에 잡았던 맛있는 큰 제부를 생각하고 입맛을 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