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정은 수술대에 오를 때까지 코끝에 큰 제부 설도 냄새가 아른거리는 느낌이었다.
“내 제부······.”
전국정은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탄식했다.
“제부는 벌써 모두 나눠주고 없습니다.”
집사도 목욕하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들어와 있었다.
그러자 전국정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실한 제부를 다 나눠줬다고? 조금 남기라고 했잖은가.”
“등심 한 덩이 남겨서 주방장더러 말려 놓으라 했습니다. 주방장 말이 숙성되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는군요.”
집사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숙성된 다음 스테이크로 먹나?”
“예.”
“스테이크 먹고 싶으면 돈 주고 사 먹으면 될걸.”
전국정은 화가 나서 수술대 위에서 벌떡 일어날 지경이었다.
“직접 기른 소를 말이야. 소고기는 신선해야 소고기지. 몇 달 두어도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 같은 걸 어떻게 큰 제부랑 나란히 거론한단 말인가. 사람이란 말일세, 누구든 제 몫을 해야 하네. 주방장도 마찬가지 아닌가? 충분히 가치를 발휘해야지. 안 그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직원은 잘라야지!”
“주방장더러 등심 잘 저며두라고 했습니다. 퇴원하시면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전국정 씨의 마음을 잘 파악한 집사의 대답에 전국정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말을 꺼냈다.
“퇴원하고 먹는 게 문제가 아니지. 목장이 그렇게 큰데, 먹을 고기 없을까 봐? 가치와 그 가치의 실현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세.”
“그럼 그냥 바로 구울까요? 소스는 뭐로 할까요?”
집사가 다시 한번 전국정 씨의 내면 분석을 중단시켰다.
“하아, 알아서 하게. 마늘이나 좀 많이 넣고. 마늘은 특별하니까 말이야. 마늘 향이 참 좋지.”
“예. 바로 그렇게 알리겠습니다.”
“서두르게. 말려버리기 전에 전화부터 하라고.”
전국정은 수술실에서 나가는 집사를 눈으로 배웅하며 손을 흔들었다.
치익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 능연이 약을 놓으라고 마취의에게 눈짓했다.
전국정은 눈을 부릅뜨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능연은 전국정의 조용한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조용해진 건 좋은 일이니 아예 소리도 내지 않고 손을 뻗어 도구를 요구했다.
어제 슬관절 수술을 세 건 내리 하면서 국정 자선 병원 마취의와 간호사하고도 꽤 익숙해졌다.
슬관절 같은 수술은 사실 수술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아도 익힐 만큼 과정이 간단하다. 피아노로 비유하자면, 간 절제 입문이 피아노 협주곡부터고 슬관절 경은 ‘엘리제를 위하여’ 정도랄까?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는 매우 우아하게 칠 수 있고, 실력이 떨어지는 피아니스트도 대충 넘어갈 만큼은 친다.
사실 초짜 정형외과 의사들이 관절경 수술할 때 쿡쿡 찌르고 찌르다가 다른 곳까지 손상을 일으키는 때도 있다.
물론, 슬관절은 찔러도 망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능연은 수술대 옆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서서히 생리식염수를 주입하고 안쪽 상황을 검사했다.
그때, 전국정이 헛기침하며 말을 꺼냈다.
“모니터를 좀 이쪽으로 틀어 봐. 나도 보이게.”
수술실에 잠시 시간이 멈추었다.
마연린은 감탄하는 눈빛으로 전국정을 바라봤다. 별별 희한한 환자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가끔 보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희한한 요구는 또 처음이었다.
받침대 두 개 위에 올라선 여원도 전국정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부자는 다르네. 모니터 돌려달란 소리를 쉽게도 해. 난 의자를 밟고 올라가도 모니터가 안 보이지만, 좀 돌려달란 소리를 감히 못 하는데.
능연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전국정을 바라보기는 했다.
“안 됩니다.”
“아이고, 뭐 똑똑하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해달라는 것도 아닐세. 그냥 조금만 틀어서 무슨 상황인지 보게 해달라는 건데. 그렇죠?”
전국정의 눈빛이 이 주임을 향했다.
팔짱 끼고 지켜보던 이 주임은 화살이 자기한테 돌아오자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 선생님. 모니터를 틀면 의사가 평소 익숙한 시야각에서 벗어납니다. 그럼 의사의 동작에 영향을 줍니다.”
“아, 아. 그럼 됐고.”
전국정은 그제야 꼼짝 않고 수술대 위에 가지런히 누웠다.
이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웃었다.
“사실 모니터 보셔도 의미 없습니다. 모니터엔 슬관절 안의 상황이 비추는데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슬관절 해부 구조도 모르시니, 보나 안 보나 똑같습니다.”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요.”
전국정은 껄껄 웃다가 생각이 떠오르는 듯 덧붙였다.
“아니면 내 앞에 모니터 하나 추가합시다. 선생들은 선생들 거 보고, 나는 내 거 보고.”
수술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마연린은 지극히 감탄하는 눈빛으로 전국정을 바라봤다. 병원에 희한한 사람은 정말 많지만, 전국정은 갑 오브 갑이었다.
대부분은 이만큼 돈이 많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희한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모든 환자가 돈 걱정 없는 상태를 상상해본 마연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 선생님, 모니터를 다시 설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 전에 수술이 끝날 겁니다.”
이 주임은 피폐해진 기분이었다.
“국정이라고 부르시오. 아니면 국정 선생도 되고. 다들 아버지를 전 선생으로 불러서 말이지.”
다리를 벌리고 누운 전국정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면 병원을 이렇게 운영하는 것도 문제가 있네. 비인간적이잖아. 머리 위에 모니터 하나 두면 어때서. 뭐 꼭 조작화면이 아니더라도 영화 같은 거 틀어줘도 좋잖아.”
마연린은 갑자기 능연이 어째서 전신 마취 혹은 부분 마취 후 환자를 잠재우는 걸 선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능연의 사교성으로 봐서, 환자가 조금만 상대하기 어려워도 그에게는 모두 전국정처럼 느껴지는 것이리라.
마연린은 동정하는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그러나 능연은 아무런 생각 없는 듯 수술을 진행했고, 전혀 방해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능 선생이 이걸 견디네요.”
“능 선생한텐 다 똑같이 느껴지는 거지.”
나지막이 속삭이는 마연린의 말에 여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 그러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때 월리스의 제자 브랜든이 나서서 영어로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수술 장면을 찍어서 다른 핸드폰으로 전송해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업로더가 된 브랜든은 사실 아까부터 동영상을 찍고 싶었었다. 이 주임은 조금 난감한 듯 브랜든을 바라봤다.
“핸드폰은 감염 우려가 있어서 환자한테 전해줄 수 없고요. 그리고 당신이 핸드폰으로 찍는 건 좀······.”
“그럼 환자한테는 안 보여줄게요. 아니면 멀리서 보여주거나.”
브랜든이 바로 방향을 수정하면서 핸드폰을 꺼냈다.
수술실에서 의사가 핸드폰으로 수술 장면을 찍는 건 흔한 일이다. 특히 논문을 쓰려거나 케이스 수집할 생각인 의사는 항상 수술 장면을 찍는다.
같은 참관 의사로서 말리기 난처해서 이 주임이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브랜든은 벌써 흥분해서 멘트를 치기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병원 수술실에 있습니다. 대단하신 분 슬관절경 수술인데요, 오늘 집도의는 중국 의사 능연입니다.”
브랜든은 렌즈를 능연 쪽으로 비추면서 어떻게든 제대로 찍으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