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경마장에서 온순한 큰 말을 타고 느릿느릿 전칠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전칠의 실력은 능연보다 훨씬 좋은 게 분명했지만, 빨리 달리지 않고 능연이 따라올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달리면서 본인 말이 능연의 말을 방해하지 않도록 컨트롤했다.
하늘에서 조금씩 보슬비가 내렸다. 모자를 쓴 전칠은 기분이 더없이 평온한 듯 허공에서 손을 휘둘렀다.
“능 선생님, 이런 목장에서 오래 생활하라고 하면 어떨 거 같아요?”
전칠이 웃는 얼굴로 돌아보고 청 모자를 능연에게 건네면서 물었다.
“좋아요. 목장엔 간디스토마가 흔하죠. 그것도 간 절제해야 하거든요. 아킬레스건 파열, 슬관절 손상도 아마 자주 있을걸요? 큰 목장이라면 오래 머무를 수 있겠네요.”
모자를 받아 쓰면서 대답하는 능연의 말에 전칠은 능연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모자를 쓴 모습만 보고 얼굴이 붉어졌다.
청 모자를 쓴 능연은 분위기가 확 변해서 시크한 느낌을 주었다. 전칠은 갑자기 능연에게 말타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서 그가 초원에서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멋졌지만.
비가 점점 더 세게 내리자, 전칠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큰 소리로 능연을 불렀다.
“능연 씨, 일단 돌아가요. 비 많이 올 거 같아요.”
“그래요.”
능연은 간단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방에 먼 산을 바라봤다. 주변은 이미 희미해졌고, 저택 부근에 있는 호수 위에는 안개가 가득했다.
“말 타고 돌아가죠.”
전칠이 경호원 둘을 손짓해서 부르자 여자 둘이 말없이 능숙하게 말을 타고 달려와서는 노련하게 빙 돌아서 전칠과 능연의 말고삐를 틀어쥐었다. 그리고 말 네 마리가 두 팀으로 나뉘어 재빨리 저택으로 돌아갔다.
맞은편에서 말을 타고 있던 노준걸 역시 비를 가리고 달려와 크게 고함쳤다.
“비 옵니다. 제가 모시러 왔······.”
능연은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었고, 전칠도 예의를 갖춰 노준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연의 뒤를 바짝 따라 앞으로 나갔다.
힘겹게 말머리를 돌린 노준걸이 다시 쫓아갔을 때는 입을 열 때마다 비가 입안으로 들어갈 만큼 큰비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메인 저택과 경마장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다들 처마 밑까지 말을 타고 온 다음 말에서 내리자, 이미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각종 수건으로 능연과 전칠을 덮어주었다.
머리를 닦는 사람, 신발을 갈아신기는 사람, 두꺼운 목욕 수건으로 두 사람을 감싸는 사람 등 노련하고 세심한 메이드들의 손길에 순식간에 따듯해진 두 사람은 각자 침실의 욕실까지 시중받아서 갔다.
비를 무릅쓰고 달려온 노준걸이 드디어 처마 밑에 도착해서 말에서 내리자, 건장한 남자 하나가 싱긋 웃으며 목욕 수건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노준걸이 조금 머뭇거렸다. 춥긴 했지만, 마음이 더 추웠다.
“괜찮습니다. 금방 따듯해 질 겁니다.”
건장한 남자가 껄껄 웃으며 수건을 척 걸쳤다.
“저기······.”
노준걸의 비명이 거칠거칠한 면 수건이 마찰하는 소리 사이로 묻혔다.
비는 점점 크게 내렸고, 멀리 있는 호수의 모습도 벌써 사라지고 안 보였다.
근처의 산도 큰 비속에 갇힌 듯 보일 듯 말 듯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밤새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