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28화 (509/877)

비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계속 내렸다.

저택에서 웃으며 비바람이 멎길 기다리던 카우보이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분분히 밖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소를 몰아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지금 이런 때는 소몰이 작업도 다소 위험했다. 소 방목하는 데 전용으로 쓰이는 헬리콥터는 큰비 때문에 뜨지 못했고, 오로지 카우보이만으로 소를 몰아야 했다. 목장 안엔 움푹 팬 저지대가 많은데, 저택에 비가 많이 고이면 소 한 마리가 빠져 죽을 정도의 깊이였다. 물론, 사람이 빠져 죽을 가능성이 더 컸다.

“올해 송아지 손실이 크겠군.”

집사가 초조한 모습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들이 살아남는다면 송아지를 알아서 보호하겠지.”

전국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앉아 꽤 쿨한 모습으로 허리를 곧추세웠다.

“날씨가 좋든 나쁘든, 다 견뎌야 하는 법이지요. 소들이 무사하길 바랄 뿐입니다. 국정 선생님, 우리도 마을로 가시지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집사가 하는 말에 전국정도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계속 곁에 있던 노준걸이 허둥지둥 물었다.

“지금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요? 차도 못 움직이지 않을까요?”

“노 선생, 지금 떠나야지 나중에 저택이 물에 잠기면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집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떼쓰는 멍청한 아이 보듯 노준걸을 바라봤다.

노준걸은 집사를 거들떠보지 않고 전국정을 바라봤다.

“삼촌, 저택 지을 때 큰비도 고려하셨죠? 집이 잠긴다니, 말도 안 돼요.”

“당연히 고려했지. 군자가 위험한 벽 아래 서 있을 수 있나.”

“그럼 우리 지금······.”

“그러니까 지금도 위험한 벽 아래 서 있으면 안 되지.”

전국정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주 전체에 비가 오는 걸로 봐서 이삼일 만에 멈출 비가 아닐세. 저택에 머무른다고 해도 2층 이상에 머물러야 하네. 그러느니 차라리 일찍 마을로 나가서 흩어지는 게 낫지.”

노준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택 1층이 물에 잠긴다면, 국내 기준으로 충분히 홍수라고 할 만했고 여기서 더 버티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다. 나중엔 수도, 전기뿐 아니라 인터넷도 끊길 것이고, 인터넷 안 되는 곳에 머무른다는 건 머리에 물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말이다.

“그럼 가서 차 준비하겠습니다.”

집사도 더는 이러쿵저러쿵하지 않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지시를 내리러 갔다.

전국정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들 물건 챙깁시다. 이왕 가기로 한 거, 30분 후에 출발합시다.”

전국정은 평소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엄격하고 신속한 모습을 보였다.

“근데 이왕 결정을 내렸으면 바로 흩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마을로 가나요?”

노준걸은 아직 망설여지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육상으로 철수하는 길에 어차피 마을을 지나야 하니까. 군중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네. 쿠파 마을은 작지만 100년 넘는 역사가 있는 곳이라네. 다른 곳이 침수된 상황에서도 쿠파 마을은 조금 불편하긴 해도 큰 위험 없이 고비를 넘겼지.”

젊은이가 말이 너무 많아서, 기분이 조금 상한 전국정은 노준걸을 훈계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들었다. 그러나 노준걸은 그런 그의 생각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질문했다.

“큰 위험이 없다는 건, 위험이 있긴 했다는 거네요?”“큰 홍수로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잘난 줄 아는 젊은이들이 제일 먼저 죽는다네.”

전국정의 표정이 엄숙해지자 노준걸도 드디어 알아듣고 안색이 변했다.

전국정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온화한 얼굴로 능연과 전칠을 바라봤다.

“둘 다 어서 물건 정리하도록. 가지고 가기 불편한 건 표시해서 여기 남는 인원에게 옥상으로 옮겨 놓도록 하고.”

“남는 사람이 있어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저택에 가치 있는 물건이 좀 많아야지. 남아서 지킬 사람은 필요해. 아니면 누군가 들고 나를걸?”

전칠이 걱정스러운 듯 묻는 말에 전국정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카우보이들이 소를 높은 지역에 몰아놓고 저택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돌아올 거란다. 그때까지 비가 계속 오면 보트를 타고 마을로 갈 거야.”

“선생님 무릎 상태로 차를 오래 타면 안 좋을 텐데요.”

능연이 문득 생각한 듯 한마디 하자 전국정이 웃어 보였다.

“유니목(Unimog: 메르세데스-벤츠 유니목. 독일 다임러 트럭이 생산하는 대형 트럭) 몇 대 있으니 괜찮을 걸세.”

30분 후, 사람들은 전국정의 유니목 행렬을 보게 되었다.

벤츠 엠블럼을 단 유니목은 중형이라 그렇지, 겉으로 보기에 패기 가득한 트럭에 더 가까워 보였다. 길게 한 줄로 서 있으니 중형이라도 위압감이 대단했다. 노준걸은 그 광경에 고함까지 질렀다.

“삼촌, 유니목을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한 대에 삼사백만 하지 않아요? 작은 목표를 하나 이루셨군요.”

“목장에 필요하니까.”

전국정은 앞에 있는 차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먼저 차에 타라. 팀을 이뤄 돌보면서 서로 영향 주지 않게 세 대씩 움직이자꾸나.”

밖에 비가 더욱 거세졌다. 노준걸은 갑자기 걱정되기 시작해서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 전칠을 바라봤다.

“전칠 씨는 저랑 가시죠. 레이디 퍼스트.”

“자네 먼저 가게. 뒤에도 차가 많다네.”

전국정이 손을 휘휘 흔들자 노준걸은 어쩔 수 없이 맨 앞의 유니목 앞자리에 기어 올라갔다. 그 차 뒷좌석엔 식품과 물이 가득했고, 노준걸도 그런 차를 타고 가는 게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노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벨트 매세요. 이제 출발합니다.”

노준걸이 문을 닫고 차에 오르는 걸 본 운전기사가 껄껄 웃으며 인사하고는 차 문을 잠갔다. 어쩐지 귀에 익은 웃음소리라는 생각에 휙 고개를 돌려보니, 청모자 아래 운전기사는 바로 아까 그의 몸을 닦아 준 건장한 남자였다.

“왜 당신이.”

노준걸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의 굵고 두꺼운 큰 손으로 향했다.

“그러게요. 이런 우연이.”

기사가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집사님도 제 운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사형수 차를 타다가도 교통사고로 차에서 튕겨 나올 운명이라던가? 알겠습니다, 편하게 앉으세요. 안전한 곳으로 모셔드리겠습니다.”

기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액셀을 밟자 차가 흙탕물을 튕기며 앞으로 달렸다.

“응? 왜 큰길로 안 가고요? 마을로 가는 거 아닌가요?”

펄쩍 뛰어오를 만큼 흔들리며 노준걸이 물었다.

“벨트 잘 매세요. 길을 나눠서 가야 합니다. 비가 너무 크게 내리는 데다가 길 상태가 어떤지 몰라서 예비 길로 갈 생각입니다. 목장에서 낸 길이죠. 마을까지 더 가까워요. 소나 양 몰 때도 자주 가는 길인데 편합니다.”

흙탕물이 가득한 길은 이미 진흙 길이 되어있었고, 얼마 가지 않은 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흔들리느라 정신없던 노준걸이 뒤를 돌아보니, 뒤에 유니목 한 대도 서서히 시동을 걸고 다른 유니목이 길을 이끄는 대로 아스팔트 길을 따라 순탄하게 앞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노준걸이 절망하며 고개를 다시 돌렸다.

“능연은 저쪽으로 갑니까? 길이 두 개?”

“길은 모두 세 개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리한 지 오래된 옛길입니다. 그래도 대부분 아스팔트 길이죠. 2 제부, 4 제부 옮기는 트럭이 그 길로 갑니다.”

“내가 소보다 못하다는 겁니까?”

그러자 기사가 이상하다는 듯 노준걸을 힐끔 봤다.

“그게 얼마나 이름난 소인데요!”

쿠파 마을.

마을 주민 역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마을 주민은 일기예보와 정부 발표를 듣자마자 곧장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

공무원, 학교 선생 그리고 병원 의료진도 기본적으로 모두 도망가고 없었다.

마을 대표와 경찰서장은 도망가지 않았지만, 수하에 남은 직원 고작 두 명 모두 깃발을 들고 교통 지휘하러 나갔다.

자동차를 타고 도착한 전국정은 그런 상황을 보고는 두말없이 수하를 절반 보내 도움을 주었다. 어차피 유니목 행렬 후반 자동차에 싣고 온 물자는 대부분 국정 자선 병원에 내려놓으려 했었다. 그곳은 지역이 높고 공간도 많아서 놓을 곳이 얼마든지 있었다.

2 제부, 4 제부조차도 병원 화원에 풀어놓고 전용 방수 텐트를 설치한 다음 사람을 따로 보내 관리했다.

정 목장의 사람과 차를 본 마을 대표가 서둘러 찾아와 감사 인사하고는 그 김에 차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휴식했다.

“국정 선생 소 떼는 모두 모았습니까? 손실은요? 크지 않지요?”

마을 대표는 실눈을 뜨고 홍차를 홀짝거리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맞은편에 앉은 능연과 전칠을 살폈다.

능연과 전칠은 생긋 웃어 보이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마셨다.

깔끔하게 챙겨 입은 정국정은 전혀 무릎 수술한 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허약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목장 이야기가 나오자 전국정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카우보이들이 소 떼를 대부분 높은 지역으로 몰고 갔지요. 앞으로 반나절 더 찾아보고, 못 찾으면 어쩔 수 없고요.”

“소 떼들이 흩어져 있으면 다 모으는 게 확실히 쉽지 않지요.”

마을 대표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래도 정 목장 손실이 가장 적을 겁니다. 내일 아침 전에 비가 멈추면 몰라도요.”

비가 아침 전에 멈추긴 어려울 것이다. 브라질 사람은 모두 이런 폭풍우에 익숙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지역 재난이 일어나 백 명씩 죽고 수십만 명이 홍수, 산사태 피해를 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람들이 모두 비바람을 무릅 쓰고 노력하는 것도 모두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마을 대표가 하는 ‘손실이 가장 적다’는 말에 전국정은 달리 대응하지 않았다.

“대부분 목장은 각자 피난 대책이 있지요. 작은 농장일수록 손실이 적고요.”

“전에는 그랬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마을 대표가 한숨을 내쉬고는 기회를 잡은 김에 말을 이었다.

“지금 소 떼 규모가 거대해졌잖습니까. 그런데 카우보이는 줄었고요. 예전 같으면 작은 농장이라도 두어 명은 고용했는데 지금은 가족 농장이 많아져서 이런 일이 생기면 소 떼를 잘 모으지 못합니다.”

“큰 목장도 그런 문제는 있지요. 우리도 전체 목장 소 떼를 모을 만한 인력은 없답니다.”

전국정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 그가 내보낸 인력도 모두 저택의 고용인이었고, 일부는 카우보이 출신이긴 해도 전문적이지 않았다.

“다른 목장은 문제가 더 심각할 겁니다.”

마을 대표는 여전히 한숨을 내쉬더니 포르투갈어로 말을 이었다.

“지금 목장, 농장 직원하고 목장, 농장 관계가 예전처럼 그렇게 친밀하지 않지. 내가 젊었을 때는 이런 재해가 생기면 다들 목숨을 걸고 도왔는데 말이야. 그때는 단순한 고용 관계가 아니라 모두 이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작은 마을 주민이고. 그런데 지금은 목장, 농장에서 툭하면 밖에서 사람을 구해오니 이럴 때 쓸만한 사람을 못 찾는 거지.”

전국정이 고개를 들어 마을 대표를 바라보자 마을 대표가 찻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국정 선생, 국정 선생이 지금 쿠파 마을에서 고용인이 가장 많은 목장주일 겁니다. 선생 수하는 모두 선생 말을 듣지요. 몇십 년 전 현지 목장과 목장 직원 같은 관계요. 게다가 트럭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 다른 목장주를 도울 수 있고요. 국정 선생, 다들 선생이 도움을 주시길 기대하고 있답니다.”

“알겠습니다.”

전국정이 껄껄 웃으면서 힐끔 마을 대표를 바라봤다.

“내가 돕지 않는다면 온 마을 사람이 내 등 뒤에서 손가락질하겠지요.”

“그럴 리가요. 국정 선생이 통 큰 자선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국정 자선 병원이 쿠파 마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요.”

“마을 대표 자리에도 큰 도움이 됐겠지요.”

“그야 물론입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지금 날 협박합니까? 내 목장에도 인원이 부족한 판에 다른 목장을 돕기 위해 인력을 달라는 것도 모자라 차도 달라는 겁니까? 누구 목장입니까? 클라우스?”

마을 대표가 뻔뻔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협박이라니요. 그냥 선생이 도움이 되어 주신다면 더 좋다, 이거죠.”

전국정은 헛기침하고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럼 북쪽에 그 땅, 내게 파시오. 그럼 사람을 보내리다.”

“국정 선생, 그건 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알지요. 상의하세요.”

전국정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나한테 고마운 마음이 있다면 그 북쪽 땅을 팔면 됩니다. 아니면, 뭐. 당신들 생각이 어떤지 잘 알겠고요.”

마을 대표의 표정이 확 변했다.

“국정 선생, 이 화제는 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전국정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가서 일 보세요. 내가 클라우스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쫓겨난 마을 대표님은 창백해진 얼굴로 뜨거운 찻잔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차 문을 열고 나갔다.

탁하고 벤의 문이 닫히는 소리에 전국정이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도 정리해서 떠날 준비 하자꾸나. 비가 너무 많이 오는구나. 쿠파 마을도 혼란스럽겠어.”

“미처 못 떠나고 남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죠?”

전칠은 아직은 크게 긴장한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도 비가 내리는 중이지만 예상한 것만큼 큰 홍수는 아직이었다.

“다들 차 있을 거고, 나중에 차 한 대를 여기에 남겨 주면 운 나쁜 사람들도 태워 나갈 수 있겠지.”

거기까지 말한 전국정이 무슨 생각 난 듯 말을 이었다.

“일단 병원 좀 가봐야겠다. 그리고 아래에 사람을 좀 보내서 상황을 살펴야겠어.”

“저도 아래 내려가서 도울게요.”

전칠이 먼저 나서서 말하고는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님은 병원에 있는 게 좋겠어요.”

마을보다 국정 자선 병원이 더 안전했다.

그 말에 전국정이 미간을 구겼다.

“다들 병원에 있어. 전칠, 도울 일이 있으면 병원에서 도우면 되지.”

“병원엔 사람 많잖아요. 마을에 가보고 싶어요.”

전칠이 살며시 고집을 부리자, 그런 전칠의 표정을 본 전국정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차량은 곧 두 무리로 나뉘었고, 능연은 망설이다가 역시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곳은 바로 병원이었다.

30분 후, 능연은 더욱 그 점을 확신했다.

병원 로비에 환자가 바닥 가득 누워있었는데, 의사 하나 없고 심지어 약품마저 부족했다.

그때 시스템이 튀어나왔다.

- 퀘스트: 환자를 구해라!

- 퀘스트 내용: 다친 사람 30명 구하기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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