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능연을 따라 병원으로 온 마연린은 자기가 힘들어질 거라는 걸 깨달다.
바닥을 가득 채운 환자가 무슨 증상이든, 가장 힘들고 골치 아픈 일은 모두 자기 자치일 것이라는 것을. 게다가 국정 자선 병원 의료진은 대부분 다 도망갔고, 간호사와 조무사 몇만 남은 상태라 앞으로 임무가 얼마나 막중할지 불 보듯 뻔했다.
임시 통역을 맡은 주 주방장이 웍을 메고 나타나서 바닥을 구르며 울부짖는 환자를 보고 그 자리에 굳었다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물어보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차 사고 환자, 집이 무너진 사람, 그리고 식량 창고 보수하다가 떨어진 사람, 그리고 말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어.”
“어찌 됐든 다들 사고 난 환자라는 거죠? 이게 다?”
“하루에 일어난 게 아니라 며칠 동안 생긴 환자들이 다 여기 모여있대. 의료진이 너무 적어서, 나중에 도우러 온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를 로비에 모았다나 봐.”
시골 진료소처럼 시끌벅적한 로비를 보는 마연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도우러 온 자원봉사자들은 의사 아니죠?”
“의사는 다 도망갔어. 그러니까, 지금은 중상자를 우선 옮겨야 해.”
주 주방장은 몇 마디 더 묻고 돌아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말 세계 종말 같군. 다친 사람이 적어도 100명은 되는 거 같아. 중경상 불문하고 다들 응급처치해야 해.”
이야기를 듣던 마연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아, 아니에요. 저는······. 그러니까 세계 종말은 아니라고요. 중국 대형 병원에서는 일상인걸요.”
“응?”
“의사 둘, 환자 100명. 침대는 충분하고, 문외한 자원봉사자, 그리고 간호사도 몇 명 있다는 거죠?”
마연린이 입을 삐죽이며 말을 이었다.
“브라질에 오기 전에 맨날 하던 일이에요. 됐어요. 팔뚝 걷어붙이고 시작하자고요.”
마연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 주방장을 데리고 환자 손목에 표시를 일일이 검사하며 대조했다. 병원 지금 상황으로는 자원봉사자들이 분류해놓은 걸 믿을 수 없었다.
“의사들이 다 도망가다니, 당신네 브라질 사람들 참 대단하군요.”
마연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두르는 모습에 주 주방장이 껄껄 웃었다.
“난 브라질 사람 아닌데. 게다가 의사들이 얼마나 귀한 몸인데 여기 남겠어.”
“우리도 의사인데요?”
“아 그래 내가 실수했네. 실수! 이럴 때 우리 중국 의사야말로 믿음직하지.”
“우리는 믿음직하지만, 못 미더운 쓰레기 의사도 많아요.”
마연린은 그렇게 말하면서 환자들을 살폈다.
그때, 능연도 수술실을 살펴보고 나왔다. 그 뒤에 메이드 복장을 한 미녀 세리나가 통역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은 쓸만해요. 간호사 두 명밖에 없으니 한 사람은 밖에 남겨 두고 하나는 내가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세리나가 임시로 간호사 역할을 할 거예요.”
능연은 재빨리 결정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그중 환자를 한 명 골라내 가족을 불렀다.
“환자를 우선 수술실로 옮기세요. 그리고 나머지 환자는 병실로 보내요.”
“안 됩니다.”
그때 병원을 책임지는 자원봉사자가 앞으로 나섰다. 선두에 선 중년 여자는 놀라운 전투력을 내보이며 큰 소리로 말을 꺼냈다.
“환자를 모아 두어야 순조롭게 일할 수 있어요. 현장에 인력이 부족한 데다가 큰비와 홍수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른다고요. 그동안 헬기도 못 와요.”
“환자가 모여있으면 감염되기 더 쉽습니다. 지금 병원에 약품도 부족해요. 그러니 환자를 병실로 보내세요.”
능연은 의학적 설명을 할 땐 말이 긴 편이었다. 다만 말투는 더욱 딱딱했지만.
중년 여자는 흥흥대더니 조금 걱정스러운 듯했지만,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
“자원봉사자도 고작 5명이에요. 100명 넘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데 여러 병실로 분산된다면······. 게다가 우린 전문 간호사도 아니라고요.”
“보호자도 도우라고 하세요. 경상 환자는 알아서 처리하고요.”
응급실에 일 년 넘게 머무른 능연은 수술과 응급처치 외에도 곽종군에게서 기술적인 것들도 배웠다. 군의관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노련한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약 도와줄 의사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능연은 수술실도 다른 방식으로 굴릴 생각이었다.
예를 들어 수술을 끝까지 진행하지 않고 일단 목숨을 살리고 유지 시키는 상태까지만 진행한다던가 하는.
지금 이 순간, 쿠파의 국정 자선 병원은 이미 병원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 게다가 약품, 혈액과 소모품이 부족한 상태라 병원의 안전도가 대대적으로 하락한 상태였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운송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큰비가 내리는 쿠파 마을에 헬리콥터는 전혀 움직일 수 없고, 일반 SUV나 소형 트럭으로는 진흙땅에 빠질 것이고, 일반 승용차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가능한 건 대형 트럭인데, 그것도 기사의 실력과 차량 상태에 달렸다.
가장 중요한 건, 쿠파 마을 위치가 비교적 높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홍수와 진흙의 영향을 덜 받지만, 일단 여기서 나가게 되면 도로 어디에서 홍수와 진흙 공격을 받게 될지 모른다. 이것은 확률 문제이며 차나 기술의 문제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니목이라고 해도 진흙탕을 만나면 헛돌 수 있고, 꺼진 땅이나 진흙 소용돌이가 있는 도로, 모래가 쌓인 곳을 만나면 골치 아프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이런 골칫거리를 안고 환자를 밖으로 내보내는 건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서 기본적으로 불가능했다.
의료진, 의약품이 부족한 이런 상태에서 한참을 버텨야 한다는 걸 깨달은 능연은 자원봉사자 앞에서 단호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능연과 마주 선 자원봉사자들도 그런 능연의 모습을 보며 계속 반항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요, 현장의 유일한 의사니까 선생님 말을 듣죠.”
자원봉사자인 중년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줄리아예요. 줄리라고 부르세요. 자, 이제 뭘 하면 될까요?”
“일단 병실 청소하고 창고에 있는 약품, 소모품 정리하세요. 그다음에 환자를 병실로 옮기고 외부와 연락할 방법을 구하세요. 위성 전화가 된다면 제일 좋고요.”
능연은 곽종군으로부터 배운 모든 것을 쏟아내고는 환자를 대충 훑어보고는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복부 손상 환자입니다. 어깨도 심한 통증이 있고요. 자동차 사고입니다. 그런데 지금 X-ray를 찍을 수 없어요.”
간호사의 말을 세리나가 통역했다.
짧은 몇십 초 사이에, 병원의 참담한 상황이 완전히 드러났다.
다행히 X-ray 대신 가상 인간을 쓸 수 있었고,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습관적으로 좌우를 둘러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마취의는?”
“도망갔어요.”
세리나의 통역은 매우 직접적이었다.
능연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것도 멋졌다.
“마취, 우리가 해야 하나요?”
현장에 있는 서른 살 정도 된 갈색 머리카락의 현지인 브라질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전 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능연도 자연스럽게 대답했고.
“그럼 어떻게 해요?”
세리나의 통역을 들은 간호사가 넋이 나간 모습으로 수술대 위의 환자를 바라봤다.
안 그래도 아파서 땀을 비처럼 흘리던 환자는 땀을 더 많이 흘렸다.
“저······ 다른 병원으로 보내주시면 안 되나요?”
“12시간 내에는 나갈 수 없어요.”
간호사가 매우 확실하게 대답했다.
지금 폭풍우가 멈추지 않는 이상, 몇 시간 더 있으면 해도 질 거고 나가려는 트럭이 있다고 해도 그 날씨에는 진흙탕에 빠지기에 십상일 것이다.
“진통제 좀 더 주세요.”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며 하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가서 마취학 서적 좀 찾아오세요.”
“무슨 말씀이시죠?”
“책 보면서 하게요.”
능연의 제안은 이상할 것도 없었다. 사실 의사들은 대부분 의사 생활 초기에 책을 넘기면서 배우곤 한다.
지금도 오스트레일리아 의사들은 수술방에서 책을 보기로 유명했다. 물론, 지금은 구글이 있으니 구글에서 검색해도 된다. 그래도 환자가 직접 구글링 해서 방안을 검색하는 것보다는 의사가 하는 게 선별 능력이 있어서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해서 다음 방안을 세울 수 있다.
수천수만 가지 질병을, 초짜 의사들이 모두 외우기엔 막대한 시간이 든다. 오스트레일리아 의사들은 온종일 책을 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책을 뒤져 보는 걸 위주로 삼는다.
브라질 의사는······ 브라질 의사 역시 책 뒤지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간호사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더니 허둥지둥 책을 찾으러 나갔다. 그런 간호사의 뒷모습을 눈으로 배웅하며, 환자는 수술대 위에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능연이 무언가 펼치는 것처럼 팔을 허공에 휘두르고 있었다.
환자는 곧 절망에 빠졌다. 재수 없게 다친 것도 모자라, 병원에 왔더니 의사는 모두 도망가고 없고, 외과 의사가 하나 어렵게 나타났나 했더니 마취의가 없다니. 그러더니 간호사는 책을 찾으러 사라지고, 그리고 그 외과 의사는 미친놈처럼 보이고.
“움직이지 마세요.”
초급 보물 상자를 눈앞에 잔뜩 펼쳐놓은 능연은 상자 여는 데 영향받을까 봐 다급하게 말했다.
아파서 괴로운 환자의 태도는 별로 좋지 않아서 바로 툴툴댔다.
“수술도 못 하는데 움직이면 어때서.”
“제 시야를 가립니다.”
왔다 갔다 통역하던 세리나는 말을 마친 다음 바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텅 빈 수술실을 바라보며 환자는 더욱 웃음을 터트렸다.
“마취를 직접 배울 생각인 미친 외과 의사라니······. 하, 내 운이 정말 안 좋은가 봐.”
세리나도 내심 환자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능연은 잘생겼지만, 잘생김을 의술에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크게 쓰이지는 않지 않을까?
“환자가 뭐라고 합니까?”
능연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물었다. 어쨌든 상처가 심한 환자니까 본인의 서술에 귀를 기울이는 건 당연했다.
“음. 많이 괴롭대요.”
세리나의 통역에 능연은 환자의 안색을 힐끔 봤다.
“그렇게까지 아프면 진통제 쓰죠. 음, 잠시만요. 간호사 좀 불러 보세요.”
말을 마친 능연은 계속해서 보물 상자를 열었다.
능연은 그동안 상자를 매우 많이 모았고, 원래 계획은 1112 혹은 1113 같은 특정 숫자까지 모으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 그동안 모든 820개 초급 보물 상자를 모두 열었다.
눈앞에 푸르른 빛이 반짝였다.
능연은 일단 스태미너 포션을 한데 모아 집어넣었다. 그리고 족부 해부 경험 50번, 복부 해부 경험 40번, 하체 해부 경험 30번, 또 이번에 새로 얻은 흉부 해부 경험 40번과 뇌 해부 경험 20번도 챙겼다.
그렇게 능연 앞에는 책 두 권만 남게 되었다.
해부 경험을 계산해 보니, 5대 1의 확률로 스킬을 얻은 셈이라 그동안 상자를 열었던 평균 수준은 넘은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킬북에 관심이 더 컸다.
능연은 속으로 마취를 생각하며 손을 휘둘러 스킬북을 열었고 곧 푸른 글씨가 나타났다.
- 단일항목 스킬북: 부분 침윤 마취 (마스터급)
- 단일항목 스킬북: 마취 케어 조합 (마스터급)
능연은 저도 모르게 조용해졌다.
마취를 달라니까 정말로 마취 항목이 두 개나 나오다니.
그러나 부분 침윤 마취 마스터급이라니······. 사용 범위가 좁아도 너무 좁았다. 그건 거의 에스테틱 방면에나 쓸만한 기술이었다.
부분 침윤 마취란 환자 피부에 피부 민감도 테스트하는 것처럼 바늘을 환자 피부 아래 찔러넣어 마취제를 주사하고 다시 뽑고 찌르는 실습 효과 정도였다. 일반 주사보다 아프기까지 한 이 기술은 각 마취 기술 중에 가장 마취답지 않은 종류였다.
게다가 효과는······ 간단한 수술은 문제없다. 티눈 제거, 꺼진 발톱 같은 건 유용하게 쓰이고, 쌍꺼풀 수술에도 쓸 수 있다. 일반인이 자주 접하는 거라면 치과에서도 자주 부분 침윤 마취를 사용한다.
그러나 오늘 같은 경우에 치통은 정말 병 축에 끼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마취 케어 조합이 더 유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직접 사람을 마취하는 기술은 아니었고 마취 조수나 간호사의 일에 더 가까웠다. 능연이 마취과 레지던트라면 이런 기술을 매우 환영하겠지만, 그러나 아니지 않은가.
“능 선생.”
돌아온 간호사는 능연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가볍게 그를 불렀다.
능연의 그런 표정이 의외는 아니었다. 수술실에 마취의 하나 없는 상황이라니, 다른 외과 의사라면 무너질 만했다.
그런 이유로, 능연을 바라보는 간호사는 동정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런 위급 상황에 도망간 다른 의사는 나중에 질책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잊어버릴 것이고, 책임 추궁은 지금 남아 있는 능연 선생이 오롯이 지게 되리라.
“능 선생님, 마취학 서적 몇 권 찾았어요. 중문판도 있네요. 그런데 정말 책을 보고 수술할 거예요?”
간호사는 다시 한 번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외부에 연락됩니까? 전화나 인터넷.”
능연은 기대하지는 않지만 일단 물었다.
핸드폰 신호는 기지국이 필요했고, 일반 전화는 회선이 필요했다. 간호사가 망연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능연은 책을 건네받아 넘기기 시작했다. 특히 중문판 마취학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어쨌든 학교에서 기본적인 것은 배웠었고, 그때는 대부분 시간을 책 읽기에 투자했었으니 말이다.
“한번 해보죠. 정맥 주사로 합시다.”
환자는 선택의 여지 없이 바로 누웠고, 간호사도 능연의 손짓에 협조할 수밖에 없어서 능연이 선택한 전신 마취 방안을 따라 주사를 놓았다.
마스크 흡입 마취와 비교해서 단순한 정맥 마취는 조금 더 위험해서 그렇지, 링거 놓은 것과 비슷했다.
지금 상황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더 위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