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34화 (515/877)

실바의 얼굴은 영국식으로 침착했지만, 마음은 브라질식으로 날뛰었다.

마연린이 자신의 붕대를 푸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얼굴에 영국식 침착함도 2차 세계 대전 속도보다 더 빨리 무너졌다.

“감염, 심한가요?”

용병인 실바는 감염된 후환이 어떤지 너무 잘 알았다. 특히 이렇게 약품이 부족하고 후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별것 아닌 것 같은 바이러스라도 잘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미국 남북 전쟁 사망률만 봐도 알 수 있는 이야기였다. 충분한 약품이 없는 상황에서 감염 사망률은 지극히 높은 법이었다.

마연린이 엄숙한 표정으로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죽는 거야?

마연린의 행동을 본 실바는 순간 가슴이 펄떡 뛰었고, 얼굴에 표정도 완전히 브라질화하여 버럭 성질을 냈다.

“난 그냥 돌에 긁힌 거라고!”

“심각하지 않아서, 잠시 처리하면 됩니다.”

그때 마연린이 통역을 통해서 간단히 설명했고 세리나의 설명을 들은 실바의 마음이 다시 무너졌다.

“아무 일도 아닌데 왜 고개를 흔드는 거요!”

“이건 중국 사람 습관인데요. ‘뭐뭐 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때는 일단 고개를 흔듭니다.”

눈물까지 흘릴 것 같은 실바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연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중국엔 이런 습관이 있습니까?”

실바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능연을 바라봤고, 그런 실랑이에 전혀 관심 없는 능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금 바로 상처 처리하고 봉합해야 합니다. 다친 다음 바로 처리하지 않아서 상처 내부에 더러운 물질이 감염을 일으켰어요. 항생제는 드셨나요?”

“네. 응급 키트가 있었어요.”

실바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자주 다친답니다. 일반적으로 응급 키트 안에 약을 사용하고 나중에 병원으로 가죠. 그래도 보통 아무 일 없습니다.”

“네.”

대장도 곁에서 한마디 거들었고, 능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질은 열대고, 거기다가 오염된 물에 병원균이 더 많은 데다가 피로로 면역력이 떨어졌을지도 몰라요. 원인은 다양하거든요.”

“그러니, 운이라는 말인가요?”

곁에서 설명하는 마연린의 말에 실바가 물었다.

“감염은 원래 운입니다. 에이즈 환자가 썼던 바늘에 찔려서 당첨될 확률은 300분의 1이거든요. 콘돔 피임률도 고작 85%고요.”

마연린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에? 콘돔 피임률이 고작 85%?”

대장과 실바 모두 안색이 변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실바의 안색이 더 심각했다.

마연린은 마을 의사처럼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정확하게 사용하면 성공률도 98%까지 올라갑니다. 대부분 정확한 사용법을 몰라서 그래요.”

“어떻게 쓰는 건데요? 어떻게.”

실바는 순간 허리에 통증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능연이 장갑 낀 손으로 실바의 허리 상처를 잡고는 몇 번 눌렀다.

세리나가 통역하는 말에 실바는 미칠 것 같았다.

“움직이지 말라고?”

세리나는 능연을 힐끔 보고 아예 통역하지 않고 바로 실바에게 대답했다.

“능 선생님 말은, 당신이 자꾸 움직이면 당신 신장을 잘라 버리겠다는 뜻이에요.”

순간 실바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마침 능연이 실바를 다시 쿡쿡 찔렀다.

실바는 강인한 표정을 지었다. 용병 생활 5년, 대학 4년, 3년 군인 생활로 쌓아온 모든 경험, 경력, 의지로 꿈쩍하지 않고 참아냈다.

능연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실바를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되게 강인한 모습이네.”

실바와 세리나의 대화를 못 알아들은 마연린도 바로 영어로 ‘터프 가이’라고 칭찬했다.

실바의 얼굴에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소가 떠올랐다.

“신경이 덜 예민한가 봐. 이따 마취약 좀 덜 써도 되는 거 아닐까? 절약하고 좋잖아. 약도 얼마 안 남았어.”

“음······.”

실바의 모습을 보더니, 마연린은 그렇게 말했고 능연은 생각에 잠겼다.

“아니 이 사람들이 약을 보낸 건데, 도착해서 자기들이 쓰는 것도 좀 이상하잖아. 물론, 몸 상태를 봐도 안 써도 될 거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마취약 많이 썼다고 오히려 부작용 생길 거 같은데?”

마연린은 매우 논리적으로 마취 평가를 내리고는 마취할 준비를 했다.

“일반 부분 상처 처리하고 다음에 마취 진행할 겁니다.”

능연은 우선 실바에게 간단히 설명하고 데브리망을 시작했다.

데브리망 봉합의 첫 번째 절차는 마취제를 놓는 게 아니라 상처 처리가 우선이었다. 바늘이 들어갈 때 표면에 있는 세균이 같이 들어갈 수 있으므로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용병 생활하는 동안 실바도 데브리망을 적잖게 해왔고 그 이치를 잘 알고 있으니 능연이 부드러운 솔로 상처 주변의 피부를 닦아 내고 식염수로 헹구는 걸 이를 악물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미소 지은 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국정 자선 병원에 사흘 머무르는 동안, 100명 넘는 환자 중에 수술할 수 있는 환자는 이미 해치웠다. 중상 환자라고 해도 능연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서 일단 목숨을 보전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병원에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침 용병들이 본인을 포함한 보급품을 가지고 온 것이다. 실바 같이 오는 길에 다친 사람은 밤이 되어 상처가 무럭무럭 자랐을 때라 수술하기 딱 좋았다.

“식염수 조금 더요.”

아끼면서 사용해야 하지만, 식염수 한 병으로는 역시 모자랐다.

실바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도 상대적이어서 실제로는 우측 복부 전체에 찰과상이 있고 몇 군데 깊은 상처가 있었다. 게다가 감염으로 인한 고름도 있어서 모두 세척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약품에 비해 국정 자선 병원 창고에 식염수는 그래도 넉넉했다. 간호사가 재빨리 한 병 가지고 와서 데브리망 할 상처 부위에 부었다.

“상처가 깊은 편이니까 수술실로 보내는 게 낫겠어요.”

“수술해야 합니까?”

현장에 있던 용병 몇 사람이 다시 긴장했다.

“데브리망은 작은 수술입니다.”

능연이 말하기도 전에 세리나가 알아서 대답했다.

“수술실 환경이 더 깔끔해서 감염될 우려가 없습니다.”

능연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장 상황이 안 좋으니까, 최대한 정규적이고 일반적인 항균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골치 아픈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라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미 놀랄 대로 놀란 실바는 뭐라고 반대할 말도 나오지 않았고 멍한 눈빛으로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그의 대장과 대원들은 따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넋을 놓고 수술실 등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주사 놓고, 살 자르고, 세척하고, 드레싱하고 머지않아 실바가 밖으로 나왔다.

용병 몇이 몰려들어 실바를 에워싸고 병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실바를 둘러싼 채 말없이 멍하니 있었다.

“대장님, 우리 임무, 끝난 건가요?”

대원 하나가 나지막이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대장이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에 무료해하는 환자와 무료해하는 환자 보호자만 있을 뿐, 지옥은 없고 그들이 나설 공간도 없었다.

“이제 우린 어쩌죠?”

“뭐 하려고?”

“낚시하고 싶습니다.”

“가라.”

이른 아침, 용병 대장은 상체를 드러낸 건장한 왼쪽 어깨에 붕대를 감고 얼굴엔 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난밤 용병 실바의 데브리망을 끝낸 마연린이 대장 왼쪽 어깨의 상처도 처리했다. 그의 어깨는 보트를 짊어질 때 눌려서 다친 것으로, 실바보다 가벼운 상처였지만, 제때 처리하지 않아서 붉게 염증이 생긴 흔적이 있었다.

그의 곁엔 허벅지를 다친 폭파수가 있었다. 폭파수도 마찬가지로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었고 불끈 솟은 근육에 하얀 붕대가 단단히 감겨 있었다. 군복 바지를 벗고 얻어 온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하반신만 보면 재수 없는 해수욕객 같아 보였다.

용병 대장 왼쪽엔 긴장이 풀린 상태인 실바가 있었다.

허리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총을 맞은 것처럼 보이는 실바는 얼굴에 아무렇지 않은 것 같은 미소를 띠고 막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대장님, 오늘 한가한데 쿠파 마을 가서 길이나 낼까요.”

“어떻게?”

대장도 실눈을 뜨고 유치원 학부모회에 참석한 것처럼 온화한 태도로 드넓은 수면과 사방의 흙탕물을 보고 있었다.

몇백 미터 넓이의 호수를 바라보던 실바도 사실 별 아이디어는 없어서 그저 입술을 핥았다.

“보너스가 몇십만이나 하잖아요. 총을 쏘지 않고도 벌 수 있는 돈인데, 아깝잖습니까.”

“호수 너머엔 골짜기가 있는데 지금은 진흙탕이라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그리고 산사태 위험도 있고. 어떻게든 지나갈 수 있다고 쳐도 그게 길을 내는 건 아니잖나.”

대장은 쿠파 마을 방향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원래 있던 길이 씻겨 나가고 막힌 곳이 적잖을 거야. 우리 몇 명으로 몇 미터나 되는 산길을 내는 건 총 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아닐 거야.”

“그래도 너무 아깝잖아요. 이번에 크게 한탕 벌 줄 알았는데.”

실바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예정된 위치에 도착했고, 앞으로 능 선생만 잘 보호하면 몇 달 충분히 쓸 돈을 벌 거야. 목숨 아끼자고.”

대장은 위험을 무릅쓸 생각이 없었다. 쿠파 마을과 국정 자선 병원은 가깝지만, 폭풍우, 홍수와 산사태가 지나간 다음, 원래 몇 분이면 통과할 수 있던 평탄한 곳이 지금은 가장 어려운 위험 지대가 되었다. 공사 차량 도움 없이는 길을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쿠파 마을에 간 팀은 마을 인원이나 설비를 빌려서 무슨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장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병원이 위험하고 상금도 적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나서서 병원으로 온 것이었다. 팀의 관리자로서 그는 꽤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결과가 나쁘지 않았고 병원도 상상보다 훨씬 편안했다.

“시간 됐으니 저는 생선 잡으러 갑니다.”

폭파수가 시계를 보더니, 심호흡하고는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날씨 괜찮네요.”

대장과 실바가 동시에 창밖을 보니 비가 전날보다 줄어든 것 같았다. 그래도 폭풍우에서 큰비로 바뀐 정도였고, 게다가 여우비라서 공기가 이상할 정도로 습하고 후덥지근했다.

그러나 폭파수 얼굴의 미소는 매우 진실했다.

“지난번에 활활 타오르는 유조차 세 대 앞에서 저런 미소 짓던 걸 본 적 있는데 말이죠.”

실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방에 불내진 않겠죠?”

“걱정 말라고. 저 녀석 불을 제일 잘 써. 14살 때 이웃 곡식 창고 불태웠지. 그런데 자기 집 앞에 불이 번지기 전에 불을 껐거든.”

“어떻게요?”

“물건들을 경계에 묻어 놓고 불이 번져 올 때 폭발시켜서 불도 꺼트렸대. 소화기도 쓰지 않았다고 하더군. 근데 이 부분은 허풍 요소가 좀 있는 거 같아.”

“낚시할 때 조용한 사람이 그런 어린 시절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실바가 경악한 듯 말했다.

“아마도 적이 지뢰를 밟기 기다리는 거랑 낚시가 비슷해서겠지?”

잠시 생각하던 실바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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