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전도 모니터링 기기 어딘가가 네온사인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독일산 마취 호흡기는 쓰는 사람 없이 한쪽에 버려져 있었다.
날두는 정맥 주삿바늘을 달고 거칠게 호흡하며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얼굴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고, 가랑이 부분은 수술 침대로 들어 올려져서 절도위(折刀位)로 접혀 있었다.
엎드린 사람이 △ 모양으로 접혀 있는 것이 바로 절도위였다.
능연은 수술 침대를 한 바퀴 돌면서, 수술 과정 중에 전동 메스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날두의 사지를 감싼 천을 특별히 살폈다.
“마취.”
자세히 검사를 마친 능연이 명령을 내리자 마연린이 엄숙한 표정으로 출동했다.
능연은 검사 리스트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수기로 번역된 검사 리스트에 정규 간, 신장 기능, 소변, 대변 검사 등을 포함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구체적인 검사는 헬리콥터로 샘플을 밖으로 옮겨 다시 검사하고 위성 전화로 통보받았다.
이전 수술은 그렇게 할 상황이 되지 않아 그냥 현장에서 가능한 만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잠시 폭우 공백기가 생겼으니, 환자를 모두 밖으로 보내진 못해도 샘플은 내보낼 수 있었다.
능연은 평소 습관대로, 치질 수술일지라도 여러 검사를 하고 싶었다.
“시작하죠.”
능연은 마연린과 함께 확인하지 않고 혼자 심전도 모니터링 기기의 숫자를 바라봤다.
현장에 두 의사 모두 돌팔이 마취의였으니, 서로 확인해 봐야 의미 없었다.
“커브 모스키토 포셉.”
“네.”
능연은 고개를 돌려 스테인리스 트레이를 가리키며 도구를 요구했고, 간호사가 서둘러 모스키토 포셉을 능연에게 건넸다.
정상적인 수술실에서는 일일이 지시하는 과정은 생략하고, 기구를 일일이 불러서 요구하지도 않는다. 정규 수술에서는 간호사가 의사보다 더 기구에 노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국정 자선 병원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유일한 간호사와 언어 소통 문제도 있었고, 그 간호사는 치질 수술에 참여한 적도 없었다.
능연은 커브 모스키토 포셉으로 내치핵을 단단히 집었다.
오리알만 한 내치핵이 뒤틀리는 모습을 본 마연린의 눈가도 파르르 떨렸다.
“굉장한 비주얼이다.”
“7호사.”
능연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대화할 생각도 없이 실을 포셉 위에 걸고 신속하게 8자 봉합을 진행하고 매듭지었다.
“메스.”
능연은 메스를 건네받아서 커브 모스키토 포셉 하단을 따라 피부를 절개했다. 그러자 치선(齒線)까지 커다란 V형 절개구가 생겼다.
능연은 원래 작은 절개구에 연연하지 않았다.
수술하는 과정에서 능연은 항상 많은 것을 고려하기에, 신중하면 할수록 크게 절개하게 됐다.
그리고 오리알만 한 내치핵 앞에서는 작은 절개구를 내고 싶어도 불가능했다.
“씨저.”
메스를 내려놓은 능연이 오른손을 뻗어 가위를 요구하고는 왼손으로 포셉을 잡고 외치핵을 들어 올렸다.
능연이 지금 하는 작업을 간단히 설명하면 오리알만 한 살덩이를 환자 항문 쪽에서 박리하면서 최대한 관련 부위를 덜 다치게 하는 것이다.
유사한 수술 동작은 사실 매우 많다. 얼굴에 난 여드름과 낭종도 비슷한 방법으로 제거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저 치질이 보통 크기가 더 크고, 거울을 비추기 좋지 않아서 관찰하기 좋지 않다는 정도다.
의사에게는 두 수술의 본질은 비슷했고 기껏해야 치질 발생률이 조금 더 높을 뿐이다.
오리알만 한 내치핵을 박리한 후, 능연은 그 자리에 8자 봉합을 하면서 수술은 거의 끝이 났다. 이어서 다른 내치핵도 꼼꼼히 처리하는 동안, 그다지 할 일 없는 마연린의 시선은 여전히 ‘오리알’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마무리하세요.”
능연은 본인이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
치질 수술은 원래 기본 중의 기본인 수술이고, 치명적인 것도 아니라 외과 의사 눈에는 하급 중의 하급 수술이었다.
사람들이 빈번하게 걸리는 병이 아니라면 대형 병원에서는 이런 수술을 하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다.
능연은 마연린이 연습하기엔 치질 수술이 오히려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능팀에서 마연린의 실력은 연문빈과 장안민보다 떨어졌다. 그러나 그건 경험 부족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세 사람 모두 의대 출신 엘리트 중에 일반인, 즉 삼갑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레지 혹은 주치의 상태여서 조금만 자세히 가르치고 연습할 기회가 많아지면 보다 잘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연히 평범한 의사가 될 것이고.
그러나 치료팀 안에도 경쟁은 존재했다.
마연린의 실력이 가장 약하니 얻을 기회도 따라서 적었다. 특히 자주 세컨드나 서드 어시를 서는 것은 결단력을 키우는 데 불리했다.
그래서 치질 수술 같은 간단한 수술이 오히려 지금 마연린에게 더욱 적당했다.
혹은 여원이나······.
자리를 내준 능연은 저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마연린은 그다지 적응되지 않은 듯 자리를 잡고 서서 매듭의 나머지 부분을 자르고 절개구를 다듬은 다음 지혈했다.
지친 건지 왜 그러는 건지, 식은땀이 다 나는 느낌이었다.
능연은 곁에서 지켜보면서 지도하다가 마연린이 바세린을 바른 거즈를 집어내는 걸 보고는 안심하고 수술실에서 나왔다.
세리나는 눈치 빠르게 능연을 따라 나왔다.
국정 자선 병원 복도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창밖은 다시 큰 비가 뿌리기 시작했지만,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한참 편안해졌다.
비가 멎었던 두 시간은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고 헬리콥터도 겨우 환자 3명과 노인 2명을 데리고 갔을 뿐이지만, 고진감래의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병원 분위기는 순식간에 High 해졌다.
죽음의 위협이 멀리 사라지고 삶에 대한 바람이 강렬해졌다.
“능 선생님, 수술 끝나셨어요? 성공인가요?”
환자 보호자 하나가 건들건들 다가오는 모습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했습니다.”
“으······. 치질 제거하고 나면 안 아픈가요?”
“수술 후 통증 말씀이라면 진통제를 쓰죠. 일반적으로 48시간 뒤에 명확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은 24시간 후 배변, 배뇨관 48시간 유지를 권장합니다.”
능연이 설명하는 동안 세리나가 곁에서 통역했고 보호자들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해졌다.
“무슨 일 있는 거면 빨리 말하세요. 능 선생님은 아주 바쁘답니다.”
세리나가 답답하다는 듯 재촉하는 말에 환자 보호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치질이 도졌습니다. 며칠 내내 비가 오고 할 일도 없어서 계속 앉아 있었더니······.”
“수술하시겠습니까?”
보호자의 상태를 깨닫지 못했던 능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가능합니까?”
“구체적인 건 상황을 봐야겠지만요. 음, 아니면 도로가 뚫리길 기다렸다가 정식 병원에 가서 하셔도 됩니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하는 능연의 말에 보호자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작년에 두 달이나 대기했는데 결국 수술 못 했어요. 기다리기 싫습니다. 그럼 선생님께 부탁드리죠.”
말을 마친 보호자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저기, 친구 몇 명도 있습니다만······.”
가벼운 헛기침 소리와 함께 남자 셋이 어슬렁어슬렁 복도를 가로지르며 나타났다.
능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세리나를 바라봤다.
“마 선생님 불러서 진료하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