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름이 잠시 멈춘 사이 헬리콥터 세 대가 연달아 금빛을 번쩍이며 멀리서 순서대로 착륙하여 안에 있는 사람과 물건을 내려놓았다.
현장 책임자인 호세오도 처음으로 쿠파 마을 토지를 밟았다.
4명이나 되는 기자도 그와 함께 왔다. 그들이 헬리콥터 한 대 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전에 한 대로 운반한 것보다 이번 물자 배송량이 더욱 적었다.
그러나 홍수로 인한 위기감은 폭우가 잦아들면서 같이 물러났고, 운항에 쓸 수 있는 공백기가 5시간이 정도 되니 인구 천 명 정도인 쿠파 마을엔 충분해져서 사람들은 빨리 떠나야겠다는 충동이 줄어들었다. 물자 결핍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평온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어차피 쿠파 마을 자체가 황량한 곳이었다.
사람들이 오히려 기자에게 몰려들어서 자신의 상태를 피력했다.
“우리 소가 많이 죽었답니다. 사료 부족 때문에요. 정말 잔인한 일이지요. 정부에서 비상 사료를 제공해 주길 바랍니다.”
“집이 많이 무너졌어요. 보수해야 할 집도 많고. 그리고 진흙 처리도요. 양이 너무 많아서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하려면 치우다가 내년 우기가 다시 올 지경이에요.”
“저는 양어장이 물에 다 잠겨서 안에 있던 물고기가 전부 도망갔습니다. 다들 귀한 어종이었는데 말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지금은 중국 의사 능 선생님이 혼자 치료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더 필요해요.”
호세오는 사람들의 요구에 언짢아하거나 부담을 느끼지도 않은 채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마주했다.
브라질에서 농민은 여전히 우대 받는 직업이어서, 목장주와 농장주들이 과한 요구를 한다고 해도 다들 쉽게 용서했다.
그에 비교해서 정치인의 태도는 매우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들의 말의 내용은 별로 관심 두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하는 말 열 마디 중 이행되는 건 한 마디도 없으니까 말이다.
몇 분 동안 흘려들으면서 브라질 정치 분위기를 느끼던 마연린은 주목받지 못하는 구석에서 조무사 몇 명과 함께 환자들을 헬리콥터로 이송했다.
지금은 중상자는 모두 내보냈지만, 수술 후에 상태가 안정되지 않은 환자도 있고 기초 질환이 많은 노인도 있는데 국정 자선 병원에 약품이 부족해서 병세를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작디작은 그림자가 낌새도 없이 마연린을 덮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기 모든 사람을 다 수술한 줄 알겠네.”
“여원! 아니······. 여 선생님! 언제 왔어요?”
마연린은 정말로 놀라고 반가워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또 돌리다가 겨우 여원을 발견했다.
여원의 낮은 어깨가 오히려 그녀를 힘차 보이게 했다.
여원은 치프 레지던트의 자태로 뒷짐을 지고 훈련의 마연린을 올려다보며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듣자 하니······ 치질 수술을 7건 했다고?”
마연린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수술도 백 건 넘게 했는데요. 선생님은 모르겠지만, 홍수 발생한 초반에는 여기 완전히 응급의학과 같았어요. 두 사람밖에 없는 응급의학과요. 마취의도 없고. 저랑 능 선생이 책 보면서 마취했다니까요.”
“장경색 수술도 두 건 했고?”
“한 건이요. 하나는 알고 보니 충수염이더라고요. 병원 상태가 말이 아니라 진단의학과를 굴릴 수가 없어서 당시에 엄청 긴장했거든요. 거의 개복 검사를 한 셈이죠. 환자한테 사인받기 전에 병세를 더 심각하게 설명했어요. 장경색이 더 심각하잖아요.”
“다 성공했고?”
“성공은 했죠. 맞다, 선생님 아마존 갔어요? 어때요? 지구의 폐잖아요. 그것만 해도 대단하지.”
“못 갔어.”
여원이 얼굴을 구겼다.
“도착하자마자 큰비가 내려서 이틀 지체했고, 비가 더 심하게 와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제일 많이 본 야생 동물이 모기였어.”
체념한 듯 말하는 여원의 모습에 마연린은 묘하게 뜨끔해져서 여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머쓱하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물린 흔적은 없네요. 열대 지역 모기는 무섭잖아요. 전에 그 황열병도 모기로 전염된 거잖아요.”
“너 집도도 했다며? 치질 수술 후반도 네가 했고.”
여원은 왜 모기에게 물리지 않았는지를 깊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아마존에 간 것으로 수백몇 수술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그 수술을 모두 능연의 지도하에 했다면 한 가지 수술방식에 익숙해지기 충분할 양이었다.
백 번 모두 같은 수술방식일 필요도 없고, 다른 수술 사이에 공통부분이 있는데 다른 수술에서 같은 기교를 쓰는 것이 바로 초짜 의사들이 연습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어쨌든 초짜 의사에게 부족한 것은 모두 기초 스킬이고, 치질 수술에 쓰는 봉합을 위 절제, 장 수술에도 흔하게 쓰니까 말이다.
능연 같은 고급 의사의 단독 지도를 받을 기회가 아마존보다 훨씬 귀한 일이었다.
치질 수술은 귀한 중에 더욱 귀하고.
여원은 능연이 브라질을 떠난 후, 혹은 브라질을 떠나지 않더라도 눈앞의 긴장된 분위기만 완화되면 다시는 치질 수술을 하지 않으리라고 거의 확신했다.
다시 말하면 마연린은 절판된 능 씨 치질 수술 스킬을 얻은 것이다!
여원은 야생 아로와나가 양식 미꾸라지를 보는 눈빛으로 마연린을 노려봤다.
“브라질 병원 수술은 예약하기 어렵대요. 치질 환자는 많고요. 생각해 보세요. 날씨가 이렇게 무더운데 허구한 날 바비큐, 바비큐. 조금만 앉아 있어도 치질 걸리죠. 우리도 환자의 고통을 하기 위해서······.”
마연린이 웅얼웅얼댔다.
“그리고 네가 집도하고?”
“능 선생 수술 몇 번 본 다음에 겨우 집도했어요. 치질 수술은 쉽잖아요.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난 몰라. 많이 해보지도 못했고.”
마연린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고, 여원은 음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앗! 환자!”
마연린은 머리를 굴리면서 눈으로 오른쪽, 왼쪽을 보다가 갑자기 고함쳤다.
“잘됐네요. 선생님이 환자하고 이야기해보세요.”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환자 몇이 시체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멈칫했던 기자들이 바로 몸을 돌려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다친 건가요?”
“안녕하십니까. 뭐 때문에 다쳤나요?”
“큰비 속에서 작업하기 매우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구조 과정에서 다친 겁니까?”
기자들은 ‘부상’이라는 화제를 잡고 열심히 묻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무리 지어 있던 날두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앞에 있는 사람이 치질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말을 가로챘다.
“맞습니다. 부상입니다. 우리 일이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죠.”
“아,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기자가 즉시 마이크를 내밀었고, 날두는 육중한 엉덩이를 흔들면서 앞으로 50cm 정도 걸어 나와서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정말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쿠파 마을에서 가장 위험한 건 폭풍우와 산사태가 아니라 스트레스받는 환경입니다. 습한 날씨 그리고 컨트롤하기 어려운 질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