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48화 (529/877)

연회에 현지, 그리고 수도에서 온 각계 인사들이 가득 모였다.

휠체어를 탄 전국정은 팔십 먹은 아이처럼 즐겁게 웃으며 손에 칵테일을 들고 있었고, 휠체어 양쪽에 한잔 씩 더 있었다.

“휠체어 참 편하구만요.”

전국정은 사람과 새로 인사할 때마다 했던 똑같은 인사말을 8번째 하며 껄껄 웃었다.

“휠체어에서 말에 올라탈 때 조금 불편하게 문제인데, 다행히 요 며칠 목장에 갈 필요가 없었지요.”

“선생님 목장은 괜찮은 거지요?”

얼굴에 특징이 전혀 없는 남자 하나가 안부를 물었다.

“보험이 있으니까요. 소 떼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4 제부도 건강하답니다. 소 떼가 건강한 걸 보면 저도 즐겁고요.”

“요즘 소 값이 올랐죠. 정 목장 수입이 더 늘 수도 있겠습니다.”

“목장은 신념, 열정, 그리고 이상으로 운영하는 겁니다. 돈은 신흥 사업에 투자하는 게 더 많이 번답니다. 돈벌이야 은행과 보험업이 제대로죠.”

전국정은 평소에도 자기 목장이 영리 목적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은행은 흡혈귀입니다!”

“보험회사도 흡혈귀지요!”

“이번에 보상받은 거 아닌가요?”

“보험료도 올랐잖아요.”

현지 목장주와 농장주의 감정이 격해졌다. 도시 경영자와 비교해서 농촌 경영자가 은행과 더 많이 교류하고 착취도 더 많이 당해서, 욕할 기회가 오자 다들 거침없었다.

전국정은 빙긋이 듣고만 있었다. 본인이 여러 은행과 보험회사의 주주였지만,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자신을 목장주로 칭했다. 브라질에서는 매우 정치적이고 정확한 행동이었다.

“맞다, 능연. 작은 선물 하나 준비했네. 돌아갈 때 챙겨가게.”

전국정이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능연에게 말했다.

“무슨 선물이요?”

“소. 그리고 주 주방장. 꽤 친해졌지? 주 주방장을 자네와 함께 보내겠네. 필요할 때 브라질 바비큐 같은 거 해달라고 하게.”

전국정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구체적인 정보는 메일로 보내놓겠네. 소는 바로 운화로 보낼 걸세. 검역이니 그런 건 다 그쪽 회사에 맡겨뒀으니 바로 운화 목장에 맡겨 놓고 키우면 되네.”

“운화에 목장이요?”

“전칠한테 운화에 작은 목장 하나 있다네. 도시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이고. 주로 잠시 기르는 곳인데, 이미 확인했는데 문제없다네.”

능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마리만 주시면 됩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출장 수술비라고 생각하게.”

대범하게 굴던 전국정은 바로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능 선생이 이따 좋은 말을 좀 해주면 내가 더 감사하겠지.”

“무슨 말이요?”

“아니 뭐 긴말이 필요한 건 아니고 그냥 미소 지으면서 고개만 끄덕여 주면 돼.”

전국정은 집사가 했던 경고를 떠올리며 다급하게 덧붙였다.

그리고는 능연을 끌어당기면서 휠체어를 굴려 카우보이 복장을 한 노인 앞에 섰다.

“드라노, 목장 매매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 기억하십니까?”

전국정을 힐끔 본 드라노는 곁에 있는 능연도 슬쩍 보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능 선생, 안녕하시오. 내 조카딸을 잘 돌봐 줘서 고맙소.”

능연은 다른 환자 보호자를 마주할 때처럼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부터 목장과 농장을 더 구매할 생각이었던 전국정은 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했다. 지금 브라질은 세계 제일의 소고기 수출 대국이인데, 중국 국내 발전 속도, 소고기 소비량을 보면 곧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수출량이 쾌속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리우데자네이루의 은행가와 기업가와 비교하면 브라질 현지 농장주와 목장주는 지극히 보수적이어서 차라리 싸게 팔 망정 백인 노인과 거래를 더 선호하는 때도 있었다.

전국정은 몇 년이나 노력한 끝에 지금의 국정 목장을 꾸렸지만, 주변 토지 생각에 진작에 침이 고인 상태였다.

전국정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드라노가 고개를 돌렸다.

“쿠파에 있는 내 목장은 당신 조카딸 전칠에게 팔기로 했소.”

전국정이 멍해졌다.

“당신 조카가 병원 일을 도왔다는 것을 내 조카한테 들었소. 그 밖에 사람들을 이끌고 마을과 병원을 연결하는 도로도 뚫었다지.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다들 전칠 씨와 일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드라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능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섰다.

운화 공항.

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아가씨들이 웃고 떠들면서 모여있는 모습에, 오가는 여객들이 때때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주 선생은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아 기절한 것처럼 늘어져서 대기 로비 의자에 누워있었다.

평소에 병원에 있으면 하얀 가운을 입고 있어도 조금은 관심을 받으니 이미지를 나름 신경 썼지만, 밖에서 사복을 입고 있을 때는 눈길조차 주는 사람이 없어서 주 선생도 이미지 관리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많은 의사가 병원에 있는 걸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하얀 가운과 관심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의사가 되어 하얀 가운을 입게 되면 병원에서 느끼는 성취감은 외부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의 백배 천배가 된다. 특히 외과 의사는 수술실에 설 때 하느님이 된 느낌이고, 수술실에서 나와도 대천사 급은 되는 존재로 무수한 눈길을 받으며 곤경에 처한 무수한 사람을 구한다.

많은 남자가 말하기를 아이가 생길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특히 아이가 아빠라고 부를 때. 그런데 의사들은 보통 집에 잘 못 들어가니 하얀 가운을 입고 병원에 있을 때 무수한 사람의 아빠가 된다.

그러나 의사가 하얀 가운을 받고 병원에서 나오면 처음엔 홀가분해지지만 이어서 슬며시 허탈감이 따른다.

지금 주 선생 옆에 앉아 있는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의사처럼, 그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지 않으면 전혀 존재감이 없고 배경이 되기에도 불합격인 감이 있다.

“능 선생 곧 오겠죠? 왜 우리가 마중 온 겁니까? 이런 건 행정 부서에서 할 일 아닙니까?”

그는 조금 답답한 듯 중얼댔다.

“곽 주임님이 마음이 놓이겠냐. 게다가 너 뭐 바쁜 일 있냐?”

주 선생이 나른하게 한마디 했다.

운화병원이 응급센터로 승급한 후 직접적으로 생긴 장점이 바로 일자리와 경비가 늘었다는 것이고, 훈련의와 실습생도 더 많아졌다. 비록 환자는 더 많이 늘었지만, 의사의 스트레스는 분명히 줄었다.

그렇다고 전혀 안 바쁜 건 불가능했다.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임 레지던트는 대담하게 콧방귀를 뀌고는 대답했다.

“바쁘진 않다고 해도 할 일은 있죠. 환자를 좀 더 봐도 되고.”

“그러게 환자를 좀 보긴 해야겠다. 능연이 돌아오면 며칠 만에 네 환자를 다 싹 쓸어갈 테니까. 앞으로 환자가 희귀 동물 수준이 되겠지.”

이야기하던 주 선생이 푸웁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덧붙였다.

“능연이 병원에 있던 시절이 그리웠었지.”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의사가 눈을 흘겼지만, 주 선생의 말이 맞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었다.

“제가 유심히 살폈는데요, 능 선생 점점 잠을 안 자더라고요. 무슨 병 있는 거 아닐까요?”

“너도 의사잖아. 네가 진찰해보지 그래.”

“제가 무슨 자격으로요.”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의사가 헛웃음을 지었다.

“저 회진할 때 사람이 좀 많아지면 간호사도 호통치는걸요. 실습생은 뒤로 가라고요. 다들 제가 신입인 줄 알아요.”

“사람 많을 때 병상으로 왜 다가가는데?”

주 선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 그게. 구경이라도 해야죠!”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의사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때 조낙의가 느릿느릿 다가가서 두 사람 말을 잘랐다.

“공항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마중하려면 바로 활주로 근처까지 가도 된대.”

“아이고, 조 선생 대단하네. 인맥이 좋아. 대단해, 대단해.”

주 선생이 혀를 끌끌 찼다.

“전용기를 타고 온 거라, 일반 마중 로비랑 다르니까. 곽 주임님도 참 그렇다. 능연이 오면 오는 거지, 우리더러 마중하라고 하시다니.”

조낙의의 얼굴에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같은 질문을 했던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의사가 주 선생이 뭐라고 대답하는지 보려고 바로 고개를 돌려 주 선생을 바라봤다.

주 선생은 그 시선을 못 본척하며 대답도 하기 귀찮다는 듯 그냥 웃고 넘겼다.

조낙의가 곽종군의 마음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능연이 브라질에 간 이유는 둘째치고, 브라질에서 생겼던 일과 능연이 한 일이 국내에 퍼진 후 높은 평가를 얻었다. 그러니 곽종군이 능연을 더욱 우쭈쭈하는 건 당연했다.

조낙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우울하게 공항에 있는 친구를 불러서 그의 인도하에 사람들과 함께 마중 장소로 향했다.

사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재잘재잘 웃으면서 PK 성공한 것 같은 마음가짐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전용기로 오는 거면 외국에서 산 물건 중량 제한 없는 거지?”

“와, 능 선생님이 뭘 사셨을까? 다들 얘기해 봐. 능 선생님 무슨 브랜드 좋아하실까?”

“능 선생님은 수술복만 입어도 끝내주게 먼진데 무슨 브랜드인지 안 중요해.”

“그래도 옷은 입어야지. 병원에 있을 땐 수술복 입는다지만, 밖에서 벗고 있을 순 없잖아.”

“응? 음······.”

간호사 무리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 사람들은 작은 버스 두 대에 나눠타고 공항 다른 끝으로 가서 잠시 더 기다렸다. 이내 운송기가 착륙했고 이어서 바디가 매끈한 전용기가 착륙했다.

“비행기 두 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함께 온 공항 사람들도 미간을 좁히며 사람을 불러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가 대답을 얻기도 전에 선두에 선 운송기 문이 활짝 열렸고 안에 있는 운반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

“저게 능 선생이 브라질에서 가지고 온 선물이야?”

“능 선생님이 브라질에서 소고기 먹고 맛있다고 생각해서 소를······ 저렇게 많이 사서 돌아온 건지도 몰라요.”

간호사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하나같이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조낙의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능연······.”

“내린다.”

주 선생이 앞쪽을 가리켰다.

전용기 사다리가 내려오고 능연이 가장 먼저 앞에서 내렸다.

사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샥 핸드폰을 모두 집어넣고 오래 연습했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전용기에서 내린 능연은 멈칫했다가 자연스럽게 손을 휘둘렀고, 아가씨들이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능연을 따라 내린 주 주방장 등도 거창한 장면을 봤다면 본 사람들인데 이렇게 거창한 장면은 또 처음이었다. 흔들거리는 사다리에 서 있는 그들은 그런 장면에 벌써 취한 듯 후들거렸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사람들이 따라오는 기척이 없자 저절로 고개를 돌린 능연이 물었다.

“아니. 아주 편해.”

뭔가 한마디 하려던 주 주방장은 능연의 진지한 표정에 흠칫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 * *

운화병원.

거대한 단독 건물 아래 진료받으러 온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 있었다.

입원 병동이 있는 곳은 조금 조용했지만,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큰 거위 향만원은 짜증 나서 걸음을 옮기다가 장난꾸러기 하나가 다가오는 모습에 사람을 쪼아서 벌 받기 전에 먼저 연못으로 들어갔다.

몰려든 아이들은 그 모습에 의기양양해져서 큰 소리로 웃으면서 10위안 주고 산 간식으로 향만원을 유혹했다.

향만원은 빈둥대며 간식이 눈앞에 떨어졌을 때나 조금 먹었다. 운화병원에서 지명도가 벌써 대다수 부주임을 앞질렀고, 매일 무수한 조공을 받는 향만원은 부주임이 제약 회사 직원을 만나는 것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만났다. 아이들이 주는 걸 다 먹었다가 저녁은 어떻게 먹으라고?

향만원은 음식을 노리고 온 참새나 비둘기를 내쫓지도 않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때는 자신의 영지를 지키려고, 자기 사료를 먹는 새뿐만 아니라 자기 똥을 노리고 오는 새들도 위협했다. 그러나 체중이 3킬로나 늘어난 지금은 부처가 되었다.

녀석은 그저 날개를 파닥이며 상징적으로 새들을 위협할 뿐이었다. 새로 온 새들은 종종 당황해서 바로 날아갔지만, 오래된 새들은 향만원이 가까이 다가가면 모를까, 도망가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엄마, 나 거위 만져 보고 싶어.”

머리에 붕대 감은 아이 하나가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보호자가 다급하게 잡아당겼다.

“만지면 안 돼. 큰 거위는 매우 포악해서 건들면 물어.”

“정말?”

“정말이지. 아빠도 물렸었어.”

엄마가 실제 케이스를 예로 들자 아이는 반신반의하며 아빠를 바라봤다. 그때 작은 소리가 들리면서 분수 저편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냄새를 맡은 큰 거위는 ‘꽥’하고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날개를 잡혀 끌려 올라갔다.

“향만원아, 요즘 몸은 어떠니? 오랜만이구나.”

여원이 생긋 웃으며 인사하고는 온도계를 향만원의 직장에 쑤셔 넣었다.

고개를 돌려 여원을 힐끔 본 향만원은 다시 ‘꽥’ 하고 고개를 떨궜다.

전보다 살이 쪄서 도망가려야 갈 수 없었고, 차라리 받아들이는 게 빨랐다.

“거위 관리자가 또 왔네”

꼬마는 거위를 잡고 있는 작은 덩치를 가리키면서 큰소리를 지르고는 부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가 포악해. 저거 봐!”

큰 거위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는가 싶더니 곧 고개를 다시 떨궜다.

여원은 큰 거위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영지를 순시하듯 분숫가를 한 바퀴 돌았다.

“역시 우리 병원이 편해.”

시간이 다 됐다고 생각한 여원이 온도계를 꺼내서 슬쩍 보고는 앞에 있는 수돗가에서 헹구고는 큰 거위를 풀어 주었다.

“여 선생, 다녀왔군요.”

새똥도 처리하는 청소 요원이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네. 체온 재러 왔어요.”

“브라질에 다녀왔다고요? 홍수도 겪었다면서요?”

“네. 브라질 병원에 한참 갇혀있었어요. 살도 쪘다니까요.”

여원이 배를 두드렸다.

“능 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면 조건이 좋다면서요. 능 선생 따라 수술 갈 때마다 돈 많이 번다던데요?”

틈을 타 묻는 청소부의 말에 여원은 그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출장 수술은 국내 고급 의사들이 흔하게 하는 일이지만 거론하기 적당하진 않았다.

이야기 나눌 만한 가십거리가 없어지자 상대는 정리하고 가려다가 여원 손에 들린 체온계를 보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요즘은 삐-소리 나는 그런 전자 체온계 있지 않나요? 아직 이런 구식 체온계 써요?”

“구식이 정확하니까요.”

여원이 체온계를 흔들면서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거위 체온을 그렇게 정확하게 잴 필요 있나요?”

꽉.

분수 안에 있던 거위 향만원이 고함치며 고개를 비틀어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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