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52화 (533/877)

다음 날, 늦잠을 잔 능연이 한동안 못 봤던 꽃과 나무에 물을 주고 나니 먼 하늘이 슬슬 유백색으로 변했다.

제약 회사 영업 사원 황무사가 다정하게 모닝 세트를 가지고 와서는 진료소 정원 청소도 하고 물도 뿌리고, 그리고 죽도 끓여놓고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의 요즘 주요 임무가 바로 능연과 연락하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능연의 호불호를 파악하게 되어서 능연이 곁에 누군가 줄곧 따라다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고는 일도 수월해졌다. 불편한 게 하나 있다면, 능연의 작업 시간이 희한하다는 것이지만 달마다 많이 들어오는 보너스를 생각해 보면 견딜 만했다.

능연의 기척을 들은 능결죽도 조끼를 걸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낡은 조끼의 어깨 부분이 조금 바랬고, 끝이 말려있기도 했다. 그러나 능결죽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어깨를 두드리며 느긋하게 세수하고는 걸레를 들고 난간과 가구들을 닦고는 허리를 일으켰다.

“요즘 젊은이는 집안일을 너무 못하는구만. 바닥 청소랑 물만 뿌릴 줄 알지, 걸레는 쓸 줄 모른다니까. 그 제약 회사 영업 말이다. 일을 제대로 못 해.”

“아.”

능연은 아버지 말씀의 포인트를 잡지 못해서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다음에 네가 얘기 좀 할래?”

“그걸 왜 그 사람이 해요?”

능결죽이 반 농담으로 하는 소리에도 능연은 전혀 느끼는 바 없이 되물었다.

“내가 게으르니까.”

능결죽의 껄껄 웃는 모습에 능연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게으르단 말은 본인이니까 하는 거다. 알겠냐?”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던 능결죽은 지금 한 말도 별 소용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평소에 제약 회사 직원을 잘 활용해야 해. 일을 안 시키면 오히려 찝찝할 거고, 나중에는 일 안 하는 게 습관이 된다니까. 그때 가서 일 시키면 일을 할 줄 모른다니까? 그건 네가 사람을 망친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지. 그러니까, 밑에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자 능연이 의문이라는 듯 능결죽을 바라봤다.

“전에 진료소에 있던 의사 얘기할 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 의사 사표 냈잖아.”

“그건 그 의사가 뭘 몰라서 그런 거지. 웅 선생 보렴. 착취에 익숙해졌······ 아니, 그게 아니라, 안심하고 열심히 일하잖니. 게다가 제약 회사 직원은 사표 내도 회사에서 다른 사람으로 배정해 줄 거란다. 걱정할 필요 없어.”

“아.”

능연은 계속해서 대충 얼버무리며 죽을 먹기 시작했다.

“창서 제약 같은 회사가 주로 미는 약품은 대부분 여러 회사에 납품되는 제품이고 약효가 거기서 거기야. 네가 이것저것 생각하는 거 안 좋아하는 거 안다. 넌 사후관리만 생각하면 돼.”

“사후관리?”

“약품에 대해 할 말 있으면 그냥 하는 거지. 데이터, 자료 다 달라고 하면 돼. 그렇게 쓸 만한 제약 회사를 선별하는 거란다. 물론, 창서 제약처럼 오래 협력한 곳은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약 회사를 골라 보는 거지. 조금 전문적인 곳으로 말이다.”

능결죽은 아들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흡족했다.

“특히 새로운 수술 방법 진행하고 싶을 때, 제약 회사 협력받는 것도 매우 중요하단다.”

“일리 있네요.”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의외라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며 동의했다.

“그렇지? 내가 의사가 아니라도 의사, 의학계 일은 빠삭하단다. 물론 수술 이런 건 못 하지만. 아들 네가 청출어람인 건 맞지만 병원, 제약 회사 이런 방면은 나한테 이삼 년 배워야 한단다.”

그때 2층 침실문이 열리고 도평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 네 아버지 말 듣지 마. 어제 여기저기 전화해서 몇 시간이나 묻더구나.”

“마누라······, 얘기 안 하기로 했잖아요.”

“어머, 깜빡했네.”

도평의 말투에 놀란 기색이 가득 하자 능결죽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 입가에 가려진 웃음은 좀 지리고요.”

“정말 깜빡 한 거예요.”

능연은 묵묵히 죽을 먹고, 요우빙도 조금 먹고, 만두, 납작 고기, 계란 두 개, 포도 한 송이, 배 하나를 먹어 치웠다.

“출근합니다.”

능연은 입가를 닦고 목소리를 높여 인사하고는 차고로 향했다.

“진가가 이따 삼촌 모시고 병원으로 가겠단다. 잊지 않았지?”

능결죽이 하루하루 둥글어지는 배를 문지르며 2층에서 고함쳤다.

“담낭염 환자요?”

“맞아. 그 진가가 전엔 라우빙(烙饼: 밀가루, 마유, 다진 파, 소금, 달걀, 깨, 청고추로 구운 떡) 팔았었는데, 넌 참깨 들어간 걸 참 좋아했었지.”

“아, 요즘 왜 안 팔아요?”

“전에는 식품국에 아는 사람이 있었을걸? 그래서 묵은 곡식을 싸게 받는 루트가 있었는데 제도 개편되고 묵은 곡식은 다 사료로 가져다 쓰니까, 재료비가 안 맞아서 장사 접었지. 그때 번 돈으로 집도 샀으니 지금은 집주인 노릇 열심히 하는 거겠지.”

능결죽이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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