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53화 (534/877)

좌자전의 제안대로 능연은 진료를 10명까지만 받겠다고 한 다음 검사실에 조용히 앉아 환자를 기다렸다.

능연은 지금 조금 이름을 알린 외과 의사가 되어서 대충 매체 홍보뿐만 아니라 업계 내 의사회 추천으로 오는 환자가 있을 정도였다. 외국에 한참 나가 있던 시간 동안 대기 환자가 더 많아졌는데 외래 진료까지 많이 받아 버리면 오늘은 환자만 봐도 끝이 없을 것이다.

잠시 후, 환자가 순서대로 안으로 들어왔고 진료 인원 추가해달라는 요청도 잇달았다.

“능 선생님, 저 전에 진료받았던 환자입니다.”

“능 선생님, 전에 선생님한테 수술받았어요.”

“능 선생님, 무신 시 1 병원 유 선생님 소개받고 온 건데, 대기표도 못 받았습니다······.”

좌자전은 예상했다는 듯 추가 환자들을 줄 세우고 온 순서대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직접 환자나 환자 보호자를 데리고 온 당원 의료진은 더욱 친절하게 대했다.

능연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진료 하나 끝내면 다음 환자를 진료했다. 직접 번호를 부를 일도 없고, 순서 같은 것도 신경 쓸 필요 없으니 편했다.

마스터급 신체 진찰 스킬을 장악한 능연은 일반 외과 질환 진단율이 매우 높았다. 추가로 온 환자들은 대부분 이미 진단을 받은 상태였고 증상이 간, 무릎, 아킬레스건, 그리고 수지 굴근건 쪽이라 일반 전문과 의사보다 치료 범위가 넓었다. 하지만 나이든 외과 의사 혹은 유럽, 미국 외과 의사와 비교하면 능연이 치료할 수 있는 질환 범위는 여전히 좁은 편이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환자는 응급센터로 받고, 안 되는 환자는 다른 의사에게 소개하고, 보존 치료해야 하는 환자는 약물을 처방하고. 그러다 보니 오전이 훌쩍 지났다.

이웃인 진 선생은 12시가 되어서야 전화를 하고 38살 먹은 삼촌을 데리고 올라왔다.

“정말 미안하네. 삼촌이 인터넷 회사에서 일해요. 너무 바빠서 휴가도 못 내고 몇 시간 일찍 조퇴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오후가 되어야 가능했네.”

쉰 조금 넘은 진 선생이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어색하게 서 있는 어린 삼촌을 끌어당겼다.

“나이는 젊은데, 마흔도 안 되어서 담낭염을 벌써 십 년 넘게 앓고 있었어.”

“12년 됐습니다. 회사 들어간 다음 해에 진단받았죠.”

어린 진 선생은 능연 맞은편에 앉아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너무 아프더라고요. 야근할 때 링거를 맞아서 오늘은 열은 안 나네요. 그래서 수술을 해야겠다 싶어서요.”

“한 번 볼게요.”

능연이 장갑을 끼며 대답했다.

“휴가를 이틀밖에 못 냅니다. 그리고 주말까지 해서 반나절. 이틀로는 안 되면 보존 치료를 계속해야죠, 뭐.”

어린 진 선생이 재빨리 자신의 조건을 설명하자 좌자전이 불쑥 끼어들었다.

“담낭염 수술이 아무리 흔해졌다고 해도 수술은 수술인걸요. 수술 후 회복 기간까지 해서 이틀이요?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입니까?”

“어쩔 수 없어요. 일이 너무 바쁜데, 제가 일을 못 하면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됩니다. 아까 인터넷에서 조금 뒤져봤는데, 능 선생 수술은 예후도 좋고 회복도 빠르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맞죠?”

“그래도 이틀은 너무 짧습니다.”

능연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틀하고 반나절은요?”

어린 진 선생이 흥정을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복강경 하 담낭 절제는 사흘 만에 퇴원하고 일을 하는 건 일주일이 지나야 합니다.”

“저도 압니다. 그런데 도무지 휴가를 낼 수 없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고속철도랑 연동된 업무라, 여기서 막히면 제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까지 영향이 가거든요. 맹장염도 보존 치료 이삼 년 한 동료도 있답니다.”

능연은 할 수 없이 가상 인간 상태를 살폈다. 남은 시간은 4시간 21분이었다.

담낭 절제술은 스스로 전문가급까지 익힌 기술이고, 기술 수준도 간담췌외과 하원정에 못 미치지만, 가상 인간을 함께 쓴다면 예후 쪽은 확실히 유리할 것이다.

“일단 검사부터 해보죠.”

능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효왕은 눈을 깜빡이며 능연을 바라보다가 능연이 누를 때마다 숨을 거칠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능연이 눈을 살짝 감고 생각에 잠긴 모습에 그도 숨을 죽였다.

담낭염 때문에 고생을 충분히 했다. 아픈 거도 그렇고, 일상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등 통증은 IT일을 하는 진효왕의 작업에 영향을 주었다. 그 외에도 담낭염 합병증은 더 걱정이었다.

또 지금 진행하는 큰 프로젝트가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를 어디까지 진행했는지를 접어 두고라도, 회사가 도산하지 않는 이상 바쁜 새 프로젝트가 또 기다리고 있다.

“휴가를 나흘 낼 수 있으면 회복이 더 잘 될 겁니다.”

20초 동안 가상 인간을 사용한 능연이 간략한 검사를 한 후 기초 결론을 내렸지만, 진효왕이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사흘은 불가능합니다.”

“환자분은 지금 병이 난 겁니다. 휴가도 아닌데, 사흘 정도는 쉴 수 있지 않나요?”

좌자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정말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허풍 한 번 떨어 볼까요? 우리 회사는 지금 국내 선두 인터넷 기업입니다.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하고 있고요. 크게는 국가 민생이 걸렸고요, 작게는 천명 가까이 되는 회사 직원, 만 명 넘는 아르바이트와 엔지니어가 걸려 있습니다. 다들 몇 달이고 일해 온 것도 바로 하루라도 빨리 완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사흘 멈춰 버리면 온 프로젝트가 멈추기까지야 않는다고 해도 영향은 불가피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제가 그럴 처지가 안 됩니다.”

할 수 없다는 진효왕의 말에 좌자전은 먼저 멍해졌다가 다시 경험자의 말투로 그를 설득했다.

“우리 세대는 흔히 ‘경상으로 전장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지만, 환자분은 지금 정말이지 경상이 아닙니다. 담낭은 인체의 장기 중 하나입니다. 최소 절개 기술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담낭을 제거하는 거예요. 큰일이라고요. 사나흘 쉬라는 것도 정말로 최소한이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정 안 되면 보존 치료 계속하겠습니다. 설 지나고 다시 수술하러 오던가요.”

잠시 망설이던 진효왕이 하는 말에 좌자전은 말없이 능연 한 번, 그리고 다시 진효왕 한 번 바라보고는 언짢은 듯 입을 열었다.

“이건 환자분 몸입니다.”

“알아요. 저도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거 아닙니까.”

진효왕은 순간 강하게 말하다가 바로 목소리를 낮췄다.

“저만 이러고 일하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큰 문제가 생기면 휴가 내기도 하지요. 대타를 찾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시 그 자리로 못 돌아갑니다.”

“건강을 잃어도 못 돌아가는 건 마찬가집니다.”

좌자전은 또 한 마디 잔소리하고는 다시 능연을 바라봤다.

“정말 이틀밖에 안 됩니까?”

능연이 묻자 진효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요일에 조금 일찍 당겨서 5시에 퇴근할 계획이에요. 그럼 토요일 하루, 일요일 하루 쉴 수 있어요.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총 이틀하고 12시간 쉴 수 있을 거예요. 월요일에 야근해야 할 수도 있지만······.”

좌자전은 머리가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바쁘다고요?”

“예.”

진효왕이 짧고 굵게 대답했다.

“우리 삼촌이 정말 바쁩니다. 요즘 다들 996이라고 하죠. 삼촌은 996에 야근도 합니다.”

진 선생의 말에 능연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번 수술은 쿠파 마을에서 했던 수술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건이 매우 열악해서 거의 말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니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능연이 보기에는 이틀 만에 수술하고 회복해야 한다는 건 본인 건강에 참 무책임한 일이었지만, 지금 보존 치료를 계속하다가 설 연휴에야 수술한다는 것이 더 무책임한 일이었다.

말로 상대를 설득하는 좌자전과 달리 능연은 바로 기술 문제를 고려했다.

수술 후 회복이 빨리 되게 하려면 우선 수술 중 손상을 줄이는 걸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담낭 제거 자체가 손상이고, 담낭을 따라 담관이 혹시 손상되지 않았는지, 곁에 있는 간은 어떤지, 모두 고려할 부분이었다. 그리고 담낭 절제 후 담관을 티타늄 클립으로 집어 닫는데 그게 관건이었다. 담관이 제대로 집히느냐, 티타늄 클립이 헐거워지진 않았나, 혹시 담관을 건드려 손상을 주지 않았나, 클립을 푸는 힘이 충분했는지, 흔들리지 않았는지, 예각이 되지 않았는지······. 이 모든 것들도 중요했다.

수술을 진행하려면, 담관은 보통 전동 메스 혹은 초음파 메스로 절단하는데 그런 메스들이 배 안에서 ‘작동’될 때 열전효과가 일으키는 손상도 고려해야 한다.

그 외에 점착된 담낭 박리, 담낭과 담관의 복잡한 해부 관계도 수술 진도와 수술 후 회복에 영향을 준다.

정상적인 복강경 담낭 절제술은 사흘 입원, 그리고 사나흘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사람의 체질이 다르니 수술 후 하루 이틀 만에 멀쩡해지는 환자도 있기는 하다.

하루만 입원해도 되는 환자도 사실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대다수 의사가 어떤 환자가 더 빨리 회복될지 예상할 수 없을 뿐이다.

환자 체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의 조작도 크게 달려있다.

능연은 중간에 시시비비의 과정을 잘 제거한다면, 이틀하고 반나절이라고 해도 가까스로 되지 않을까 고려했다.

가상 인간을 꺼냈을 때 봤던 걸 잠시 떠올린 능연은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좋습니다. 가서 입원 절차 밟으세요. 틈내서 검사하시고 모두 순조로우면 금요일 오후 6시에 수술 진행하죠.”

“그러면 월요일에 출근할 수 있습니까?”

진효왕이 눈을 크게 떴다.

“월요일에 출근할 확률 70%입니다.”

“나머지 30%는요?”

“복강경 담낭 절제술에 흔한 합병증은 담즙 누출, 복강 출혈, 담관 손상, 수술 중 신경, 혈관 손상 그리고 인근 장기 손상 등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수술 중 대량 출혈이 일어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고요.”

“능 선생, 수술 전 면담은 내가 진행하도록 하지.”

능연이 구구절절 수술 리스크를 설명하는 모습에 좌자전은 털이 쭈뼛 솟는 것 같았다. 진효왕은 더 심하게 곤두섰다. 젊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좌자전은 헛기침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술 위험은 반드시 알려야 하죠. 그러나 발생할 확률이 사실 매우 적습니다. 특히 수술 중 사망 같은 건, 우리 병원에서 복강경 담낭 절제 수술을 시작한 이래 대량 출혈로 사망에 이른 케이스는 없었습니다. 대량 출혈이야 있을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망까지 이를 확률은 낮습니다.”

“대량 출혈은 무섭지 않습니다. 정말로 대량 출혈이 발생하면 회사에 서둘러 돌아갈 필요 없이 바로 보험금 타서 요양하면 되겠죠. 수술 중 사망이라면 더 생각할 것도 없고요. 안 그런가요?”

“그런 것······ 같네요.”

좌자전은 어쩐지 자신이 말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능 선생님,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진효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능연과 악수했다.

“검사는 꼭 하세요.”

진효왕과 악수한 능연은 바로 알콜겔, 그리고 가상 인간을 열었다. 그리고 알콜겔을 문지르면서 가상 인간이 된 진효왕을 호탕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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