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거 같은데?”
“아픈가 찔러 봐도 돼?”
“찌르면 당연히 아프지!!”
화가 나서 버럭거리던 진효왕이 오히려 통증을 느끼고 다급하게 평상심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그만 좀 괴롭혀. 9시간 뒤엔 일하러 가야 한다고.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내가 화낸다고 뭐라 하지 말고.”
침대 곁에 몰려 있는 동료들은 당연히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어슬렁거리며 어떻게 한 번 그를 찔러서 그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진효왕은 실눈을 뜬 채, 지척에 있는 티비도 보기 귀찮은 듯 주변에 몰려 있는 동료들을 경계하면서 내심 뿌듯해했다.
“입 찢어지는 거 봐라. 입 찢어질 거 같아?”
오늘도 찾아온 동료 표 씨는 데이터를 입력하고는 앞으로 나와 부러운 듯이 진효왕을 바라봤다.
진효왕은 고개를 들어 웃어 보였다.
“앞으로 무병 효왕이라고 불러. 너희 병자들은 나한테 접근하지 말고.”
“허. 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볼까? 탈모, 안구건조증, 비염, 인후염, 공처가······.”
“야야야, 기준 잘 잡아야지. 양심에 손 좀 얹어라. 프로그래머한테 그게 병이냐?”
아직 머리를 치켜들고 있던 진효왕이 투덜거리는 말에 표 씨 동료는 조금 공감하며 말문이 막혔다.
“무담 효왕이라고 부르자. 억울할 거 없잖아.”
곁에 있던 프로그래머가 끼어들어 손을 치켜들고 자기는 안구건조증이 없다고 선포했다.
“나도 없어. 트라토마밖에 없어.”
“난 결막염.”
결막염이라고 말한 동료가 진효왕을 바라보며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꽤 좋아. 특별한 느낌 없고, 조금 아프긴 한가? 참을 만해.”
진효왕이 자세히 상태를 묘사했다.
결막염 프로그래머가 잠시 생각하다가 돌아서서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10초 후, 결막염이 크게 고함쳤다.
“새끼들아, 이건 아니지. roll하고 하나하나 테스트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왜 다들 휴가 신청한 거야? roll은? 안 할 거야?”
병실에 있던 프로그래머들이 헤헤 웃었다.
“위강, 넌 몇 번째냐?”
다른 동료들의 모습을 살핀 표 씨 동료는 바로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병가를 낸 걸 알아차렸다.
주말 낀 이틀 반 병가라면 회사라도 줄 것이다. 물론, 신청하는 대로 모두 내줄 수는 없으니, 이틀 반 휴가를 내려면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첫 주에 떨어진 사람은 다음 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난 이번 주.”
일찍 줄 선 동료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난 다음 주.”
“나도 다음 주.”
병실 안에 있는 프로그래머들은 기본적으로 일, 이주 안에 줄을 섰다.
“결막염 심해지겠네.”
유일하게 제3 주에 줄 선 위강이 씩씩거렸다.
“내가 장염을 얼마나 오래 앓았는데. 야, 우리 병의 경중대로 다시 줄 서자고.”
“줄은 순서대로 서는 거지.”
“병에 경중이 어디 있어. 장염이 맹장염보다 더 심하냐? 나는 맹장을 아예 잘라내야 하는데? 아니면 너도 장을 아예 잘라내던가. 그럼 내 자리 너 줄게.”
“우리 결과도 아직 모르잖냐. 뭘 그렇게들 싸워. 내일 진효왕이 갑자기 합병증으로 죽으면? 그 휴가가 무슨 소용인데.”
다들 심심하기도 하고, 속이 타기도 해서 병실 안이 혼란스러워졌다.
이유 없이 저주당한 진효왕도 그저 웃기만 했다.
“야, 다들 능 선생이 무슨 수술은 하고 무슨 수술은 안 하는지, 안 물어도 되는 거냐?”
그 말에 병실 안의 온도가 순간 내려갔다.
잠시 후, 표 동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말하는 거 들어보니까, 머리는 정상인 거 같다.”
“그러게. 얼굴도 불그스레한 게, 일도 잘하겠다.”
“돌아가서 일 더 주자.”
“능 선생님은 충수염, 담낭염, 간 절제 수술 가능하세요. 그리고 무릎, 아킬레스건, 손가락 또 골절······. 10분 뒤엔 특별 간호 병실 면회 시간 끝납니다.
구석에 있던 어린 간호사가 갑자기 한마디 덧붙이자, 병실 분위기가 더욱 차분해졌다.
특별 간호 병실은 일반 병실을 개조한 것으로 침대 두 개에서 세 개가 있고, 간호사가 안에서 계속 케어하면서 ICU와 비슷한 급으로 특별 간호하는 병실이다. 그러나 ICU만큼 전면적이진 않고, ICU처럼 높은 방호 등급도 아니었다. 당연히, 가격도 더 낮았고. 간 절제 환자들은 일단 ICU에 들어갔다가 먼저 특별 간호 병실에서 며칠 머무르다가 일반 병실로 들어간다.
진효왕은 케어 등급을 높이기 위해 특별 간호 병실로 들어왔다.
보호자들과 동료는 할 일 없이 간호사에게 밉보일 이유가 없어서, 모두 웃는 얼굴로 간호사를 바라봤다.
”능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신 충수염 등등만 한다고 하셨는데. 다른 수술은 싫어해서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모든 수술을 다 하는 의사가 있다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누군가 관심 있는 듯 묻는 말에 간호사가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은 알 듯 말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염은요? 장염은 맹장염하고 비슷한 거 아닙니까?”
위강이 헐떡거리며 물었다.
“장염은 안 하세요. 장염은 일반 외과거든요. 그쪽으로 가셔야 해요.”
간호사가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7일 입원도 장담 못 하잖아요.”
위강이 툴툴거리는 말에 간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장은 회복이 골치 아픈 부분이라 까딱 잘못 말했다가는 고소당할 수도 있었다.
“능 선생님한테 물어봐 주세요. 줄 서려면 빨리 서야 하거든요.”
“능 선생님은 정말 장염 안 하세요. 정말 안 되겠으면 휴가 낼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제가 알기로는 능 선생님은 치질 수술도 브라질에서만 했었거든요.”
“나도 치질 있어요!”
고개를 가로젓는 간호사의 말에 번뜩 눈을 켜고 말하던 위강은 이내 회의에 빠졌다. 나, 왜 신난 거냐?
“잘됐네요. 치질도 한 번에 해야겠다.”
표 동료도 신이 났다.
“너는 어떤 종류인데? 나는 복합형. 이것도 수술할 수 있겠지?”
“해, 해. 한 번에 하는 게 낫지.”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들 흥분해서 병실 안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다들 돌아가세요.”
간호사는 시계 보는 척을 하며 치질 환자 무리를 내쫓았다.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떠나기 전에 진효왕에게 안부 한마디씩 건넸다.
“잘 쉬어.”
“어디 불편한 데 있으면 우리한테 말하고.”
“오늘은 핸드폰 하지 말고 푹 좀 자. 그래야 빨리 회복하지.”
진효왕은 기운 없이 대답하다가 사람들이 모두 떠난 다음 간호사를 향해 물었다.
“치질 수술 이야기 왜 진작 안 했어요? 겸사겸사 그냥 자를걸.”
여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리포트를 보면서 수시로 병상 쪽을 바라봤다.
단정하게 병상 앞에 앉은 진효왕과 가족들은 긴장한 채 여원과 그가 손에 든 리포트를 바라봤다.
촤르륵, 최르륵. 여원이 한 페이지씩 넘기자, 진효왕과 가족들의 여린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안 뛰면······. 안 뛰면 죽으니까.
“선생님? 어떤가요?”
진효왕의 부친이 긴장해서 물었다. 그는 아들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몸이 안 좋아서 일자리를 잃는 건 큰일이라고 여겼다.
여원이 리포트를 거두고 고개를 들어서 진가 가족을 바라봤다.
“퇴원해도 됩니다. 그래도 집에 가서 푹 쉬는 걸 권해드립니다. 바로 일 시작하지 말고요, 야근은 더더욱 안 됩니다.”
“회사에 가야 해요.”
진효왕이 고개를 젓는 모습에 여원이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요? 가족분들, 여러분도 설득 좀 하세요. 지구는 누구 하나 죽어도 돌아갑니다.”
“그게 제일 무서운 거죠.”
진효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출근해도 됩니까? 일해도 되는 상태냐구요. 선생님.”
아버지가 물었다.
“이틀 반 입원은 너무 짧습니다. 일단 일하는 건 문제 없겠지만,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중간에 쉬셔야 하고요.”
여원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실험적 수술이 아니었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효왕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출근만 할 수 있다면 무릎도 꿇을 수 있는데 고개가 대수랴.
여원은 퇴원 허가서를 써서 진효왕에게 건넸다. 그러나 진효왕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 아버지가 가서 처리해 주세요. 저는 사무실에 가야 합니다. 팀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급해. 아니다, 퉤퉤퉤.”
아버지는 언짢은 듯 고개를 저었지만, 진효왕은 긴말 할 틈도 없이 서둘러 사라졌다. 이틀 넘게 쉬어서, 일이 얼마나 쌓였을지 모르는데 지금이라도 가지 않으면 오늘 새로운 업무가 얼마나 더 쌓일지 모른다.
여원은 계속 회진을 진행했다. 일부러 우선 진효왕을 보러 온 것이니, 그의 퇴원 절차를 마친 다음에야 정식으로 회진했다.
능연이 막 돌아왔고, 야근까지 해서 겨우 간 절제 수술 20 몇 건 한 상태이다. 일반 의사들이 한두 달에 할 양에 불과해서, 능 치료팀으로서는 보슬비 수준이었다. 침대 관리 의사들은 수술 후 환자 회진도 날 밝은 다음으로 미뤘지만, 수술 전 환자는 어쩔 수 없었다. 새벽 3, 4시에 환자를 깨우는 건 능팀뿐 아니라 운화병원 다른 진료과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여원이 관리하는 침대는 지금 10개뿐이었다. 거기에 추가된다고 해도 25개를 넘지 않아서, 일반 레지던트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능 팀 다른 레지던트 중엔 가장 적었고.
여원이 치프 레지던트라서 그런 것도 있었다. 운화병원 제도에 따라, 치프 레지던트는 수술을 많이 해야 했다. 그렇게 실력을 끌어 올려 주치의가 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침대 관리 임무는 덜 하게 됐다. 능 팀으로서 침대 관리 10개, 많아야 25개는 정말로 작은 양이었다. 바쁘지 않기도 했고. 개인 생활을 제외하면,
여원은 지금 개인 생활도 없었다.
치프 레지던트는 개인 생활이 없기도 하지만, 몇 년이나 치프 레지던트가 되고 싶었던 여원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외과의가 되고 싶은 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때려치우고 내과로 갔을 것이다. 수월하기도 하고 그의 재능과 소질을 더욱 잘 발휘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과 분위기는 외과보다 훨씬 좋다. 외과는 스승이 제자를 거두는 방식이라 상급의사가 하급의사의 부모였다. 사람 때리지 않는 것만 해도 시대가 발전하며 문명이 꽃피운 덕분이었다. 내과에서는 문헌을 읽고 케이스만 참고해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젊은 의사의 스트레스는 외과와 비교할 것이 못됐다. 의약 제도가 바뀌기 전엔, 내과가 외과보다 더 많이 벌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5년 전 의대생이 외과를 선택했다는 건, 드라마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면, 정말로 열정적이거나 어디 나사가 빠진 거거나였다.
여원은 열정적이기도 하고 어디 나사가 빠지기도 했다.
수술 구역으로 들어가 투박한 재질의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의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는 여원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피어났다. 그 웃음은 능연의 것과 조금 비슷했다.
“오늘 수술 리스트 좀 보자.”
여원은 A4용지가 붙어 있는 벽 앞에 서서 리스트의 수술 명칭을 바라보며 장단점을 골랐다.
한 시간 일찍 회진을 마쳐서, 지금 2시간 가까이 빈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에 본인 수술이 없으니, 다른 사람 수술을 구경할 수도 있었다.
스윽 스캔하던 여원의 눈에 글이 한 줄 들어왔다.
- 단순 치질 절제술
이어서 집도의의 이름을 본 여원은 ‘능연’이라는 이름과 두 번째 위치에 있는 ‘마연린’의 이름을 발견했다.
여원은 힘껏 수술실 문을 밟아, 에어타이트 도어가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어. 마연린, 몰래 수술하는 거냐?”
여원은 수술하는 능연 뒤에 있는 마연린을 바라보며 불을 뿜기라도 할 듯 눈빛을 번뜩였다.
“수술 중이잖아요. 선생님, 흥분하지 말아요.”
조금 두려워진 마연린은 집도의 위치에 서 있는 거로 버티면서 말을 이었다.
“여 선생님, 할 말 있으면 나중에 해요. 수술실이잖아요.”
여원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고개를 능연을 향해 돌렸다.
“능 선생, 나도 치질 수술 배울 거야!”
“그거 배워서 뭐 하게요?”
능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여원을 바라봤다. 의사에게 치질 수술은 더럽고, 기술도 얼마 배울 수 없는 그런 수술이었고, 간 절제 수술 같은 기술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큰 차이가 났다.
그러나 여원이 바라는 건 기술 자체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녀는 마연린의 동작을 뚫어져라 살피며 대답했다.
“하고 싶어! 가르쳐 줘.”
능연과 마연린 모두 여원을 바라봤다.
“그냥 치질 수술인데, 이걸 꼭 하겠다고요?”
마연린이 언짢은 듯이 하는 말에 여원이 얼굴을 살며시 붉히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언젠가 사표 내고 민영 병원 가게 되면 어떡해.”
“그래요. 그럼. 치질 수술은 어렵지도 않고.”
능연이 동의했다. 그가 보기에 여원은 사실 난도 높은 수술에 적합하지도 않았다.
“손 씻고 올게!”
여원은 최대 속도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마연린 곁에 서서 이름 없는 실습생 자리를 대신하면서 일단 마연린의 어시를 시작했다.
“에휴, 원래 환자가 별로 없는 수술을.”
마연린이 한숨을 내쉬자 여원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틀 반짜리 그 회사, 치질 환자 천지던데? 이 환자도 거기 아냐?”
“맞아요.”
수술 침대에 엎드린 환자가 답답한 듯 대답했다.
운화병원은 지역 정상급 삼갑병원이어서 항문과라고 해도 침대가 빡빡해서 치질 수술 환자를 받았다가 말았다가 했다. 그러니 응급센터에서는 환자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정상적인 치질 환자가 응급센터로 올 리가 없으니 여원이 바로 맞춘 것이다.
“그러니까 그 회사가 다잖아요.”
“치질 수술은 이틀 반으로 안 될 텐데.”
툴툴거리는 마연린의 모습에 여원이 무시하듯 바라봤다. 너도 고작 훈련의 아니냐!
“저는 핸드폰 쪽이라, 요즘 그렇게 바쁘지 않아서 연차 쓸 수 있었어요.”
환자가 전력을 다해 대화에 끼어들자, 대수롭지 않게 듣던 여원이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잘됐네요. 요즘 제 핸드폰 자주 말썽이에요. 한번 봐주실래요? 저기, 내 주머니 왼쪽 좀요.”
순회 간호사가 여원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수술대 위에 누운 환자에게 건넸다.
환자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아, 안 열리지, 내 얼굴 스캔하세요.”
여원이 얼굴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