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조금 강한 햇볕이 내리쬐자 에피프렘눔이 조금 구불댔다.
여원은 에피프렘눔이 놓인 창틀 아래서 즐겁게 족발밥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 그리고 구체적인 이런저런 것들을 회상했다.
그리고 혼자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 참지 못하겠다는 듯 곁에 있던 마연린과 내용을 공유했다.
“능 선생은 치질 수술 난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는 연구할 점이 많다고 생각해. 항문 휴지기 압력(Anal Canal Rest Pressure)만 해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그리고 외치핵 박리와 절제술,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꼭 지금 얘기해야 합니까?”
마연린은 자기 접시 안의 돼지고기를 바라보며 멘탈을 다 잡고서야 다시 식사 모드로 돌아갔다.
막 냄비에서 나온 돼지머리 고기는 여러 번 우린 국물로 졸인 것이라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야들야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연린은 곧 다시 생긴 식욕이 바로 줄어들었다.
여원 역시 언짢은 듯 대답했다.
“이따 수술해야 하는데, 지금 얘기해야지 언제 해? 이래서 오후 수술에 발전이 있겠냐.”
“전 제가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마연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일부러 들으란 듯이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혼자서 집도해서 치질 수술을 할 수 있다!”
“네가 독립할 수 있는지 아닌지는 능 선생 말에 달렸어. 그리고 내가 없으면 넌 수술 못 해.”
“니예니예.”
마연린은 여원이 콧방귀를 뀌며 하는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훈련의인 그는 이론적으로 아직 의사 면허를 얻지 못해 수술 자격이 없었고 집도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규정엔 구멍이 있는 법. 이론적으로 훈련의 곁에 합법적인 의사가 지켜보면 수술할 수 있다.
여원과 마연린이 치질 수술할 때 실제 집도의가 마연린이라고 해도, 집도의 서명은 여원이 하는 건 중국 병원에서 흔한 방법이었다.
대부분 상급 의사도 그걸 반대하지 않는다. 집도의로 사인한 의사의 통장으로 그 수술비가 들어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상급의사로서 하급의사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었다.
“내가 집도할래. 안 되면 차라리 응급센터 가서 환자 기다릴 거다.”
“그냥 꽁돈 받는 게 낫지 않아요?”
“그럼 의국 가서 사인해줄 다른 의사 찾든가.”
여원의 말은 협박에 가까웠고, 마연린은 할 말이 없었다. 부주임 밑에 의사는 하나같이 수술로 경험을 쌓길 바란다. 경험을 쌓을 수 없는 수술, 혹은 흥미 없는 수술은 당연히 경원시한다.
능 팀 구조에서 여원을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치질 수술을 함께 해줄 의사를 찾는 건 정말로 힘들었다. 능 팀은 다른 치료팀과 달리 수술이 없어서 배를 채우지 못하는 의사가 없었다.
당장 힘들어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체력을 허비할 엄두를 못 냈다. 에너지를 채워서 능연에게 시달리길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마연린도 훈련의 신분이라 집도할 기회가 없는데, 이틀 반밖에 휴가를 주지 않는 회사를 어렵게 만나서 젊음 하나로 버티면서 이번 수술들을 맡고 있지만, 이번 일이 끝나면 다음 수술은 그의 손에 떨어질 리가 없다.
그리고 능연이 온종일 그의 옆에서 그가 치질 수술을 마치길 계속 지켜봐 줄 리가 없으므로, 여원 같은 치프 레지던트가 없으면 마연린은 앞으로 이 수술들을 집도할 기회가 없다.
“그럼 일단 제가 수술하는 것 좀 지켜보세요.”
마연린은 바도 집도의 자리를 넘길 엄두는 못 내고 여원을 힐끔 봤다. 집도의 자리를 내주면 무슨 재미로 수술한단 말인가.
“수술 하나 하자. 하면서 네가 설명해. 진지하게 가르쳐야 한다.”
여원이 흥흥거렸다. 사실 그녀도 요즘 응급 수술을 제법하고 있었다. 특히 이물 제거 수술은 응급센터에서 여원이 가장 많이 했다.
어찌 됐든 소질이 떨어지는 편이라, 다른 사람이 열 번 하면 기초적으로 터득하는 수술방식도 여원은 이삼십 번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력으로 재능 부족을 채운다는 말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최정상급 의사가 되려면 재능과 노력, 어느 것 하나 부족하면 안 된다.
대부분 의사는 사실 최정상에서 한창 동떨어져 있다. 대다수 의사는 심지어 부지런함 하나도 해내지 못해서 그저 평범한 의사 무리 중 일원이 되고 말 뿐이다.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 걸리는 병도 평범한 병이라, 최정상급 의사까지 필요하지는 않는다.
마연린의 외과 재능은 여원보다 낫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여원의 조건을 마연린도 단숨에 승낙했다.
“몰래 수술하진 않을게요. 그래도 선생님이 능 선생 동의를 얻어야 진정한 집도의가 될 수 있어요.”
여원이 집도의가 된다면 자기가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한 마연린은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려고 그렇게 강조했다.
“앞으로 세 건 해. 내가 수술 반을 맡아서 해볼게. 된 거 같으면 내가 능 선생 찾아갈게.”
“적어도 일고여덟 건은 해야죠.”
“다섯 건. 싫으면 나 이만 응급센터 간다.”
“네네네.”
마연린은 할 수 없이 승낙했고, 여원이 미소를 드러내며 다시 자기 족발밥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여원 곁에 있던 실습생이 마연린을 향해 슬그머니 엄지를 치켜들었다. 새로운 실습생은 새끼 표범처럼 엄하고, 숙제 검사하듯이 차트 검사하는 치프 레지 여원보다 훈련의 마연린을 편하게 생각다.
“연린아, 실습생이랑 밥 먹냐?”
의교과 뇌 주임이 싱글벙글 테이블 앞에 나타났다. 마연린은 멈칫했다가 재빨리 일어나 인사했다.
“뇌 주임님, 저랑 여원 선생이랑 막 수술 한 건 끝냈거든요.”
그제야 곁에 있던 여원을 알아차린 뇌 주임이 다급하게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오냐오냐. 귀국하자마자 이렇게 열심히 하다니. 우리 병원 의사답군. 여원도 잘 지냈나?”
마연린은 ‘우리 병원 의사가 무슨 스타일이 따로 있다고. 돈 벌려고 일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멍한 표정을 지었고, 여원은 다년간 훈련한 방법대로 멀리 바라보며 무념무상의 표정을 지었다.
“흠흠. 연린이 이번에 브라질에서 참 잘했다고 하더군. 나도 잘 신경 쓸 테니, 앞으로도 열심히 하게. 음, 여 선생도 참 잘했어. 보너스 있을 걸세.”
뇌 주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로를 인정해준 다음 돌아서 사라졌다.
잠시 더 멍해 있던 마연린이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더니 역시나 개인 톡이 와 있었다.
- 축하해. 응급의학과에 남게 됐어.
마연린은 감사 인사부터 전하고 어떻게 결정 난 것인지 물었다.
- 뭘 모르는 척이야. 준비는 다 됐어. 의사 면허 통과하면 정식 레지던트가 되는 거다.
하하하 세 번 웃은 마연린은 핸드폰을 챙겨 넣고 웃는 얼굴로 여원을 바라봤다.
“8건이요.”
옅은 파란색 수술실에 마연린의 미소가 수시로 피어났다.
간호사를 보고 웃고, 능연을 보고 웃고, 또 환자의 복강까지 보며 미소 지었다.
능연은 수하 의사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지만, 연문빈은 괴로워했다.
능연이 맹장을 꺼내는 걸 보고도 마연린이 웃는 모습에 연문빈이 저도 모르게 한마디 했다.
“연린아. 창자 먹고 싶으면 이따 내가 하나 보내줄게. 제발, 환자 보면서 그만 웃어. 기분 나빠지려고 한다.”
“선생님네 창자는 됐고요. 저녁에 제가 소가 식당에서 쏠게요.”
마연린이 싱글벙글 거울을 잡고 말했다.
충수염 절제술을 의사 세 명이 진행하는 것도 치료팀 팀장에게나 해주는 대우였다. 능연이 요즘 하는 수술은 단순한 수술이 아니라 교육적 의미가 있어서이기도 했다.
의대 졸업한 실습생 혹은 이삼 년 된 훈련의와 레지들은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니 처음부터 배울 수밖에 없다. 충수염 같은 수술이라도 연습할 기회가 없으면 제대로 할 수 없고, 수술 전에 일반적으로 해부 학습을 통해 개나 토끼를 잘라봐야만 조금 기초가 생긴다.
능연은 지금 그랜드마스터급 충수염 절제술을 장악했으니 교육 수술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훨씬 많았다.
연문빈은 마연린 때문에 찡그리고 있던 미간을 겨우 풀었다.
“토끼 두 마리로 용서해줄게.”
“질투 나서 그러시는 거죠? 양꼬치로 해요. 능 선생도 갈래? 능 선생 가면 곱창도 먹고.”
“채용된 거 때문에요?”
능연은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동작엔 전혀 변함없이 물었다.
“응. 아무나 채용되는 건 아니니까. 나는 님이랑 다르잖아. 게다가 나는 원래 정형외과인데 정형외과에서 응급센터로 오는 게 쉬운 것도 아니잖아?”
“레지 채용이 힘들면 뭐 얼마나 힘들다고.”
연문빈이 껄껄 웃었다.
“그나저나 네가 정형외과를 버린 건 좀 재미있다. 네 밑에 애들은 고마워하겠다. 그 자리 지금 터지겠는데?”
병원 승진 체계는 두 가지 노선이 있다. 하나는 시험에 참여하고 패스하면 레지, 주치의 혹은 부주임, 주임이 되고 다른 하나는 병원에서 채용서를 발급하고 채용서를 받으면 승진이 된다.
작은 병원에는 시험을 통과 못 하거나 학력이 안 되는 의사가 많다. 레지 혹은 주치의를 뽑을 때는 병원에서 채용서를 들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의사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내부 승인을 해야 한다.
그러나 큰 병원에는 공부 벌레가 너무 많고, 박사, 해외 유학생은 가산점도 있어서 시험을 통과하고도 줄 서서 채용을 기다리는 사람이 천지였다.
마연린이 먼저 채용서를 받고 또 과감하게 정형외과 자리도 버리고 응급센터로 온 것에 연문빈이 전혀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사실 능 팀에서 외과 기술이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연문빈과 마연린이었다. 장안민도 기술이 괜찮지만 간담췌외과 사람이라 그 점에서 연문빈은 원래 능 팀의 독보적 존재였다. 본인도 스스로를 대사형이라고 칭했고.
“정형외과든 뭐든, 능 선생 없으면 황이지. 능 선생이 항문과를 간대도 나는 따라갈 거야.”
2사형이 되기 싫은 마연린이 일단 아부부터 하고 봤다.
“야, 네 그런 충심만 보면 오늘 회식은 진료과 돈으로 해야겠다. 그지? 능 선생?”
“그러죠.”
능연이 바로 대답하자 농담이었던 연문빈이 멍해졌다.
“좋았어. 그럼 밤에 토끼고기 먹어야겠다. 능 선생, 세 마리 콜?”
“네.”
마연린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묻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복강경 하에서 맹장을 봉투에 담아 꺼냈다.
맹장을 건네받은 연문빈이 다급하게 물었다.
“저기 능 선생, 왜 네가 밥 사는 건데?”
“선생님이 그러자고 한 거 아니었어요?”
되묻는 능연의 말에 연문빈이 멍해졌다.
“요즘 진료과에 돈이 남는다고 써야 한다고 좌 선생님이 그러던데, 마침 잘됐네요.”
능연의 말에 연문빈은 할 말을 잃었다. 진료과에 돈이 있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병원 단독 진료과 중에 자비 환자 리워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틀 반 휴가 회사, 그리고 그 옆 회사의 옆 회사까지 미친 듯이 환자가 찾아왔고 거의 자비 형식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진료과에 보너스가 가득 쌓여있었다.
그런 돈을 전부 나눠줄 수는 없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상금을 나눠주면 상급 부서에서 주목할 뿐만 아니라 병원 안 다른 진료과에서도 주목할 것이다.
월급 하나 보고 일하면서 집값, 자동찻값 갚을 필요가 없는 연문빈은 전에는 보너스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다음은 누가 할 겁니까?”
능연이 자리에서 물러나며 물었다.
“나나나!”
마연린이 흥분해서 자리를 차지하자, 연문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어시를 섰다.
“감사해요, 연 선생님.”
“브라질에서 귀국한 거 축하해주는 셈이라고 쳐라. 이따 졸임 고기 좀 가지고 갈게.”
“아, 네. 돈 좀 깨지시겠네요.”
“내 돈이 왜 깨져. 진료과에서 돈 낸다며. 좌 선생님하고 계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