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타닥타닥타닥.
새벽 5시 응급센터 복도에 가지런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며칠 먼저 있던 환자와 보호자는 모두 머리를 내밀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깨워서 일어난 55세 금만분도 멍한 상태에서 얼굴을 한 번 닦고 귀에 익은 투덜거림을 듣고 있었다.
“잠도 잘 자네. 큰 조카 말 못 들었어요? 물어보고 싶은 거 잘 정리해뒀다가 능 생님 회진 오면 물어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질문 더 할 수 있다잖아요. 돼지처럼 잠만 자고. 미안하지도 않아요? 눈 좀 떠요. 어제 야근한 것도 아니고, 어제는 하루 종일 잤잖아요.”
“어제는 수술해서 겨우 하루 잔 거지.”
잔소리를 잔뜩 들은 금만분이 어쩔 도리 없다는 듯 대답했다.
“병원에 수술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처럼 자는 사람은 없다고요. 나는 밤새 눈 뜨고 있었는데, 대화도 안 해주고 잠만 자고.”
“그래서, 지금 당신이랑 이야기 나눌까? 아니면 질문 준비할까?”
“됐어요, 됐어. 핑계는.”
금만분이 깬 것 같다는 생각에 아내도 옆으로 가서 앉아 핸드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능 선생님은 며칠 만에 한 번 회진하니까, 물어볼 거 있으면 한꺼번에 잘 물어요. 그리고 언제 퇴원할 수 있는지 묻고요. 빨리 퇴원하게 되면 앞으로 능 선생님 다시 볼 일 없을 테니까.”
“지금 회진 온 게 능 선생인 건 어떻게 알고.”
“큰 조카가 그러는데, 응급센터에서 이런 기세로 회진 도는 건 능 선생밖에 없대요.”
“아.”
금만분은 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능연이 대단한 의사가 아니었다면 일부러 찾아오지도 않았으니까.
“곧 능연 선생 회진입니다. 환자분 깨우세요.”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들어와 알렸다.
“일어났습니다.”
금만분이 다급하게 하는 말에 좌자전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곧 능연이 병실로 들어왔다.
“어떠신가요?”
능연은 손에 알콜겔을 들고 양손을 문지르며 물었다.
“상처가 조금 아프고요. 배도 꾸륵꾸륵대네요.”
“신체 진찰 좀 해보겠습니다.”
능연이 바로 신체 진찰을 시작했다. 마스터급 신체 진찰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직접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매우 풍부했고 환자가 의식하지 못한 문제도 얻어냈다.
금만분은 바로 배를 드러내며 바다사자처럼 누워서 껄껄 웃었다.
“드레인 파이프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괜찮아진 거 아닌가요?”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능연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금만분을 바라보며 질문 몇 개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퇴원하셔도 됩니다.”
“정말 이틀 반 만에 회복했다고요?”
“완전히 회복하는 건 한참 걸립니다.”
좌자전이 당부했다.
“계속 관찰할 필요가 없어서 퇴원은 허가하는 겁니다. 그래도 어디가 안 좋으면 바로 와서 진찰받으셔야 합니다. 그것 말고는 약 제대로 챙겨 드시고 집에서 푹 쉬면 됩니다.”
“일해도 되지요? 제 딸 회사 사람들은 다 일하던데요.”
금만분은 다시 흥분해서 물었고 능연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굉장히 급한 일이 아니라면 며칠 쉬시길 바랍니다.”
“네네.”
금만분이 웃으면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냥 물어본 겁니다. 은퇴한 사람이라 할 일도 없고요.”
현장에 있던 의사들은 속은 느낌이 들어 눈을 흘겼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 침대 환자 검사하려고 알콜겔을 꺼내다가 금만분의 침대 머리맡 서랍 위에 중화 담배에 시선이 꽂혔다.
“병원은 금연입니다.”
능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단지 이식으로 시작해서, 흡연에 매우 민감했다.
담낭 절제 같은 수술은 금연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지만, 전신마취를 한 사람으로서 금연하는 게 당연히 좋은 선택이었다.
능연의 표정을 본 가족들은 묘하게 뜨끔해져서 다급하게 변명했다.
“친구가 주고 간 거예요. 피우는 게 아니라.”
의사들이 일제히 가족을 바라봤다.
“거봐, 당신 말엔 논리가 부족하다니까. 말을 그런 식으로 하면 누가 알아들어.”
금만분이 손을 휘휘 저었다.
“담배는 친구 선물입니다. 제가 피우려고 꺼낸 게 아니예요.”
“환자한테 담배를 준다고요?”
“미친놈들은 있잖아요.”
금만분이 그렇게 말하자 의사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푹 쉬세요.”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 침대로 향했고, 그와 동시에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퀘스트 완성: 발전 방향
-퀘스트 내용: 회복 시간 60시간 이내 복강 수술 50건 완성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중급 보물 상자 하나가 가지런히 능연 앞에 누워서 값비싼 화장품이라도 바른 듯 번쩍였다.
능연 머릿속엔 금만분이 이미 완전히 회복했다는 결론부터 떠올랐다.
50건 수술에 금만분 수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퀘스트가 끝났다는 건 그의 회복 시간이 60시간 이내였다는 뜻이다.
“상태가 좋습니다.”
고개를 돌린 능연이 다시 금만분을 칭찬했다.
“그런가요?”
금만분은 눈을 번쩍이고는 바로 자화자찬을 시작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요, 우리 시대 프로그래머들은 몸이 정말 좋았죠. 수시로 무거운 가전 제품도 옮겼고, 근육질 몸매라 농구라도 하면 문과 애들 한둘은 가볍게 부쉈어요.”
그의 아내도 반박하지 않았고 그저 우울한 듯 한마디 했다.
“그땐 몸이 좋았지.”
10분 후, 병실에서 나온 능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중급 보물 상자 두 개를 열었다.
그중 하나는 브라질에서 퀘스트를 완수하고 받은 것이다. 브라질의 열악한 의료 환경은 능연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터라, 퀘스트를 마친 능연은 보물 상자를 좀 더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초급 보물 상자가 모이는 속도는 제법 괜찮았지만, 중급 보물 상자는 그렇게 쉽지 않아서 몇 개 더 모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한편, 요즘 담낭 수술을 하면서 담낭 절제술 기술 부족을 채우기 위해 능연은 가상 인간을 빈번히 사용해서 보충할 시간이 되기도 했다.
중급 보물 상자 두 개와 초급 보물 상자 287개가 일제히 열려 온 복도를 가득 채웠다.
스태미너 포션 더미와 해부 경험 몇 개 사이로 4시간 가상 인간과 번쩍거리는 스킬북이 보였다.
물론 스태미너 포션도 빛났지만, 보통 꽃미남이 엄청난 꽃미남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별로 티가 나지는 않았다.
- 총담관 십이지장 문합술(그랜드마스터급)
스킬북 페이지에 글자 한 줄이 똑똑하게 빛났다.
“능 선생?”
능연이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걸 본 좌자전이 다급히 다가가 제가 할 일이 있을까 대기했다.
“장안민 선생님은요?”
능연은 잠시 기다리다가 살며시 손을 흔들고는 물었다.
좌자전은 다리를 비틀거리면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겨우 대답했다.
“아직 출근 안 했을걸?”
“출근 아직이라고요? 아······.”
능연의 얼굴에 실망감이 감돌았다.
‘총담관 십이지장 문합술’은 표준적인 간담췌외과 수술이며 정상 상황이면 응급의학과에서 접촉할 일이 없는 수술 유형이었다. 담관이 막히는 건 하루 이틀에 생기는 것이 아니니, 환자가 수술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전문과로 가지, 응급센터로 올 일은 없다.
간담췌외과엔 총담관 십이지장 문합술 적응증인 환자가 많다. 게다가 운화병원 이름값도 있어서 경증 환자는 입원시키지 않을 수도 있고, 단순한 담관폐색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가능성마저 있다.
간담췌외과 주임 하원정은 원래 외과 출신이고 간 위주로 하는 의사라 담낭, 담관 방면 환자는 아는 의사에게 소개했다. 이런 것도 모두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결국 능연이 운화병원에서 ‘총담관 십이지장 문합술’을 하고 싶으면 간담췌외과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많은 수량도 필요 없고, 일단 환자 두어 명으로 그랜드마스터급 기술이 어떤지 시험하고 싶은 것이라, 당연히 장안민을 통하는 게 가장 편했다.
“장 선생님 출근하면 저한테 오라고 하세요.”
“응.”
시계를 보고 잠시 생각하던 능연이 하는 말에 그의 표정을 살핀 좌자전은 어쩐지 묘하게 언짢아져서 견디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능 선생,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시키면 되는데. 장 선생은 어쨌든 간담췌외과 사람이고 우리 과로 들어온 것도 아니잖아.”
“간담췌외과 수술 때문이라고만 해주세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병실로 들어갔다.
한 발짝 물러서서 서 있는 좌자전의 안색이 심각했다. 그는 마찬가지로 뒤에 서 있던 연문빈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빈아, 넌 지켜만 볼 거냐?”
“무슨 말씀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능 선생이 또 장안민 찾았어. 능 선생이 간담췌외과 수술을 점점 더 많이 하고 있어. 그럼 대사형 너보다 장안민이 더 중요해질걸?”
좌자전이 연문빈을 툭툭 쳤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장안민이 전에는 남의 집 식구였지만, 우리가 계속 아무것도 안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뭘, 어떻게 해요?”
연문빈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좌자전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쯧쯧. 내 경험으로는 이런 일은 두 가지야. 누르거나, 추켜세우거나. 우리 같은 작은 팀은 누르는 건 안 되고 차라리 추켜세우는 게 나아.”
“어떻게요?”
연문빈의 표정이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와서 궁금한 듯 물었다.
“부주임으로 올려야겠어. 간담췌외과 부주임으로.”
좌자전은 담담하게 묘사했지만, 속으로는 부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간담췌외과 부주임은 딱 하나 남았고, 장안민도 의사 생활 10년이나 했으니 슬슬 부주임으로 올라갈 때도 됐어.”
“슬슬이 아니지 않아요?”
연문빈은 부럽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의심스러웠다.
“장안민 선생 앞에 있는 주치의 많잖아요. 게다가 하원정 주임 적계라서 장안민 선생 순서 안 와요.”
좌자전이 고개를 흔들며 연문빈을 바라봤다.
“네가 우리 마을 위생병원에 있었다면 사흘 만에 시내로 옮겨갔을 거야.”
연문빈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하원정 주임이 적계를 올리든 말든, 그건 주임님 일이고. 장안민은 능 선생 사람이잖아.”
좌자전이 턱을 치켜들며 ‘알겠냐?’하는 표정을 지었다.
연문빈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주임님은 큰 주임이라, 능연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잖아요.”
“지금은 예전이랑 다르지. 하하하. 우리 치료팀엔 돈이 있거든.”
좌자전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응?”
“이론적으로 우리가 간담췌 2 외과를 신청해도 된다고.”
좌자전의 눈빛이 조금 밝아졌다.
“한 달에 침대 세 번 비우는 게 어떤 개념인지 알아? 우리 치료팀 한 달 수술량이 하원정 주임 일 년 치야. 우리는 돈도 있어서 간담췌 2과를 만들겠다면 하 주임도 못 막아.”
“능 선생이 그럴 생각이 있대요?”
“능 선생은 없지. 하지만 곽 주임은 있겠지. 하 주임 겁도 줄 겸, 장안민도 그쪽으로 보내는 게 좋겠어.”
좌자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반짜리 회사 환자도 곧 끝날 거야. 앞으로 이렇게 좋은 단체 환자가 언제 있을지 모른다고. 권력은 쓸 때 써야지, 시간 지나면 쓸모없어져.”
“능 선생이 동의할까요?”
“능 선생은 그런 거 신경 안 쓰지. 게다가 장안민이 부주임이 되면 외래 진료로 환자를 더 많이 받을 거고, 그럼 하 주임 이용하는 것보다 편해져서 능 선생도 좋아할 거야.”
응급센터 밑에 있는 치료팀이 간담췌외과 부주임을 임명하는 일에 영향 줄 수 있다고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좌자전의 말을 들으니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고, 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 저으며 뜨끔한 듯 좌자전 바라봤다.
“좌 선생님, 정말 멀리 생각하시는군요.”
“생각이야 쉽지. 하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고는 자조하는 듯 웃었다.
“나도 생각하는 걸 하 주임이 생각 못 하겠냐. 우리 치료팀 하나로 한 달에 손쉽게 수술 200건을 해치우는 게 어떤 건 거 같냐? 생산력으로 누르는 거라고!”
“생산력으로 누르는 건 맞지만, 수술 200건은 쉬운 게 아니라고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던 연문빈이 웃음을 터트렸다.
좌자전도 참지 못하고 웃다가 고개를 들고 능연이 병실에서 나오는 걸 봤고, 두 사람이 재빨리 그의 뒤를 따랐다.
타닥타닥, 타닥타닥타닥.
운화병원 응급센터 복도에 휘황찬란한 기세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