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분, 들어오세요.”
좌자전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감고 수양하던 노인과 나중에 온 보호자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안으로 들어갔다.
진료실 벽 좌우에 각 에피프레넘과 접난이 병원에서 보기 드문 생기를 내뿜고 있었다.
사무용 책상 건너편에 앉은 능연은 딱 봐도 젊고 잘생겨서 드라마 보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노인은 아들이 밤을 새우고 얻어온 번호표를 매우 소중히 여기며 재빨리 앉았다.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니던 병원에서 간 내 담관 결석을 확진 받았답니다. 재검도 여러 번 받고 입원도 했는데 수술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또 아프고 이젠 약도 안 통하는 것 같아서 정 안 되면 수술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요.”
노인의 말은 자주 진찰받는 사람답게 조금 빠른 편이었다. 요즘 의사들은 다들 바빠서, 느릿느릿 얘기했다가는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의사가 말을 자르는 바람에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능연은 노인이 가지고 온 사진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능연은 직접 사진을 보는 걸 제일 좋아했다. 영상의학과 의사의 진단을 못 믿어서였다. 외과의는 다른 사람을 절대 믿지 않는다.
“한 달 전 필름이군요.”
능연은 사진을 내려놓고 환자와 보호자를 바라봤다.
“네네. 저는 저 아래 화양현에 살고요, 보통 현 병원에서 보존 치료를 합니다.”
“왕종 씨, 맞죠?”
능연이 사진 구석에 이름을 확인했다.
“네, 종소리 할 때 종입니다.”
“CT 한 번 다시 찍죠.”
능연이 하는 말에 좌자전이 곁에서 타닥타닥 조작하기 시작했다. 왕종 어르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전에 찍은 건데요.”
“한 달이니, 상황이 변했을 수도 있어요.”
능연이 솔직히 대답했다.
노인은 ‘아’하고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좌자전은 슬그머니 전자 차트를 열어 능연이 입력한 차트를 일부러 한 번 확인했고, 역시나 ‘CA 주의’라고 적힌 주석을 발견했다.
CA는 암의 약자였고, 입력하기 편하기 위해서, 그리고 환자가 바로 알아채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중국 병원은 암을 바로 환자 본인에게 알리지 않고 오히려 보호자와 먼저 상의한다.
좌자전은 곁에 있는 환자 아들을 힐끔 보고는 능연의 진료가 끝나자 즉시 그를 따라갔다.
“잠시만요. 환자분은 잠시 쉬고 계시고요. 보호자분, 저 좀 볼게요.”
좌자전은 긴말하지 않고 왕종의 큰아들을 붙잡고 능연의 진료실로 돌아와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아드님 모셔왔어.”
“음. 직접 말씀하세요.”
“응.”
좌자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환자 아들을 마주했다.
“전에 찍은 CT로 봐서, 아버님 간에 그림자가 보입니다.”
“그림자요?”
큰아들이 알 듯 모를 듯, 머뭇거렸다.
상대방의 표정을 본 좌자전은 상대가 알아들었음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양성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수술 전에 확실히 해야 합니다.”
“양성이 아니면요?”
“악성일 가능성도 있죠. 그러니까 암말입니다.”
벌써 한참 밑밥을 깔았던 좌자전은 이제 뜸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
맞은편 남자가 눈가를 파르르 떨면서 다시 물었다.
“암이요?”
좌자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 고, 고칠······.”
그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결국 말을 맺지 못했다. 능연과 좌자전 모두 그를 재촉하지 않았다.
생사에 관련된 소식은 병원에서 의사들이 가장 인내심을 갖는 부분이다.
암을 고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의사는 없고, 의사들도 강하게 나갈 수 없다.
충수염 같은 증상은 비록 똑같이 생사가 걸린 질환이고, 오히려 더 빨리 죽음에 이를 수 있지만, 의사들은 손쉽게 고칠 수 있어서 태도도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CT 결과가 나오고 그림자 부분이 증가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변화가 있다면, 서둘러 수술할 것을 건의하고요.”
“능 선생님이 수술해 주실 수 있나요?”
남자가 휙 고개를 들고 묻는 말에 좌자전이 고개를 저었다.
“능 선생은 기본적으로 암 수술을 하지 않습니다.”
“왜요?”
“좋은 의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능 선생한테 수술받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문 앞에 굳건히 서 있던 왕 노인이 날카로운 눈빛과 우레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좌자전은 전용 면담실로 가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벌어졌다. 좌자전은 일단 진료실 책상 앞으로 가서 능연을 보호하면서 말을 이었다.
“어르신, 일단 지금 어르신 신체 상태가 안 좋으니 누가 수술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수술할 필요 없는 암도 있고요. 수술 못 하는 암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검사부터 하고요. 다음 치료 방안을 정해야······.”
“능 선생이 암 수술하는 거 알고 있소!”
왕종은 좌자전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능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뉴스 본 적 있어요. 원사 간암 수술도 했잖소.”
“수술로 꼭 암이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거기까지 들은 능연이 더는 감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현재 CT로 봐서는 위치가 좋지 않습니다. 절제도 어렵고, 완전히 절제한다고 해도 높은 확률로 재발할 겁니다.”
왕종은 실망한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기운까지 잃은 듯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수술할 거면 입원하고 수술 준비하세요.”
능연은 간암 절제술을 할 수 있었다. 간 절제 스킬은 정상 조직을 제거하든, 암 조직을 제거하든 상관없었고 암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림프 청소 스킬도 능연은 갖추고 있었다.
다만 마스터급, 그랜드마스터급 스킬이 있어도 암 수술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지 못했다.
능연은 그런 수술을 혐오해서 그렇지, 암 수술을 강력하게 원하는 특정 환자의 암 수술 자체를 강렬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좌자전은 능연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렸고, 한마디 보충했다.
“간암 유형과 위치는 다양합니다. 우선 검사부터 해야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순간 말할 의지도 모두 사라진 왕종 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 선생이 간암 환자 받았다면서요?”
외래 진료를 마친 장안민은 능 팀 단톡방에서 소식을 듣고 흥분해서 달려왔다.
간 내 담관 결석 간 절제보다 당연히 간암 절제술이 더 어렵고 대단한 수술로 여겨졌다.
하원정이 운화병원에서 단단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데에는 능연이 간암을 그에게 남겨 준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된다. 간암 대국인 중국에서 하원정이 자기 환자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안민은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당연히 간암 수술도 하고 싶었다. 간담췌외과에서 성장한 외과의로서 장안민이 지금 기대할 수 있는 정상급 기술은 바로 간 절제였고, 그중 가장 고난도 수술이 바로 거대 종양 제거 아니면 간암 절제였다.
거대 종양 환자는 만나기 어렵다. 특히 요즘은 양성 종양을 거대 종양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일도 드물었고, 있다고 해도 북경, 상해 실력 있는 의사에게 뺏긴다. 그러니 장안민 같은 의사로서는 간암 절제가 가장 현실적인 첨단 수술이었다.
좌자전은 한눈에 장안민의 생각을 읽었다. 심지어 장안민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이미 장안민이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했다.
“응, 노인 환자인데 능 선생 마음이 약해져서 받았어. 외래가 원래 그래.”
“난 또. 능 선생이 간암 수술을 하려는 줄 알았네요.”
장안민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부주임 되자마자 능 선생이 간암 수술을 시작하길 바라다니. 주인공 대우해달라는 거냐?”
“그런 생각 조금 했나 보네요.”
장안민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꿈도 크다.”
“그러게요.”
장안민은 길든 고양이처럼 온순하게 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제 부주임도 되었고, 능연이 간 쪽에 큰 수술을 한다면 일단 본인을 어시로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장안민은 생각할수록 그렇게 확신했다. 진지하게 수술 전 협진 내용을 되짚어보고는 다시 환자의 차트를 불러내 디테일하게 살폈다. 심지어 눈까지 감고 수술 조작 순서를 한 번 고민해보기까지 했다.
오후 내내 그 생각을 하던 장안민은 다음 날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 문제를 고민했다.
간암 수술도 여러 진입로를 선택할 수 있고, 능연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니, 장안민은 우선 혼자 추측하면서 스스로 연구했다.
전에도 그런 일은 자주 했었다.
능연 밑에 레지던트들과 달리, 장안민의 레지던트 시절엔 운화병원 간담췌외과엔 주임이 아직 있던 시절이었다. 다만 나이가 들고 쇠약해져서 수술보다 행정 방면 일을 더 많이 했고 그 밑엔 한창때인 부주임 의사뿐이라서 다들 호시탐탐 아이템 개발하고 수술하며 주임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느라 이제 막 레지던트가 된 신입을 돌볼 틈이 없었다.
그때 장안민은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수술 중에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조금 더 어필할 수 있길 바라면서 수술 전 준비를 최대한 상세히 했었다.
“장 선생님. 수술하러 갑니다.”
아침은 수술로 바쁜 시간이지만, 마연린은 부주임이 된 장안민을 대접하느라 일부러 인사를 했다.
장안민은 가볍게 대꾸하고는 변함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열심히 제 할 일을 했다.
의국이 점점 조용해졌다.
병원 응급센터 설립 후, 능 팀의 사무공간이 더욱 쾌적해졌다. 장안민은 아직 간담췌외과 의사였지만, 능 팀 의국에도 자리가 하나 생겼다. 지금은 아내 사진까지 가져다 놓아서, 완전하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수술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고 의국에는 사람이 적어져서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어져서 장안민은 더욱 쾌적하게 느꼈다.
장안민은 오로지 수술 생각만 했다.
오늘은 능연이 부르지 않아서 반드시 해야 할 일도 없었고, 수술 생각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생각하다가 하다가, 장안민의 마음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응? 오늘은 왜 안 불렀지?
긴장하기 시작한 장안민은 혼란스러워하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핸드폰을 꺼내 뒤지기 시작했다.
능 치료팀 단톡방에 수술을 위한 시간 배정 내용이 올라와 있었다.
머리가 굳은 장안민은 힘껏 머리통을 내리치고는 바로 수술실로 달려갔다.
수술실 문 앞에 도착해서 바로 수술 리스트를 보니 능연이 수술실 두 칸을 차지했고, 그중 하나가 ‘간암 근치술’이었다.
장안민은 괴로워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치익. 수술실 문을 밟고 들어가자마자 푸른 수술실에서 고개를 숙이고 수술하는 능연이 바로 보였다.
입구에서 바라본 능연은 허리를 곧게 펴고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조각처럼 아름다웠다.
능연은 끊임없이 기구를 바꾸느라 팔뚝은 움직이면서 시선은 고정한 채 대비를 이루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넋을 잃을 정도로 멋진 모습이었다.
“간암 수술 시작한 거야?”
장안민이 조마조마하며 묻자, 어시하던 마연린이 의아하다는 듯 장안민을 바라봤다.
“예. 마침 제 순서라.”
“그제 수술이랑 같이 배정한 거야?”
“당연하죠.”
장안민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고, 마연린이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장안민은 예상 못 했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능연이 한동안 간암 수술을 하지 않았으니 이번에 할 때 단독으로 배정하리라 생각했지, 이렇게 정규 수술에 배정할 줄은 몰랐다.
물론 정규 수술로 배정하는 게 당연했다. 다른 간 절제 수술과 비교해도 간암 절제 수술은 사실 특별한 것이 없었다. 특히 의학적으로는 백중지세였다.
“마 선생, 운이 좋구나.”
장안민은 개의치 않는 척하며 침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환자의 열린 복강을 바라봤다.
“마침 그렇게 됐네요.”
마연린은 정말 신경 쓰지 않는 듯 태연하게 하하 웃었다. 그는 고작 세컨드 어시, 즉 훅 잡는 잡일에 불과해서 간 절제 수술이라고 해도 특별할 것 없이 느껴졌다.
그때 여원의 머리통이 천천히 올라왔다.
“장 선생님, 오늘 쉬는 날 아니셨어요?”
“응? 네가 왜······. 아니, 나 오늘 쉬는 날이야?”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던 장안민은 능 팀 듀티대로라면 본인은 오늘 휴일이 맞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나 부주임이 된 장안민은 쉴 생각이 전혀 없었고 출장 수술조차도 그다지 생각이 없었다.
“내가 좀 도와줄게.”
장안민은 머리를 굴리다가 바로 손을 씻으러 갔고 수술실 사람들은 별생각 없이 수술을 계속했다.
장안민이 돌아오자 마연린은 자리를 양보하기까지 했다. 그는 지금 해야 할 수술이 너무 많아서 간암 수술은 오히려 사양하고 싶을 정도였다.
“퍼스트 하세요.”
능연이 고개 들어 장안민을 바라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장안민은 마음이 따듯해지는 걸 느꼈다. 능 선생, 넌 역시······.
“전이된 병소가 있어서 잘라야 합니다. 속도 올려야 해요.”
능연의 명령이 장안민의 환상을 바로 중단시켰다.
순간 장안민은 환자와 보호자가 병실에 있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퍼뜩 정신을 집중했다.
왕종 일가가 모두 수술실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큰아들은 이미 한바탕 눈물 바람을 일으키고는 지쳐서 개미 떼처럼 맴도는 친척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둥.
수술 구역의 문이 열리자 대기 구역에서 기다리던 환자 보호자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명원 씨 보호자분.”
간호사가 목소리 높여 부르고는 주변을 살피자, 곁에 있던 한 가족이 바로 다가갔다.
“선생님, 우리 집 양반 괜찮은가요?”
“수술은 순조로웠습니다. 병실에 간 다음 주의사항 설명해 드릴 거예요.”
“네네.”
환자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종의 큰아들이 자기도 비슷한 대답을 들을 수 있길 기대하며 부러운 듯 그쪽을 바라봤다.
둥.
한참 후에 수술 구역의 문이 다시 열렸고, 이번에도 다른 환자가 나왔다.
왕씨 가족은 점점 조용해졌고, 말 많던 친척들도 점점 흥미를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둥.
수술 한 건이 다시 끝냈고, 환자 보호자 무리가 자리를 떠났다.
왕종의 큰아들이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를 붙잡았다.
“선생님, 선생님. 저희 아버지 어떻게 됐는지, 한 번 가서 봐주실 수 있을까요?”
“수술 끝나면 나올 겁니다.”
의미 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듯, 의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왕종의 큰아들도 쉽게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제발 부탁 좀 드립니다. 안에 무슨 상황인지만 알려주세요. 능연 선생한테 수술받고 있습니다.”
“능연이요?”
붙잡힌 의사는 조낙의였고, 그제야 위아래로 환자 보호자를 살피면서 물었다.
“무슨 수술, 무슨 질환입니까?”
“간암이요.”
“간암?”
조낙의가 눈을 치켜떴다.
너무나 많은 이유로 놀랐지만, 가장 놀란 이유는 어쩌면······ 본인은 간암 근처도 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응급의학과는 기본적으로 전문 진료과가 아니라서, 위중한 질환이든 크고 작은 외상이든 비교적 기초적인 처리만 하고 복잡한 부분은 해당 전문 진료과에 보내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주치의라서가 아니라, 주임이라고 해도 간암은 터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각도로 보면, 응급의학과 의사도 외과의라서 이런 첨단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은 불가피했다.
“제가 한 번 가보죠. 기다리세요.”
조낙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 수술 구역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바로 수술실로 가지 않고 참관실로 향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참관실에 과연 의사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내과의에 외과의에, 그중 실습생과 훈련의가 가장 많았다.
인기척이 들려도 대부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응급센터 참관실이 생긴 후, 의사들은 틈만 나면 구경하러 왔고 수술실에 가서 구경하는 것보다 참관실이 자유롭기도 했다. 햄버거 같은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는 의사도 있어서 아예 참관실에서 식사도 해결하고 수다를 떨면서 학습도 하니, 매우 편안했다.
외과의에게는 ‘봤다’는 것 자체가 드문 경험이 된다. 본다는 것 자체가 수술 참여의 기본이고, 간단한 수술은 한 번 보고, 한 번 참여하면 집도를 할 수 있다. 복잡한 수술은 배울 때 복잡해서 그렇지, 실제 조작은 마찬가지였다.
의사들은 많은 수술을 보고, 참여해야 어떤 수술을 집도할 기회를 얻지만, 사실 그냥 느낌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더 안전할 뿐이었다.
대부분 의사는 복잡한 수술을 배우는 방식이나 간단한 수술을 배우는 방식이나 별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능 선생도 그렇게 빨리하는 건 아니네.”
“간암 수술이잖아. 빨리한다고 환자가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암인데, 얼마나 살게 될지 누가 알겠어.”
수술을 보는 의사 중에 간암 수술을 할 만한 의사는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구경하는 재미로 한마디씩 할 뿐이었다.
그러나 간담췌외과에서 온 의사들은 정말로 진지하게 능연의 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자 간이 별로 안 큰데, 이런 식으로 절제하다가 간이 남아나겠어?”
간담췌외과 주치의 단이간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3평 남짓한 참관실이라, 목소리는 낮았지만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조낙의가 바로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보는 것보다 모니터 영상이 훨씬 더 잘 보였다.
조낙의는 모니터 아래 ‘42’라는 숫자를 주목했다. 42개 장소에서 능연의 수술을 동시에 보고 있다는 사실에 조낙의의 마음에 파란이 일었다.
전문 중계로 따지면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이건 그저 평범한 수술이었다. 홍보도 없었고, 화제성도 없는, 그냥 능연의 단순한 수술일 뿐이었다.
아무리 운리 제약에서 최근에 각 병원에 더 많은 모니터를 설치해서 고화질 동영상 중계가 더욱 빈번해졌다고 해도, 일반 의사가 두 자릿수의 시청자 수를 모을 수 있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능 선생이 전에 한 간 절제 수술도 다 이런 식이었어. 이 방면에 능 선생은 권위자야.”
이번에도 들리는 목소리에 조낙의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봤더니, 그다지 친하지 않은 일반 외과 주치의였다.
“난 전에 대단한 수술을 본 적 있어. 병리 검사를 함께 하는 수술이었지. 북경 병원들도 이런 모드로 수술실 곁에 병리과를 배치했어.”
다른 일반 외과의도 수다 떨 듯 한마디 했다.
조낙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일반 외과 주임이 원래 능연 편을 드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 그 밑에 사람들도 이러니 더욱 언짢아졌다.
띠리링.
아래 수술실에서 전화벨이 울렸고, 잠시 후 순회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테두리 깔끔하답니다.”
참관실에 순간 혀 차는 소리가 가득했다.
수술실에서 능연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OK. 수술 계속합니다.”
“네.”
“수술 계속.”
수술실의 의사들은 사기가 진작되어 큰소리로 대답했다.
두 시간 넘는 수술 시간은 어느 의사에게든 쉬운 수술이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두 시간 서 있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 시간 내내 머리를 써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수술 성공이라는 서광을 봤기에, 모두의 마음도 격앙된 것이다.
사람을 구한다는 건, 그 자체가 매우 자극적인 일이고 성취감이 높은 일이다. 돈이나 승진 같은 자극이 없어도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분출되기 충분하다.
아래 있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그 눈빛을 일일이 바라보던 조낙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참관실에서 나갔다.
그는 왕종 가족에게 가지도 않고 가족들의 초조한 안색을 멀리서 힐끔 바라보다가 묘하게 우습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수술 순조롭게 끝났습니다. 아버님은 일단 중환자실로 갈 겁니다. 간 절제는 큰 수술이고 아버지 연세가 높은 편인데 간 절제 범위도 넓어서 일단 중환자실에 며칠 있을 겁니다.”
수술 구역에서 나온 좌자전이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지칠 대로 지친 왕종 가족은 흥분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중환자실은 비싼 거 아닌가요?”
일단 알았다고 대답부터 한 왕가 큰아들이 확인하는 듯 물었다.
“보험으로 일부 됩니다. 첫날 비용은 좀 나올 겁니다. 첫날엔 기곗값 등 비용이 들어가거든요. 뒤로 갈수록 비용이 줄어듭니다. 며칠 계시는 게 나을 거예요. 예후를 높이는 것도 그렇고, 오래 머물러도 사실 큰 차이가 나지 않거든요. 한 사오만 위안?”
“사오만 위안······. 사오만 위안이라······.”
왕가 큰아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목숨을 살렸으니 돈 문제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왕가 중년 친척 하나가 헛기침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오만 위안이면 큰돈인데······.”
왕가 전체의 생각인 것 같으니, 친척이 역할을 발휘할 모양이었다.
이분이 먼저 말을 꺼내자, 곁에 있던 사람들도 한마디 할 준비를 하며 앞으로 나왔다.
“돈이야 쓰기 나름이죠.”
좌자전이 싱긋 웃어 보이며 가족들의 흐름을 끊었다. 비슷한 환자와 보호자를 너무나 많이 봐왔다. 의외도 아니고 걱정도 되지 않아서 그저 살며시 웃어 보였다.
“이번 수술을 다른 곳에서 했다면 10만 위안 더 나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건 어디 가서 물어봐도 좋습니다. 능 선생은 요즘 종종 외국 환자 수술하는 분입니다. 다 달러로 계산하고요. 외국에서 수술하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가 외국 사람은 아니잖아요.”
누군가 기회를 잡고 투덜거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수술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능 선생이 직접 집도하고, 최신 기술로 수술했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 다른 의사였다면, 중환자실에 들어갈 기회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좌자전은 마을 위생병원 시절 자주 쓰던 반쯤 부풀린 방법으로 가족을 상대했다.
왕가 사람들의 표정과 생각도 과연 변화가 생겼다.
비싼 물건을 살 때, 할인을 많이 해준다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보니 비싼 중환자실이 주는 충격이 그렇게까지 강렬하지 않았다. 어쨌든 수술 전에 경제적 압박을 예상했으니까 말이다.
“도움을 좀 청해보세요. 지금 조건으로 도저히 어렵다면, 병원에서도 감면받을 수 있는 부분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능 선생도 조금 권한이 있고, 저희 주임님한테도 조금 있지요. 보호자분이 어떤 선까지 잡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원장님이면 당연히 권한이 더 커지겠지요.”
좌자전은 실체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셈이었다.
병원에서 비용을 감면해주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크게 감면받는다는 건 역시 불가능했다. 물론 아는 사람을 알아봐도 그다지 소용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힘 있는 사람을 등에 업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실 대부분 그 몇만 원 감면에 연연하지 않았다. 힘 있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은 감면받으려면 정상 루트를 따를 수밖에 없고.
그러나 어쨌든 하나의 방법이기는 했다. 게다가 그것에 대해 익숙한 사람이 중계해주면 보호자들도 이치에 맞게 행동하곤 했다. 좌자전이 여기서 특별히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저 그런 길이 있다고만 알려줘도 그 방법이 통하든 안 통하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저희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혹시 선생님이······.”
인맥 이야기가 나오니 가족들의 태도도 당연히 누그러졌다.
“제가 담당 의사니까, 나중에 병실에서 다시 만날 겁니다. 일단 환자 보러 가시죠.”
“그럼 아버지부터 보러 가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왕종 큰아들이 환자 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환자 가족은 원래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한 순간, 한 순간 닥치는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했다. 이런 보호자를 많이 겪어 온 좌자전은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장안민은 중환자실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간담췌외과 명의로는 사실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ICU는 큰 진료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조 진료과라서 간담췌외과 의사가 마음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환자를 처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능연이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실 능연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ICU 의사나 간호사가 장안민을 말리지 못했다.
그런 대우를 받은 장안민도 묘하게 통쾌했다.
ICU 의사를 따라 느긋하게 두어 바퀴 돌면서 환자 왕종의 호흡, 심박 등 지표가 정상인 걸 확인하고 장안민은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안민아, 수술 잘했냐?”
하원정도 ICU 환자를 보러왔는지, 우연히 만난 것처럼 인사했다. 그러나 장안민은 하원정이 ICU에 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간담췌외과 진료과 주임인 하원정의 권력이 아무리 적어도, 밑에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과 주임은 과 주임이었다. 본인 진료과 일도 바쁘고 평소에 출장 수술도 가야 하는데 ICU에 참견하러 올 시간이 어디 있을까.
장안민은 마음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주임님. 환자 한 명이 막 여기 들어와서, 저도 보러 왔습니다.”
“왜? ICU 의사도 못 믿어서?”
하원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능연이 간 절제 수술을 하는 것에 하원정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능연이 간 내 담관 결석 수술을 하는 걸 봐서, 그리고 능연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고 곽종군이 포악한 걸 봐서, 하원정은 따지지 않고 본인 간암 수술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장안민까지 간암 수술을 시작하니 이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원정은 바로 능연을 혼낼 수는 없어도 적어도 장안민에게는 한두 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장안민 역시 고분고분 고개를 숙이고 욕먹길 기다렸다.
의사, 특히 외과의는 욕먹는 게 일도 아니었다. 어린 애나 욕먹는 게 겁나지, 외과의는 보통 눈물이 찔끔 나게 혼나고 나서 눈물을 닦고 일을 해야 했다.
“진료과는 진료과다워야지. ICU에 아무 의사나 들어간다고 ICU 일을 할 수 있나? ICU 환자를 케어할 수 있냐고. 그렇게 간단하면 뭐하러 ICU가 있는 건데. 아예 병실 하나 만들어서 너네끼리 하지 그래.”
하원정은 ICU 복도에서 서서히 리듬을 탔다.
장안민은 고개도 들지 않았다. 이 정도 욕이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하원정은 경멸하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장안민의 인내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 괴롭히는 데 초보가 아니었다. 하원정은 아무렇지 않게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안민아, 너도 내 밑에 몇 년이나 있었잖니. 난 그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된다. 간담췌외과 의사가 함부로 ICU 가서 휘젓지 말라고. 그러면 돼. 담낭 수술하는 네가 간 절제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알겠냐?”
장안민은 반박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머뭇거리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우리 능 선생이 장안민 선생 이제 간 절제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자기 환자 확인하러 온 연문빈이 그렇게 말하면서 장안민 등 뒤로 섰다.
그를 흘끔 본 하원정은 기분이 언짢아졌다. 얘, 레지던트 아냐?
뒤에 있던 마연린도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
“우리 능 선생님은 누구든 잘하는 걸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하원정이 실눈을 뜨고 그쪽을 바라봤다.
그때 여원이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냈다.
“우리 능 선생이 말하길······.”
“아이고, 깜짝이야!”
고개를 숙여 여원을 본 하원정이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손을 휘저으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