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배를 연 장안민은 고분고분 자리를 능연에게 비켜주었다.
이어받은 능연은 전동메스로 간단히 지혈하면서 박리를 시작했다.
총담관 십이지장 문합술도 변함없이 결석을 꺼내고 통로를 여는 과정이다. 환자의 담관에 결석이 많아서 담관 경으로 돌을 꺼낼 수밖에 없고, 더 중요한 건 담관 내 액체가 원활하게 담관을 통해야 하는 것이다.
이 스킬은 말로도 쉽고, 하기에도 큰 어려움은 없는데, 예후는 종종 제멋대로였다.
가장 흔하고 가장 골치 아픈 것이 바로 수술 후 역류였다. 그래서 담관염이 생기면 괴롭기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담관염을 제어하지 못해 일정 확률로 암이 되는 환자가 대다수였다.
그 외에 장 움직임이 저하되어 생기는 분비 지체, 간 기능 이상 등등 문제도 역시 매우 골치 아팠다.
장안민 같은 주치의 혹은 부주임에게 장 문합은 쉬운 수술이지만, 예후를 높이고 합병증을 제어하기엔 참 묘한 점이 있어서 많은 수술 경험을 통해서 서서히 방법을 모색하곤 했다.
그러나 능연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정규 방법으로 착착하기만 하면 전체 스텝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장안민은 능연의 기술에 포함된 내용을 이내 깨달았다. 그는 불안함과 아까 선 그리며 느꼈던 뜨끔함을 모두 잊고 진지하게 어시하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어시하는 것과 배우면서 하는 것은 다르다. 오늘 개복은 장안민이 했다. 능연이 뭐가 필요한지, 능연의 습관을 세심히 살폈다고 해도 어찌 됐든 자신이 아는 한에서 절개 위치와 절개 크기 등등을 정했다.
능연은 장안민이 열어놓은 수술 시야에서 수술했고, 어떻게 조작하는지 역시 장안민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게 장안민에게 주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능연의 동작을 보며 장안민은 점점 안심했고, 능연의 순서를 따라 하나씩 보조하기 시작했다.
혈관, 담관과 장은 일반적인 도관처럼 능연을 통해 하나씩 정리되고, 모이고, 봉합됐다.
“다했습니다.”
능연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수술을 마쳤고, 중간에 장안민에게 따로 특별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장안민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없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능연의 동작을 회상했다.
“배 닫는 거 잊지 마세요.”
능연은 하급 의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개입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좌지우지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 흥미가 없었다. 정말 필요하다면 차라리 하급 의사의 머리를 해부해 직관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길 더 바랐다. 물론, 문제가 있다면 말이다.
치익. 능연은 수술실 문을 밟고 나와서 고개를 돌려 장안민을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서 하늘, 아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나 시스템 제시어는 없었다. 새로 완성된 퀘스트가 없다는 뜻이었다.
능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보아하니 장안민은 하루에 보물 상자 두 개를 쥐어짜는 게 한계인 모양이었다.
“아이고.”
커다란 소모품 상자를 안은 간호사가 고개를 숙인 채 능연을 보지 못하고 힘차게 걸어왔다. 거의 부딪힐 뻔하다가 겨우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능연은 재빨리 손으로 머리를 누르고 뒤돌아서는 동작을 하면서 능숙하게 위기를 피했다.
능연에게는 학교에서든 어디서든 종종 겪는 일이라 희한할 것도 없고 피하기 어렵지도 않았다.
“능, 능 선생님.”
간호사가 부끄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눈에서 영롱한 빛을 냈다.
능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간호사는 멍하니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냈다. 한바탕 자랑하고 싶었지만, 애써 참고는 그저 사진 몇 장만 몰래 찍고 말도 하기 싫다는 듯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었다.
복도를 나선 능연은 바로 수술 구역 탈의실로 향해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로 갔다.
오늘 한 수술은 모두 작은 수술이었고 모두 순조로워서 환자 보호자를 만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능연은 인식했다. ‘수술이 잘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보호자 면담은, 능연으로서는 너무 단조로웠다. 거기에 ‘매우’라고 붙여봐야 마찬가지였다.
“능 선생.”
사무실로 들어가 앉자마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했다.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제약 회사 직원들은 그렇게 빈틈만 있으면 치고 들어왔다.
“에? 홍 주임님?”
능연은 의외라는 듯 호흡기과 홍 주임을 바라봤다.
홍 선생은 골초로 자부하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능 선생, 소개할 사람이 있어서.”
그리고는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를 끌고 들어왔다.
“인사하지.”
“저는 휘홍 대표이사 수홍입니다. 사실 능 선생 동문이기도 하지요.”
홍 주임이 지극히 익숙한 듯 행동하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싱긋 웃으며 능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구 초등학교요? 아니면 운화 대학이요?”
능연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는 듯 묻는 말에 수홍은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능 선생이 특별하다고 하더라니. 당연히 운화대학이죠. 내가 한참 선배지요. 운화 대학 건축과를 나왔어요. 나중에 직접 회사를 차렸죠. 철거 전문으로 시작해서 부동산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네. 대표님 연세에 대학 나온 사람이 적을 것 같아서 여쭌 겁니다.”
“칭찬으로 듣지요. 하하. 나도 내가 대학 나온 걸 의외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능연은 계속 수다를 들을 생각이 없었다.
“아, 그게 말입니다. 내 아들 수휘가 곧 대학 졸업합니다. 바로 운화병원에서 실습했지요. 이제 훈련의인데, 능 선생 밑에서 훈련의 생활을 하고 싶다지 뭡니까. 애비니까, 의학은 몰라도 아들 바람은 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능연은 휘홍 한 번, 홍 주임 한 번 바라봤다.
“훈련의 하나를 자네 밑에 넣고 싶은 걸세. 운화 대학 의대 졸업생. 자네 후배.”
그렇게 통역한 홍 주임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담배 하나 꺼내 들고 ‘금연’ 표지판 밑에서 코를 킁킁댔다.
능연이 바라보자 수홍은 광대를 밀어 올리며 웃었다.
“애가 성적은 괜찮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대요. 능 선생 실력이 정상급이라고 들어서, 이렇게 부탁하러 온 거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참 저도 어쩔 수가 없어서 이렇게 늙은 얼굴을 들이밀었지요.”
“야근할 수 있습니까?”
“그럼요.”
능연의 물음에 수홍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는 것 보면 어느 정도 넘어간 것으로 생각했다.
“저녁 10시까지도요?”
“그럼요. 문제없습니다. 996은 기본이지요. 이놈이 그래도 고생은 할 각오가 되어 있답니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경험이 쌓이는 거 아니겠습니까?”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물었다.
“일찍 출근은요?”
“됩니다. 보통 6시면 일어나거든요.”
수홍이 보란 듯이 웃었다.
“훈련의는 너무 일찍 올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4시 반엔 병원에 도착해야 그나마 합리적입니다.”
능연이 힐끔 수홍을 바라봤다.
철거도 했었고, 직원 월급도 미뤄본 적 있는 부동산 개발업 대표이사 수홍이 미간을 좁히고 홍 주임, 능연을 바라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능 선생, 혹시 우리나라 노동 보호법 규정이 상당히 엄격하다는 거, 혹시 아시는지요?”
“또 졸업 시즌이구나.”
좌자전이 찻잔을 들어 올려 반쯤 마시고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능연 밑에 왔을 때 겨우 42살이었는데, 어느새 45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45살이 넘으면 이제 청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제 ‘청’자 들어가는 평가(청년 특별 전형)는 신청할 수 없었다. 45세를 넘은 비 청년은 이제 나이 먹은 녀석들과 무한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국가급 단체에 이름을 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다시 한숨을 내쉬면서 의국에 서 있는 수휘, 구소렴 등 훈련의를 바라봤다.
“니들은 좋겠다, 젊어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잖아.”
“좌 선생님도 아직 한창때잖습니까.”
수휘가 갑자기 허리를 굽히고 좌자전의 찻잔을 가득 채웠다.
좌자전은 멈칫하고는 저도 모르게 다시 눈앞의 젊은이를 살피며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음, 사회 경험이 좀 있구만.”
능 팀에 있다 보니, 좌자전은 마음이 몹시 지쳤다. 능연을 제외하고 위에서 아래까지, 여원, 연문빈, 마연린과 장안민 모두 아부쟁이로는 불합격이었다. 아부도 제대로 못 떨어서 차 심부름 같은 건 더욱 기대할 수도 없었다.
로테이션 돌아오는 훈련의와 공짜로 보내지는 실습생 중엔 종종 아부 정신이 있는 놈도 있지만, 아부 능력은 없어서 차 심부름은 둘째치고 듣기에 껄끄러운 아부뿐이었다.
좌자전 눈엔 새로 온 구소렴이 조금 재능이 있었지만, 그래도 쓸 만한 기술은 아니어서 동작이 여전히 어색했다.
눈앞에 물 따르는 수휘의 자세는 꽤 호감이 갔다. 가식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세간에 찌든 무력함도, 억지로 사회에 복종하는 느낌도 없었다.
좌자전은 수휘가 가득 채운 찻잔을 들고 살며시 머금었다.
수휘도 조금 안심하며 미소 지었다.
“전에 아버지 따라 회사에 가서 거기 아저씨들한테 차를 따라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차 심부름은 경험이 있는 편입니다.”
“음, 젊음이 좋구나. 젊을 때는 그런 일 해도 부끄러울 거 없고 체면도 상할 게 없지.”
좌자전이 머리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고학력 신인들이 왜 잘 못 버티는가 하면, 학력이 높아서가 아니라, 나이는 많은데 신인이라 그런 거거든.”
아직 44세인 신인 레지던트 좌자전의 말에 탄식이 가득했다.
이야기를 듣던 장안민도 느끼는 바가 있는 듯 수휘의 깔끔한 하얀 가운, 주름 하나 없이 잘 다려진 셔츠, 그리고 아마도 가짜가 아닐, 지금 유행하는 브랜드 신발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버지가 회사 사장인 게 정말 좋은 거죠. 어릴 때 아저씨들 차 따라드리고 싶어도 아저씨들 집에 찻잎도 없고, 포트도 감히 손댈 생각 못 한걸요. 괜히 깼다가 물어줄 돈이 없어서 말이에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연문빈이 가장 크게 웃었다.
“이제 장 선생님 부주임 되셨으니까 형편도 나아졌죠?”
장안민이 부주임의 위엄을 부리며 연문빈을 바라봤고, 연문빈이 켕기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맞다.”
장안민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연문빈이 느끼는 바가 있는 듯 혀를 내둘렀다.
다른 의사들도 느끼는 바가 있는 듯 미소 지었다.
수휘는 말없이 다른 훈련의 곁으로 돌아왔다. 어르신들의 대화는 잘못 끼면 위험하다.
좌자전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컴퓨터를 마주하고 열심히 일하는 척했다.
잠시 후, 의국이 묘하게 조용해졌다.
훈련의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겨우 뭔가 느꼈을 때,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능 선생, 수술 끝났어?”
좌자전이 착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능 선생, 차트 내가 다 채웠어.”
연문빈도 ‘나 BMW 오너’라는 자부심을 거둬들였다.
“오늘 간담 쪽 회진 다 끝냈는데 별문제 없었어.”
장안민이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의국에 순간 즐거운 공기가 만연했다.
능연이 자기 사무실로 들어간 후에, 방 안 공기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갔다.
세 훈련의는 얻은 바가 있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가자. 구경시켜 줄게.”
“좌 선생님, 고생스러울 텐데 감사합니다.”
좌자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휘가 뒤를 따르며 그렇게 말했다.
“고생스러울 거야 뭐. 우리 응급의학과가 응급센터로 승급해서 사람도 많고 일도 많아져서, 나 아니면 너희 지도할 사람도 없어.”
수휘 등이 주변을 돌아봤더니, 과연 다른 의사들은 모두 매우 바빠 보였다. 세 사람의 지도 선생 연문빈도 그들을 팔아 치운 것처럼 굴었다.
좌자전은 뒷짐 진 채 세 훈련의를 거느리고 느긋하게 응급 구역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 고함 소리, 물건이 부딪히는 소음이 들렸다.
오가는 인파,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 중간에 하얀 가운을 입고 기둥처럼 우뚝 선 의사의 모습에 마음이 무던히도 놓였다.
세 훈련의는 키는 보통인데 거대한 느낌과 안전감을 주는 의사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응급의학과에 들어온 이상 다들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고, 결단을 내릴 수 있고, 믿음을 주며 사람 목숨도 구할 수 있는 의사가 되길 바라는 것 아닐까?
“주 선생, 바쁘구만.”
좌자전이 소리 내어 인사하자, 인파 속에 우뚝 선 하얀 가운이 서서히 돌아서더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좌 선생님.”
“흐흐, 님 또 서서 잠드셨음?”
좌자전은 부러운 듯 주 선생을 바라봤다. 주치의는 다르네.
“잠시 눈 감고 있었어요.”
“도와줄 사람 몇 데리고 왔어.”
좌자전은 ‘알잖아’하는 미소를 주 선생을 향해 지어 보였다.
“아.”
주 선생은 순간 정신을 차렸고 얼굴에 미소도 진실해졌다.
“어디서 났어요?”
“우리 팀 훈련의. 능 선생 오늘 수술 별로 없으니까, 빌려주려고 왔지.”
“훈련의 좋죠. 실습생보다 유용해요.”
주 선생이 하하 웃으며 냉큼 받아들였다.
“거기, 빨리 오라고. 아까 사람 모자란다며.”
“아, 네. 이따 쓰려고 했던 겁니다.”
평범하게 못생긴 레지던트가 다가가서 훈련의 셋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인수를 마쳤다.
“이따 왜?”
“경찰 두 명이 근무하다 다쳤답니다. 교외에서 오고 있대요. 아직 40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아, 35분.”
지나치듯 묻는 주 선생의 말에 평범하게 못생긴 레지던트가 힐끔 벽에 시계를 보니 고쳐 말했다.
“아, 그럼 나도 다른 수술하지 말고 기다려야겠다.”
주 선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훈련의 셋이 존경하는 눈빛을 보였다.
평범하게 못생긴 레지던트는 그저 한숨을 푹 내쉴 뿐, 사건의 본질을 폭로하지 않았다.
“다들 잘해보라고. 문제 있으면 상급 의사한테 가고.”
주 선생은 젊은 의사들의 존경을 흡족해하며 미소 지은 채 한마디 당부했다. 훈련의 셋이 입을 모아 대답했고, 수휘는 더욱 적극적으로 물었다.
“선생님. 경찰 둘이 어디를 다쳤습니까? 저희가 도움이 될까요?”
“둔기에 다쳤대. 구체적인 건 아직 몰라.”
말을 마친 레지던트가 갑자기 다시 물었다.
“니들 개 기르냐?”
“세 마리 기릅니다.”
훈련의 둘은 고개를 저었고 수휘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니가 남아라. 경찰견이랑 같이 있는 여경인데, 개가 되게 사납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