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끈기 있게 경찰견 주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의사에게는 크고 작은 수술이 있는 법이지만, 환자는 아무리 작은 수술이라도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능연은 수술 전 설명을 확실하게 하는 것에 익숙하기도 했다.
그런 걸 내켜 하지 않는 의사도 있는데 그중엔 설명을 제대로 못 해서 그러는 의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없어서였다.
오전에 30에서 40명 환자를 보는 의사는 환자 한 사람당 몇 분밖에 쓸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의사들이 설명한다고 해도 환자와 보호자가 알아들으라는 법도 없고.
대부분의 상급 의사가 항상 환자와 보호자의 칭찬을 받는 이유도 대부분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상급 의사일수록 직접 환자를 처리하지 않으니 대부분 증상과 환자는 하급 의사에게 맡기면 되고, 자기가 신경 쓰고 싶은 환자, 증상만 신경 쓰면 되니까 환자 한 사람당 시간이 당연히 길어진다.
능연도 슬슬 그런 지위에 올랐다.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부터 초짜 의사가 아닌 상급 의사처럼 진료를 봤었다.
원하는 만큼 환자를 받는 건 일반 부주임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료과 혹은 치료팀에서 의사를 내보내는 건 사냥개를 사냥 보내는 거나 마찬가진데, 본인이 사냥감 양을 줄인다는 걸 허락할 리가 없다.
주임이라고 해도 과 주임이 되지 않으면, 심지어 과 주임이 되어도 외래 진료수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줄일 수는 없었다.
치료팀 대빵이 자기 기분대로 환자를 줄일 수 없는 건 치료팀이나 진료과가 유기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다. 아래 의사들이 수술을 구하고 실력은 올리려면 환자 수가 받쳐줘야 하니까.
환자 수와 의사 보너스가 상당히 밀접한 관계라는 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수술을 적게 하는 의사는 제약 회사에서도 대접받지 못해서 대단한 속셈이 있지 않은 이상 마음대로 진료 수와 수술 수를 줄이지 못한다.
하지만 능연 같은 기술과 지위가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좋은 기술과 광범위한 기술이 있으면 환자가 많고, 지위가 있으면 자기가 환자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곁에 있던 훈련의가 끈기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더는 질문하지 않자 냉큼 리스트를 내밀었다.
“입원 신청서입니다. 이따 센터 입원 구역에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예에.”
진료 과정을 지켜보면서 능연의 설명을 듣는 동안 코기남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고 지금은 수술할 생각이 생겼다.
능연같이 대단한 의사가 수술해준다면, 이득이 아닌가 말이다.
입원 신청서를 받은 코기남은 고개를 숙여 몇 번 바라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병실에 들어온 코기남 등 일행의 마음도 차츰 안정됐다.
부대장은 꼭 납치된 사람처럼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다가 병실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같은 병실로 준 건 편하네. 서로 돌볼 수도 있고 말이야.”
3인실에 침대 두 개를 더해서 마침 다섯 사람이 한 방을 쓰게 됐다.
능연이 돌아온 지 한참 되어서, 병실이 찼을 뿐만 아니라 추가 침대도 거의 다 써가는 상황이라 지금은 기본적으로 다섯 명이 3인실을 썼다.
“부대장님, 이따 큰 병실 좀 구해 보세요. 1인실이면 더 좋고요.”
코기남이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에 부대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큰 병실 같은 소리 하네. 왜? 나랑 같은 병실 쓰는 거 싫으냐?”
“그럴 리가요. 그냥 팀에서도 매일 보는데, 여기까지 와서 매일 보는 거 대장님도 싫을까 봐 그렇죠.”
“음.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 그런데 병실이 빡빡한 거 같긴 하더군.”
부대장이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에 다른 대원들도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들 급하게 물건 정리를 하는 대신 각자 핸드폰을 꺼내 가족에게 연락했다.
원래 진료만 받고 돌아갈 줄 알았지, 갑자기 입원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때 초 대장이 느릿느릿 들어와서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입원했군. 수술은 정해졌나?”
“대장님.”
코기남을 비롯해 다들 인사했다.
“오후로 정해졌습니다. 대장님, 거참 우리랑 상의도 없이 이렇게 오리 몰 듯이 이게 뭡니까?”
부대장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내가 상의했으면? 왔겠냐? 그 다리로 며칠이나 더 뛸 수 있을 거 같아?”
초 대장이 손을 휘휘 저었다.
“내가 수술해 보니까 알겠더라고. 미룬다고 대수가 아니야. 어렵게 찾은 의사인데, 기회를 잡아야지. 안 그래?”
“먼저 다른 사람 하라고 하면 되죠. 얼마나 일이 많은데, 대장님도 안 계실 때 저까지 입원하면 얼마나 혼란스러우라고요.”
부대장이 힘껏 고개를 내젓는 모습에 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초 대장이 입을 열었다.
“작년에 일주일 넘게 휴가 다녀왔지? 그때 팀에 무슨 변화라도 있던가?”
부대장이 멍해졌다.
“하루종일 개랑 노는 거뿐이잖아. 병원에 있어도 큰 차이 없어. 너무 걱정 말게.”
초 대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이었다.
“이삼일 뒤엔 내가 돌아가잖나. 고작 개 열 몇 마리인데 이삼일 정도는 괜찮아.”
부대장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핥았고 다른 대원들이 냉큼 입을 열었다.
“대장님 회복되셔서 참 좋습니다.”
“대장님 건강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대장님, 우리 원앙이 먹을 거 좀 챙겨 주는 거 잊지 마십쇼.”
그때 다시 병실 문이 열렸다.
“자, 수술 전 준비합니다.”
철 트레이를 들고 들어온 간호가가 누군가 도망갈까 봐 방비하듯 문을 잠갔다.
“지금요? 이렇게 빨리? 오후에 한다면서요?”
병실에서 하하호호 농담하던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다.
“오후에 수술하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검사할 게 많거든요.”
“많, 다고요?”
“혈액, 간 기능, 전염병, 응혈 기능, 소변······.”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피를 뽑고는 플라스틱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이따 대변 보고 넣으세요. 너무 많이 할 필요는 없고요. 뚜껑 제대로 덮으시고.”
다섯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같은 방에 머무는 게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은요? 연락하셨나요? 사인하셔야 하는데.”
“연락했습니다.”
간호사 말에 대장이 대신 대답했다.
“흡연자는요? 수술 전엔 금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껄껄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고 간호사도 그냥 웃었다.
“그리고······.”“말씀하세요.”
“다들 수술 하신 적 있나요?”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저는 포경 수술을······.”
코기남이 부끄러운 듯 하는 말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럼 어떻게 침대에서 대변 보는지 설명해 드릴게요. 수술 후 회복 때문에 이렇게 하셔야 해요.”
간호사의 말에 남자들이 사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