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94화 (575/877)

삐용삐용. 경찰 사이렌같은 구급차 소리에 새벽 응급센터가 활발해졌다.

연문빈은 고양이똥 같이 큰 눈을 뜨고 유령처럼 처치실을 어슬렁거렸다.

“내가 다시 소몽설이랑 같이 근무하면 내 손가락을 삶아 버리겠어.”

일찍 일어나 출근한 좌자전은 의외도 아니라는 듯 입을 내밀었다.

“안 믿더니 왜. 미신이라며? 지금도 미신이라고 생각해?”

“아니죠!”

연문빈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소몽설이랑 같이 근무하면 밤에 바빠 죽는다는 말은 리얼이었어요. 이게 미신일 리 없어요.”

“맞지? 진작 증명된 사실이야. 소몽설이랑 근무 서면 밤새 죽어야 해. 한 시간 쉬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진 셈 치지. 예부터 내려온 규칙은 믿어야 해.”

좌자전이 혀를 끌끌 찼다.

예전 같으면 좌자전의 말에 태클을 한 시간이고 걸었겠지만, 악몽 같은 하룻밤을 겪은 후 연문빈은 좌자전을 믿기로 했다.

지난밤 당직 설 때를 회상한 연문빈은 아직도 부르르 떨면서 하고 싶은 말이 천지였지만 한숨만 나왔다.

“밤에 수술 4건 했다고요.”

좌자전이 동정하는 듯 연문빈을 바라봤다. 수술 4건이야 대수롭지 않지만, 응급실 사람들은 당직하는 레지던트가 밤에 수술만 할 리 없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보스급 대우고, 레지던트가 하기 싫어하는 일, 그리고 보스도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결국 레지던트가 해야 한다.

“끝났으면 됐지.”

좌자전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가서 아침 먹어. 전칠 씨가 보낸 주방장이랑 면 있어. 능 선생은 막 회진 마쳤어.”

연문빈의 표정에 드디어 화색이 돌았다.

“그럼 갈게요. 4번 베드는 심장내과로 보내야 해요. 신경 좀 써주세요.”

“아직도 안 왔어?”

“그쪽에 지난밤에 넷이나 죽어서 거기도 바빠 죽을라 그래요. 교대하면 보내겠대요.”

좌자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4라는 숫자 참, 불가사의하긴 해.”

“그러니까요.”

연문빈은 긴말 없이 물건을 들고 수술 구역에서 나갔다. 응급의학과에서 조용히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은 수술 구역에 있는 작은 식당밖에 없었다.

작은 식당은 테이블이 6개밖에 없고 빽빽하게 붙어있는 데다가 주로 보스들이 쓰라고 있는 곳이었다. 응급의학과가 가장 바쁠 때는 수술실 4개에 주임과 부주임을 7, 8명은 쑤셔 넣을 수 있고, 마취의와 간호사까지 치면 30명 넘게 일해서, 테이블 6개 채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물론, 대부분 시간엔 그렇게까지 몰리지 않았다. 응급센터로 승급되기 전엔 응급의학과 수술실 이용률은 30% 미만이었다.

지금도 수술실은 대부분 능 팀이 사용하지만, 앞으로 응급센터가 점점 알려지면 센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고 수술 구역도 점점 바빠질 것이다.

연문빈은 피곤한 얼굴로 걸으면서 수시로 벽을 잡기까지 했다.

지난밤은 레드불과 커피로 버텼다. 이제 카페인 기운이 빠지자 기가 다 빠져서 당장 주방으로 달려가 따듯한 걸 먹고 싶었다.

“뭐 드릴까요?”

작은 주방에 있는 누군가가 공손하게 물어봤다.

식당이 작으니 주방은 더욱 작았지만, 개방식 주방이고 평소에 의사, 간호사가 음식을 데우거나 패스트푸드나 족발을 먹는 곳이었다.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다는 생각에 연문빈이 저절로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봤다.

“운리 제약 주방장입니다. 음, 영업사원이기도 하고요.”

주방에 서 있는 남자가 미소지었다.

제약 회사 직원은 병원 진료실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수술 구역, 수술실에도 나타난다. 표면적인 이유는 설비 기구 조율, 소모품 조달이지만 진짜 이유는 그들이 염가 노동력이기 때문이었다.

의대 졸업한 실습생보다 제약 회사 직원이 부리기 훨씬 좋긴 했다.

다만 눈앞에 있는 제약 회사 직원은 연문빈이 처음 본 사람이었다.

그러나 연문빈의 적응력은 엄청나게 강해서, 몇 초 만에 바보 같은 미소를 방출했다.

“운리구나.”

“미펀(얇은 쌀국수)이랑 미씨엔(우동면 같은 굵은 쌀국수) 두 가지 있는데 뭐로 드릴까요?”

“미씨엔이요.”

“계란은요? 프라이? 아니면 삶은 계란?”

“프라이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안 먹거나 알레르기 있는 음식 있나요?”

“없어요.”

연문빈은 멍청하게 고개를 흔들다가 잠시 후 휙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전칠이 정중앙 테이블에서 조용히 식사하고 있었다.

더 유심히 보니, 맞은편에 능연이 마찬가지로 조용히 먹고 있었다.

“전칠 아가씨도 운리 제약 영업 사원이죠.”

주방장이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저런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 어디 있어.”

연문빈이 칫하고 혀를 찼다.

“다진 고기, 소갈비, 양갈비, 그리고 생선구이 있는데, 뭐로 드릴까요?”

연문빈의 말을 제대로 못 들은 주방장이 상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갈비랑 양갈비도 있어요? 너무 느끼하지 않나. 아침부터 그런 걸 먹는다고?”

연문빈이 얼굴을 찌푸렸다.

“소는 엄선한 브라질 제부 갈비고요, 브라질 본토에서 운화에 실어 온 다음 현장에서 잡았습니다. 양갈비는 프랑스식으로 요리해서 육질이 야들야들하고 비린 맛도 잘 처리됐답니다.”

“다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연문빈이 하는 말에 주방장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족발도 주세요. 이 식당에 족발이 없으면 안 되지.”

“족발은 미씨엔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눈빛이 조금 돌아온 연문빈이 자신의 작은 집착을 드러내자 주방장도 작게 고집했다.

“그런 말 말고요. 나 어젯밤에 사람 하나 조각냈다고요.”

“왜, 왜요?”

주방장이 부르르 떨며 묻는 말에 연문빈의 눈빛이 깊어졌다.

“바보 새끼 하나가, 아 죄송해요. 누가 자기 아버지 묘에 갔는데요, 다른 바보 새끼 하나랑 같이, 아 죄송해요. 암튼, 아버지가 40년 전에 지하동굴에 감춘 엽총을 꺼내서 같이 놀다가 가슴이 터졌어요.”

“다른 바보 새끼, 아······.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은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어안이 벙벙해진 주방장이 한참 후에 대답했다.

“아, 그 사람은 눈 하나만 터져서 안과로 보냈죠.”

다시 고개 든 연문빈이 잊지 말고 족발을 덧붙이자 주방장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식판을 든 연문빈은 바보같이 다가가서 인사하는 대신 조용히 구석에 자리 잡았다.

연문빈은 미씨엔 한 그릇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더니, 곽종군이 마침 들어왔다.

연문빈은 망설이지도 않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연기라도 하는 듯 빈 그릇을 박박 긁었다.

“능연!”

목소리를 들어보니 곽종군의 기분은 괜찮은 것 같았다.

“곽 주임님.”

“곽 주임님~.”

능연이 인사하자 전칠도 달콤한 목소리로 따라 인사했다.

“어제 밤새우셨나요? 국 좀 드릴까요?”

“아닙니다. 잠깐 할 말 하고 갈 겁니다.”

곽종군은 능연 앞에 털썩 주저앉고는 말을 이었다.

“수련의 하나 소개하려고.”

수련의는 하급 병원에서 상급 병원으로 파견하는 의사다. 이런 의사는 상당히 노련해서 진료과에서 비교적 반기는 염가 노동력이었다.

능연은 싫고 좋고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음. 추현 현 병원 일반 외과 주치의일세. 부주임 승진 전에 배우려고 오는 거 같아. 일 잘 할 걸세. 두 달 정도 자네가 쓰게.”

곽종군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복강경을 배우고 싶다나 봐, 알아서 해.”

이야기를 들은 연문빈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능 팀에 갑자기 노련한 의사가 나타나서, 능연에게 배운다면 큰 위협이 될 테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