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596화 (577/877)

“MRI 두 세트 트세요.”

능연은 손을 치켜든 채 수술실에 서서 지시를 내렸다.

멈칫하던 훈련의 구소렴은 역시 아무 말 없이 임기를 힐끔 쳐다보고는 컴퓨터를 켜러 갔다.

들어서던 임기는 훈련의 하나가 바라보자 뜨끔해서 설명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더니 낯선 얼굴뿐이었다.

임기는 머뭇거리면서 일단 머쓱하게 웃었다.

“일부러 나 때문에 컴퓨터 틀어 줄 건 없는데.”

“어시도 상황을 이해해야죠.”

능연이 임기의 체면치레를 단박에 잘랐고 구소렴은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임기는 더욱 어색하게 웃었다. 나서서 도울까 했지만 금방 손을 씻은 바람에 나설 수도 없이 운화병원 초짜 의사가 점점 얼굴을 구기면서 움직이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수술실이 꽤 넓군요.”

임기가 분위기를 띄워 보려고 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곽 주임님이 큰 걸 좋아합니다.”

“어쩐지.”

결국 마취의 소가복이 한마디 했고, 임가가 고마워하며 대답했다.

“가슴 말입니다.”

“나도 꽤 큰데.”

소가복이 무표정한 얼굴로 하는 농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현 병원 수술실은 그런 유머를 할 때 한 가족처럼 얼굴에 미소 띤 채 분위기가 제일 좋았다.

그리고 보통 주임이 화를 내는 타이밍에나 그런 유머가 멈췄다.

임기는 자기 가슴으로 그쪽 유머를 받더라도 대화가 이어지길 바랐다.

오히려 소가복이 멍해졌다. 능연 밑에 있은 지 오래된 그는 말수 적은 구성원에 익숙해져서 누군가 말을 받아쳐 주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너무 커도 안 되나?”

임기가 다시 껄껄 웃으면서 말을 잇자 소가복은 여전히 얼떨떨하게 임기를 바라봤다. 분위기가 달라졌어!

“필름 준비됐습니다.”

구소렴이 곧 목소리를 높였다. 능연이 수술실에 들어오면 MRI를 본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었고, 특히 간 절제 같은 큰 수술을 안 볼 리가 없었다.

능연 수하 초짜 의사들은 환자를 설득해서 MRI를 찍는 것이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비싼 MRI 가격 때문에 굳이 MRI까지 찍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환자를 설득해서 이 비싼 검사를 받게 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됐다.

게다가 판독할 줄 모르는 의사가 많아서, 저항하는 환자가 더 많았다.

사실, 외과의 중에 MRI 판독 못 하는 의사가 더 많을 정도였다.

주치의 임기처럼.

“제가 마우스 조작할 게요. 앞뒤로 움직이는 동작이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결정합니다. 지금 속도 어떠신가요? 지금 이게 목록입니다.”

구소렴이 진지하게 설명했다.

어느 병원에서 왔든지, MRI 판독할 줄 아는 의사는 대단한 의사였다.

컴퓨터 앞으로 밀려온 주치의 임기는 구소렴의 동작을 보다가 컴퓨터를 봤다.

MRI 사진 수십 장이 휙휙 넘어갔다. 모두 원본으로.

임기의 대뇌가 서서히 굳어갔고 그의 사고 회로에 변화가 생겼다.

“이게 뭔디?”

“뭔디?”

“내가 문디가 된 건가.”

필름 판독을 끝낸 능연이 힐끔 임기를 봤다.

“다 보셨나요? 아니면 수술부터 할까요?”

“나······.”

임기는 파르르 입술을 떨면서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심지어 조금 서러웠다.

내가 MRI 원본 판독할 줄 알면 뭐하러 외과에 연수 왔겠니? 그냥 영상의학과로 갔겠지. 영상의학과는 작업 환경도 깔끔하고, 의사-환자 충돌도 적고, 돈도 괜찮게 벌고, 똥 꺼낼 필요도 없는데······.

“할 말 있으면 해요.”

장안민이 살짝 유세를 부렸다. 능연은 수술하는 동안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능연 밑에 있는 의사들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상하 관계를 형성하는지가 바로 모두의 단합력을 테스트하는 관건 포인트였다.

임기의 입가가 다시 파르르 떨렸다.

사과의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꿀꺽 삼켰다.

“나······.”

다시 입술을 잠시 떨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MRI 리포트를 봤지. 나는 능 선생이 리포트 읽을 줄 아냐고 묻는 줄 알고······.”

장안민은 이유도 모른 채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리포트 볼 줄 아느냐고 누가 물어보겠습니까”

“그러게요.”

임기는 고개를 떨궈놓고 바로 불만이 치밀어 올랐다.

MRI 리포트 읽는 것도 시간 들여서 배워야 하거든!

사람이면 다 읽을 줄 안다면, 환자가 뭐하러 의사를 찾아와 줄을 서겠냐?

우리 현 병원에는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얼마 없거든!

거기까지 생각한 임기는 저도 모르게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은 병원의 영상 능력자입니다.”

장안민은 조금 자랑스러운 듯 말을 꺼냈다.

“MRI 원본을 판독하는 의사가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네요.”

임기가 냉큼 아부를 한마디 했는데 이번엔 아무도 그의 말을 받아 주지 않았다.

“웃긴 얘기해 드릴게요.”

임기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하는 말에 능연은 눈썹을 치켜들고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장안민은 까다롭게 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보세요.”

“네.”

임기는 부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거북이 한 마리가 ***를 입고······.”

능연은 묵묵히 수술을 진행했다.

간 절제 수술을 많이 했지만, 다른 수술과 달리 간과 관련 조직은 변화가 커서 재미있었다.

능연은 매우 빨리 빠져들었다.

장안민도 임기의 웃긴 얘기에 금방 빠져들었다.

그는 능연과 수술을 자주 했다. 다른 조수 없이 마취의가 반쯤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고독하게 단순 조수 노릇을 오래 해오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보통 능연을 보고 있어서 말이 없고, 그럴 때마다 수술실 분위기가 괴상해졌다. 특히 전동메스가 뜨겁게 달궈져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할 때는.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들리자 보다 나은 작업 환경이 된 듯한 기분에 장안민도 안정감을 되찾았다.

하나, 그리고 또 하나.

하나 끝나면 또 다른 이야기.

임기는 열심히 웃긴 이야기를 하면서 수술실에서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거북이 한 마리가 ***를 입고······.”

“했어요.”

소가복이 고개를 들고 으스스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 미안, 미안해요. 다른 거. 버스 타는 걸 좋아하는 거북이가 있었는데······.”

“했어요.”

“아, 그럼, 등딱지가 있어서 행복한 거북이가 있었는데요······.”

“했어요.”

이번엔 장안민이었다.

“거북이 말고 다른 건 없습니까?”

임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핥았다.

“수술이 연달아 있을 줄은 몰랐죠. 오늘 수술 끝나고 가서 이야기 좀 준비하겠습니다.”

서로 마주 보던 장안민과 소가복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간호사 두 명도.

“이거 재미있네요.”

수술실에 유쾌한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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