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공 복강경이 준 자극 덕분에 임기는 점심까지 버티고도 아직 붕괴하지 않았고, 다시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는 심지어 조금 흥분도 됐다.
그건 몹시 드문 일이었다. 막 운화병원으로 온 이틀은 그래도 조금 흥분됐었는데, 그다음부터는 일에 깔려 죽을 것 같았다.
임기는 일부러 새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지금 입고 있는 수술복은 오전 내내 수술하느라 벌써 끈적끈적해져 있었다.
이번 수술은 참관실이 없는 2번 수술실이었고 수술 없는 의사들이 바로 뚫고 들어왔다. 수술대 위쪽 고화질 렌즈에도 붉은 불이 들어왔다.
임기는 남몰래 혀를 찼다. 운화에 온 지 며칠이나 됐는데 운화 시는 1분도 구경하지 못하고 계속 수술실에 있었다. 대신 운화병원 돌아가는 거에는 제법 익숙해져서 지금 같은 일은 운화병원 안에서도 소수 유명한 의사들에게나 있는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
매우 조금 일반적인 진료과 과 주임이 시범 수술을 하지 않은 이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
인간이란, 평범한 것에 대한 인내심은 매우 낮은 법이다.
병원 같은 상아탑에서는 더욱 그렇고.
명의가 손을 한 번 휘두르면 천만 의사들이 따르고, 그저 그런 의사는 외로울 뿐이다.
그리고 수술실 촬영도 양날의 검이라 모든 의사가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특히 나이가 많고 현대식 교육을 받지 못한 의사는 더욱 본능적으로 영상 촬영을 두려워했다.
현장에서 수술하는 것과 영상으로 찍혀서 나중에 사람들이 유심히 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비정규 출신 의사들은 당연히 낯선 의사들이 훔쳐보는 것에 반감을 품는다.
수술대와 더 가까운 자리를 찾은 임기는 곁에 있는 의사를 향해 인사했다.
“단일공 복강경이죠?”
“아? 오늘 단일공인가요?”
곁에 있던 레지던트가 모르는 것 같자 임기는 멍해졌다.
“그럼 뭘 보러 온 겁니까?”
“만성 충수염 절제요?”
레지던트는 조금 말꼬리를 흐렸는데, 아마도 임기의 나이 때문일 것이다. 레지던트 기준으로 늙고 거친 하얀 가운 의사는 모두 상급 의사였다.
“단일공 복강경은 관심 없고요?”
마찬가지로 상대의 나이를 가늠하던 임기가 특별히 물었다.
“왜 관심 있어야 하는데요?”
젊은 레지던트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묻는 말에 임기는 입술을 핥으면서 묘하게 가슴이 쓰라렸다. 운화병원 젊은 의사도 여러 번 본 기술을 자신은 눈에 불을 켜고 좇아야 하는 신기술이라니
하지만 단일공 복강경은 정말로 임기가 눈에 불을 켜고 좇는 신기술이었다.
복강경이 2급 병원에서 빨리 추진되는 이유는 바로 복강경을 하지 않는 일반 외과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환자들이 아무리 의학을 몰라도 개복과 구멍 뚫는 차이는 알았다.
임기는 본인이 단일공 복강경을 배워서 추현 일반 외과에서 그 항목을 전개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면 자신의 환자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그것으로 부주임, 주임으로 승진할지도 모른다.
임기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돌리고는 수술을 열심히 보기로 했다.
치익. 에어타이트도어가 열리고 능연이 손을 세우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그는 매번 몰려드는 사람들을 일일이 상대하지 않는 것처럼 수술실에 몰려 있는 초짜 의사들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오늘 수술은 마연린 선생이 집도합니다.”
능연은 사람이 많다고 해서 계획을 바꾸지 않고 한마디 하고는 자동으로 조수 위치로 가서 섰다.
이미 정식으로 응급센터로 전입한 마연린은 능연 치료팀의 새 레지던트가 되었다. 훈련의 신분에서 벗어난 다음 더 많은 수술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충수염 혹은 치질 수술도 마연린의 수술 범위였다.
단일공 복강경이 아니라면 능연이 수술실에 나타날 필요도 없었다.
마연린이 집도의 자리에 서자 김샜다는 듯 자리를 뜨는 의사도 있었는데 다른 초짜 의사는 자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임기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조수로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단일공 복강경을 하고 싶다고 해도 운화병원에 연수 온 첫 주에 수술 요구를 꺼내는 게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차피 현장에서 본 단일공 복강경도 얼마 없으니 일단 익혀나 두자 싶었다
“단일공 복강경 충수염 절제술, 이제 시작합니다.”
마연린은 착실하게 타이틀을 한 번 읽고, 마취 상태를 확인한 후 배꼽 언저리에 절개구를 내고 기복을 삽입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10.”
기복 압력이 10 mmhg라는 뜻이었다.
그때 수술실 분위기도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마른 사람 수술하는 건 역시 편하긴 해.”
“충수염 수술할 때 편한 거지.”
“단일공은 그렇게 쉽지도 않아. 그래도 전에 하던 복강경이 더 손에 익지.”
“에이, 그래도 요즘은 안 그래. 구멍을 하나만 뚫고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뭐하러 구멍 더 뚫으려고 하겠어. 여자들은 배꼽티 같은 것도 못 입잖아.”
“아아, 아가씨들이 허리 내놓은 옷 입으면 예쁘긴 하지.”
“예뻐? 눈앞에 있으면 볼 수는 있고?”
마연린은 다른 의사들의 수다를 들으면서 전혀 흔들림 없이 손을 놀렸다.
단일공 복강경과 전통 복강경의 차이는 단일공 복강경은 막대기 세 개를 모두 배꼽으로 찔러 넣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움직여야 하니 당연히 전통적인 복강경보다 난도가 높았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일공 복강경에는 조작 기교가 있다.
마연린은 아직 그런 기술에 익숙하지 않아서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곁에 있는 능연도 한눈팔지 않고 집중했다.
그는 그랜드마스터급 충수염 절제술 소유자고, 직접 수술한다면 15분 정도면 끝낼 수 있다. 그러나 팀 플레이는 필요했고, 충수염 환자가 이토록 많은 지금, 능연이 하루 종일 수술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분리 포셉”
“전기 응고 메스”
“블리딩 체크.”
마연린이 마음을 진정시키니 수술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참 지켜보던 능연도 마음을 놓고 훈련의 구소렴을 불러 렌즈를 넘기고 옆에서 지켜봤다.
단일공 복강경은 이론상 문제가 생기면 개복으로 전환해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수술 방식이든 마연린이 할 수는 있다. 능연이 오늘 자리한 것은 지도의 의미도 있었다.
“능 선생, 블리딩 없어. 드레인 한다?”
마지막 검사를 끝낸 마연린은 능연이 아무런 말이 없자 다시 한번 검사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 계속하세요. 전기 응고 메스로 절단할 때 너무 깊었어요. 다음엔 잊지 말고 주파수 조절하세요.”
말을 마친 능연은 수술실에서 나갔다.
마연린은 멈칫하다가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되짚었다. 능연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밤에 집에 가서 조금 뽐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온통 수술 디테일 생각뿐이었다.
임기는 부러움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수술은 부럽지 않았다. 하급 병원은 환자도 적지만 의사는 더 적어서 환자 쟁탈이 격렬하지 않다. 그러니 수술할 줄 아는 의사는 어떻게든 수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 수술 기회는 잘 없고 어려운 수술일수록 더욱 그렇다.
능연이 지금 아래 구나 현급 병원에 출장 수술 가게 되면, 현지 간, 담 전공 의사들은 며칠 전부터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 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있지만, 반은 기술을 조금 배워놓으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운화병원 같은 병원에서는 마연린 같은 초짜 레지던트도 능연 급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니, 임기는 실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마연린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마무리하는 것을 볼 흥미도 줄어들었다.
피하 봉합 같은 건 이미 선임 주치의인 임기는 당연히 더 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살며시 뒤로 물러나서 수술실에서 나가는 레지던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후우······.”
임기는 깊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고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갔다.
휴식 시간이었던 셈이니 앞으로 몇 시간은 수술을 해야 했다.
“조심. 천천히 걸으세요.”
적당한 걸음으로 걷던 능연은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걷는 임기를 멀리서 보고 주의를 주었다.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많은 사람, 특히 여자들은 자주 고개를 숙인 채 걸음을 빨리 걷다가 능연 품에 부딪히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 계단 코너, 복도 혹은 교실로 들어가는 문에서 그런 일을 자주 겪었다.
그렇게 부딪혔을 때 상대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상해달라고 하거나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는 일이 자주 있는 게 가장 골치 아팠다.
능연은 그저 단순히 부딪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임기가 휙 걸음을 멈췄다.
목소리가 너무 듣기 좋고 알아듣기도 좋아서 바로 능연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렸다.
임기는 능연이 가요계에 들어가도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안, 능 선생. 조금 전에 수술 봤어. 이제 수술하러 수술실 가려고.”
임기는 조금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고는 미안한 듯 웃어 보였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곽 주임이 보낸 수련의인 걸 알고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연수 방향, 결정했나요?”
모든 치료팀 팀장이 수련의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건 아니다. 수련의는 대부분 훈련의 혹은 실습생처럼 방목 상태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자원이 빡빡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능 팀은 그런 상태가 아니었다.
그의 팀에서 주력으로 하는 수술 방식은 많지 않지만, 범위가 넓으면서도 깊이는 운화병원에서 손꼽힐 정도였다. 이런 상황이니 팀의 의사가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많은 양의 환자와 자원이 있었다. 능연 역시 수련의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려고 했다.
임기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바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연수 기회를 얻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능연의 수하에 드는 것은 더욱.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의 선택은 이번 연수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임기는 간, 담 방면 수술 방식을 버리기는 아까워서 머리를 신속하게 굴렸다.
간 절제를 배울 수만 있다면, 앞으로 추현에 환자가 없는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임기는 자기가 창서성 안에서 손쉽게 새로 들어갈 병원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연수 기간 두 달로는 간 절제를 배울 수 없다.
임기는 현명하게 포기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능 선생. 나 결정했어. 단일공 복강경 배우고 싶어.”
“수술 방식은요?”
“충수 절제.”
능연이 미간을 좁히며 묻는 말에 임기가 재빨리 대답했다.
충수염은 일반 외과의 기본이고 개복에서 복강경, 그리고 다시 단일공 복강경까지 기술을 배울 때는 모두 충수염 절제로 입문한다. 그리고 현급 병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이기도 했다. 두 달에 배울 수만 있다면, 이번 연수가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충수를 고르세요? 할 줄 아시잖아요.”
임기의 처지를 모르는 능연이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단일공 복강경은 할 줄 몰라서. 단일공 복강경 사용 방법 배우고 싶어.”
“단일공 효과는 지금으로서는 전통 복강경에 못 미칩니다.”
“그래도 환자는 다들 단일공을 원하잖아. 수술 절개구를 배꼽에 숨길 수 있으니 흉도 없고. 요즘 젊은 사람한테는 큰 유혹이야. 의학기술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
임기는 말을 조금 흐리면서 능연의 표정을 살핀 다음 다급하게 덧붙였다.
“더 높은 기술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연수 기간이 너무 짧아. 두 달에 단일공 복강경 배우는 건 충분하겠지?”
“됩니다. 그럼 일단 단일공 복강경으로 하죠.”
능연은 표정 변화 없이 임기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케이.”
“가서 일 보세요.”
능연은 손을 흔들면서 임기를 보내고는 혼자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반 외과에서 충수 절제를 거론하면 보통 담낭 절제술을 연상한다. 능연의 충수 절제술은 그랜드마스터급인데 담낭 절제술은 스스로 연습해서 올라온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급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중급 보물 상자도 두 개 받았다.
그러나 담낭 절제술이 전문가급으로 오른 후, 마스터급으로 오를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한 번은 많은 자료도 읽고 담낭 절제술의 깊이를 파고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범위도 사실 매우 중요한 것 같았다.
충수 절제술로 수술할 때 개복으로 해도 되고 단일공 복강경으로 해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능연은 개복 담낭 절제술을 한 적 있지만, 단일공 복강경으로 한 적이 드물었다.
“담낭염 환자 좀 찾아 주세요. 단일공 복강경으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요.”
능연은 핸드폰을 꺼내 좌자전에게 전화했다.
일정 기간마다 담낭염 환자를 구해달라고 해서 좌자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응급센터에서 홍시가 떨어지길 기다리듯 담낭염 환자를 기다리는 동시에 운화 시에서 알고 지내는 병원에 전화를 걸고 간담췌외과로 가서 만성 담낭염 환자를 찾으면 쉽게 모이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