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환자 신체 진찰은 능연에게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다년간 임상 경험이 있는 선대 원장 역시 능연의 자신감을 느꼈고 능연의 신체 진찰이 정확하다는 걸 확신했다.
한편으로 능연의 힘 있는 손가락, 깔끔한 동작, 부드러운 피부에서도 그의 자신감을 느꼈고 그의 손길이 불편하지도 않았다.
선대 원장은 눈을 감은 채 능연의 명령을 듣고 대답하면서 표정이 점점 더 온화해졌다.
능연이 신체 진찰을 끝냈을 때, 선대 원장은 이미 단잠에 빠졌다.
능연은 멈칫했다가 옆에 있는 모니터 기기로 문제없음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에서 물러났다.
다른 의사들 역시 우르르 몰려나왔다. 능연에게 자기 환자 신체 진찰을 받게 하려는 의사도 있었지만 곁에서 호시탐탐 지키는 좌자전의 날카로운 눈빛에 되돌아갔다.
“능 선생. 어떤가?”
“검사 리포트와 필름으로 보면 수술 지수엔 부합합니다. 수술하실 거면 내일 아침으로 하죠. 오늘부터 수술 전 준비하고요.”
무 원장이 긴장을 누르며 넌지시 묻자 능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일? 알았네.”
무 원장은 무의식적으로 망설였다. 수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걸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이런 모든 준비가 충분한 상황에서는.
잠시 생각하던 무 원장이 한마디 더 했다.
“우선 아버지와 상의하겠네.”
혹시 허락받지 못하면 능연이 다시 나서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능연은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우선 회진하러 가겠습니다.”
일반 외과 큰 주임과 일반 외과 의사 무리는 눈을 깜빡이며 능연이 사람들을 데리고 일반 외과 병실로 우르르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일반 외과 큰 주임이 경계하듯 사방을 둘러봤다.
그때까지 큰 주임 옆에 서서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웃으면서 불구경하던 단천 주임 의사가 손꼽아 계산해봤더니······ 능연이 들어간 병실엔 의외가 없는 한 안에 그의 치료팀 환자가 있을 것이었다.
이건 뭐······.
순간 단천의 척추를 타고 땀이 주르륵 흘렀다.
큰 주임의 목덜미의 솜털이 하나하나 곤두선 것을 본 그의 솜털 역시 하나하나 곤두섰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단천은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큰 주임이 오래 기다릴 리가 없다는 걸 잘 아는 상황에서 단천은 쇼핑 갔다가 쉬야하고 싶은 아가처럼 긴장했다.
체면 불고하고 여기서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한 때를 기다릴 것인가.
단천의 판단 기제가 인풋은 많고 아웃풋은 적은 오래된 프린트 미친 듯이 돌아갔다.
“능연이 최근에 제가 단일공 복강경할 때 수술을 좀 참관했습니다. 어시를 하면서요.”
단천은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 현장에서 해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능연이 단천에게 단일공 복강경을 배우는 건 별 비밀이 아니었고 병원에서도 의사들끼리 서로 배우기를 격려했다. 사실 단천은 심지어 일부러 소문까지 냈다.
어쨌든 단천 같은 주임 의사에게 체면이 사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단천은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매우 뜨끔했다.
뜨금해서 눈물이 날 정도로.
주변에 있던 의사들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일반 외과 주임은 깊은 눈으로 단천을 바라봤다.
단천 님은 최대한 미소를 쥐어짰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치료팀 팀장이었다. 하지만 단천 같은 치료팀 팀장은 감히 큰 주임에게 대들 수가 없었다.
운화병원 일반 외과는 손에 꼽히는 대형 진료과였고, 주임이 은퇴하기 전에 밑에 사람이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했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은 성격이구만.”
일반 외과 큰 주임이 껄껄 웃더니 단천을 바라봤다.
“단 주임, 가보게. 어쨌든 자네 환자니까 더 잘 알 게 아닌가.”
“아, 네!”
대번에 뜻을 알아들은 단천은 냉큼 제자 한 마리를 찍어서 능연이 들어간 병실로 향했다.
곁에서 보던 무 원장은 다른 사람이 설명하기 전에 사람들의 표정과 태도만 보고 현재 능연의 지위와 상태에 상당한 판단이 섰다.
다들 도를 닦은 늙은 요괴라 이렇게 명확한 일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의사들은 팝콘 튀기는 기분을 품고 아쉬워하며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