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09화 (590/877)

마지막 손님을 보낸 무 원장이 다시 병상 곁으로 가려 하자 꾸벅꾸벅 졸던 선대 원장이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티비 리모콘을 돌리는 걸 발견했다.

“아버지.”

아버지를 부른 무 원장은 침대 옆에 다시 앉아서 입맛을 다셨다.

“능연이 내 수술한다고 하나?”

무 원장보다 20년 더 오래 도를 닦은 선대 원장은 아들이 세세히 말하기도 전에 중점을 물었다.

“한답니다. 지금 수술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음, 수술 전 협진에 자네가 참여해도 된다면 자네도 들어가게. 참모 노릇을 하라는 게 아니야. 말도 하지 말고. 본인 행정 지위로 간섭하지 말고. 내 병에 간섭해선 안 돼. 알겠나?”

“네······.”

엄격한 선대 원장에게 혼난 무 원장은 어리둥절했다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수술 동의한 겁니다.”

“능연이 집도한다면, 해야지.”

선대 원장이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됐습니다.”

무 원장은 순간 흥분했다.

“아버지 아직 조기라 근치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흥. 아는 것도 많구나. 그렇게 아는 게 많은데 왜 계속 임상 의사 하지 않고?”

선대 원장은 줄곧 아들이 임상 의사가 되길 바라왔다. 행정으로 전환한 건 어린 무 원장의 결정이었다.

무 원장은 행정 쪽이 더 잘 맞고 가족 자원도 더 잘 활용할 수 있음을 증명했지만, 선대 원장 개인 기대에 부합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무 원장은 목을 치켜들고 아버지와 말다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은근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능연이 아버지 병을 잘 고치면 학교로 불러서 강의나 강연을 하게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능연 같은 케이스는 정말 드문 경우니까요.”

그러자 선대 원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병을 고치고 말고, 수술이 성공하고 말고는 내 팔자지. 자네 생각은 괜찮군. 운화병원은 원래 운화대학 부속 병원이고 겸직 교수, 부교수도 많으니까 말일세. 능연은 우리 운화대학 졸업생이니 자네가 불러올 수 있다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지.”

쿵.

침실에 들어가 단숨에 침대에 드러누운 제윤조는 온몸의 무장이 해제된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내가 다시 학생 기자를 하면 3번 썸남이랑 연애하고 8번 썸남이랑 결혼하고 12번 썸남이랑 재혼하겠어!”

제윤조는 무거운 목을 꿈쩍도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며 독한 맹세를 했다.

그러자 룸메이트가 깔깔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윤조, 꿈깨. 넌 남친도 없고 썸남도 없어.”

“아······. 나 썸남도 없어? 아, 괴롭다. 나 숨을 쉴 수 없어.”

농담을 하면서 데구르 구르면서 신발을 벗은 제윤조는 룸메이트들이 외출하려는지 잘 차려입고 있는 걸 발견했다.

“너희들 어디 가려고?”

다시 기자의 감이 발동한 제윤조가 물었다.

“줄 서러.”

“도서관?”

절친의 대답에 제윤조가 놀란 듯 물었고, 절친은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전달했음.”

제윤조의 핸드폰이 우웅하고 울렸고, 열어보니 교내 공문이었다.

특종! 능! 귀환!

제윤조는 놀라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능 선배가 돌아온다고? 왜?”

“내일 아침 9시. 강연하러 온대.”

“그래서 너희 지금 강연 줄 서러 가는 거라고? 지금부터 내일 아침 9시까지 서려고?”

제윤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자들을 바라봤다.

“일단 의자 놓고 보는 거지. 그리고 돌아가면서 줄 서고. 외국 사람들이 아이폰 살 때 그러는 것처럼 말이야.”

“레알?”

“능 선배가 레알이라면 나도 레알.”

“그럴 필요 있냐?”

“콘서트 표는 1박 2일도 줄 서는데, 능 선배 보려고 하루 서는 게, 뭐.”

거기까지 말한 절친이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나 피곤한데.”

“얘들아, 가자!”

제윤조가 잠시 망설이자 절친은 두말없이 사람을 이끌고 나갔다.

손가락도 꿈쩍하기 싫은 제윤조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얼마 후 쿨쿨 잠이 들었다.

다시 깼을 때, 방에 쿵쿵대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

눈을 감은 채 소리를 들은 제윤조는 깜짝 놀란 다음 바로 이런저런 뉴스를 떠올렸다.

“윤조야, 깼어?”

그러나 귓가에 들린 건 절친의 목소리였고, 제윤조가 벌떡 일어나 보니 절친이 꾀죄죄한 모습으로 침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들어온 거야?”

먼저 물은 다음 고개를 숙여 시계를 본 제윤조가 겨우 네 시냐고 중얼거렸다.

“응. 넌 안 가?”

“가······ 가서 선배 강연 듣자고?”

“응. 네 의자도 놓아두었어. 너도 갈 거면 가서 몇 시간 지키고, 안 갈 거면 말아.”

말을 마친 절친은 침대에 쓰러져서 벼락 치게 코 고는 소리를 냈다.

코 고는 미녀 때문에 잘 수도 없어진 제윤조는 아예 결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밖으로 나갔다.

밤이 으스스했고, 먼 하늘에 노랗고 붉고, 흰빛이 번쩍였다.

운화대는 창서성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으로, 의대 건물만 천 묘(畝: 1묘는 백 평) 가까운 면적을 차지했다.

제윤조와 룸메이트들은 매점에서 사 온 플래시를 들고 재빨리 강당 쪽으로 달려갔다.

출입구 쪽으로 가보니 전방 높은 곳에 위부터 아래까지 이어진 밝은 두 줄이 보였다. 짧은 줄은 도서관으로 이어졌고, 긴 줄은 강당 쪽으로 이어졌다.

“요즘도 도서관 줄 서?”

“못생긴 주제에 능 선배를 질투하는 남자가 있는 법이니까.”

줄을 슬쩍 본 제윤조가 놀라서 묻는 말에 룸메이트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응, 그러니까.”

피식 웃는 제윤조의 말에 룸메이트는 잘못된 것이 없다는 듯 대답했고, 제윤조가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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