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버티다 보니 몇 시간이 드디어 지나갔다.
하늘이 밝아오자 소형 검은 제타가 달려왔고, 긴긴 줄을 선 사람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는 다들 핸드폰을 꺼내 의자 주인에게 보고를 했다.
강당 문이 열리자 학생들은 순간 홍수처럼 밀려 들어갔다.
문을 지키던 작업 요원은 원래 인원수를 제한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해서 온 강당이 순간 퇴근 시간 지하철처럼 붐볐다.
9시, 능연 일행은 정시에 연단에 나타났다.
무 원장이 가장 먼저 연단에 올라 입을 열었다.
“여러분······.”
“쉿!!”
학생들이 인원수를 믿고 아낌없이 본인들의 감정을 표현하자 무 원장은 미소를 유지한 채 바로 화제를 돌렸다.
“이어서 우리의 동문을 모셔 보겠습니다. 졸업한 지 3년 만에 국내 유명 간 절제 전문가가 된 능연 선생입니다.”
무 원장은 말하면서 바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버지 선임 원장의 수술이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롭게 끝나서 그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소가 깨끗하게 제거된 건 둘째치고 간 손실도 크지 않았다. 수술 후 이틀 만에 ICU에서 나와서 닷새째에 침대에서 내려온 것은 매우 좋은 예후라고 할 수 있었다.
아직 퇴원 지표까지는 거리가 있다고는 하지만, 80세 노인 기준으로 무슨 수술이든 일주일 만에 이런 수준이 된 건 모든 이가 다행이라고 여기기 충분했다.
능연이 슈트를 가다듬고는 연단 위로 올라갔다.
혼란된 틈에 익룡를 소환하던 학생들은 목구멍에 뭔가 걸리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능연이 입은 슈트는 도평이 신중하게 고른 천으로 특별 제작한 것으로, 특징이라면 아마도 당당함과 멋짐이랄까?
사회에 막 발을 디디고 직장에 호기심과 동경이 가득한 대학생에겐 이런 슈트, 이런 능연, 그리고 운화대학 강당은 그야말로 꿈꿔온 세상이었다.
꿀꺽.
침을 삼키는 거야 별거 아니지만, 한꺼번에 소리가 합쳐지니 소리가 제법 컸다.
학학 웃음을 터트린 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저 홀린 듯이 연단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핸드폰을 꺼내 길게 쭈욱 뻗은 능연의 실루엣을 각인하기 시작했다.
연단에 선 능연은 바로 말을 꺼내지 않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렇게 의학기술로 모교에 돌아와 강연할 수 있다는 건 그로서도 가슴 속 깊이 감춰둔 꿈 중 하나였다.
물론 연단 자체는 많이 올랐었다. 공부하는 재능이 출중하진 않아서 늘 3등, 혹은 5등까지 했지만, 대학은 승자가 독식하는 야만스러운 곳이 아니라서 학년 3등, 4등도 연단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공부 외에 얼굴과 몸매 혹은 투표로 연단에 오를 수 있는 항목은 더욱 기회가 많았다. 다만 본인이 많이 참여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쩔 수 없이 참여한 횟수만 더해도 적은 경험이 아니었다.
능연이 학교 다니던 때와 비교해서 강당은 큰 변화가 없었다.
벽과 의자도 새로울 것이 없었고, 바닥과 연단도 다를 것이 없었다. 맨 앞줄에 앉은 여학생들이 모두 하얗고 긴 다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조차 예전과 똑같았다.
“안녕하십니까.”
무 원장보다 키가 큰 능연은 마이크를 꺼내 들고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강연은 앞으로 하게 될 강의 준비 위주라서 의학 전문 지식 위주의 내용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선배가 강의를 한다고?”
“돌았? 이렇게 행복한 일이 있다고?”
“수강 신청 해야지!”
꽥하는 소리에 모든 학생이 핸드폰을 꺼내 들자 능연은 담담하게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노련하게 대처했다.
“수강 신청 시스템에 아직 제 강의가 추가되지 않았습니다. 학교 규정에 따라, 우선 세 타임 강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선착순 수강 선택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무 원장님과 상의한 후, 그 세 타임을 수강한 학생들의 성적에 근거해서 명단을 결정할까 합니다.”
연단 아래 학생들은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착한 학생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무 원장은 다행이라는 듯 연단 아래의 광경을 바라보면서 곁에 있는 교수를 향해 한탄했다.
“모든 수업에 학생들이 이렇게 적극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학생들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요.”
곁에 있던 나이든 교수가 껄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응?”
“모든 수업에 교수가 능연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이든 교수는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센스가 능연스러움을 자화자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