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13화 (594/877)

새벽 2시 40분.

운화대학 의대에서 온 학생 네 명이 입원 병동 앞에 모였다.

‘입원부’라는 세 글자만 빛나는 입원 병동 안은 어두컴컴했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운화 시 중심에 똬리를 튼 사람을 집어삼키는 괴물 같았다.

동쪽으로 1km만 더 가면 운화 밤놀이 거리였고, 밤새워 마시고 토한 클럽남 클럽녀들이 무단 횡단 두 번이면 바로 병원에 실려 올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마시다 죽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실려 와도 식지 않을 거리였다.

아직 졸업하지 않은 운화대학 학생으로서 새벽 2시 40분의 입원 병동은 조금 공포였다.

네 사람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다리가 휘청거렸는데 기다리고 있을수록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속은 거 아냐? 외국 대학처럼 일부러 무서운 장면을 세팅하는 그런 거 말······.”

뚱뚱한 남학생이 더듬더듬 그렇게 말했다.

“능 선생님이 그렇게 싱거운 사람이겠냐?”

제윤조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도 싫어서 콧방귀를 뀌며 남학생의 말을 잘랐다.

사실 이번 실습생 모집에 제윤조는 포함되지 않았다. 세 실습생을 모집하고 병원에 보고까지 끝냈는데, 제윤조가 대학 신문 기자의 명분을 들고 나왔고, 집안을 통해서 어떻게든 직접 운대 의교과를 뚫어서 의교과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 방법은 이번 실습생 관리를 맡은 여원이 골치 아파할 만했기에, 제윤조는 어쩌면 여원이 언짢아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런 복잡한 일은 병원 부주임, 주임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머리가 심하게 나쁘면 모를까 일개 치프 레지던트가 문제 삼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이득을 보거나 대우받기는 어려울 것은 알았다. 그러나 그저 대학 신문 기자 노릇을 하는 김에 능 선배 사진을 조금 더 찍고 싶은 제윤조는 인터뷰나 몇 번 더 하면 그만이지, 의료 방면에서 얻고 싶은 혜택이 전혀 없었다.

“너희는 안 무서워?”

다른 두 학생을 본 제윤조가 오히려 궁금한 듯 물었다.

“무······ 무섭긴 뭐······ 뭐가 무서워. 능연은 새벽 3시에 해부실에 가서 자습도 한다는데, 우리는 뭐 더위 안 타냐?”

뒤쪽에 선 유약해 보이는 남학생의 말투는 자신감에 넘쳤다.

새벽 3시에 해부실에 간다는 건 대다수 학생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다만 정말로 겁이 없다면, 여름날의 해부실은 적당히 따듯하고 에어컨을 충분히 튼 상태라면 대다수 호텔, 마트보다 더 시원했다.

제윤조의 관심 포인트는 남학생들이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 더위를 타느냐 안 타느냐가 아니라서 그냥 짜증이 났다.

“능 선배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말아 줄래? 능 선생 아니면 능 선배라고 불러.”

“부르라고 있는 이름 아냐?”

남학생은 유약해 보였지만 말은 당당했고, 제윤조는 엄숙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능 선배 이름 지을 때 넌 정자도 아니었거든? 네가 뭔데 이름 불러? 못생기면 그래도 돼?”

“나는······.”

뻔뻔함이 부족한 남학생은 여학생이 바로 앞에서 비꼬자 바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다른 여학생이 헛기침하며 말을 꺼냈다.

“실습하러 왔으니 일단 들어갈 방법을 생각해 보자. 번호 있는 사람 있어?”

제윤조가 핸드폰을 꺼냈다. 의교과 간부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지도 의사의 번호를 줬었다.

잠시 후, 멀리서 타닥타닥 걸음 소리가 들렸다.

칠흑 같은 밤의 텅 빈 공간에 다급한 걸음 소리가 들리니 더욱 불안해졌다.

“거 봐. 새벽 3시에 병원으로 오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잖아?”

뚱뚱한 남학생의 안색이 다시 흐려졌다.

“능 선생님이 수업 때 말씀하셨잖아? 선생님은 수술 일찍 시작한다고.”

“그래도 너무 이르잖아.”

“새벽까지 밤새울 때는 이르다고 생각했어?”

제윤조는 말발이 좋아서 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었다.

말로 이기지 못하자 뚱뚱한 남학생은 입을 다물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시커먼 입원 병동을 바라보고 있으니 더욱 뜨끔해졌다.

탁. 소리와 함께 입원 병동 1층에 불이 모두 켜졌다.

“들어와.”

“여 선생님.”

사람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안에서 들렸는데 네 실습생은 금세 안도하며 일제히 인사했다.

“그래.”

대담한 여원이 긴 그림자를 이끌고 나타났다.

“곧 회진 시간이니 다들 서둘러. 그리고 이름 말하고.”

“제윤조입니다.”

“정원동이요.”

뚱뚱한 남자가 대답했다.

“왕예입니다”

마른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초영이예요.”

다른 여학생도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운화대학생이고 능 선생 동문이니까 행동 잘 해.”

네 실습생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회진 후에 바로 수술실로 갈 거야. 각자 준비하고, 질문 있으면 물어.”

여원은 한마디 더 설명하고 네 사람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그의 말에 다들 멍해졌다.

“수술실에 간다는 말씀은, 수술한다는 건가요?”

“당연하지.”

“예? 정말로 수술을요?”

정원동이 묻는 말에 여원이 태연히 대답하자 정원동뿐만 아니라 실습생 모두 꽥 고함쳤다.

“우린 매일 많은 수술을 진행한다. 앞으로 수술할 기회가 많을 거야.”

“실습생들은 차트 쓸 일이 많다던데······. 우리는 안 써도 되나요?”

정원동의 눈빛은 꽤 초롱초롱해서 이야기할 때는 똑똑해 보이는 모습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하하하. 차트는 오후에 써야지. 그때 제일 멍할 때거든. 그런 일 하기 딱 좋아.”

네 실습생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양치기를 따라가는 어린 양처럼 가는 내내 아무런 말 없이 여원의 뒤를 줄레줄레 따라갔다.

여원은 생각나는 대로, 그래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주의사항은 대부분 설명했다.

병원의 주의사항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어서 주의사항이라고 해봐야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덜 묻고, 덜 부딪힌다.’ 정도였고 네 실습생은 멍청하게 여원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고작 아침나절에 네 사람은 수술실 환경에 익숙해졌다.

제윤조는 카메라까지 들고 마음에 드는 사진도 많이 찍었다.

사실 의사들도 수술실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은 보통 셀카로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논문을 쓰고 싶은 의사들은 더 말할 것도 없어서 항상 사진 찍을 소재가 부족함을 아쉬워했다.

제윤조는 말도 잘하고 사진도 잘 찍어서 의사들이 흔쾌히 사진 촬영을 허락했다. 물론 제윤조는 능 선생의 사진을 제일 많이 찍었다.

나머지 실습생 세 명은 언제나 수술실 구석에 서서 수술하는 능연을 바라봤다.

시간이 째깍째깍 흐르고, 정원동이 허기를 느낄 때쯤 의사 하나가 수술실로 뛰어 들어왔다.

“능 선생, 산사태가 생겨서 중상 환자가 오고 있대. 응급센터 의사들은 모두 대기해야 해.”

소식을 전하러 온 의사의 목소리가 작은 편은 아니라서 수술실 안의 사람 모두 들었다.

모든 이가 능연을 바라봤고, 네 실습생은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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