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기트, 받침대 같은 거 수술에 사용할 것들 사전에 수술실에 가져다 놔야 해. 아, 받침대는 몇 개 더 준비하고. 여원 선생이 참여하는 수술은 꼭 수량 체크하고.”
능연이 분배한 임무를 받은 좌자전이 매우 진지하게 일을 처리했다.
“받침대 몇 개나 필요한데요?”
항학명도 이어서 진행하는 수술을 진행해 봤지만, 팔채향 분원 설비로 연달아서 하는 수술을 준비하려니 허둥지둥하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얼마나 허리를 굽혀줄 건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항학명을 위아래로 살핀 좌자전은 조금 부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네가 여 선생 조수한다면, 네 생각엔 여 선생이 받침대 몇 개 필요하겠냐?”
“다다익선?!”
여원의 키를 상상해본 항학명은 숨을 들이쉬고는 대답했다.
“네가 한신(韓信)이냐? 다섯 개면 충분하겠지. 수술 시간 짧으면 두 개도 어떻게든 될 거고.”
* 한신(韓信: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명장.
“그대는 군사를 얼마까지 거느릴 수 있소?”라는 유방의 질문에 한신이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하고 대답한 데서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유래했다.
좌자전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항학명은 받침대 하나밖에 없는 상황을 상상했다. 여 선생이 받침대에 올라서서 수술대를 자기가 편한 위치로 조절한다. 여 선생이 나를 조수로 지정한다. 나는 새우가 된다······.
항학명은 힘껏 고개를 내저었다.
“받침대야 뭐, 얼마든지 구할 수 있죠. 알겠습니다. 여 선생님이 하는 수술은 제가 신경 쓸게요.”
좌자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고개를 돌려 소가복을 바라봤다.
“마취도. 수술실에 들어가는 빈도를 최대한 줄여 보자고. 현재 팔채향 분원 개선 포인트야. 하루에 마취용품 두 번 보충. 이 정도면 되겠지?”
“네, 그렇겠죠.”
소가복이 비몽사몽 대답했다. 그는 운화병원에서도 어수룩한 마취의였고 매일 제때 제 몫의 일을 하고 추가 근무 없고 둥근 의자만 지킬 수 있어도 감지덕지한지라 마취 용품 보충 같은 건 제 알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작은 병원에는 그만한 보조 인원이 없어서 모든 걸 본인이 알아서 해야만 했다.
그래도 이런 훈련 기회는 좋은 기회다 보니 소가복을 비롯한 모두 기꺼워했다. 팔채향 분원 같은 곳이나 이렇게 병원 전체를 연습으로 사용할 수 있고 거기다가 능연이 나서기까지 하니 불만은 없었다.
이런 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하라면 대부분 내키지 않겠지만, 이렇게 지원 나올 기회는 당연히 좋아했다.
좌자전은 이어서 조무사와 근로 요원에게 대강 설명했고, 함께 온 수간호사도 곁에서 듣고 있었다.
다들 연달아서 하는 수술에 익숙했지만, 구체적이고 세세한 관리는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시트는 조심스럽게 깔아야 하고’, ‘거즈 개수는 숫자 확인 잘해야 하고’ 등등 이제 더는 설명할 것이 없을 때까지 지시를 내린 좌자전은 그제야 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자, 이제 해볼까요?”
“네네.”
간호사를 비롯한 모두가 조금 흥분한 모습이었고 수간호사 역시 눈빛을 반짝이며 일하러 갔다.
지금 팔채향에 지원 온 인원은 조무사까지 포함해 간호사, 의사 모두 운화병원에서 온 사람이었다.
운화병원 사람들이 일찍 출발했고, 인원도 여러 번 파견해서 하루 만에 팔채향 분원을 가득 채웠다. 덕분에 다른 병원들은 육로 봉쇄가 확정되어 이를 악물고 헬리콥터를 조달했을 때는 팔채향보다 더 조건이 안 좋은 보건소 같은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재 팔채향 지원의 주체는 운화병원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지원을 끝내면 모든 인원이 명예를 얻을 것이고 다른 병원에서는 토도 달지 못할 것이다. 항학명을 비롯한 팔채향 분원 사람들도 언짢아질 이유가 없고 말이다.
병원 등급이 높아지는 건 좋은 일이고, 지금이 아니라면 운화병원 사람들을 불러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운화병원 의사들이 자기들 병원 수술실을 새로 꾸미는 모습을 보며, 항학명은 반대하기도 거들기도 싫은, 일종의 선 긋고 발 뺀 상태의 고독감을 느꼈다.
“뭐 문제 있어?”
항학명이 멍하니 있는 모습을 본 능연이 지나가다가 물었다.
능연은 수술실에 있는 의사들의 정신 상태에는 그래도 관심을 보이는 편이었다. 무슨 자극이라도 받아서 정신이 이상해지면 어쩐담? 의사마다 본인처럼 자가 정신 질환 평가를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 아, 장안민 선생님은 왜 안 오셨나 해서 보고 있었어.”
능연을 본 항학명은 퍼뜩 자세를 가다듬고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대충 얼버무렸다.
“장 주임님은 간담췌외과 부주임 의사시잖아. 그래서 센터에 남아서 집을 지켜야 한다고.”
연문빈이 찬란하게 미소 짓자, 양손에 든 받침대마저 앙증맞아 보였다.
“아아. 내 기억력 좀 봐. 장 선생님 승진하고 술도 샀으면서.”
“그런 것보다 장 선생님 출장 수술비 올려줘야 기뻐하지. 네가 장 선생님 먹여 살리는 셈이잖냐.”
항학명이 머리를 내리치며 하는 말에 연문빈이 껄껄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제가 뭐라고요. 장 선생님 승진한 다음엔 요즘 자주 안 오시지만, 그래도 출장 수술비 올리는 건 우리 같은 작은 병원에서는 무리입니다.”
“주임 되고도 온다고? 정말 가난하시구나.”
항학명의 말에 연문빈이 혀를 끌끌찼다.
“네. 지난번에 환자가 중화 담배 선물했는데, 연기도 아까워하시던데요.”
“아, 나도 본 적 있어.”
연문빈이 바로 그 모습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끼를 탐색하는 큰 물고기처럼 숨을 내뱉은 후 다시 힘껏 들이쉬고는 또 뱉고 다시 힘껏 들이쉬었다.
“연 선생님. 여기 일 끝나면 아래층 가서 도와주세요. 오늘 자발적으로 진료 보러 온 환자가 많더라고요.”
능연의 말에 연문빈은 멈칫하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넌 이제 뭐 할 거냐?”
능연이 항학명을 향해 물었다.
“어? 당분간······ 당분간 할 일 없는데.”
항학명도 능연의 동기지만, 학교 다닐 때 늘 멀리서만 능연을 바라봤던지라 진만호, 왕장용 같은 룸메이트와는 달랐다.
운화병원에서 실습생 생활을 하고 팔채향 분원에서 2년 일하는 동안 항학명은 더욱 능연의 기세를 느꼈다.
능연은 그런 항학명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고, 세심하게 그를 살펴보면서 그에게 정신 질환 징조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가서 위급한 환자부터 골라서 수술실로 보내.”
“어.”
잠시 멈칫하던 항학명이 순간 정신을 차리고 냉큼 대답했다.
지금 병원엔 기본적으로 심각한 환자는 없었고, 위급한 환자는 능연이 현장에서 바로 처리했거나 아니면 헬리콥터로 바로 운화병원으로 보냈다. 게다가 어제 온종일 수술까지 했으니, 남은 환자는 설사 위급하다고 해도 응급 수술과 택일 수술 사이 정도였다.
그러나 의사로서는 그런 환자가 오히려 수술에 가장 적합한 상대였다. 면담이 복잡하지도 않고, 긴급하다고 설명하면 보호자들도 긴말하지 않는다. 의사가 허둥지둥 댈 정도로 위급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때, 능연 귓가에 퀘스트 제시어 알람이 울렸다.
-퀘스트: 완벽한 수술
-퀘스트 내용: 완벽한 수술은 서전의 꾸준한 목표
-퀘스트 보상: 완벽한 수술 한 건 당, 초급 보물 상자 한 개.
“영상실 재촉해서 리포트 빨리 달라고 하세요.”
“바이러스 검사 결과 나왔나요? 아직이면 방호구 쓰고 하죠.”
능연이 녹색 수술실에 들어왔을 때, 수술실 안의 모든 사람은 바빠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수술실인 데다가 능연이 연속 수술을 요구하니 좌자전, 여원 등의 부담감은 운화병원에서 간 절제 수술을 하는 것보다 더했다.
녹색 수술복을 입고 파란 모자를 쓴 능연은 다른 의사들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한 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쭉 뻗은 몸매가 남달랐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니임~”
“환자 상태는요? 준비 다 됐습니까?”
수술실이 소란스러워지자 능연은 고개만 끄덕이고는 바로 물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환자입니다. 왼손으로 바닥을 짚어서 왼팔 콜리스 골절, 왼손 새끼손가락, 무명지 이단(離斷)이고요.”
항학명이 평범한 초짜 레지던트처럼 앞으로 나서서 증상을 설명하는 모습에 초짜 실습생들이 혀를 내밀었다. 이제 막 학교에서 나온 그들은 이렇게 비참한 케이스를 앞으로 본인이 맡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해졌다.
능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X-ray를 판독하기 시작했다.
그랜드마스터급 X-ray 판독기술로 골절을 판독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 지금 능연으로서는 단지 수술 자체가 아주아주 수월한 일이었다.
“두 손가락 이단. 거기에 골절이라면 시간 좀 걸리겠네. 뒤에 더 급한 환자는 없고?”
좌자전도 곁에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필름을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조금 전에 온 환자입니다. 다른 급한 환자는 없어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한 시간 반, 후속 수술에 영향 주진 않아.”
능연이 항학명이 조심스럽게 하는 말을 잘랐다.
단지 이식은 능연 팀이 자주 하는 수술이었고, 운화병원에서 실습한 항학명은 당연히 능연의 집도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현미경을 가지러 갔다.
“1인용 더블렌즈 현미경밖에 없어.”
항학명이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가 운화병원에 있을 때 본 건 모두 2인용이었고 심지어 3인용도 있었다. 그러나 팔채향 분원 같은 작은 곳에 현미경이 있는 것만 해도 대단했다.
“없는 거보다 낫지.”
능연은 밑에 의사가 미리 검사해둔 현미경을 대강 훑어본 후 대답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곁에 있던 마연린과 간호사 하나가 바로 앞으로 나와서 현미경 커버를 씌웠다.
수술 한 번 할 때마다 현미경 같은 정밀 기구를 철저히 청소하는 건 불가능하다. 때문에 병원에서는 보통 안팎을 분리하기만 하면 되는 콘돔 효과와 비슷한 깔끔한 비닐 커버를 씌웠다.
“우리는 단지 이식 같은 수술을 자주 하지도 않으니까. 하하. 능 선생이 자주 쓰는 것처럼 편하진 않지?”
“응.”
항학명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하는 말에 능연이 정확한 대답을 내놓았다.
“자주 쓰는 현미경 가지고 올까요?”
그때 의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능연이 뒤를 돌아보니 수술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전칠이었다. 연하게 화장한 그의 모습이 얼핏 보면 이제 막 의사가 된 사람같이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여러 기업에서 팔채향 분원에 물자를 기증했고, 운리에서 세팅 담당할 거예요. 지금 헬리콥터도 노는데, 가서 당신이 익숙한 설비 가지고 올까요?”
“설비 분해하고 조립하고 너무 복잡해요. 센터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요.”
완벽한 수술 퀘스트를 떠올린 능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끝내 고개를 흔들었다.
“분해하기 적당하지 않은 설비도 있으니까요. 여기 임무 끝나면 어차피 돌아가서 써야 하고요.”
“그럼 새 설비 쓰죠.”
옆에서 좌자전이 하는 말에 전칠이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 병원은 그런 설비 살 돈 없습니다.”
항학명은 아무리 설비를 가지고 싶어도 이런 기증품은 함부로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음, 그럼 렌탈?”
“어느 병원이 쓰던 장비를 렌탈하겠어요.”
좌자전은 전칠 아가씨의 생각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그의 눈엔 전칠의 그런 생각 자체가 어처구니없었다.
하지만 전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융자 렌탈 회사 하나 만들어서 의료 기기를 전문적으로 렌탈하면 되겠네요.”
‘뭐시라?’
좌자전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전칠은 자기 생각을 명확히 정리했다.
“사실 운리 창고에 의료 설비들이 좀 있어요. 마침 잘됐네요. 렌탈 회사에서 인수하면 되겠네요. 그럼 능 선생이 새 기계로 우선 테스트할 수 있겠어요.”
“그럼 그런 다음은요? 팔채향에 있는 동안 장비가 필요할 뿐인데요. 다른 임대인처럼 장기적으로 설비를 렌탈할 수 없어요. 그리고 여기 지급할 경비도 없고요.”
“그럼 단기 테스트 기간이라고 쳐요.”
좌자전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하는 말에 잠시 더 생각하던 전칠이 대답했다.
“의료 설비 렌탈은 국내에서 막 시작한 사업이지만, 외국에는 꽤 많아요. 미국은 80% 이상이 의료 설비를 렌탈 방식을 채택하죠.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 방법이 있을 거예요.”
“프로 매니저를 고용한다고 해도 믿을 만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을 텐데요.”
좌자전의 말에 전칠이 눈을 깜빡이다가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네요. 회사 하나 여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요.”
좌자전의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드러났다.
“회사 하나 사는 게 낫겠어요.”
전칠이 생긋,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
“먼저 수술하세요. 아무리 빨라도 밤에나 도착할 거예요. 게다가 소형 기계일 거예요. C-arm 머신(이동형 엑스선 투시 촬영 장치) 정도?”
말을 마친 전칠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술실에서 나갔고 항학명은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C-arm 머신이 소형이라고?”
“부자는 정말 이렇게 제멋대로인가.”
좌자전의 주름까지 다 한숨을 내쉬었다.
“운리 주가, 1년 전보다 4배는 올랐대요······.”
마연린의 말에 수술실이 드디어 조용해졌다.
그런 분위기가 흡족한 능연은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는 수술 시작을 선포했다.
전칠은 문밖에서 핸드폰을 꺼내 ‘5’번을 길게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