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네······. 능 선생하고 수술하면 정말 통쾌해.”
항학명이 눈웃음치며 작게 아부했다. 확실히 통쾌하긴 했다.
팔채향 분원에서 그는 이미 외과 실력자였다. 나머지 의사 몇은 수술하기 귀찮아하거나 수술을 할 능력이 안 됐다. 가끔 장안민이 수술하러 오면 어시하다가 잘못하면 여전히 욕먹긴 하지만.
능연의 수술실은 변함없이 조용했다. 외부인이 생각하기엔, 수술실에 음악 같은 걸 트는 게 외과의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건 일반 외과의고 능연은 달랐다. 그는 원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가끔 다른 변화가 있긴 해도 어차피 찬양 일색이긴 하지만.
능연으로서는 제 할 일을 잘 하면 그만이었다. 수술실에서도 그렇고 수술실 밖에서도 그랬다.
그리고 어시로서 집도의가 화를 내지 않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고 집도의가 말이 없으면 더욱 통쾌하다. 능연처럼 평소에 말이 없고, 입을 열면 조수에게 도움이 되는 말뿐인 의사는 초짜 의사로서야 어색하고 말고 하기 전에 무릎 꿇고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저도 모르게 운화병원 생활을 떠올린 항학명은 아쉬움이 가득해졌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그저 평범한 실습생 중 하나라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대단한 걸 배우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조금 더 깊게는 배우지 않을까.
그러다가 문득 능연이 줬던 기회들이 새삼 고마웠다.
처음부터 최정상급 수술을 참관했고, 기초적인 훈련도 모두 능연 밑에서 끝냈다. 능연 밑에 있던 시간이 있어서 혼자서라도 계속해서 배울 여지가 생겼고, 팔채향에서 외과를 감당하면서 외과의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런 생활이 없었다면, 연속 수술은 둘째치고 수술 한 건도 제대로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항학명은 운화병원에 남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학생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긴 했다.
“능 선생. 밖에 가서 잠시 쉴까? 수술실 정리하라고 하고.”
항학명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억누르면서 공손하게 한마디 했다.
“응. 다음 수술은 뭐지?”
“왼쪽 다리 외상. X-ray로 보니까 골관절은 괜찮아.”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 말에 항학명이 노트를 힐끔 보고 대답했다.
“이것도 낙상 환자. 나뭇가지에 긁힌 곳도 있고, 잔여물도 있어.”
이번 데브리망은 난도가 조금 있는 외상이었다. 능연도 예전엔 자주 했지만, 간 절제 스킬을 얻은 후 거의 직접 하지 않기도 했다.
간 절제 수술과 비교해서 데브리망은 너무나 간단했고, 능연으로서는 눈앞에 기하학 문제가 있는데 평면 기하학을 푸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뭐, 평면 기하 문제라고 해도 능연은 기꺼이 풀겠지만.
“안 쉴래. 나 샤워하러 간다. 그러고 바로 처치하지 뭐. 상태 그렇게 심각한 거 아니면 수술실에 갈 필요 없이 바로 처치실에서 처리하자.”
명백히 생각을 정리한 능연은 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팔채향의 설비는 평범했지만, 샤워실 같은 생활 시설은 제법 깔끔해서 능연의 기본 요구에 부합했다.
샤워를 끝내고 새 속옷으로 갈아입은 능연은 다시 수술실로 돌아왔다.
“능 선생을 수술실에 묶어두다니. 이건 자원 낭비야.”
제윤조는 눈물이 다 흐를 지경인 아픈 마음을 누르면서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댔다.
“피부 정리.”
능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직접 브러시를 들고 나섰다. 항학명이 허둥지둥 막아섰다.
“능 선생, 이런 일은 우리가 할게.”
“됐어.”
능연의 목적은 퀘스트였으니 항학명의 호의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능연의 그런 모습을 본 항학명은 뭔가 잘못한 게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저절로 좌자전을 바라봤다.
“능 선생이 필요 없다면 필요 없는 거지. 어시나 해.”
안 그래도 어시하기 싫던 좌자전은 옳다구나 하며 항학명을 자리로 들이밀었다.
마흔 넘은 레지던트 좌자전은 매일 머리가 아프고, 목이 아프고, 등이 아프고, 허리가 아팠다.
데브리망이 그렇게 매력적인 수술도 아니고, 당연히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능연은 매우 진지하게 손을 씻고 닦았다. 평소에 수술할 때도 진지한 편이고 심지어 조수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하게 굴었다.
그래도 평소에는 조수들에게 여유를 주는 편이었다. 외과 수술은 어찌 됐든 단합이 중요한 작업이고, 특히 장시간 수술은 팀 내 다른 의사의 도움이 더욱 필요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완벽한 수술을 추구해야 했기에,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환자의 다리를 깨끗이 씻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묻은 이물질은 물론이고 원래 다리에 붙어있던 사망한 세포의 사체도 깨듯이 씻겨 나갔다.
능연이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자기 다리를 닦는 모습에 환자는 감동해서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왜 그러세요. 아파요?”
환자의 모습을 본 소가복이 놀라서 묻자 환자가 목이 멘 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이런데도 아니라고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나요? 촉감 있어요?”
“아니요. 전 그냥······.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환자가 입을 삐죽이며 감격한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소가복은 이를 악물고는 느릿느릿 본인 둥근 의자로 돌아와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든 소나무처럼 자리에 앉았다.
“생리식염수.”
간호사에게 병을 건네받은 능연은 바로 기울여서 상처 부위를 헹궜다.
피부 테두리 정리, 근막 절제 스텝이 되자 능연의 동작은 더욱 빨라졌고, 항학명이 정신을 차렸을 때 능연은 벌써 봉합을 시작했다.
항학명은 저도 모르게 눈을 끔뻑였다. 이번에 제대로 데브리망을 복습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잠깐 한눈판 사이에 수술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6-0.”
항학명이 정신을 완전히 차리기도 전에 능연이 표피 봉합을 시작했다.
“능 선생, 내가 마무리할게.”
“내가 수처하는 게 흉이 덜 져.”
항학명이 일을 부담할 생각으로 한 말에 능연은 환자의 다리털을 힐끔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환자의 시선이 능연을 벗어나 엄격한 눈빛으로 항학명을 바라봤다.
“저기요, 선생님. 잘생긴 선생님 치료 방해하지 마세요. 네?”
“제때 실밥 뽑으러 오시고요. 물 안 닿게 조심하세요. 케어 잘하면 흉이 덜 질 겁니다.”
능연은 환자의 중요한 질문 몇 가지를 느긋하게 대답했다.
다른 구조 지역은 엉덩이에 불이 붙어서 추가 근무에 추가 근무를 해도 환자를 많이 구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능연 팀은 추가 근무에 추가 근무에 추가 근무······를 해서 모든 환자를 처리했고, 덕분에 능연은 빈 시간을 세심하게 환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데 쓸 수 있었다.
사실 환자가 발생하는 것도 시효가 있었다.
운화 같은 큰 도시는 낮에 환자가 많이 발생하지만, 팔채향 같은 곳은 재난 상황에나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한다.
능 팀이 빠른 구조 속도로 재난 환자 수를 커버하자, 팔채향 분원의 구조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선생님, 너무 좋은 분이세요. 감사합니다. 능 선생님.”
능연의 당부에 눈이 촉촉해진 환자가 울먹거렸다. 곁에 있는 의사들은 도를 닦는 마음으로 환자의 그런 선택적 감사를 무시했다.
능연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사회가 기대하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환자를 보내고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완벽한 수술을 하려면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고,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때 속옷은 당연히 399짜리여야만 했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니 또 20분이 흘렀다.
능연은 느긋하게 나와서 시스템 인터페이스를 불러냈다. ‘완벽한 수술’ 퀘스트 수가 2/1로 바뀌고 보상으로 초급 보물 상자 두 개도 착실히 나온 것을 확인했다.
능연은 상자를 열지 않고 일단 힐끔 상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초급 보물 상자는 402개 누적되어 있어서, 지금 나온 것까지 합하면 모두 404개가 되었다. 한 번에 천 개 넘는 초급 상자도 열어 봤던 능연은 지금 급하게 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당장 급하지 않을 뿐이지, 열 필요가 없는 건 아니었다. 초급 보물 상자는 사소한 스킬을 보충할 수 있어서 스킬을 늘이기 좋았고, 거기서 나오는 소모품 역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 원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능연은 그저 좋은 숫자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따지고 들자면, 능연은 이번 ‘완벽한 수술’ 퀘스트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로 완벽한 수술 추구는 능연의 뜻에 부합했고, 다른 한편 원하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초급 상자를 모을 수 있는 것도 능연의 뜻에 부합했다.
“중증 환자 있어?”
휴게실로 온 능연은 거기서 대기하던 항학명을 향해 가장 먼저 확인했다.
“없어. 그런데······. 향 위생병원에서 환자를 보낸다고는 하더라고.”
항학명이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 무슨 환자?”
“간 외상. 향 위생병원의 감 선생이 보낸 거야.”
항학명이 힘주어 대답했다.
팔채향 분원은 운화 시 논평구 분원이고, 향 위생병원은 팔채향의 보건소였다. 모두 팔채향에 있지만, 서로 연락할 일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둘 다 최하급 작은 병원이라 연합해도 개뿔 쓸모없어서 항학명처럼 바로 상급 병원에 출장 수술을 요청하는 게 훨씬 나았다.
물론 향 위생병원은 장안민처럼 저렴한 상급 의사를 초빙할 루트가 없으니 이야기가 또 달랐지만.
다만, 오늘 향 위생병원은 또 달랐다. 비록 운화병원보다 늦었지만, 창서성에서 팔채향으로 지원 온 병원과 의사도 속속 들어왔고 그 중 약세인 병원과 의사는 학교 혹은 정부 청사 쪽으로 가서 장막을 치고 농촌 의료 활동과 유사한 일을 했다.
보건소에 남을 수 있는 의사만 해도 그나마 괜찮은 병원 출신이었다.
능연은 항학명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구석에 앉아 있던 좌자전은 바로 알아들었고 즉시 물었다.
“그 위생병원에 지금 어디 병원 의사가 있는데?”
“성립하고 한의 병원이요.”
항학명은 역시 좌 선생님은 알아들었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대답했다.
“향 위생병원은 한의 위주거든요. 평소에도 수액 놓고 한약 처방하는 정도예요.”
항학명의 설명에 좌자전은 바로 알아듣고 턱을 문지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성립 의사가 보냈다는 소리네. 성립에서 왜 그랬지.”
하급 병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환자를 상급 병원으로 보내는 건 병원 불문율이었다. 같은 질환으로 환자가 죽어도, 삼갑병원에서라면 병원 실수만 없으면 처벌받지 않지만, 하급 병원에서 그랬다면 상급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지 않은 것만으로 병원은 흠 잡힐 수 있고, 잘못하면 처벌받게 된다.
운화 시 혹은 창서성 안에서 성립과 운화병원은 서로 대립하는 경쟁 관계로, 서로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라서 본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를 상대에게 보낼 리가 없다.
그러니 좌자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 선생님이 주장하셨답니다.”
“어쩐 일로?”
“책임 문제 때문 아닐까요? 감 선생님은 ‘맨발의 의사’(농업에 종사하면서 의료·위생 업무를 담당하는 초급 의료 기술자) 출신입니다.”
좌자전이 묻는 말에 항학명이 입을 내밀면서 설명했고 마을 위생병원 출신인 좌자전은 바로 상황이 파악되었다.
“출세는 글렀고, 은퇴할 때 됐구만. 이제 무서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일 터지는 것만 무서운 거지.”
항학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환자를 운화로 보내려면 헬기로 보내야 하는데, 비용을 감면받는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얼마나 받을지 감이 안 오는 거죠.”
“그럼 환자가 요구에서 그 감 선생이 나선 걸 수도 있네?”
좌자전과 항학명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환자 오면 받을까요?”
항학명이 나지막이 묻는 말에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좌자전이 싱긋 웃었다.
“받아야지, 왜 안 받아. 상황 되면 여기서 수술하고 안 되면 운화로 보내서 우리 운화병원에서 하면 되지.”
“환자가 싫다면요.”
“성립에서 운화로 보낸대도 싫다고 하고, 우리 운화병원을 가는 것도 싫다고 하면 어디로 가려고? 환자가 트랜스를 원했다는 건, 살고 싶은 생각이 있다는 거야.”
좌자전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이따 간단하게 검사하고 할 수 있으면 우리가 하고, 안 되면 헬기에서 내릴 것도 없이 바로 운화로 보내자고.”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술실 방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수술실 설비가 부족해서, 못하는 수술이 많아요.”
“걱정하지 마. 누가 환자를 보내기로 결정 내린 건지 몰라도 우리가 수술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보냈을 거야. 여기도 못 할 거 같으면 바로 운화로 보냈겠지. 일부러 여기를 거치게 할 리 있어? 제 목 조르는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말한 좌자전이 다시 싱긋 웃었다.
“어찌 됐든, 우린 성립에서 못 하는 수술을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