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회 항공이라고 적힌 헬리콥터가 팔채향 분원에 하강했고 사람 셋과 들것이 내렸다.
연문빈은 헬리콥터 가까이 다가가 들것 옮기는 걸 도우면서, 성립 의사 세 명의 호감을 샀다.
물론, 조금뿐이었다.
본인 환자를 같은 지역 경쟁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건 의사로서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부탁해요.”
같이 온 주치의가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한 셈 쳤다.
“뭐라고요?!”
그러나 연문빈은 목청을 한껏 끌어 올리며 되물었다.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아직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자 맞은편 주치의가 고개를 흔들더니 자기 입을 가리켰다.
“내가 하나, 둘, 셋 외칠 테니 같이 듭시다.”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동작도 같이하는데 맞은편에 있던 연문빈이 들것 양쪽을 잡고 혼자 스트레처 카 위로 옮겼다.
거대한 팔뚝, 시커먼 근육의 단단함에 세 사람의 눈이 돌아갔다.
“가시죠.”
크게 고함지른 연문빈은 곧 스트레처 카를 밀고 들어갔다.
운화병원에 있을 때부터 연문빈은 힘쓰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찾아서 하기도 했다. 능연 밑에 있어서 일이 너무 바쁘고, 관리해야 할 졸임 국물도 있어서 순수하게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다른 쪽에서 찾아 채울 수밖에 없었다.
성립 세 의사는 존중받는 거 같기도 하면서, 신체에 위협받는 것 같기도 한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젊은 치료팀이라 다르긴 다르네.”
헬리콥터 프로펠러 소리가 멀어짐에 따라 뒤에 있던 선임 주치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립 같은 삼갑병원에서 마흔 넘어서까지 아직 주치의라는 건 누군가에게 크게 밉보였거나, 입이 방정이라 만날 누군가에게 밉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뒤를 따르는 두 의사는 본인들이 운화병원 구역에 있다는 사실에 별말 없이 실실 웃기만 했다.
“좋아.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고. 안 되면 환자 다시 데리고 가야지.”
선임 주치의 채경이 중얼거렸다. 상황을 보고 환자를 운화병원이 아닌 성립에 보내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세 사람은 연문빈을 따라 느긋하게 논평 구병원 팔채향 분원으로 들어갔다.
환자를 데리고 왔으니 이제 할 일도 없고, 세 사람이야 급할 것이 없었다.
채경은 짐짓 자기네 주임처럼 뒷짐을 지고 여유를 부리기까지 했다.
팔채향 분원 건물은 작은 편이었다. 대문에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작은 로비에서 접수, 대기, 검사, 문진, 응급 등 모든 작업을 진행했다.
채경은 무시하는 듯 입을 삐죽이다가 웃음 지었다.
“90년대 내가 막 병원에 들어왔을 때도 여기보다 깨끗했겠다.”
같이 온 두 레지던트가 슬쩍 웃어 보였다.
“안 믿겨?”
“제가 93년생이라서요.”
채경이 웃으며 묻는 말에 바짝 뒤를 따르던 레지던트가 가볍게 한마디 했다.
채경의 볼이 저절로 실룩댔다. 고개를 들었더니 번쩍이는 등불에 시야가 흐릿해졌다.
천장에 사람 머리만 한 에코 실링 조명 여러 개가 채광이 좋지 않은 로비를 수술실처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가 별로 없어서 향 위생병원보다 더 조용했다.
“환자는요?”
다른 레지던트가 반은 분위기를 풀려고, 반은 정말로 궁금한 듯 사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병실에 좀 있고 퇴원도 했고요.”
뒤에서 그들을 관찰하던 좌자전이 그 물음에 걸어 나와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운화병원 응급센터 좌자전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대기할 만한 곳으로 안내하지요.”
“아닙니다. 수술실로 가고 싶군요. 능 선생이 우리 창서성 간 권위자 아닙니까. 우리도 좀 배워야지요.”
좋은 말도 채경의 입에서 나오니 비꼬는 것 같았다.
“수술실도 좋죠. 그럼 가서 옷 갈아입으시죠.”
그건 어느 병원에나 있는 규칙이니 세 성립 의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가시죠. 환자 가족은 같이 안 왔습니까?”
좌자전은 측문을 열어 세 사람을 데리고 가면서 물었다.
“차로 오니까 한두 시간 더 걸릴 겁니다.”
금회 항공이 저렴한 것도 아니고, 길이 너무 흔들리지 않았다면 헬리콥터를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 상황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여기서요? 능 선생은 안 옵니까?”
좌자전이 사람 좋게 묻는 말에 선임 주치의 채경은 무시하는 듯 사방을 둘러보며 물었다.
“제가 사전 준비를 하니까요. 능 선생은 지금 손 씻고 있을 겁니다.”
“음······. 전화로 말한 대로입니다. 복부 외상, 나뭇가지가 환자 몸 안을 뚫고 들어갔고 블리딩도 심각한 편입니다. 간 손상이 있을 것으로 초기 진단했죠. 맞다, 혈액은 충분하죠? 배를 열면 메스 블리딩이 있을 겁니다.”
지금 환경으로는 성립이 관리하는 향 위생병원에 보충 혈액이 충분하다고 해도 함부로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냉장고도 없고, 보충 혈액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확실하게 살릴 자신 없는 환자에게 혈액을 대량 사용할 수 없었다.
다른 병원에서 파견한 지원팀과 마찬가지로 성립 지원팀도 응급의학과와 일반 외과 위주였다. 간 수술이 가능한 일반 외과라서 간 수술의 리스크가 얼마나 큰지 더 잘 알고 있었다.
비전문인 일반 외과의가 간 절제를 한다는 건 고등학생이 함수 문제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수 함수, 삼각 함수 같은 표준적인 기초 함수는 풀 수 있었다. 그러나 변화가 생기면, 간 외상이 표준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들은 전혀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성립 지원팀은 그런 환자를 운화에 있는 성립 병원으로 보내 전문 진료과가 처리하도록 하고 싶었지만, 그 선택이 불가능하자 능연에게 넘기려는 것이었다.
경제 문제로 최선, 심지어 차선도 포기하는 환자와 보호자는 의사라면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성립 의사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짐작한 좌자전은 그저 싱긋 웃어 보이고는 대놓고 대답했다.
“충분합니다. 아까 새로 보급도 왔고요.”
“헬기로요? 금회하고 관계가 좋은가 봅니다.”
채경이 또 껄끄러운 화제를 입에 올렸지만, 좌자전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다른 전문 헬기가 있습니다.”
“아이고, 그렇게까지 열심입니까?”
채경의 웃음이 의미심장했다.
“그냥 돈이 많을 뿐이죠.”
언짢아진 좌자전이 고개를 돌려 그를 한번 보고는 다시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채경은 약간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팔채향 분원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팔채향 분원 자체에 대한 경멸이기도 했고, 능연 팀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능연의 명성은 당연히 들은 적 있었다. 창서성 안에서 능연은 놀라운 스타 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채경은 그를 경멸할 이유가 있었다.
어찌 됐든 좌자전보다 많은 나이로 선임 주치의 자리에 있는 채경은 경험 쪽으로는 더 우세였다. 때문에 젊은 의사를 대할 때 어떤 치료팀 팀장 앞에서도 채경은 목을 빳빳이 치켜들고 ‘나 때는 말이야~’를 외쳤다.
좌자전도 그런 채경의 마음을 읽었지만, 그저 속으로 경멸을 돌려줄 뿐이었다.
“채 선생님, 이쪽으로 오시죠.”
좌자전은 대화도 단절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일행은 슬리퍼 끄는 소리만 남기면서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혈액팩 좀 많이 녹여 놔. 이따 능 선생님이 만질 때 차가우면 어떡해.”
옆에 있는 저장실에서 갑자기 간호사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의사들은 뻔히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성립 의사들 수준 떨어진다. 못 고치는 환자를 능 선생님한테 미루다니. 능 선생님 며칠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거의 잠도 못 잤다고. 겨우 좀 쉴 만하니까 이렇게 중환자를 보내냐.”
“그러니까 말이에요. 실력도 없는데 무슨 파견 나와서는 우리 능 선생님 피곤하게 하는지.”
“맞다. 너 능 선생님 못 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알게 됐지······.”
좌자전을 따라가던 세 성립 의사들은 더욱 말수가 줄었고 그중 가장 젊은 의사는 반박하려고 입술을 꿈틀거리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고 해명할 것이며, 해명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능 선생은 조용한 수술실을 좋아하니까, 별일 없으면 말 꺼내지 마세요.”
좌자전은 수술실 앞에서 한마디 설명하고는 세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채경은 좌자전의 설명이 없어도 바로 고개 숙이고 열심인 능연을 알아봤다.
능연은 꼿꼿하게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능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등 뒤에서 뒷모습만 볼 뿐이었다. 뒷모습으로도 명확한 동작과 두드러진 잘생김을 느낄 수 있었다.
채경은 더는 경멸하는 눈빛을 보일 수 없었다.
수술실 배치를 본 채경은 더욱 놀라서 하마터면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성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C-arm 머신, 모니터 기기, 초음파 메스······.
성립에는 흔한 물건들이었지만, 팔채향에서는 너무나 귀한 것들인데.
사실 적당한 기구, 설비만 있었다면 성립 의사들도 수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성립에서 간담췌외과 전문가를 불러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이런 게 어떻게 다······.”
이게 다 팔채향 분원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팔채향 분원이 그럴 능력이 안 되는 건 둘째 치더라도 설비와 기구 모두 너무 새것이었다.
“가지고 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설비를 다 휴대하고 왔다고? 미친 거 아냐?”
좌자전이 심플하게 대답하자 채경이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깊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좌자전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아까 제가 한 말, 기억하시죠?”
채경은 바로 돈이 많다고 했었던 좌자전의 말을 떠올렸지만, 못 믿겠다는 듯 대답했다.
“돈이 많아도 이렇게 쓰는 건 아니죠.”
“오해하셨네요. 제 말은 성립에 돈이 많아도 이런 식으로는 못 쓴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미친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