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24화 (605/877)

“2,100.”

마지막 액체가 환자 몸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소가복이 바로 수치를 보고했다.

“음. 닫죠.”

능연이 마지막 검사를 마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맞은편에 서 있던 연문빈과 항학명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한 사람은 능연을 도와 실을 당겼고, 한 사람은 상처 주변을 두르고 있던 붕대의 클립을 풀었다.

채경은 당장에라도 능연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목을 길게 빼고 그들의 동작을 지켜봤다.

장안민이 간 절제를 배우기 위해 배신자가 된 것처럼, 채경도 오랫동안 간 절제 기술을 갈망해왔다.

안타깝게도 채경은 배신자가 되고 싶어도 제 한 몸 팔 곳이 없었다. 성립 일반 외과서에 채경이 간 절제 기술을 배울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채경은 폐복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본인이 수술대 앞에 처음으로 섰던 장면을 떠올렸다. 입이 방정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밉보이지 않았다면, 진작에 간 절제 수술을 했겠지. 어쩌면 돈도 더 많이 벌었을 것이고. 지금처럼 익숙할 대로 익숙한 장 수술을 하느라 어질거릴 정도로 똥을 빼내는 게 아니라 말이다.

“6-0이요.”

능연이 다시 입을 열어 스크럽 간호사 왕가의 동작을 고쳐주었고 왕가는 재빨리 포셉에 6-0 봉합사를 다시 감아서 능연에게 건넸다.

“흉 덜 지게 하려고요?”

“그렇습니다.”

능연은 니들홀더를 받아들여 슬쩍 보고는 바로 환자 피부에 찔러 넣었다.

“그런데 이 환자는 털이 길고 엉망이라, 흉이 있든 없든 별 차이 없을 거 같네요.”

까치발을 들고 힐끔 본 왕가가 입을 삐죽였다.

능연은 그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완벽한 수술을 하려면 털이 어떻든지 흉은 남길 수 없었다.

“선생님, 좀 전에 웃으셨죠?!”

간호사 왕가는 능연을 빤히 바라보며 흥분해서 외쳤다.

“마스크 끼고 있는데 어떻게 안다고.”

채경이 못 들어주겠다는 듯 투덜대자 왕가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그를 바라봤다.

“능 선생님은 웃을 때 구레나룻이 살짝 올라가거든요.”

“구레나룻······.”

채경은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계속해서 입방정을 떨었다.

“그럼 내 구레나룻은 올라갑니까? 안 올라갑니까?”

“머리카락이 너무 없고, 구레나룻에 주름도 가득하고 목에 살도 많아서 잘 안 보이네요.”

왕가는 일부러 진지한 척 대답했다. 어차피 성립 의사라 혼나도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채경은 멍해졌다가 무심결에 손을 올려 얼굴을 만졌다.

능연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환자의 복부만 바라보면서 마무리 봉합을 마쳤다. 흉을 줄이기 위해서 능연은 심지어 내피 봉합과 감장 봉합까지 사용했다.

한 땀, 한 땀.

봉합은 의사의 기본 내공이라 딱히 지름길이 없다. 특히 스킨 봉합은 아무리 자신감 넘치는 의사라도 한 땀, 한 땀 꿰맬 수밖에 없다.

그런 모습에 채경은 조금 우스워졌다. 능연의 기본 내공은 스킨 봉합이 아니라 아까 간 절제만 봐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능연은 모든 과정을 끝내고서야 수술대에서 물러났다.

“수술이 많아서 다행이군요. 아니면 다른 젊은 의사가 뭘 먹고 살겠어.”

수술실에서 나온 채경이 좌자전을 향해 눈짓했다.

폐복 부분은 환자나 관심 가질까, 의사는 가장 관심 없는 부분이고 성립 같은 병원에서는 젊은 의사 연습 플랫폼으로 이용했다.

좌자전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운화병원에서 어떻게 젊은 의사를 트레이닝 하든, 능 팀에서 어떻게 일을 분배하든, 성립 망할 의사가 참견할 자격은 없으니까.

수술실은 다시 조용해졌고, 능연이 봉합할 때 실이 근육을 뚫고 슥슥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항학명은 줄곧 긴장한 채 능연을 지켜보다가, 그가 수술 종료를 선포하자 그제야 천천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이곳은 논평 구병원 팔채향 분원이고 운화병원과 성립은 여기 있는 모든 의사에게 방대한 거물이라 손쉽게 등이 터질 수 있었다.

“끝났으니 됐다. 사람 구했으니 됐어.”

항학명은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재빨리 달려나가 능연이 수술복 벗는 걸 도왔다

“선생님이 안 도와주셔도 돼요.”

왕가를 도와 거즈를 확인하던 순회 간호사가 냉큼 나와서 하는 말에 항학명은 어수룩하게 웃어 보였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거든! 이런 걸 누가 하고 싶어 해.

“특별 케어 병실 있어?”

팔채향 병원의 조건을 아는 능연은 ICU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항학명은 고개를 흔들고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특별 케어 설비도 없는걸. 저기······. 저 환자, 특별 케어 필요해?”

“간 절제 후에는 원래 ICU로 가야 하니까. 후우, 없으면 병실 하나 정리해줘.”

걱정 가득한 항학명을 바라보며 능연도 한숨을 내쉬었다.

“어! 어! 알았어.”

항학명은 연신 대답했고, 능연도 따라 나갔다.

특별 병실이 ICU의 하위 버전이라면, 지금 새로 정리할 특별 병실은 하위 버전의 하위 버전인 셈이다.

항학명이 앞장서서 병원 2층으로 능연을 안내했다.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병실 문이 2층 계단 쪽부터 열 개쯤 쭉 이어졌다.

“어느 방이 그래도 깨끗할까?”

길게 늘어선 병실을 바라보며 능연이 다시 물었다.

“병실은 다 비슷하지.”

항학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멍청하게 웃는 모습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가까운 병실로 들어갔다.

“여긴 안 돼, 안 돼.”

항학명이 재빨리 막아서는 모습에 능연이 미간을 좁히고 그를 바라봤다.

“그게······. 이 병실은······. 환자 회복이 느려.”

능연이 두 말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항학명은 순순히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가기만 하면?”

“아니, 대부분 그래. 여기만 들어가면 회복이 느리더라고. 상처도 아무리 해도 잘 낫지 않고. 우리도 이유를 모르겠어.”

능연은 겉보기에 정상으로 보이는 병실을 훑어볼 뿐 추궁하진 않았다.

이 병실 환자가 회복이 느리다는 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사건 해결하러 온 것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런 외과 미신은 팔채향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병원에 있는 법이다.

“그럼 다른 방.”

능연은 망설이지도 않고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항학명은 이번에도 실수할까 봐 다급하게 병실 하나를 지정했다.

이어서 병실을 비우고 새로 소독하고 배치하는 일만 남았다.

항학명은 이런 쪽으로 능력이 있는 편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일을 마무리했다.

비슷한 시간에 깨어난 환자는 바로 특별 병실로 보내졌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결과 보고도 잘하시고요.”

환자가 안정된 걸 확인한 좌자전이 다시 채경을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의 주름은 기름이라도 바른 듯 햇살 아래 반짝반짝했다.

오후, 공기 중에 습기가 조금 가시면서 안개를 뚫고 나온 햇살이 밝게 빛났다.

더러운 지프 차 두 대가 부모도 못 알아볼 소음을 내면서 거리 저쪽에서 서서히 달려왔다. 뒤뚱대는 그 모습이 마치 공원의 오리와도 같았다.

지프 차가 운화 시 논평 구병원 팔채향 분원 나무 팻말 아래 멈춰 서자, 일행 6명이 줄지어 차에서 내렸다. 지프차처럼 뒤뚱대는 사람들은 당장에라도 응급실에 실려 가도 좋을 정도로 창백했다.

“환자는 별일 없을 겁니다. 다들 긴장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서 봅시다.”

첫 번째 차에서 내린 성립 부주임 의사는 살짝 더러워진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향 위생병원에서 팔채향 분원까지 오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중간이 험난해서 다들 몇 번이나 내려서 차를 밀어야 했다.

환자 보호자가 입은 옷은 아예 진흙투성이였고, 표정과 눈빛은 더욱 초조해 보였다.

“수술은 순조롭게 잘 됐습니다. 제가 모시고 가죠.”

책임지고 손님을 맞이하러 나온 좌자전은 모두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와 ‘특별 병실’로 향했다.

다른 환자들이 머무는 6인실에 비해서 특별 병실엔 지금 환자가 셋밖에 없었고, 간호사 하나가 구석에 앉아 상태를 기록하면서 환자 상태를 케어했다.

“환자는 별일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간단하게 환자 상태를 살핀 성립 부주임은 살짝 표정이 변했다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태도로 환자와 환자 보호자를 위로했다.

수술도 끝났고, 환자도 잘 누워있는 걸 본 환자 보호자 역시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 주임님 정말 감사해요.”

“온 가족을 대표해서 선생님 온 가족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별일 없으면 다행이죠. 헬기 값도 아깝지 않네요.”

성립에서 온 정 주임은 보호자가 뭐라고 하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환자가 괜찮으니 다행입니다. 어서 환자 보고 이만 병실에서 나갑시다. 일부러 특별 병실로 꾸민 것 같은데, 우리도 규칙을 지켜야죠. 환자분들도 규칙을 잘 지켜야 빨리 회복됩니다.”

특별 병실에 있던 선임 간호사가 저도 모르게 정주임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같은 병원이 아닌데 그 정도면 체면을 챙겨 준 셈이었다.

보호자는 고개는 끄덕였지만, 여전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주임은 여전히 미소 지은 채 곁에 있는 채경에게 눈짓했다.

“자네, 따라 나오게.”

채경은 안색이 변했다가 고개를 치켜들고 상대를 따라 특별 병실에서 나갔다.

“담배 피울 만한 곳 없나?”

부주임은 채경보다 겨우 한 등급 높지만, 치료 팀 팀장이니 정당히 상급 의사였다.

다른 주임들이 말은 많고 일은 못 하는 채경을 거두기 싫어해서 경력이 비교적 짧은 그에게 던져준 것이다.

욕먹을 것으로 짐작한 채경은 말할 의지도 잃고 끽소리 없이 앞으로 걷다가 코너 쪽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정 주임은 정작 말을 해야 할 때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안색이 변했다.

그를 따라 코너를 돈 정 주임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들고 불을 붙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비품실’이라는 세 글자를 봤다.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화를 누르고 담배를 집어넣었다.

“안 피워요? 그럼 뭐하러 이렇게 멀리 온 겁니까?”

채경이 오히려 얼굴을 찌푸렸다.

“비품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미쳤냐? 아, 됐고.”

정 주임은 바로 손을 휘휘 내저었지만,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하는 채경은 아무렇지 않게 도발했다.

“사무실도 금연인데 매일 피우면서요.”

“그게 같냐?”

“담배 안 피우는 우리로서는 같습니다.”

정 주임은 이를 악물며 ‘멍청이랑 말싸움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용건을 꺼냈다.

“환자, 본원으로 보내라고 했잖아. 왜 능연한테 수술을 넘긴 거지?”

“환자를 따라 팔채향 분원으로 와서 운화병원이 이 수술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안 되면 본원으로 보내라고 하셨죠. 그런데 운화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다니,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채경이 어깨를 으쓱하며 본인은 책임이 없음을 나타냈다.

“사람 말귀 못 알아들어? 내가 그런 뜻으로 말했어?”

정 주임은 화가 나서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말씀하신 그대로 반복한 겁니다. 그때 그 말 들은 사람도 여기 있는데요.”

“나는······.”

정 주임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나는 팔채향 분원에 들렀다가 환자를 본원으로 보내라는 말이었지. 알겠어? 누가 운화병원 사람한테 수술 넘기랬어?”

“저한테 책임 지우지 마세요!”

채경이 꽥 고함쳤다.

“처음에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고요. 왜요? 능 선생이 수술을 끝내고 체면이 안 서니까, 저한테 이러시는 겁니까?”

정 주임은 손 다칠까 봐 걱정되는 것만 아니라면 주먹을 휘두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는 숨을 몇 번 몰아쉰 후 겨우 참아내고는 다시 물었다.

“설비를 많이 옮겨 왔다고?”

“네. 사진 보내드렸잖습니까.”

채경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꾸했는데, 매번 듣기 거슬리는 쪽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수술은 순조로웠다고?”

“네. 그 능연······능 선생 말이죠······.”

채경은 감탄이 터져 나올 것 같았는데, 성립 의사로서 그를 칭찬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 주임도 바로 눈치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담담하게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북경에서 출장 수술도 하는 사람인데 설비 완전한 수술실에서 간 절제 하나 하면서 실수하진 않겠지.”

채경이 큭큭 웃었다.

정 주임은 갑자기 채경이 짜증 났다. 입만 산 게 아니라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났다.

“채 선생.”

담뱃갑을 꾹 누르는 정 주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말씀하세요.”

채경은 가짜 웃음을 지으며 마주 봤다. 그도 구를 만큼 굴러서, 별로 무서울 게 없었다. 정 주임은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는 미소를 지었다.

“밑으로 내려보낼 의사를 고르라는 지시가 내려왔네. 우리 팀은, 자넬 보낼 거야.”

“어디로요?”

채경의 눈꺼풀이 튀었다.

“황채.”

정 주임은 그 단어를 내뱉으며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채경은 얼이 빠졌다. 황채는 팔채향에서도 산 구석에 있는 곳으로, 수술실에서 구른 의사가 그런 의무실도 없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가서 열심히 하게.”

정 주임은 긴말 없이 자리에서 돌아섰다.

채경은 정 주임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능 선생 수술, 봉합만 봐도 주임님보다 훨씬 잘하더라고요.”

본인 기술 중에 봉합 스킬을 가장 흡족해하는 정 주임은 순간 걸음을 멈췄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채경은 잠시 통쾌함을 느꼈지만, 그 통쾌함 뒤에 공허함이 이어졌다.

“또 말 잘못 했네.”

채경은 문득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코너를 돌아 나온 정 주임은 서서히 걸음을 늦추다가 멈춰 서서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2층 병실로 돌아갔다.

환자 보호자는 벌써 쫓겨서 돌아갔고, 안에 있던 간호사가 예의를 갖추고 인사했다.

“상처 좀 보겠습니다.”

정 주임은 아까처럼 온화하고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환자의 옷깃을 들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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