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25화 (606/877)

“정 주임님, 무슨 일이신가요?”

특별 병실 선임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회 간호사로 오래 일한 그는 많은 의사에게 욕을 먹어본 성과가 있는 덕분에 주임 밑의 의사 앞에서는 용기가 플러스 됐다.

“환자 회복 상태 좀 보려고요.”

정 주임은 조금 뜨끔해서 우선 깔끔하게 드레싱 된 거즈를 살폈는데 스며 나온 액체나 혈액이 없는 걸 발견하고 눈썹을 치켜떴다.

“이제 막 수술 끝난걸요. 나중에 다시 오세요.”

선임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나마 예의 갖춘 태도였지만, 눈빛은 수술실에서 초짜 의사의 머리카락이 모자를 비집고 나온 걸 봤을 때처럼 살짝 사나웠다.

정 주임도 초짜 의사 생활을 했었기에, 바로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이제 돌아가야 하니 말입니다. 몇 가지만 확인하고요.”

선임 간호사는 대답 없이 곁에 서서 정 주임을 빤히 봤다.

“몸은 어떤가요?”

정 주임은 어딘가 뜨끔한 마음으로 시선을 환자에게 돌렸다.

“좋아요······.”

깨어난 지 얼마 안 되는 환자는 힘겹게 입술을 움직이면서 대답했다.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 주임의 경험으로 보면, 간 절제 수술 당일 눈 뜨는 것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정 주임은 환자의 안색을 살피고는 침대 발치에서 기록지를 꺼내 힐끔 본 다음 경계심이 무한대로 늘어난 간호사를 향해 물었다.

“수술 동영상 찍었나요?”

“여 선생님한테 직접 확인하세요.”

“여 선생은 어디 계실까요?”

“등 뒤에요.”

간호사의 대답에 서서히 뒤를 돈 정 주임은 아래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요!”

정 주임은 무의식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거뒀다.

“수술 동영상 보시게요?”

여원은 딱히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운리 동영상 중계 범위가 늘어나면서 능연의 잠재 경쟁자도 늘었다. 일반 외과 의사는 ‘일반’ 도전자라 여원이 혼자 처리해도 무리 없었다. 게다가 창서성 내 도전자는 정말로 하나도 위협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 주임은 자기 야심이 드러날까 봐 걱정하면서 우선 하하, 하하하 다섯 번 웃고 말을 이었다.

“내가 이쪽으로 보낸 환자라서, 조금 걱정이 돼서 말이지. 물론, 환자 증상 말입니다.”

“준비해드릴 테니 알아서 보시면 됩니다. 영상 복사 안 되고요, 찍어서 가지고 가는 것도 안 됩니다. 괜찮으시겠죠?”

여원이 숙달된 모습으로 말했다. 정 주임은 어쩐지 젊었을 때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원은 정 주임을 데리고 나가 구석으로 가서 한참 빙빙 돌다가 마지막으로 두꺼운 천 커튼이 드리워진 방에 도착했다.

TV 맞은편, 문을 등진 방향에 허름한 가죽 소파와 천 소파가 삐뚤빼뚤 놓여 있었는데, 의외로 벌써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문 닫으세요.”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무거운 숨소리, 그리고 몸이 떨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아직 1시간 정도 더 남았네요.”

여원이 앞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정 주임은 잠시 망설였다. 방 안 분위기 때문에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TV 화면에 이끌려서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무슨 일 있으면 절 부르시고요.”

여원은 장막을 내리고는 장막 아래로 편안하게 자리를 떴다.

입을 뻐끔거리던 정 주임은 결국 따라 나가지 않고 구석 자리를 찾아 앉았다.

끼익.

얼마나 오래됐는지 모를 소파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못마땅한 듯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돌아봤다.

정 주임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신분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모니터에 컬러 화면이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정 주임도 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했다.

익숙하고 낯선 인체가 렌즈가 돌아감에 따라 변화했다.

매우 전형적인 간 절제 수술이었기에 정 주임은 유사한 수술을 매우 많이 봐왔다. 가끔 각종 회의에서 볼 때, 굳이 계속 볼 이유가 없어서 웃으면서 돌아설 때도 많았다.

그러나 오늘은 낡은 소파에 늘어져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수술이 너무나 순조로워서 보는 사람도 멈출 수가 없었다.

영상은 마치 잘 준비된 퍼포먼스처럼 리듬감 있게 변환하면서 모든 디테일이 거의 완벽해서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정 주임은 22년 전 어느 밤처럼 몸이 점점 낡은 소파로 빠져들었다.

철컥.

누군가 문을 다시 열었다.

이번엔 정 주임도 다른 사람과 같이 뒤를 돌아보고 매서운 눈빛을 쏘았다.

“문 닫아요.”

정 주임도 다른 사람과 같이 고함쳤다.

“아······.”

어두컴컴한 환경으로 이제 막 들어온 녀석도 뜨끔해 보였다.

끼익.

그가 자리에 앉자, 허름한 소파가 다시 신음했다.

정 주임은 짜증이 나서 휙 고개를 돌렸다. 눈썹을 치켜들며 무심결에 ‘이 주임님!’ 하고 부르려다가 겨우 참았다.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나눌 환경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다른 사람은 다 주임이라고 불러도, 병원 같은 엄격한 체계에서 부주임인 정 주임과 주임인 이 주임은 천차만별이었다. 이 주임이 그와 안부를 주고받고 싶을지 아닐지도 모르고 말이다.

순간 정 주임은 팔채향에 파견된 것도 아닌 성립 본원 의사인 이 주임이 왜 갑자기 온 건지, 그것도 이런 곳에 온 건지 궁금해졌다.

“대단한 새끼네.”

이 주임은 이런 검은 방에서 영상을 보는 암묵적인 규칙을 잘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는 영상이 재미있어지자 거리낌 없이 감탄을 내뱉었다.

정 주임은 저도 모르게 무시하는 눈으로 그런 이 주임을 바라봤다.

정 주임이 있는 곳에서 마침 이 주임의 몸 반이 보였다. 살짝 몸을 튼 이 주임이 상반신을 뻣뻣하게 세우고 팔과 손가락을 쉴 새 없이 흔들고 있었다.

정 주임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는 눈으로 그런 이 주임을 바라봤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재주였다.

이런 곳에서 영상을 따라 수술을 모의한다는 건 매우 집중한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정 주임도 양손에 힘을 빼고 동영상에 나오는 장면처럼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작은 방 안에 작은 열열함과 작은 열성과 작은 열정이 솟구쳤다.

“다 보셨죠?”

장막이 휙 걷히더니 곧바로 불이 켜졌다.

“아이고.”

방 안에 순간 아쉬운 탄식이 터졌다.

정 주임도 고함치면서 곁에 있는 이 주임의 탄성을 들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마주 봤고, 바로 상대의 손을 보고는 서둘러 얼굴을 돌렸다.

“팔채향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정 주임은 방에서 나와 한참 만에 보는 햇살 아래로 나선 후에야 이 주임에게 물었고 이 주임은 싱긋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운화병원이 팔채향에서 계속 이름을 날리니 위에서 가보라고 해서 왔지.”

“아······.”

“능연을 보니 참 신통방통하더구만.”

“결론은요?”

“욕 나올 정도로 잘 하더구만!”

이 주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방향을 개척해야겠어.”

“새로운 방향이요? 뭐요?”

“공공 위생.”

이 주임이 확고하게 대답했다.

“채 선생, 자네 황채로 가는 것 좀 기다리게.”

정 주임은 식당에서 순조롭게 채경을 찾아냈다.

“황채도 못 가게 하려고요? 아예 세상 구석으로 귀양 보내시지 그래요. 됐습니다. 요즘 섬 투어가 유행이더구만요. 어디든 가지요, 뭐.”

채경은 입안 가득 밥알과 반찬을 씹으며 우물거렸다.

“누가 귀양을 보낸대! 말은 제대로 해야지.”

정 주임의 말투가 조금 엄숙해졌다.

“귀양은 귀양이죠. 일은 벌이고 인정은 안 한답니까?”

채경은 본인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높였다.

“황채까지 가는데, 제가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황채보다 더 나은 데가 있긴 한지, 그건 알고 싶네요. 하하하.”

정말로 무서울 게 없었다. 어차피 정직원이니 지방 발령이 마지노선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황채는 이미 최악의 유배지였다.

정 주임도 그 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아예 그를 잡지 않기로 하고 식탁 옆에 서서 어제 막 배운 매서운 눈빛으로 채경을 바라봤다.

“말씀하십쇼. 어디로 가면 됩니까?”

입이 방정이라 그렇지, 어디가 모자란 것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속이 후련해진 채경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이 주임님이 우리가 팔채향에서 자리를 못 잡았다고 일단 기초부터 튼튼히 세워야겠다고 제안하셨네.”

정 주임은 일단 밑밥부터 깔고 다음 이야기를 이었다.

“일단 논평 구병원 팔채향 분원에 남아서 공공 위생 부문을 일으키게. 우리 성립 이름으로 말이지.”

채경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제가 공공 위생을요? 전 임상의입니다.”

“지금 팔채향 환경이 우리가 공공 위생을 펼치기 좋단 말이지. 운화병원보다 먼저 우리가 성과를 내는 거야. 좋은 거 아닌가? 안 그래?”

정 주임이 빙긋이 웃었다.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을 테니, 채경에게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저는 임상의입니다. 공공 위생을 시키시면 안 돼죠.”

채경은 온몸에 싫은 티를 내면서 다시 반복했다.

“임시로 조금만 하면 돼. 여기 정리되면 사람이 올 거야.”

“안 오면요? 제가 덤터기 쓰는 거 아닙니까.”

채경의 입바른 소리가 제때 효과를 발휘했다.

“이건 뭐 신종 덤터기도 아니고. 팔채향 공공 위생을 누가 하겠습니까? 본원에서 사람을 보낸다고요? 저만큼 만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채 선생, 위에서 자네에게 내린 임무일세. 흥정하거나 상의하는 게 아니란 말일세. 정말로 늙어 죽을 때까지 황채에 있고 싶은 건가?

정 주임은 미간을 단단히 좁히면서 다시 한번 엄숙하게 말했다.

“공공 위생을 하느니 차라리 황채에 가겠습니다.”

“생각 끝냈단 말이지?”

정 주임의 낮은 목소리가 전해졌다.

“저는······. 잠시만요. 황채 간다고 한 건 아닙니다.”

채경은 이게 구덩이를 파놓고 뛰어 들어가길 등 떠미는 상황은 아닌지 생각에 잠겼다.

“황채냐, 공공 위생이냐. 선택하게.”

“싫습니다.”

“자네 입으로 한 말이네.”

“잠시만요, 제가 뭐라고 했다고요.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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