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31화 (612/877)

위가우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헬리콥터에서 내려서 불어오는 바람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하얀 가운이 펄럭여도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마중 나온 사람도 없나?”

위가우는 병원에서 새로 만든 헬리콥터 착륙장을 거처 건물 후문에 도착했다.

“여기 있잖아요.”

여원의 목소리는 낮았고 두 눈은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 여 선생.”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위가우도 능연과 여원은 제대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싱긋 웃고는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여 선생은 사람 얼굴도 안 보고 얘길 합니까?”

“냄새 맡느라요.”

여원의 담담한 말투에 경계가 묻어 있었다.

잠시 멈칫하던 위가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향수 냄새 좋죠? 그죠?”

여원은 속으로 인삼은 삼계탕을 끓일 때 냄새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가 막 도착한 걸 생각해서 굳이 반박하지 않고 입만 삐죽이고는 앞에서 길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느낌으로는 여원은 위가우를 매우 비호감이라고 생각했다.

말투가 거만한 건 둘째치고, 지난번에 만났을 때 위가우는 능 팀의 논문을 훔치려고 했었다. 의견은 달랐지만, 훔치려고 한 건 훔치려고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 원사 밑에 있는 위가우는 원래부터 공격성이 강한 부류였다. 지난번에는 도장 깨기 여행하면서 각 지방 병원에 위세를 떨쳤는데, 이번에 지원하러 왔다고 해도 사실이 어떨지는 모를 일이었다.

적 원사 같은 일류 의사에게 지방 병원 의사는 필요할 때 말만 들으면 되는 존재였다.

위가우 역시 같은 태도였고, 땅바닥 표시선을 따르듯이 여원을 따라 잠시 걷다가 갑자기 물었다.

“치료팀 하나 꾸릴 여유 인원 있을까요? 여기 오겠다고 자원한 의사가 없어서.”

잘난 척이 넘치는 말이었지만, 사실상 그는 정말로 잘난 척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대부분 병원에서 위가우는 그런 대접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는 지금 요구가 스탠다드였다.

여원은 왜 좌자전이 위가우를 마중하는 일을 자기를 시켰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연문빈을 보냈다면, 저 인삼 베이비는 잘못하면 응급실에 실려 들어가 오늘내일할지도 모른다.

“요즘 좀 바빠서 당분간 여유가 없을 것 같네요.”

여원이 완곡하게 대답하자 위가우가 고개를 숙여 그를 바라봤다.

“이제 내가 왔으니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원이라고 하는 거죠.”

여원은 피식 웃으면서 속으로 ‘능 선생 시중드느라 바쁜 건데, 네가 그걸 지원한다고?’하고 생각했다.

“무슨 수술인가요? 여전히 간 절제?”

내키지 않아 보이는 여원의 모습에 위가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전히?”

여원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위가우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조금 들었다. 여원의 실루엣이 조금씩, 서서히 거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가 높아지고, 허리가 길어지고, 발꿈치도 높아졌다.

“저도 요즘 간 절제 수술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간 절제 수술이라면 내가 도움이 될 겁니다.”

위가우가 여원을 살짝 피하면서 옆으로 걸었다.

“간 절제 수술을 했다고요? 위 선생은 심장외과 아닌가요?”

여원은 보폭은 좁지만 빠른 걸음으로 위가우를 바짝 뒤쫓았고 위가우는 묘하게 당황했다.

“심장외과뿐만 아니라 복강경도 자주 합니다.”

“그래서, 그쪽 수술 범위가 우리 능 선생이랑 겹친다는 거네요.”

여원이 냉정하고 평정하고 평온하게 위가우를 바라봤다.

“겹친다라······. 서전 수술 범위가 겹치는 건 정상 아닌가요? 우리가 같은 병원 의사도 아니고.”

“그건 그러네요.”

여원이 활활 불타는 눈빛으로 위가우를 바라봤다.

위가우는 눈빛을 살짝 피하다가 갑자기 뭔가 의식한 듯 다시 담담해져서 고개를 쭉 빼고 위에서 아래로 여원을 내려다봤다.

“사실이 그렇죠. 간 절제하는 의사가 어디 하나입니까? 안 그래요?”

“잘하는 의사는 많지 않죠.”

거기까지 말한 여원은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간 절제 수술하고 싶어요?”

“할 수 있으면 좋죠.”

위가우가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수술실 하나, 팀 하나 주면 당신 일거리 반으로 줄이는 것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만.”

거기까지 말한 위가우의 자신감도 다시 돌아왔다.

확실히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위가우는 젊은 나이에 심장외과에서 이름을 날렸다. 유명한 스승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본인 소질이 우선이었다.

한편으로는 간 절제가 일반 외과의 정상급 수술이라고 해도 심장외과의 정밀함과 위험에 비하면 한층 떨어졌다.

물론 모든 수술을 섬세하게 하고 위험을 컨트롤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편도선 절제, 폐색전도 그런데 대형 수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위가우도 전에 능연의 수술을 봤고, 그의 간 절제 실력을 인정했지만, 그건 설비가 완벽한 수술실에서 수술 전 준비가 완벽하게 된 택일 수술이었다.

재난 상황인 팔채향은 능연에게 그런 조건을 채워줄 수 없으니 임기응변하며 자기 경험과 팀 관리 능력을 운용하여 낯선 환경, 낯선 설비, 그리고 낯선 증세와 합병증에 새로 적응해야 할 것이다.

위가우는 그런 것에 능숙했다.

최근 한동안 위가우는 소방대 대장을 트레이닝 모드로 잡았었다.

“우선 수술실 좀 봅시다. 맞다. 그 김에 능 선생한테 인사도 하고요.”

위가우 얼굴의 웃음은 분명히 승리를 사전에 자축하는 웃음이었다.

여원은 그런 그를 힐끔 흘겨봤다. 지금 그의 확실한 생각을 알 수 없으니 일단 길 안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앞에 가는 여원이 점점 바닥 표지와 일체화되는 걸 본 위가우도 마음이 침착해지고 안정되었다.

그는 여기 오기 전에 이미 팔채향의 자료를 살폈고, 방안을 설계한 다음 예비 방안까지 추가했다. 그러니 지금은 증상에 따라 처방을 내리면 그만이었다.

그런 생각에 기분 좋아진 위가우의 걸음도 경쾌해졌다.

“조심해요! 부딪히면 안 돼요!”

의료진 한 명이 계단 코너 측에서 위가위를 막아섰다.

“어디에 부딪히면 안 된다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위가위의 시선이 앞쪽에 둥근 자동 기기에 사로잡혀서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Bodytom?”

“네. 새로 들어온 기기죠.”

여원이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이게 얼마짜리 기기인 줄 알아요?”

위가우는 여원이 알기는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고 여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창고 몇 개 살 수 있는 돈이죠.”

어째서 가격 기준이 창고인지는 몰라도, 위가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과 눈빛이 계속해서 아까 스쳐 지나간 이동식 CT를 향했다.

“잠시만요.”

연문빈은 팔뚝에 힘을 주고 조심스럽게 이동식 CT기를 밀었다.

올 뉴 Bodytom은 미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운화병원처럼 평탄한 바닥이었으면 혼자서도 옮길 수 있는데 안전을 위해서 두 사람이 앞뒤에서 밀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팔채향 구조는 당연히 삼갑병원과 비교할 수 없긴 하지만, 이동 CT기를 기본적으로 고정용으로 쓰면서 중증 환자나 있을 때 하루에 잠깐 옮겨서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기능의 30%를 활용한 셈이었다.

위가우는 고찰하는 눈빛으로 Bodytom의 모든 디테일을 심사했다.

최첨단 CT기인 Bodytom을 위가우는 이미 몇 년 전에 북경에서 사용한 적이 있었고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동식 CT기는 지금까지도 대중화되지는 않아서 전국 30개 넘는 성 중 적어도 절반은 한 대도 없고, 전국 대다수 의사는 이 기기를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위가우는 이 기기에 익숙한 자신은 진품과 짝퉁을 구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동식 CT에 짝퉁이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팔채향 같은 곳에서 짝퉁을 사용한대도 너무나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중고품이거나.

보고 또 보고, 살피고 또 살피는데 옆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위가우가 고개를 돌려보니 중년 의사 하나가 그를 바라보며 맹하게 웃고 있었다.

“처음 보죠? 이동식 CT. 하이테크 기기라 말도 안 되게 비싸요. 재미있어 보이죠?”

위가우가 고개를 돌려도 중년 의사는 미안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웃음을 거두고 동정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본 적 있습니다.”

“봤다고? 본 적이야 있겠지. 난 용상(龍床)도 본 적 있는데? 됐다, 이런 말 뭐하러 하냐. 하아. 한마디만 하지요. 당신 같은 젊은 사람들은 말이야, 뭐 본 게 많을 순 있겠죠. 하지만 어쨌든 시골로 내려오게 된 거, 다시 높이 날 거니 뭐니, 그러지 말고 할 일 합시다. 됐습니다, 여기까지. 내 입이 방정이라 칩시다. 괜한 소리 했네.”

이 중년 의사는 바로 채경이었다. 평소에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 중 하나가 초짜 의사였다. 레지던트 훈계하고 훈련의와 실습생 혼 좀 내고 그러면 기분이 조금 좋아져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채경은 그런 방법으로 버티면서 일을 그만두지 않았는데 유일한 후유증이 바로 그렇게 십 년, 이십 년 흐르는 동안 그의 심심풀이 초짜 의사들이 하나씩 주치의, 부주임 자리에 올라서 일반 외과를 벗어나면 그의 생존 환경이 험난해진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십 년 후에는 채경도 은퇴해야 한다.

그래서 잘생긴 의사가 넋을 놓고 있는 걸 본 채경은 내친김에 ‘충고’ 한마디 한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반항해서 본인의 기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말을 끝내자마자 그 자리를 떠났다.

이런 딱 봐도 잘생긴 의사를 보면 가끔 기분에 영향을 받곤 한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채경은 자리를 벗어난 다음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위가우는 벌써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게다가 고개를 숙였을 때 여원이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걸 봤을 땐 간이 다 아팠다.

그러나 프라이드 때문에 발작할 수 없었다.

계속 길 안내하는 여원의 발걸음이 한결 경쾌해졌다.

“들어가시죠. 씻고 나서 수술실로 능 선생 찾아오세요.”

여원은 오늘의 관리 간호사 유 간호사에게서 수술복과 열쇠 등 물건을 받아 위가우에게 건넸다.

“우리 지금 연속 수술 중이라, 무균 조작에 대한 능 선생의 요구가 까다롭습니다. 알아서 챙기세요. 순회 간호사한테 쫓겨나기라도 하면 창피하잖아요.”

“알겠습니다.”

위가우가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여원은 그가 어수룩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은 향수 뿌리지 말라는 소리예요. 우리 병원 의사도 아니라서, 간호사가 당신 체면 생각 안 할걸요.”

운화병원 역시 지방 정상급 병원이라 일 년 내내 각종 수련의가 수백 수천 몰려든다. 능연의 수술실엔 더 많이 몰려들고. 거기에 능연의 조건이 까다로우니 능연과 자주 조를 이루고 능연에게 익숙한 간호사들은 엄격해야 할 순간엔 정말로 엄격하게 군다.

“에르메스 젠시앙 블랑쉐는 향이 연합니다. 수술 진도에 영향을 줄 정도도 아니고요.”

위가우는 입가가 실룩거리는 걸 느끼며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그건 당신이 집도할 때 얘기죠. 이따 욕먹어도 난 몰라요.”

여원은 ‘나는 알려줬다’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고 위가우는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안 뿌려도 냄새는 날 거예요.”

“예?”

“오래 뿌려서 그런지, 향이 남아 있어요. 샤워한다고 다 빠지진 않을 겁니다.”

위가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해명하는 말에 여원은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절여진 거네요!”

순간 위가우의 얼굴이 바로 굳으면서, 서둘러 샤워실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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