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36화 (617/877)

능연은 수술실에서 나와 다시 손을 씻고 목을 긁적이고는 빈둥빈둥 휴식 구역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이 주임도 똑같이 나른한 모습으로 옆에 앉았다.

그는 공공 위생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일반 외과 주임을 병원에 그냥 두고 놀릴 이유는 없었다. 능연이 안 하는 수술은 모두 그에게 넘기면 되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반 외과는 원래 수술 범위를 제일 많이 커버하는 진료과였고, 팔채향 같은 병원에서 할 만한 수술은 주로 정형외과 아니면 일반 외과 수술이었다. 뇌 손상 같은 복잡한 수술은 현장에 신경외과 전문가가 있다고 해도 설비 문제로 운화, 심지어 북경으로 보내야만 구할 수 있다.

다만 능연의 수술 빈도와 비교할 수 없는 이 주임이 이렇게 지친 이유는 역시나 나이 때문이었다.

능연의 젊은 얼굴을 힐끔 본 이 주임은 속으로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길 뚫렸다더군.”

“오, 잘 됐군요.”

능연은 정신이 조금 들었다. 길이 회복됐으니 일단 의료용품 반입이 편해질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수술실에서 매일 쓰는 거즈는 지금 거의 떨어져 갔다.

“언제쯤 돌아갈 생각인가?”

“지원으로 온 거 아닌가요? 길이 뚫렸다고 돌아갑니까?”

떠보듯 묻는 이 주임의 말에 능연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이 주임은 다급히 대답하면서 자세도 고쳐앉았다.

“그럼 다 끝날 때까지 있을 생각인가?”

그로서는 능연이 팔채향에 있는 건 매우 편안했다. 공공 위생 일은 위에서 지지하지 않고 이해하는 사람이 없고 의사들이 협조하지 않을까 봐 제일 걱정인 업무였다. 사실상 정말로 위에서 지지하지 않고, 이해하는 사람 없고, 의사들은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이 주임은 이 아이템을 추진하고 싶었고, 능연이 떠나면 강대한 지지자를 잃는 셈이었다.

“수술 좀 더 하다가 돌아갈 생각이라서 아직 급할 게 없습니다.”

빙빙 돌리는 법을 모르는 능연은 있는 대로 대답했다.

그의 완벽한 수술 퀘스트는 지금까지 겨우 30 몇 건 완성했고 하루로 계산하면 초반엔 하루에 고작 두어 건, 지금도 겨우 서너 건이라 다섯 건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절반 이상이 완벽한 수술 기준에 들지 못했다는 뜻인데 능연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건 너무 완벽하지 않아!

이런 상황에 능연이 서둘러 운화에 돌아갈 리가 없었다.

능연의 상황을 모르는 이 주임은 신이 나서 싱글벙글했다.

“잘됐군. 나도 한참 있을 생각이거든. 그럼 함께 팔채향 임무를 잘 해보자고.”

능연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함께 하자는 이 주임의 말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공공 위생이든 원내 감염이든 지극히 무미건조한 작업이다. 이 주임이 없었다면 능연이 시간을 내서 관련 업무를 해야 했을 테고 그러려면 조수 두어 명은 필요했을 것이다.

알아서 하려는 의사가 있는 데다가 그것도 상당히 잘 할 수 있는 주임 의사라면 능연에게도 도움이 됐다.

“도로 정리되면 진단의학과 문제도 해결되겠네요.”

능연은 언제나 본인만의 사고방식이 있으니, 지금 수술 조건이 모두 갖춰진 상태에서 다음을 원하는 것도 당연했다.

팔채향 분원이 메인 기지가 아니라는 건 능연이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메인이 아니라도 상관 없었다. 그로서는 침대, 환자가 있고 수술실이 있으면 솜씨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 주임은 능연이 협력 이야기를 하는 줄만 알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진단의학과는 간단하지. 내가 본원에서 몇 명 데리고 오면 되니까. 실력이 상당한 친구를 알고 있네.”

“여기서 키우는 게 제일 좋긴 하죠.”

아까부터 이야기를 듣던 항학명은 중요한 포인트가 나오자 허둥지둥 나섰다.

이 주임은 능연을 한 번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날도 생각하면 진단의학 의사를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새 기기도 구매해야지. 속도와 정확도 문제도 있으니 말이야.”

“이번에 각계에서 좋은 기기를 많이 보내줬으니 최대한 쟁취해 봐야죠.”

설비를 구매하는 것보다 얻는 게 상대적으로 간단했다. 항학명도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모품은 운화병원에서 가지고 오면 됩니다.”

능연은 운화병원에서 진작 2색 장갑을 썼었는데, 팔채향에 와서는 장갑을 겹쳐서 쓸 뿐, 2색 장갑까지 쓸 수는 없었다. 이제 길이 뚫렸으니 이 문제와 속옷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빠른 진단, 다중 포인트 협조, 완벽한 프로 방역.”

능연의 힌트를 얻은 이 주임은 일단 본인의 총결점을 되짚으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한참 대화를 마친 능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 주임은 무심결에 따라 일어나 그를 배웅하고는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실소했다.

능연은 수술실로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육로가 뚫렸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수술실 조건이 더 좋아질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예비 혈장과 각종 약품이 충분해지면 환자들도 선택이 더 많아진다.

능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슬렁어슬렁, 병원 밖으로 나갔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방향을 따라 거리 중심으로 향했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고 뒤이어 작은 흰 신발이 능연 앞에 나타났다.

“쇼핑 가게요? 같이 가요.”

전칠의 미소는 거리 양쪽을 채운 사람들보다 훨씬 전염성이 풍부했다.

능연도 마찬가지로 전염성이 풍부한 미소를 지으며 배를 문질렀다.

“배가 고프네요. 뭐 먹으러 가요.”

“좋아요. 오늘은 많이 바쁘지 않으니까 제대로 먹자고요.”

전칠은 요즘 먹은 세 끼, 그리고 야식 모두 전문 요리사가 만들었다는 걸 잊어버린 듯 환하게 웃었다.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칠과 나란히 걸어가면서 풍경도 구경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기분이 저도 모르는 새에 명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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