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41화 (622/877)

데브리망을 한 건 끝낸 능연은 자리로 돌아가 휴식했다.

그러자 기자는 바로 촬영기사를 끌어당겨 그에게 다가가 있는 말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있는 말’은 기자가, ‘없는 말’은 능연이 맡았다.

시간을 본 좌자전이 그쪽으로 다가가 막아서면서 보도 자료를 넘기자 기자는 아쉬움 가득한 모습으로 자리를 떴다.

이 주임은 부럽기도, 속이 쓰리기도 한 기분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성립 일반 외과에서 과 주임이 될 기회가 없었다. 일반 외과 주임은 안 되더라도 새로 공공 위생과를 설립해서 과 주임이 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오랜 의사 생활을 해온 의사들의 인생 목표는 다 다를 수 있어도 사업 목표는 거의 비슷했다. 과 주임을 마다할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대다수 의사는 그럴 기회가 없다고 해도, 이 주임 같은 주임 의사는 과 주임까지 정말로 거의 한 발짝 차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등 뒤에 조력자가 없었다.

이 주임은 응급실을 떠나는 기자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몰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매체 보도는 좋은 조력자가 될 수 있지만, 매체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억지로 보도를 내보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럼 나도 이만 돌아가겠네.”

이 주임은 거기 멍하니 서서 능연 같은 젊은 의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같이 가죠.”

정 주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앞날이 밝은 치료팀 팀장인 그는 이 주임처럼 그렇게 허탈해하진 않았다.

옆에서 잔뜩 기대하고 있던 연문빈도 조용히 한숨을 내쉬면서 근육을 풀고 다시 근육 자랑하는 건강한 의사로 돌아갔다.

“능 선생, 대기실에 이제 환자 없는데, 좀 쉬지 그래.”

좌자전이 능연에게 생수를 건네면서 넌지시 물었다.

“겨우 하나 했는데 환자가 없다고요?”

“없어. 아까 복통 환자 하나 있었는데 해결했고.”

의아한 듯 묻는 능연의 말에 좌자전이 쓴웃음을 지었다. 삼갑병원에서 시작한 능연 같은 의사는 의사가 많고 환자가 없는 이런 상황이 어쩌면 신기한 경험일 수 있지만, 좌자전에게는 거의 인생의 전반부였다.

능연은 실망해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잠시 생각하더니 역시 치료팀 단톡방을 열어 메시지를 입력했다.

-진구성 아킬레스건 보건술 수술 전후 기간에 대한 소감

크게도 작게도 토론할 수 있는 내용이라 능 치료팀 내 각 의사의 현재 상태에 어울리는 타이틀이었다.

능연은 자신이 낸 제목에 꽤 흡족해하며 핸드폰을 새로고침하면서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 김에 핸드폰 게임도 열어서 예상대로 패배하고는 새 게임을 시작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는 ‘완벽한 수술’ 퀘스트를 생각했다.

간 절제 수술 같은 큰 수술을 완벽하게 하는 건 역시 어렵고, 작은 수술은 수월하게 할 수 있지만, 보상이 겨우 초급 보물 상자일 뿐이라 퀘스트 깨는 데 그리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초급 보물 상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요즘 초급 상자에서 쓸만한 물건이 영 나오지 않아서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능연은 무슨 생각이 난 듯 상자 37개를 눈앞에 불러냈다.

완벽한 수술 퀘스트를 37번 완성하고 받은 보물 상자를 지금까지 하나도 열지 않았다.

스태미너 포션이 넘치기도 했고, 앞으로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상자를 모으고 싶기도 해서였다.

하지만 좀 전에 제시어를 본 능연은 갑자기 상자를 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초급 보물 상자는 크게 고민할 것도 없고, 마침 소수인 37이라서 능연은 손을 흔들어서 상자들을 한꺼번에 열었다.

눈앞에 가득······ 스태미너 포션이 나타났다. 전혀 의외일 것도 없이.

“37개 더!”

능연이 속으로 생각하자 눈앞이 다시 번쩍였다.

스태미너 포션······이 잔뜩 나타났다.

“37!”

시스템은 계속 상자를 내놓았다.

그렇게 네 바퀴째에 드디어 스킬북 하나가 나타났다.

- 단일항목 스킬북: 파생 기능 획득-장천공 보건술(마스터급)

“확률이 낮군.”

능연은 그다지 만족하지 못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더 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장천공 스킬이 장 계열에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장 수술 자체를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서 이 기술은 그저 비축용일 뿐 영원히 못 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에 무더기로 상자를 열고 나니 능연에게 남은 초급 보물 상자는 1,000개에 못 미치는 962개였다. 대부분 환자의 ‘진심 어린 감사’로 받은 것이었고, 일부분만 퀘스트, 그리고 비슷한 수치로 동료의 칭찬으로 받은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문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능연은 자기도 문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 선생은 어디 있습니까?”

여원이 구석에서 머리통을 내밀었다.

“논문 씁시다.”

능연은 알콜겔을 짜서 손을 비비고는 컴퓨터를 켰다.

“어, 어느 쪽으로 쓰려고?”

“요즘 간 절제하면서 생각해둔 게 있어요.”

“간 절제라면 케이스가 제법 모이긴 했지.”

여원도 재빨리 노트북을 켰다.

“복강경과 작은 절개구, 그리고 큰 절개구 간 절제 처리. 더 자세하게 분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능연이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현 병원에서 온 임기가 바로 옆에서 배를 내밀고 차트를 입력하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어지러움을 느꼈다.

심심해서 논문 쓰는 거냐?

니들은 뭐에 대해 쓰겠다고 하면 케이스가 나오는 거냐고.

너무 잘난 거 아니냐?

나는 언제 이럴 수 있을까.

귀를 쫑긋 세운 임기의 귀에 능연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렸다.

“작은 절개구는 단독으로 논문 쓸 수 있어요. 복강경과 큰 절개구는 변함없이 요즘 추세고, 최근에 복강경 하 절개구 수술 꽤 모였죠?”

능연은 생각을 말로 정리하면서 요약본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연달아 며칠이나 수술을 해오면서 능연의 머릿속에도 생각이 가득 쌓였다.

그런 것들은 정리되지 않고 글이 되기 전과, 정리 후 글로 표현하게 되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복습이자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이었다.

-스킬 업 : 그랜드마스터급 간 절제술 달성.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간 절제는 외과 정상급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능연은 전에는 논문을 쓰긴 해도 아무래도 수술을 더 많이 했고, 총체적으로 손을 머리보다 더 많이 썼다.

그런데 이번에 한가한 틈에 기록한 것이 간 절제술을 스킬 업 할 줄은 몰랐다.

마스터급 간 절제만으로도 창서성을 휘어잡고 동네방네 출장 수술 갔던 걸 생각하면, 이제 그랜드마스터급이 되면······.

“시스템, 내 간 절제 스킬 현재 몇 등이지?”

능연은 아예 머릿속에서 질문했다.

-당신이 장악한 그랜드마스터급 간 절제술은 세계 5위, 중국 2위, 창서성 1위입니다.

시스템은 매우 재빠르게 대답했고, 능연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가 기억하기로 처음으로 획득한 그랜드마스터급 스킬은 맨손지혈이었고, 당시 세계 순위는 100등 밖, 국내 순위는 13위였다. 그에 비해 그랜드마스터급 간 절제의 골드 함량은 분명하게 한 랭크 높았다.

이어서 시스템에서 새로운 제시어가 튀어나왔다.

- 보상: 자아 레벨업

- 보상 이유: 스스로 학습을 통해 ‘그랜드마스터급 간 절제’ 스킬 획득

- 보상 물품: 2급 스킬북

능연 앞에 펼쳐진 푸르른 빛 사이로 금박을 두른 스킬북이 숨을 쉬며 빛나고 있었다.

능연은 망설임도 없이 페이지를 펼쳤다.

- 2급 스킬북: 기초 기술 하나를 그랜드마스터급으로 UP!

이어서 외과 기본 6항목이 번쩍이면서 스킬북 페이지에 나타났다.

- 노출.

- 박리.

- 지혈.

- 봉합.

- 드레인.

능연은 고민에 빠졌다.

전에 1급 스킬북을 통해 맨손지혈, 열지혈을 배우고 나중엔 박리 부분에서 ‘조직 박리’를 선택하고 배웠었다.

두 가지 지혈 방식으로는 각 유형 간 절제 수술을 대담하게 할 수 있었고 수술 위험도 대폭 내렸다.

‘조직 박리’로 가장 중요한 ‘간 절제’를 물 만난 고기처럼 할 수 있었고.

기초 스킬의 작은 분류만으로 그렇게 큰 영향을 받았는데 기초 스킬을 통째로 받는다면······.

능연은 우선 지혈과 절개를 고민했다.

외과의에게 지혈은 영원한 숙제였다. 지혈을 잘하면 환자의 테이블 데스 확률이 크게 낮아진다.

절개와 박리는 조금 달랐다. 절개는 복부 절개 같은 불완전 박리이며, 박리는 ‘맨손 간 박리’처럼 메스를 반드시 사용하라는 법은 없다.

박리 스킬 하나는 이미 있으니 어쩌면 절개로 본인이 더욱 레벨업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능연의 시선은 ‘노출’ 쪽으로 향했다.

‘노출’은 ‘외과 5년, 노출 10년’이라는 말이 있는 그 노출이었다. 능연처럼 자주 수술을 해도 2, 3년 안에 노출 실력을 끌어올리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각각의 수술마다 노출 경로와 모드 모두 달랐다. 그냥 1급 스킬북이었다면 정형외과 수술 노출인지, 간 절제 수술 노출인지, 두개골 수술 노출인지 골라야 한다.

그러나 2급 스킬북은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능연은 길게 망설이지 않고 스킬북의 ‘노출’ 스킬을 클릭했다.

순간 능연의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고 의자에 앉아있던 능연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능 선생?”

여원이 경계하며 그를 불렀다.

“괜찮아요. 음, 아까 말한 큰 절개구 분류, 흉복 연합 절개구 쪽은 좀 바꿔도 될 것 같습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능연의 사고에 변화가 생겼다.

여원은 얼룩무늬 고양이처럼 온순하게 한마디 대꾸하고는 작은 손가락을 놀리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능연도 말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기록하기 시작했다.

응급실도 조용해졌다.

할 일이 있는 의사는 온몸의 기운을 모두 키보드에 쏟아부으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할 일 없는 의사는 할 일 있는 것처럼 열심히 연기했고, 덕분에 얼핏 보면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 보였다.

창틀에 흔들리는 에피프레넘마저도 매우 건강한 척하며 미풍에 따라 흔들렸다.

누군가 기름칠한 지 오래된 나무 미닫이문을 삐거덕 열고 허둥지둥 들어왔다.

운화 시 6 병원 간담췌외과 주임 송상이었다.

송상은 능연을 출장 수술로 두 번 초빙한 적 있었다. 한 번은 아는 사람 간 절제를 바로 6 병원에서 진행했고, 또 한 번은 대량 출혈 환자의 구원 수술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의사들과 비교하면 송상은 그래도 안면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송상은 인사를 나눌 상황이 아니라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환자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우리 쪽에 환자가 있는데, 실수로 간을 건드렸어. 지금 출혈이 멎지 않는데 와 줄 수 있겠나.”

“실수로요?”

능연은 송상의 말에 의문이 가득했다.

“하아. 내 밑에 의사가 멍청해서, 조심성이 없어. 간단한 담관 수술인데······.”

송상은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감쌌다. 아랫사람이 이렇게까지 약체라니, 테이블 데스 걱정만 없었다면 이렇게 쫓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메스 블리딩입니까?”

능연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났다.

“2,000 넘었어.”

송상은 얼렁뚱땅 수치를 말했다. 그가 나올 때 이미 3000을 넘었는데 능연이 가지 않을까 봐 조금 낮춰 불렀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입고 성큼성큼 수술실로 향했다.

송상은 감사 인사하면서 뒤를 따랐고 상황 설명을 했다.

이런 구원 수술은 어느 병원에든 흔한 일이었다.

강한 의사가 약한 의사를 구해주는 것, 그뿐이었다.

능연은 걸음을 서둘러 수술실에 도착해서 재빨리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수술대로 갔다.

한창 지혈하던 젊은 의사는 양손을 피에 담그고 망연한 표정으로 주임과 능연이 돌아와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현재 출혈량은요?”

능연은 이번에 마취의에게 바로 물었다.

“3,200.”

마취의의 대답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위험한 출혈량으로 자칫하면 환자가 바로 영안실에 갈 수도 있었다.

“능 선생한테 자리 내줘.”

송상이 넋 나간 젊은 의사에게 한마디 했다.

“됐습니다.”

능연은 바로 젊은 의사 맞은편으로 가서 환자의 복강 절개구를 내려다봤다.

“일단 출혈 잡겠습니다.”

송상은 능연 뒤에 서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랫사람에게 호통쳤다.

“감사 인사 안 하냐? 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능 선생이 주는 건데.”

“능 선생, 감사합니다.”

젊은 의사는 그제야 정신 차린 듯 다급하게 대답했다.

능연은 가볍게 대답하고는 서서히 손을 환자의 복강 안에 찔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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