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43화 (624/877)

“선생님, 제 아들 어떻습니까.”

수술 복도의 문이 열리자 초조해하던 보호자들이 금세 우르르 몰려들었다. 제일 앞에 있던 60대 부친은 희끗희끗한 머리에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것이 좌자전 동생 같아 보였다.

한창 열띤 대화를 나누던 친척들도 뒷짐 진 채 다가가 관심 있는 모습으로 의사를 둘러쌌다.

송상은 심호흡부터 하고 입을 열었다.

“수술 중에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네?”

“수술 중에 왜 문제가.”

“아들은요? 내 아들······.”

연문빈이 밀고 들어갈 기세로 버둥거리는 아버지를 막아섰다.

“환자는 무사합니다. 얘기 안 들으실 겁니까? 안 들으실 거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송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막아냈고 연문빈은 팔을 휘두르면서 속으로 대단한 노인네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었다면서요.”

“해결했습니다. 아드님 혈관이 너무 약한 게 문제였습니다. 평소에 몸 관리도 잘 안 하고, 3고(고혈압, 고지혈, 고혈당) 문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셨죠?”

보호자들은 멍해졌고 개중엔 위협이 통한 사람도 있었다.

송상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수술 과정에서 환자 간 혈관 파열이 있었습니다만 열심히 처치하고 수혈해서 상황을 진정시켰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며칠이 고비입니다. 고비만 넘기면 큰 문제 없습니다.”

“살아는 있습니까?”

“네.”

환자 부친이 손을 떨고 묻는 말에 송상이 온화하게 대답했다.

몇 분 더 이야기 나누면서 설명 들은 보호자와 친척들이 서서히 물러났다.

송상은 한숨 돌리고는 연문빈을 끌고 수술 구역으로 돌아가서 감사 인사를 했다.

“아까 고마웠어요. 연 선생 아니었으면 골치 아플 뻔했어.”

“뭘요.”

연문빈은 매우 친밀하게 굴며 물었다.

“중도 출혈이 이렇게 심했으니 환자가 나중에 따지러 오지 않을까요?”

“그렇진 않을 겁니다.”

송상이 인내심 있게 대답했다.

“국내 병원은 그렇잖아요. 살아만 있으면 수술 중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단, 테이블 데스라면 무슨 동의서니, 무슨 규칙이니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 하하, 연 선생은 아직 젊어서.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연문빈은 진짜 알아들었는지 어떤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나 아는 건 아는 거고 경험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러나저러나 이번 일을 잘 넘긴 건 정말 능 선생이랑 여러분 덕입니다.”

송상은 그렇게 말하면서 연문빈을 끌고 구석에 있는 비품실로 들어가 봉투 하나를 찔러 주었다.

“수고비 조금 넣었어요. 연 선생, 좀 전해 줘요.”

“무슨 돈입니까?”

연문빈은 머뭇거리다가 그렇게 물었다.

출장 수술엔 출장 수술 비용이 있고, 구원 수술도 출장 수술이었다. 날아가는 과정은 생략됐지만, 중점은 그게 아니니까.

그러나 출장 수술은 구원 수술처럼 촉박하지 않고 보통은 환자와 사전에 이야기된 것이니 돈은 환자가 내고 환자가 싫다면 알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물론, 병원에서 해당 케이스가 다급하고 환자 경제 조건이 안 좋으면 진료과 경비에서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구원 수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구원 수술은 의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수술에서 실수가 생긴 것이고 수술대 위에 환자는 생사가 불명하니 당연히 알아서 할 수가 없다. 수술 중에 출장 수술 가격을 논하는 건 더욱 문제가 되고.

이런 이치를 연문빈도 아는데 송상이 모를 리가 없다.

그도 긴말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우리 유 선생이 낸 겁니다. 작년에 주치의 승진해서 아직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러니 적어도 이해해 주세요.”

“아, 그럼 못 받습니다.”

연문빈은 바로 거절했다.

“아니, 연 선생 주는 것도 아니고.”

송상은 연문빈의 손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 환자 보호자, 연 선생도 봤잖습니까. 팔채향 사람들은 형편이 대충 그래요. 그래서 출장 수술비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어요. 우리 쪽은 말이죠, 진료과 내부 규정이 있어서 문제 낸 사람이 비용을 냅니다.”

“전화 한 번 해보고요.”

연문빈은 능연을 너무 잘 알기도 했고, 게다가 능연은 지금 천 얼마짜리 출장 수술비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연문빈은 바로 전화를 꺼냈고 송상도 말리지 않고 잠시 기다리다가 그가 전화를 끊고는 다시 돈을 돌려주는 모습에 멈칫했다.

“필요 없대요?”

“네. 능 선생이 필요 없답니다. 됐습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환자 조심하세요.”

연문빈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쿨하게 돌아섰다.

송상은 돈 봉투가 돌아와서가 아니라 연문빈의 자연스러운 태도 때문에 멍해졌다. 송상은 사실 대빵 의사들이야말로 구원 수술비를 거절한다고 생각했었다.

삼갑병원의 평범한 주임처럼 대빵 급에 못 미치는 의사는 구원 수술도 할 수 있으면 하고 돈을 주면 사양하지 않았다. 어차피 유명하지도 않은데 주는 돈을 안 받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송상은 연문빈의 태도에서 대빵 급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오늘은 필요 없으니 물러나게, 이런 느낌이랄까?

응급실 안 분위기는 여전했다.

구원 수술을 한 건 끝내고 돌아온 능연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여원과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했고 할 일 있는 의사는 계속해서 할 일을 했고 할 일 없는 의사는 일하는 척했다.

임기는 노림수를 품고 능연이 자기를 잘 볼 수 있고 환자가 생기면 낚아채기도 쉬운 문 앞 위치에 앉아있었다.

수련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원래 능 치료팀이던 의사들보다 기회가 간절한 것은 당연했다.

중형 버스 한 대가 멀리서 들어오자 임기는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기 전에 즉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곧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이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능 선생님. 저희 왔습니다.”

제윤조가 가장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운화대 실습생인 제윤조 등 일행은 별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로 팔채향 산사태 사건을 겪었고, 긴급 상황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상의 끝에 바로 달려왔다.

성격이 외향적인 제윤조는 망원 렌즈를 들고 문학청년처럼 밖에서 고함쳤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온 후엔 조용해져서 우선 모든 의사들을 향해 인사부터 하고는 물건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알콜겔을 들어 능연 앞에서 꼼꼼히 손을 닦은 다음 나긋나긋 말을 꺼냈다.

“능 선생님, 저희 다시 실습하러 왔습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오늘은 능팀으로서는 모처럼의 한가한 시간이었다.

의사는 환자가 없으면 할 일이 없는데, 안 그래도 할 일 없는 의사들이 수두룩한데 실습생 넷이 나타났다······.

능연은 문득 치료팀 팀장의 책임감을 느꼈다.

일이 없는데, 어쩌지?

“임무를 줘야겠네.”

능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상황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임무’라는 단어를 들은 제윤조 일행은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심정으로 능연 앞에 섰다.

그러나 능연의 표정을 보니 튀는 걸 좋아하는 제윤조도 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수처는 배웠겠지?”

“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문빈을 불렀다.

“자몽 20개, 얘들한테 주세요. 한 사람당 5개. 살 벗겨내고 껍질을 단속 봉합법으로 꼼꼼히 꿰매도록.”

“얼마나 꼼꼼하게요?”

제윤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최대한 꼼꼼하게.”

“아. 그런데 왜 자몽이에요? 이유 있나요?”

제윤조가 탐구심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물었다.

“내가 자몽 좋아하거든.”

구석에 제약 회사 대표들의 눈빛이 로봇이 재가동하듯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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