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딩-
팔채향 2층 복도에 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매우 리듬감 있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한 줄로 나란히 선 하얀 가운 의사들이 계단을 올라와 가지런한 걸음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왔다.
“능연 회진인가?”
1층 정원에 앉은 정 주임은 반개방형 복도를 걷는 의사 무리를 바라보며 조금 비꼬는 듯, 조금 부러운 듯 말했다.
같은 치료 팀 팀장인데 밑에 의사 수도 다르고 침대 수도 다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정 주임처럼 ‘젊은’ 치료 팀 팀장은 성립에서 부하 서너 명 밖에 두지 못했고 사람이 모자라서 훈련의나 실습생을 찾으려고 해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봐야 했다.
지금 팔채향 지원 업무에서는 밑에 채경밖에 없는데 입방정 떠는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와 비교해서 능연 곁엔 사람이 매우 많았다.
레지던트뿐만 아니라 수련의, 훈련의도 있고 새로 도착한 실습생까지 합하니 얼핏 보면 주임보다 더 멋져 보였다.
특히 쭈뼛대면서도 흥분한 것 같은 실습생을 보면 더욱 부러웠다.
“실습생이 있으니 좋겠다.”
정 주임이 또 한 번 탄식하자 이 주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실습생이 없으면 수다 떠는 것도 재미없어.”
두 주임이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주치의 혹은 레지던트는 실습생을 귀찮아해도 주임은 절대로 실습생을 좋아한다.
실습생이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의학계 신인은 하나같이 똑똑한 백지라 주임 마음대로 부리고 멋진 척할 수 있었다.
주치의와 레지던트는 이미 질리도록 들어서 듣기 싫어하거나 믿지 않는 티를 내는 이야기도 실습생 앞에서는 하고 또 하고 또 할 수 있었다.
“우리 병원은 실습생 보낼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정 주임은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흔들었다.
“실습생이 얼마나 일을 한다고요.”
언제 온 건지, 채경이 어슬렁대며 정원에 나타나서 입방정을 떨며 두 주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 주임과 이 주임은 서로 마주 봤고, 둘 다 채경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병상을 가장 많이 차지한 것도 능 선생이잖습니까.”
채경은 그렇게 말하고 두 주임을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정 주임의 목소리가 냉랭했다.
“능 선생도 간 절제 같은 큰 수술 해서 겨우 침대를 차지한 거잖습니까. 우리도 수술해서 침대 채우면 되죠.”
“됐다.”
정 주임은 한 마디로 딱 잘라 거절했다. 장난하나, 팔채향 침대를 채워서 뭐하게.
정 주임한테 기대도 안 한 채경이 바로 시선을 돌렸다.
“이 주임님. 여기서 공공 위생만 하고 수술은 안 할 생각은 아니시죠?”
이 주임이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채경을 자기 밑에 두고 공공 위생 일을 시키면서 수술 한 건 시키지 않았었다.
이 주임은 자기 생각이 있으니 수술을 하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채경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 채경이 지금 따지니 조금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다시 상의하자고.”
이 주임은 헛기침만 하고 별 수를 내지는 않았다.
“능 선생은 실습생까지 왔다는데, 더 미루다간 앞으로 기회가 더 없을 겁니다.”
채경이 한 마디 더 보태자 이 주임이 고개를 들어 떠오르는 태양같은 기세인 능 팀을 바라보면서 무심코 대답했다.
“저 팀이랑 뭐하러 싸우나. 팔채향 같은 곳, 다 채워봐야 환자도 몇 안 돼.”
이야기하면서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봤다.
여전히 능연과 그의 치료 팀이 자리를 가장 많이 차지했다.
능연은 느긋하게 한 칸 한 칸 병실을 돌아봤다.
팔채향 분원 조건은 명백히 운화병원에 못 미쳤다. 수술 조건뿐만 아니라 케어도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회진 빈도를 높이고 더 유심히 살피는 건 당연했다.
또 한편, 팔채향 상황이 단순해서 의사들의 학습에 유리했다. 레지던트들에게도 그랬고 능연에게도 그랬다.
“12번 베드, 약 다시 발라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재 절개 고려해야 할 거예요.”
능연은 병실을 나온 후 조용히 당부했고 둘러선 의사들이 일제히 ‘네’하고 대답하는 모습이 기세 넘쳤다.
제윤조의 목소리는 특별히 컸다. 그녀는 아직 단체 생활을 즐길 때였고, 병원에 관심은 더욱 많았다.
안타깝게도 팔채향이 제공할 수 있는 병실과 병상이 많지 않아서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회진은 끝났다. 능연은 진료실로 돌아갔고 의사들은 알아서 흩어졌다.
제윤조는 몰래 핸드폰을 꺼내 능연을 포착해서 진료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때 노인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윤조는 바로 핸드폰을 집어넣고 열정적으로 그를 맞이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나는······.”
60 넘어 보이는 영감은 제윤조를 힐끔 보고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파서 온 건 맞는데 그쪽한테는 진료 안 받겠소.”
“왜요?”
제윤조의 얼굴이 확 굳었고 영감은 얼굴을 단단히 찌푸리다가 다른 의사가 없는 걸 보고는 내키지 않는 듯 입을 열었다.
“이걸 의사 선생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제윤조는 확 붉어진 얼굴로 강인하게 대답했다.
“전 의사입니다. 무슨 병이든 저는 의사로서 대할 겁니다.”
“됐어요. 아가씨가······.”
“의사입니다.”
제윤조는 호칭을 고쳐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정말 볼텐가?”
영감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잠시 머뭇거리던 제윤조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그럼. 자.”
영감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에 든 가방에서 도시락을 하나 꺼내 제윤조에게 건넸고 제윤조는 하마터면 도시락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잘 들어!”
표범 같은 걸음으로 여원이 뒤에서 나타났다.
“뭘 제대로 들라는 거예요! 이거 똥이라고요!”
제윤조는 세 손가락으로 도시락을 들고 온 팔을 덜덜 떨었다. 무섭거나 더러워서가 아니라, 순전히 무거워서였다.
도시락 하나 가득한 검은 물체와 은근한 냄새가 제윤조의 어리고 나약한 영혼을 공격했다.
“어째서 대변을 가지고 오셨나요?”
제윤조 대신 여원이 묻는 말에 영감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병원에서 지난번에 한 대변 검사가 잘 못 되어서, 이번엔 틀리지 말라고 많이 가지고 왔지.”
“여 선생님, 이거 어디에 놓을까요?”
제윤조는 못 견디겠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놓을 데 없으면 들고 있어.”
여원은 냉혹하게 대답하고는 투명한 상자 안에 분변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렇게 가지고 오시면 안 돼요.”
“지난번 의사는 상관없다던데. 난 변비가 심해서 아무 때나 쌀 수 있는 게 아니야.”
“가지고 오는 게 안 되지는 않지만, 이건 한 번에 보신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알았지?”
여원이 하는 말에 영감 얼굴이 붉어졌다.
“색, 경도, 수분 함량이 다 달라요.”
“한 번에 싸는 양이 부족하니까 며칠 모은 거잖아.”
영감은 조금 온화해진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이 의사 선생은 조금 똑똑해 보이네. 그럼 선생이 해주슈.”
“그래요. 지난번 검사 결과는 가지고 오셨어요?”
여원은 자리 잡고 앉아서 이미 넋 나간 모습으로 곁에 있는 제윤조를 바라봤다.
“진단의학과로 보내. CA(대장암)인 거 같아.”
깜짝 놀란 제윤조는 순간 정신이 돌아와서 동정하는 듯 노인을 바라봤는데, 손에 든 도시락을 보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