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의사들은 대변이 무른지 딱딱한지보다 색을 더 중시하곤 한다.
의사 눈에 대변은 보통 일곱 가지로 나뉘는 무지개와 같다.
정상적인 대변은 신기할 것 없는 누런색이나 갈색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혈변은 선홍에서 흑홍까지 그라데이션이 있으며 색이 선명할수록 출구에 가깝다는 뜻이며 반대는 출구와 멀다는 뜻이다. 그러니 선홍빛 대변은 치질 등 항문 주변 출혈을 의미하며, 암혹 혹은 흑홍 대변은 소화 관도에 출혈이 있음을 의미한다.
색이 가장 아름답고 안전한 대변은 녹색이며 보통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채소 섭취 과다 혹은 소화가 지나치게 빠르니 앞으로 너무 건강하게 먹지 말라는 뜻이다.
검은 대변은 변비 혹은 기타 위장 질환을 나타낸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리고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대변 색은 회백색 혹은 점토색일 것이다. 장이 막혀 담즙이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바로 여원이 도시락에서 본 상태다. 그리고 검사 보고서에서 본 내용과 결합해보면, 대장암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설계인 씨 맞죠? 올해 66세고요.”
노인의 검사 보고를 읽은 여원은 습관적으로 이름과 나이를 확인했다.
“그건 내 동생이고. 나는 설계효.”
입을 삐죽이는 노인의 말에 여원의 입가가 실룩였다.
“그럼 연세는요?”
“만으로 68.”
설계효 노인은 허탈한 듯 대답하고는 수다 떨 듯 말을 이었다.
“이 나이쯤 되면 병이 생기는 것도 당연해. 전에도 검사하고 어쩌고 난리더니 결국 아무 진단 못 했잖아. 그런데 자네들 운화병원에서 왔다며? 그래서 다시 와 봤지. 현 병원 기술이 정말 어떤지 보려고.”
여원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현 병원에서 이런 암 의심 환자를 만났다면 조심 또 조심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어쨌든 암 진단 표준은 조직 검사고, 내시경을 하기 전에 대장암 진단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큰 병원에서는 말을 좀 더 직설적으로 하는 편인데 현 병원의 ‘인문’ 감각으로는 노인에게 과하게 완곡하게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
“성함이랑 나이는 동생분 거고, 검사는 환자분 본인 거 맞죠?”
여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손가락으로 검사 보고서 이름과 나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응. 동생은 보험이 있어서, 동생 이름으로 진료받았지. 그건 상관없지 않나? 여긴 다 그렇게 해. 괜찮으면 검사 몇 가지 더 해주고, 안 되면 덜 해줘도 돼. 병원이라도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안 그래?”
“다른 사람 이름으로는 검사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 이름과 보험으로 진료받는 건 삼갑병원에서는 이제 잘 통하지 않지만, 제도가 불완전한 향, 진 병원에는 아직 존재했다. 특히 의료 보험 한도를 다 사용하지 못하는 향, 진 병원은 제도를 따를 동력이 없었다.
여원이 조금 딱딱하게 대답하자 설계효가 언짢은 듯 헛기침했다.
“무슨 상관이라고. 검사할 건 하고 받을 돈 받으면 되지. 보험 신청은 내가 하면 되잖아.”
“저희는 윗사람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해서요.”
“요즘 윗사람들은 남의 일에 쓸데없는 참견도 참 많지. 자기 돈 쓰는 것도 아닌데 빡빡하게들 구는구만.”
여원은 의료 보험 제도와 보험 신청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리스크 어쩌고는 더더욱. 그러나 설계효는 오히려 더 잘 알아들었다.
“전에 병원에서 입원해야 한다는 말 않던가요?”
“멀쩡한데 뭐 하러. 게다가 입원은 동생 이름으로 안 된다잖아. 그러니 입원할 수도 없지. 하루에 백 위안 넘게 든다고.”
화제를 피하며 묻는 여원의 말에 설계효가 혀를 차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일단 이번 검사 결과 좀 보고요.”
말은 그렇게 해도 여원은 벌써 검사 결과를 예상했다.
“음, 자네 서비스 괜찮구만. 역시 사람은 덩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지.”
설계효는 여원의 안내에 따라 창가 의자에 앉아서 차도 마시면서 꽤 흡족해하면서 그런 평가도 내렸다.
보고하려고 능연 앞으로 가던 여원은 실수로 좌자전의 발을 꾹 밟았고 좌자전은 고양이 꾹꾹이 받은 느낌으로 저절로 미소 지었다. 미소짓는 얼굴이 자글자글한 것이 밥 먹으러 산에서 내려온 산도둑 같았다.
“능 선생. 전에 다른 병원에서 검사한 적 있는 환자인데, CA 같아. 일반외과로 넘겨서 내시경 해볼까?”
여원은 정규 방법으로 물었다. 대장암은 생존율이 비교적 높은 암 유형으로, 수술만 제때하고 환자의 운만 좋으면 5년 넘게 살 확률도 높은 편이었다.
응급의학과에서도 내시경은 하지만, 암 의심 환자는 일반외과로 보내 확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결과지를 본 능연도 동의했다.
“그러세요. 어디 일반외과로 보내려고요?”
여원은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지금 팔채향 분원에 일반외과 의사가 제일 많은데 하필 운화병원은 없으니 어디로 보낼지는 정말로 잘 생각해야 했다.
여원은 고개를 돌려 창가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형편이 안 좋은가 봐. 어느 병원이 비용 감면 가능한지 확인하고 보내는 게 낫겠어.”
“그러세요. 하지만 먼저 환자한테 확인하고, 좌 선생님이 전화 해 보세요.”
“응.”
능연은 껍질 하나 없이 깨끗이 벗긴 자몽을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좌자전이 바로 대답했다.
그때, 시스템 제시어도 튀어 나왔다.
- 퀘스트: 환자를 구하라!
- 퀘스트 내용: 설계효의 생활 능력과 존엄 있는 생활을 보장하라.
- 퀘스트 보상: ‘좌 결장 절제술’ 혹은 ‘우 결장 절제술’
선택할 수 있는 퀘스트 보장은 처음이라 능연이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것도 그렇고 예전과 비교하면 이번 퀘스트는 의미가 더욱 깊었다.
“평소 생활은 어떻게 했었는지 환자한테 확인해 보세요.”
능연은 이번에도 좌자전에게 지시했다. 수다는 능연의 전공이 아니었다.
좌자전은 이번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나지막이 얘기했다.
“능 선생, 환자의 일상생활에 관여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거야.”
“네?”
능연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사람 돌보는 덴 돈이 많이 들어. 환자는 더 많이 들고.”
좌자전은 능연의 생각을 짐작하면서 설득하려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라고요. 수술 한 번 하는데 수술비도 들고 수술 전후 준비 등등. 우리가 절반은 감면해준다고 해도 나머지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환자와 보호자 생활비, 일 못 하는 동안 드는 비용,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거든.”
“일단 물어보세요.”
능연의 말에 좌자전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려들었다가 발을 못 뺄까 봐 그렇지. 알겠어. 일단 물어는 볼게.”
“수술할 의사도 여러 명한테 물어보세요.”
“오케이.”
다시 덧붙이는 능연의 말에 좌자전은 긴말 없이 고개를 흔들고는 일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