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피내 봉합, 꽤 느낌 있지 않았냐?”
자리로 돌아온 주 선생이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한마디 하자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잘하셨어요.”
능연은 주 선생의 피내 봉합 기술은 고급 전문가 수준은 된다고 판단했다. 마스터급까지는 어느 정도 남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대단했다.
특히 주 선생의 봉합 횟수가 많지 않은 걸 고려하면 주 선생은 사실 꽤 재능 있는 유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했다, 이런 말은 몇 년 전에 내가 너한테 했었는데.”
주 선생 역시 싱긋 웃더니 그렇게 말하자 능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환자가 없는 게 아깝네. 한 번 더 해보고 싶은데.”
주 선생이 혀를 끌끌 찼다.
“옆에서 지도하는 사람 있으니까 공칠 때 코치가 밖에서 소리치는 것처럼 느낌 있다야. 음, 근데 오늘 왜 환자가 없지?”
계속 같은 말을 하는 걸 보니 정말로 느낌이 좋았던 모양이다.
능연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의심 가득한 환자 보호자, 그리고 능연을 비롯한 의료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 선생이 피내 봉합을 마무리했을 때만 해도 상태가 좋았지만,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구 진료소 묘탄생이 벌써 일 년 넘게 피내 봉합을 배웠는데도 아직 마스터급에 오르지 못했다. 주 선생은 다른 일도 더 많고 농땡이 지수도 더 높으니 더 빨리 배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야. 아까 바늘 쥐고 걔 피부 찔렀을 때 진짜 흥분됐단 말이야.”
본인 일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고, 능연이 웃는 걸 본 주 선생은 본인이 먼저 뜨끔해서 그렇게 말했다.
곁에 있던 간호사가 의상한 눈으로 주 선생을 돌아봤다.
그때 접수대 간호사가 달려 들어왔다.
“주 선생님, 교통사고 환자예요. 개방성 골절, 대량 출혈. 45세 환자고요.”
접수대 간호사가 빠른 속도로 보고했다. 응급실에 현재 직함이 가장 높은 의사는 바로 주 선생이었고, 비교적 큰 증상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그에게 알리는 게 당연했다.
“쇼크는 없고?”
“의식은 있습니다.”
주 선생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고 간호사는 고개를 숙이고 노트를 보더니 대답했다.
“응. 능 선생 하실?”
“그러죠.”
능연은 오는 사람 안 막았다.
“능 선생이 출동하신다면야, 내가 나설 일이 없지.”
주 선생이 쿨하게 웃었다.
“나는 책이나 볼란다. 요즘 새로 나온 논문이 너무 많아. 하루라도 놓치면 도태되는 느낌이랄까. 요즘은 말이지······.”
“주 선생님, 조금 전에 오늘 왜 환자 안 오냐고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간호사가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었지. 게다가 이제 도착하는 환자는 수술이 급할 텐데 내가 피내 봉합할 수나 있겠어?”
주 선생은 자연스럽게 대답하면서 기지개까지 켰다.
“능 선생이 팔채향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되게 심심할 거야. 이런 TA 환자도 오랜만일걸?”
능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주 선생이 진심으로 미소지었다.
“이제 막 돌아오셨으니 좀 쉬어야죠!”
“주 선생님! 선생님 업무가 피내 봉합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곁에 있던 간호사 둘이 분통 터지는지 약속이나 한 듯 고함쳤다.
“난 화장실 간다. 지체하지 말고 환자나 잘 받아. 능 선생, 그럼 일단 너한테 맡긴다!”
주 선생은 그저 하하 웃으면서 간호사들과 말싸움하는 일 없이 바로 뒤돌아섰다.
“넵.”
손이 근질해서 응급실에서 어슬렁거렸던 능연은 간단히 대답했다.
주 선생 말대로 팔채향에 머무르는 동안 정말로 교통사고 환자가 그립긴 했었다.
간 절제, 담낭염 혹은 타박상, 고열 환자와 비교하면 교통사고 환자의 외과 처리가 좀 더 단순하고 거칠었고, 외과의의 입장에서는 수술이 더 직접적이고 결과가 더 명확했다.
명확한 결과는 외과의가 추구하는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능연은 살짝 흥분된 마음으로 간호사 뒤를 따라 뛰었다.
머지않아 구급대 한 대가 바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이어 초췌한 얼굴에 핏자국이 있는 남자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실려 내려왔다.
“심전도.”
능연은 한마디 하고는 바로 환자를 밀고 갔다.
같은 차로 온 보호자도 재빨리 뒤를 따르면서, 의사 한 번, 환자 한 번 보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냥 방향 꺾은 건데.”
환자는 바짝 붙어있는 사람만 겨우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능연은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이런 응급 외과 수술엔 표준 플로우가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환자는 마취 상태이고 마취 상태의 환자가 하는 말은 그다지 믿을 수가 없었다.
스트레처 카는 가장 빠른 속도로 수술실로 들어갔고 능연도 다시 손을 씻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넓고, 밝고, 익숙하고, 순조로운.
이것이 다시 운화병원 수술실로 돌아온 능연의 마음이었다.
연문빈과 마연린도 수술실에 들어왔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일반외과 협진 요청하세요.”
수술실에 들어왔지만, 책임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걸 본 능연이 나서서 책임자를 자처했다.
진작 준비를 끝낸 순회 간호사가 바로 전화를 들어 연락하기 시작했다.
운화병원에서 이런 긴급 협진은 3분 내 도착이 원칙이었다. 각 진료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응급실에 의사를 보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응급의학과 집도의가 협진을 확정해야만 그들도 들어올 수 있었다.
능연은 매우 능숙하게 지혈, 검사 그리고 봉합 과정을 시작했다.
그때 좌자전의 핸드폰이 울리자 좌자전은 망설이다가 액정에 뜬 ‘마을 대표’를 바라보고는 그래도 전화를 받았다.
“좌 선생, 오랜만이야”
전화 너머에서 인사말이 바로 들렸다.
“저 지금 수술실입니다.”
“아, 그럼 빨리 이야기하지. 부탁이 있네. 왕전례라는 40대 환자 도착했나? 교통사고로 운화병원에 보냈는데.”
마을 대표가 껄껄 웃으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힐끔 수술대를 바라봤다.
“있는 거 같습니다.”
“아이고 그렇군. 상황은 어때? 안 심각해?”
“심각합니다.”
좌자전이 매우 단호하게 대답하자 전화 너머 마을 대표가 잠시 머뭇거렸다.
“좌 선생, 이 형님 좀 도와주시게. 우리 마을에 감사 온 투자잔데······. 저기, 비싼 약을 쓰든 어쩌든, 반드시 살려야 하네. 지금 운화로 가고 있으니 만나서 이야기하지.”
좌자전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능연에게 그런 말은 필요 없었다.
일반외과 주치의 하나, 정형외과 주치의 하나, 신경외과 레지던트 한 마리가 연달아 응급센터 수술실에 나타나서 각자 본인의 필름을 들고 자기 자리에 서서 묵묵히 분석했다.
그중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표정이 가장 침착했고, 정형외과와 일반외과 주치의 표정은 상당히 심각했다.
보통 협진 때 각 진료과에서는 레지던트를 많이 보낸다. 대다수 응급 환자는 머리를 시계에 박았거나, 다리를 시계에 박았거나, 항문을 시계에 박아도 일단 응급으로 달려올 정도라서 사실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고, 레지던트 정도면 충분히 치료했다.
심각한 환자가 있다고 해도 우선 레지던트가 판단을 내리고 해당 진료과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진료과 주력군인 주치의는 쉴 때는 쉬어도 되지만, 그래도 본인 진료과를 지키면서 쉬어야 했다.
그러나 능연이 요청한 협진을 무시할 수 없는 진료과가 있었다.
예를 들면 정형외과, 일반외과는 레지던트를 보낼 엄두를 못 냈다.
진료과도 체면이란 게 필요했다.
능연 같은 의사 하급 의사 노릇도 체면이 없지만, 질문에 대답 못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하나를 물으면 셋을 모르는 상황이 생기면 체면을 더욱 구기게 된다. 일하다가 틀리게 되면 더욱 쪽팔리고.
원래라면 전문 진료과는 응급의학과보다 심리적 우위에 있지만, 운화병원의 정형외과 혹은 일반외과 평범한 의사는 능연을 대할 때 진작에 그런 마음이 사라졌고 간담췌외과는 약세에 몰려 있었다.
전에는 그들도 응급의학과, 혹은 지금의 응급센터에 와서 다른 의사 앞에서 태클 걸릴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일반적인 조작에서 틀릴 일도 없고 조금 특수한 부분이라고 해도 응급의학과 의사가 태클을 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능연 앞에서 정형외과 혹은 일반외과 의사는 한참 전부터 주임 밑에서 일하는 듯한 느낌으로 일했다.
“제일 문제는 여기 두 군데인 것 같아. 발목뼈에 금 간 건 별거 아니라 수술 후에 깁스하면 될 것 같고, 팔이 문제네. 콜리스 골절인데 수술로 복위해야 할 것 같아.”
정형외과 주치의가 선수 치며 본인의 방안을 제시하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뼈에 금 간 건 나중에 깁스하고, 콜리스 골절은 좌 선생님이 하세요.”
“그럼······.”
정형외과 주치의가 의아한 듯 본인을 가리켰다.
예전 같으면 절대로 강하게 능연과 입씨름했을 것이다. 콜리스 골절이 쉽든 말든, 정형외과 부분이니까.
하지만 응급센터에서 곽종군의 독식을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능연은······.
능연은 수술을 나누는 법이 없는 유형이었다.
정형외과 쪼랩 주치의는 울적한 듯 능연을 바라보며 할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내가 할 일은 없겠네.”
“뼈 쪽에 다른 문제 없으면 골절은 우리가 처리하면 됩니다.”
능연이 그보다 더 확실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랴. 그럼 난 간다.”
정형외과 쪼랩 주치의도 긴말 않고 돌아서 나갔다.
“검측 도구였네.”
일반외과 주치의가 농담하듯 목소리를 냈다.
“내가······.”
욱해서 돌아보던 정형외과 주치의는 능연의 옆모습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바꿨다.
“할 일 없음 좋지 뭘.”
“네가 좋으면 됐다.”
일반외과 주치의가 어깨를 으쓱였다.
물론 일이 많은 건 누구나 싫어한다. 그러나 의사 업계는 좀 특이한 것이, 본인 일이 많아지는 건 싫어도 본인 영역에 속하는 환자를 다른 사람이 하는 건 언짢아한다.
정형외과 주치의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서 돌아가지도 않고 바로 옆에 섰다.
“넌 뭘 하게 되나 보자.”
“적어도 상행 결장은 하겠지.”
일반외과 주치의가 깔깔대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능 선생이 장은 안 하잖냐.”
“상행 결장 찢어졌어?”
“철인지 뭔지 들어간 거 같아. 구체적인 건 좀 복잡해서 너한테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 없고.”
일반외과 주치의가 정형외과 주치의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형외과 의사는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반외과 주치의는 그제야 능연에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능 선생, GS는 결장 수술하면 되겠어. 비장은 벌써 자른 거 같고, 위도 처치한 것 같고 복부 외상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일반외과 주치의는 이야기하면 할수록 기운이 빠졌다. 응급의학과가 다 해 먹으면 일반외과는 뭐 하라고······.
“결장 수술이라고 하셨는데, 상행 결장 파손 말씀인가요?”
능연이 필름을 가리키며 파손된 상행 결장을 정확히 집어내자 일반외과 주치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면적이 크진 않아. 이따 내가 복강경으로.....”
“제가 처리했습니다.”
“아?”
일반외과 주치의는 멈칫했을 뿐만 아니라 능연이 뭘 잘못 알았다고 생각했다.
“아까 수술하는 김에 처치했습니다.”
“김에?”
일반외과 주치의는 상행 결장이 하는 김에 할 수 있는 위치냐?! 하고 독설을 내뿜고 싶었다.
하지만 장천공 보건술과 우 결장 절제술이 있는 능연으로서 기껏해야 수술실과 수술복이 더러워져서 그렇지, 장에 구멍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른 문제 없으면 GS도 돌아가셔도 됩니다.”
능연이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사에서 나온 문제가 적을수록 수술은 수월하고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환자 생존율도 올라가고.
일반외과 주치의는 묵묵히 뒤로 물러났고, 정형외과 주치의는 일부러 그 앞으로 지나가며 싱긋 웃었다.
“나 먼저 간다. 상행 결장? 흥!”
일반외과 주치의 얼굴이 결장처럼 꼬였다.
그는 분통 터진 듯 능연을 바라보다가 그의 손놀림을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잘 한다.
정형외과 주치의도 일반외과 주치의 얼굴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동기를 놀리고 싶은 의지를 상실했다.
그들은 운화병원에서 비교적 빨리 주치의가 된 편이었다. 두 사람 모두 막 35살이 넘어서 기술 트리를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나이였고, 지금 본인 진료과에서는 능력자였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 프라이드와 서로를 향한 조롱은 능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환자가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해는 이미 저 있었고 병원은 퇴근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와 간호사는 퇴근이라는 개념도 없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좌자전은 샤워실 밖에서 능연이 샤워하고 나오길 기다리다가 그가 나오자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능 선생, 오늘 환자 보호자가 능 선생 찾아왔어. 밥 한 끼 사고 감사 인사하고 싶다네?”
“전에 보호자는 왜 그런 일이 없었죠?”
능연이 이상하다는 듯 좌자전을 바라봤다.
능연을 잘 아는 게 아니었다면, 이런 질문에 사고 회로가 멈췄을 것이다.
“그러니까 님의 말씀은, 이 환자 보호자는 어디가 특별하냐는 거지? 그지?”
좌자전이 능연의 언어를 살짝 수정했다.
“그렇죠.”
“음······.”
좌자전은 한숨부터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구한 환자는 타지에서 온 투자자래. 그래서 파워가 좀 있는 사람이고 게다가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거든.”
“그래요?”
“운화대에 기부도 하겠대.”
능연의 표정을 살핀 좌자전이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상대 안 했지. 그런데 그쪽에서 운화대에 찾아갔나 봐, 무 원장님이 특별히 전화를 주셨지 뭐야. 능 선생 의견 물어보라고 하시면서.”
“만나는 건 좋은데 밥은 됐어요.”
잠시 생각하던 능연이 대답했다.
경험에서 나온 책략이었다. 밥 먹자고 하는 사람과 모두 밥을 먹었다간 매일 식당에서 사는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좌자전은 바로 안도했다.
“그래, 만나기만 하면 되지 뭐. 몇 시에 만날까?”
“내일 아침이요. 일찍 오라고 하세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닦으면서 점점 멀어져갔다.
좌자전은 멀어져 가는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찍’을 되새김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