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53화 (634/877)

ICU로 들어간 왕전례는 늙은 소처럼 호흡이 거칠었지만, 폐가 움직이는 것만 해도 기쁜 일이었다.

적어도 보호자의 마음은 그래도 평온한 편이었다.

그래서 성원 식당 룸 하나를 빌려서 오고 싶으면 자유롭게 오라고 응급센터 의료진 모두를 초대했다.

참석한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태도만은 지극히 좋았고 그만큼 피드백······ 은 사실 할 게 없었다. 환자의 몸을 몇 번 뒤집어 주고 싶어도 환자가 ICU에 있으니 그랬다간 심장과 의사가 펄쩍 뛸 것이다.

점심 때가 되자 무 원장이 환자 보호자와 함께 능연의 사무실을 찾았고 소식을 들은 곽종군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아이고, 무 원장님. 이런 우연이.”

곽종군이 싱글벙글 인사하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무 원장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힐끔 보고 입을 열었다.

“곽 주임, 능연을 너무 꽉 붙잡고 있는 거 아니오? 그냥 인사나 하러 온 걸.”

“저도 인사드리러 왔잖습니까.”

곽종군 얼굴엔 조금도 머쓱한 느낌이 없었다.

“아이고, 자네 응급의학과로 나한테 인사하러 오셨구만?”

무 원장이 일부러 고개를 저어 보였지만 곽종군은 여전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심장도 빨리 뛰지 않은 태연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무 원장님이 왕림하셨는데, 당연히 인사하러 와야지요. 참, 능연이 운대에서 수업하는 건 잘 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네. 학생들이 능연을 아주 좋아해.”

“다행입니다, 다행.”

무 원장은 곽종군의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들으며 입을 삐죽이다가 뒤에 있는 사람을 불러냈다.

“깜빡했구만. 왕전문 씨라네. 어제 능연이 구조한 중상 응급 환자 완전례 씨 큰 형. 비행기 타고 막 도착했네.”

“아, 왕전문 씨. 안녕하십니까.”

곽종군은 잘 모르는 환자 가족 앞에서 당당하게 상대를 마주 보면서 허리를 곧추세웠다.

“곽 주임님, 이번에 신세 톡톡히 졌습니다.”

왕전문은 곽 주임보다 나이가 좀 더 많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이 초췌해 보였다.

“의사가 환자 치료하는 일이야 당연한 일이지요.”

곽종군은 보호자에게 온화하게 대답하고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능연을 불렀다.

그렇게 곽종군이 환자 보호자와 무 원장을 능연에게 데리고 간 꼴이 되었다.

무 원장도 빤히 알았지만, 따지지 않았다. 어차피 능연을 스카우트할 생각도 없었다. 운화병원 자체가 운화 대학 소속 병원인데 스카우트할 의미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능연이 학교로 가겠다면야 무 원장도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요즘 그런 선택을 하는 임상의는 거의 없고, 무 원장 역시 능연이 그러길 바라지는 않았다.

“능 선생 곧 올 겁니다.”

실습생 제윤조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대빵들을 바라보며 재빨리 차를 준비 해왔다.

“수술실에 수술이 아직 안 끝났습니다. 간 절제 수술인데 소식을 들었을 때 벌써 시작했거든요.”

“수술이 중요하지. 얼마나 더 걸릴지나 물어보게.”

곽 종군은 무 원장이 입을 뗄 기회도 주지 않았다.

무 원장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곁에 있는 왕전문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합니다. 일찍 오려고 했는데, 능 선생 첫 수술이 2~3시라길래 제멋대로 시간을 바꿨습니다.”

“원래는 아침 4~5시에 수술을 시작하긴 하지요. 2~3시는 드물긴 합니다.”

“4~5시도 이르긴 하지요.”

곽종군의 말에 왕전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합니다.”

잠시 말을 멈췄던 곽종군이 계속 이었다.

“단순히 능 선생 만나려고 오셨습니까?”

“감사 인사 좀 하려고요.”

목숨을 아끼는 사람이니 능력 있는 의사를 알아 두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정말 감사하기도 했고.

“왕전문 선생은 우리 운화에 투자할 생각으로 오셨네.”

무 원장이 곽종군을 힐끔 보며 말을 받았다.

“왕전문 선생 집안에서 우리 운대에 시청각 교육실을 기부하셨다네. 학교에 큰 도움이 되었어.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건 할 생각이네.”

“아.”

곽종군은 그제야 양쪽의 이해관계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 셋도 오늘 온다고 했는데 제가 한발 먼저 왔습니다. 제 동생은 지금······.”

“그럼 일단 ICU로 가보지요. 구체적인 상황은 담당 ICU 의사가 더 잘 압니다.”

곽종군은 무 원장의 체면, 그리고 태도가 호의적인 보호자에 대한 호감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서 사람들은 ICU로 향했고, 중환자실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는 사이 능연이 수술실에서 나왔고 곽종군은 왕전문을 데리고 다시 응급실로 돌아왔다.

보기만 해도 언짢아지는 ICU 상황은 정말이지 환자 가족일수록 오래 머무를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와 비교하면 응급실은 소란스럽기는 해도 차라리 생기는 느껴졌다.

“능 선생, 왔나?”

저 멀리 능연을 본 무 원장이 바로 그를 불렀다.

곽종군을 따라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사람이 다 우울해지는 것 같군.

푸른 수술복을 입은 능연 뒤에 역시나 수술복을 입은 연문빈과 마연린이 따랐고, 병원 최고의 기세가 느껴졌다.

“능 선생, 안녕하십니까.”

왕전문이 허리를 더 굽히며 인사했다.

ICU 의사가 다른 말은 몰라도 능연을 톡톡히 칭찬했었다.

사람 죽는 걸 제일 많이 본 의사를 고르라면 ICU 의사를 빼놓을 수 없고, 죽어가는 사람을 제일 많이 본 의사는 단연코 ICU 의사를 꼽아야 한다.

죽어가는 환자를 많이 본 만큼,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수술 예후가 어떤지, ICU 의사는 저마다 판단 기준이 있었다.

운화 내부에서 능연은 공인된 예후가 가장 좋은 의사였다.

예후가 좋으면 환자의 회복도 좋고 ICU에서 순조롭게 나올 기회가 높다.

왕전례의 큰 형 왕전문이 가장 바라는 점이 바로 동생이 최고의 의료 보장을 받는 것이었다.

왕전문은 앞으로 나서서 능연의 손을 꼭 쥐고 힘껏 흔들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능 선생, 내 동생이 어떻게 하면 빨리 회복할지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옆에 있던 곽종군은 멈칫하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환자 보호자는 항상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싶어 하지만,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 건지 판단할 능력은 없어서 결국 의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별생각이 없던 능연은 왕전례 수술을 한 번 되짚어 보면서 대답했다.

“지금 ICU에서 이미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라서 지금으로서는······.”

그때 주변 의사들의 핸드폰이 모두 울리기 시작했다.

“빌딩 화재.”

재빨리 전화를 받은 곽종군이 바로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화상 환자 대량 발생, 우리 병원으로 오고 있다.”

곽종군은 바로 왕전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왕 선생, 미안합니다. 응급실이 바빠질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왕전문은 말은 그렇게 해도 바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화상 환자는 일단 자네가 나설 필요는 없지. 하지만 응급실을 빨리 비워야 하네. 트랜스 보낼 환자는 바로 다 내보내고 치료할 환자는 재빨리 치료하게. 능연, 자네가 책임져.”

곽종군은 왕전문을 상대하지 않고 능연에게 지시 내렸다.

“예? 알겠습니다.”

생각도 하지 않던 능연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상 처리는 서툴지만, 빠른 응급처리야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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