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56화 (637/877)

사실 병원은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다.

할 일 없이 그냥 어슬렁대기엔 병원 안엔 녹색 조경도 잘 되어있고, 구급차도 귀여운 구석이 있고.

그러나 그렇다고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긴 하다.

선혈 앞에선 모든 것이 필요 없으니.

그리고 화상은 더욱 끔찍해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화상 환자 둘이 들어 온 후 응급실 분위기가 순간 싸늘해졌고 능연 기분도 살짝 영향받았다.

화상은 곽종군의 주요 임상 항목으로, 그는 능연에게 가르칠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외과 수술과 비교하면 화상은 내과에 더 가까웠고 시각적으로든 치료 과정이든 ‘질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상 환자는 너무나 많은 불확실과 싸워야 한다.

응급 출입구를 통해 들어온 두 환자는 잠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후 바로 전문 병실로 들어갔다. 곽종군과 그의 수하 부주임 그리고 주치의, 레지던트 무리가 그곳에 있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에서 가장 규모가 큰 치료 팀인 그 팀은 동시에 최대 일반 화상 환자 20명 혹은 중상 환자 4명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할 일 합시다.”

주변의 ‘엄숙’한 난장판이 얼어붙는 걸 본 능연은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모든 이의 주의가 화상 환자에게 집중되었다고 해도, 능연의 존재감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가 그저 살짝 얼굴을 찌푸렸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가 언짢아한다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능연이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선임 간호사가 레지던트들을 내몰기 시작했다.

“그만 보고, 할 일 하세요.”

“뭘 멍하니 보고 계세요. 처음 봐요?”

“화상과 일 돕고 싶은 거면 밤에 남으세요. 야근 과일도 있으니까요.”

응급실에 있던 환자 보호자들도 알아서 다른 보호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중국 병원의 보호자들은 불가피하게 이런저런 업무를 부담하게 된다.

환자의 입원이 길어질수록 환자가 질병을 신체 일부분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호자도 병원 생활을 개인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기면서 보호자도 병원에 익숙해져 간다. 결코 행복한 선택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응급실엔 고질병 환자와 그런 환자의 보호자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요즘 삼갑병원에서 침대 하나 구하는 건 진성 모쏠이 모쏠 탈출하는 것보다 어렵고 돈도 더 많이 든다. 그에 비교하면 응급실은 입원이 쉬운 편이라 몸이 불편하고 그렇게 심하지 않은 환자들은 구급차 한 대 부르면 적어도 응급실까지는 올 수 있다.

고질병 환자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응급센터에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온다.

그런데 오늘은 침대가 더 귀했기에, 레지던트 몇 마리가 미간을 좁히고 병세가 심각하지 않은 환자를 설득해서 내보내거나 그보다 더 많이 다른 진료과로 보내 골치는 그쪽이 앓도록 만들었다.

이런 때는 평소에 고질병 환자를 그다지 내키지 않는 진료과들도 어떻게든 침대 한두 개는 비워주면서 응급실 숨통을 틔워줬다.

좌자전도 혀에 살이 빠질 정도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곽종군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막 들어온 화상 환자 두 명에게 투자했다. 바이탈 사인을 유지하는 것 말고도 소변량과 수액량 기록, 감염 제어 등을 정신없이 해야 했다.

능연은 응급실에서 점점 상황을 안정시켜 갔다.

브라질 재난과 팔채향 산사태를 겪은 능연은 눈앞의 상황에 어느 정도 익숙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건 다른 의사들이 협조할 때 자꾸 문제가 생긴다는 것?

치료팀 팀장을 맡고 있는 주임 의사가 능연이 지휘하는 이런 형식에 적응을 못할 뿐만 아니라 조낙의 같은 주치의들도 능연의 지시를 듣기 싫어했다.

이런 상황에서 능연의 처리 방식은 바로 ‘내가 한다’였다.

능연은 일반외과 수술은 위에서 항문, 정형외과는 손가락부터 팔꿈치, 발가락부터 무릎까지 가능했고, 그 외에도 각종 생명 유지 스킬이 있었다. 그 범위에 있는 환자라면 대다수 의사보다 정통했고, 그 범위 밖의 환자는 일반 응급의학과 의사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능연은 응급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환자를 해결하고 다시 저 끝에서 이 끝까지 해결했다.

능연의 말을 듣는 의사는 그의 말을 따라 일처리를 했고, 능연의 말을 듣지 않은 의사는 자연스럽게 집도 자리를 뺏겼다.

유일한 주임 의사 도 주임 역시 능연의 명령에 따라 스트레처 카와 환자를 끌고 수술실에 들어간 다음 다시 나오지 않았다.

“진짜 터프하네.”

입원 병동에서 돌아온 좌자전은 병상을 하나하나 쳐부수는 능연의 날 듯한 속도를 보고 감탄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에서 행정 일을 가장 잘하는 의사인 좌자전은 능연의 방법이 최선책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기에는 후련했다.

“능 선생은 실력으로 밥 먹는구만. 이런 게 조상이 차려준 밥상이라는 게지.”

아직 자리에 있던 무 원장이 여전히 곁에 있는 왕전문과 함께 멀리서 능연을 바라보며 감탄하며 말했다.

“우리 능 선생이 이렇습니다. 일할 때는 누구한테 밉보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좌자전이 싱긋 웃으며 BOSS 대신 겸손을 떨었다.

“이런 실력인데 무서울 사람이 어디 있겠나. 자네 곽 대감이 너무 사납지만 않으면, 나는 능연을 데리고 운대로 가서 누군가에게 밉보이고 싶구만.”

무 원장이 싱긋 웃으면서 반 농담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곽 주임님이 들으면 큰일 나겠네요.”

좌자전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가 곁에 왕전문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마당발 모드를 가동했다.

“동생분들이 오신다고 했는데, 능 선생이 오늘은 너무 바쁠 것 같습니다. 혹시 필요한 자료 같은 게 있으면 저를 부르시면 됩니다.”

“괜찮습니다. 급할 거 없어요. 오히려 제가 도움 될 게 없을까요?”

왕전문이 역 마당발 모드를 펼치자 좌자전이 멈칫했다.

“도움이라고 하시면······?”

“창서성에서 기부나 자선활동을 할까 하는데······능 선생이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요?”

왕전문의 시선이 능연의 푸른 수술복을 따라 움직였다.

응급실 의사는 역시 하얀 가운 차림이 가장 흔한데, 온통 하얀 가운 사이에 능연의 푸른 수술복 차림이 매우 눈에 띄었다. 능연의 일하는 스타일과 효율에 왕전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 말씀이십니까?”

좌자전은 왕전문의 말을 반복하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는 곁눈으로 무 원장을 바라봤다. 아버지 뒤를 이어 운화대 부속 병원 원장인 무 원장은 인맥도 넓고 형세에 대한 판단이 보통사람보다 훨씬 정확했다.

무 원장은 운화대로 들어올 기부금이 줄어들까 걱정하지는 않는 듯 미소 짓고 있었다.

아니면 기부금 문제는 이미 이야기 끝났거나?

아니면 왕가에 자본이 탄탄해서 기부할 곳을 한 군데 더 늘려도 다른 곳은 영향 주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좌자전이 잠깐 생각했다고 여길 시간에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곧 결정을 내렸다.

“능 선생이 ICU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지 한참 됐습니다. 그러니까 응급실 자체 중환자실 말입니다.”

“병원에 있는 중환자실이 부족해서요? 아니면 불편한가요?”

동생 왕전례가 바로 중환자실에 있어서 조금 전에 배치와 설비를 본 왕전문이 그렇게 물었다.

“불편해서죠. 그리고 침대도 자주 모자라고요.”

좌자전이 냉큼 대답했다.

“능 선생은 큰 수술을 자주 하니까 수술 끝난 환자는 중환자실로 가도 사실 위험이 있죠. 게다가 능 선생은 수술량도 많고요. 오늘도 보셨다시피 새벽에 자주 수술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수술을 멈출 수밖에 없거든요.”

왕전문이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응급센터에서 계획하는 중환자실은 그렇게 클 필요도 없습니다. 침대 대여섯 개 넣을 자리면 충분하죠. 사실 병원에서도 진작에 동의했는데, 경비도 없고 그래서 위에서 허가를 주지 않네요.”

“제가 한 번 알아보지요.”

왕전문도 바로 결정을 내리진 않았고 얼마나 필요한지도 묻지 않았다. 어땠든 나중에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그럼 저는 일 보러 가보겠습니다. 무 원장님, 왕 선생님.”

좌자전은 옆에 눌러붙어 있지 않고 바로 인사하고 사라졌다. 이런 일은 어차피 옆에서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무 원장, 바쁘면 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조금 더 있다 가겠습니다.”

딱히 급한 일이 없는 왕전문은 능연이 공격형 탱크처럼 칸막이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보자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다.

“저도 같이 있겠습니다. 이렇게 바쁜 응급실은 저도 오랜만이군요.”

“좋습니다.”

무 원장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왕전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빛은 여전히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이 지금 다른 의사를 돕는 건가요?”

“능연, 능 선생은 지금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거죠.”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한 무 원장이 헛기침하며 대답했다.

“문제 해결하는 유형의 의사? 그렇군요. 그럼 좋은 의사겠네요.”

“그렇지요.”

왕전문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무 원장이 동의했다.

프로인 무 원장 눈에 능연은 지금 탱크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동 속도는 빠르지 않고, 공격 속도와 공격 빈도도 느렸다.

하지만 칸막이 안에 들어갈 때마다 안에 있는 초짜 의사는 놀라고, 어이없고, 탄식하는 표정을 지었다. 영양을 맹공하는 고독한 늑대가 모기한테 여기저기 뜯긴 다음에 초 거대한 사자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자 두려워서 바라보는 동안 사자가 영양을 후려치는 걸 본 느낌이랄까?

남는 뼈나 고기 찌꺼기를 먹을 수 있지만, 노력과 분투한 결과 옛다 먹어라 주는 음식을 먹는 느낌이란 정말이지 너무나······ 중독성이 강했다.

초짜 의사들은 언짢고 어이없고 조금 화도 났지만, 능연이 한 번, 두 번, 세 번 도는 동안 점점 등 뒤에 사자가 있는 느낌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먹이를 뺏기는 느낌도 점점 기댈 곳이 있는 느낌으로 변했다.

이런 리듬에 익숙해지자 초짜 의사들은 알아서 전처리를 하고 능연이 들어와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표준적인 동작으로 메인 작업을 하기를 기다렸다.

“능 선생 기술이 동년배와 비교하면 두드러지게 앞선 것이지요?”

왕전문이 아무리 문외한이라고 해도 보고 있는 동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왕전문은 다른 의사들의 표정에서 어이없음, 깨달음, 감탄, 부담을 느꼈고 분노와 탄식, 그리고 자포자기도 빠질 수 없었는데 유일하게 ‘경쟁심’이 없었다.

이런 심정 변화를 왕전문은 자기 공장에서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일반 직원들이 대단한 엔지니어를 마주할 때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병원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한 번에 이렇게 여러 번, 그것도 변화무쌍한 모습은.

“동년배야 당연히 넘어섰죠.”

무 원장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겠죠. 능 선생은 이미 수술도 혼자 하는 의사죠?”

“운화병원 정도 되는 병원의 치료 팀 팀장은 보통 주임, 아니면 부주임이라야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가끔 특별한 상황에나 주치의가 맡고요.”

무 원장도 능연을 추켜세울 생각이었다. 능연은 선대 무 원장 수술을 무사히 끝냈고 예후도 완벽했다. 전문가인 무 원장은 가족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는 걸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전체 과정에서 엄청난 능연의 실력 그리고 수술 전후 기간의 통제력도 느꼈다. 어느 나라, 어느 병원에서든 이런 의사는 찬양받을 만했다.

“그러니까 능 선생은 사실상 이미 한몫을 해낸다는 거로군요.”

“두 몫도 하지요.”

무 원장은 능연이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생각한 병원 관리 모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능력이 있고, 또 능력을 쓸 줄도 안다면 이런 관리 모드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왕전문의 머릿속에도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기술로 팀을 이끄는 사람은 우리 기계 업계에서는 가장 정상적이지요.”

“그렇죠? 사실 의료계도 비슷합니다. 소매만 휘두르면서 연줄, 이익으로 의사들을 달래면서 일 시키는 병원 관리도 있고, 나이 믿고 제자 휘두르는 곳도 있지요. 어디 이렇게 능연처럼 본인의 정상급 기술로 팀을 이끌고 능력을 휘두르는 데가 있어야 말이지요.”

왕전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 원장이 말한 ‘정상급 기술’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막 운화병원에 도착한 왕전문의 세 동생은 마침 가장 바쁜 순간을 목격했다.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화상 환자가 실려 왔는데 화상 환자는 주는 대신, 흡입식 열상 환자는 더 많아졌다. 환자 대여섯 명이 둥근 통을 안고 피를 토하고 있는 모습이 괴이하고 충격적이었다.

“셋째는 어때요?”

공항에서 만난 형제들은 왕전문을 만났을 때는 흥분이 많이 가신 상태였다.

“ICU에 있다. 잠시만 있어 봐, 설명해줄 의사를 부를 테니.”

왕전문은 그렇게 말하며 좌자전에게 손짓했다.

“의사들 모두 바빠 보이는데요.”

“괜찮다. 이 의사는 환자를 보는 그런 의사가 아니야. 좌 선생! 좌 선생!”

좌자전이 싱긋 웃으며 다가갔다.

사실 지금 바쁘지 않았다. 화재 상황 리포트는 이미 나왔고, 침대가 있는 진료과도 이미 침대를 비워주었고, 응급실 단골손님도 보낼 수 있는 손님은 모두 내보냈다.

그리고 새로 온 환자는 트랜스 조건에 부합한다면 각 진료실에서도 최대한 받으려고 할 것이다. 진료과는 어쨌든 환자가 있어야 돌아가고, 외래로 들어오는 환자를 제외하고 가장 큰 줄은 역시 응급 트랜스 환자였으니 말이다.

트랜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환자는 처리할 수 있으면 하고 안 되는 환자는 응급센터에서 바로 거절하면 된다.

그래서 바쁜 다른 의사에 비해서 좌자전은 지금 매우 수월한 상태였고, 조금 짜증 나긴 해도 위에서 시키는 일은 어쨌든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무 원장과 왕전문이 아직 응급실에 있는 걸 보고 조금 기쁘기까지 했다.

이건 정말로 기부 의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왕전문이 한가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무 원장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능연 님의 개인 ICU, 아니 응급센터 독립 ICU의 싹이 보인다는 생각에 좌자전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피었다.

“좌 선생, 여기 내 동생들이오. 이 녀석들이 우리 셋째를 만날 수 있도록 좌 선생이 손 좀 써주시겠소?”

“알겠습니다.”

좌자전은 우선 현명하게 승낙하고는 왕전문 등 뒤에 서 있는 세 동생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 건물에 화재가 발생해서 환자가 많이 왔습니다. ICU도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테니 일단 실습생 하나 보내서 상황을 알아보고 괜찮으면 모시고 가겠습니다.”

세 형제 모두 응급실의 긴장된 분위기를 느꼈기에, 왕전문 옆에 서 있던 둘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습니다. 셋째 상태가 벌써 진정됐다고 하니, 조금 늦게 봐도 상관 없습니다.”

말이 통하는 상대의 모습에 좌자전도 한숨 돌리면서 앞으로 있을 기부를 생각하면서 친근하게 다가갔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전례 선생 수술을 능 선생이 직접 했고 수술도 성공해서 그렇게 급할 건 없습니다. 음, 왕전례 선생 형님입니까? 아니면 아우입니까?”

“저는 둘째입니다.”

“아, 그럼 왕전무 선생님?”

좌자전 앞에 선 왕가 네 형제의 얼굴이 모두 살짝 변했다.

“하하, 상상력이 있으시군요.”

둘째가 억지로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동생이 다쳤으니 기분이 안 좋아서 웃음이 나오지 않나 보다 했겠지만, 좌자전은 추측이 틀렸음을 민감하게 알아차렸다.

틀렸으면 틀렸지, 어차피 친근한 척했던 것뿐이라 좌자전은 그저 웃어넘겼다.

“옛말에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문무쌍전(文武雙全), 용의문무(勇毅文武)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 고향에서는 문무예지신(文武禮智信) 항렬로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하하하, 그랬군요. 우리는 문명예모(文明禮貌) 순입니다.”

왕가 첫째 왕전문이 헛기침하며 하는 말에 좌자전이 잠시 멈칫했다. 문명예모? 네 사람인데?

좌자전의 시선이 첫째 왕전문, 둘째 왕전명, 넷째 왕전모를 지나 막내 다섯째에게 이르렀고, 순간 번뜩 깨달았다. 이 녀석은 예상 못 했구나! 부모가 이름 준비를 못 했던 거야!

“저는 왕전부(王傳富)입니다.”

아직 젊은 편인 다섯째는 새하얀 얼굴로 좌자전의 시선을 마주하면서 대답했다.

“개혁이 시작됐을 때 다섯째가 태어났죠.”

장남이 살며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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