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59화 (640/877)

“저······. 회진하러 왔습니다.”

ICU에 들어갈 때 너무 흥분한 능연은 하마터면 ‘도움’이라는 말을 꺼낼 뻔했다.

ICU 간호사도 매우 흥분해서 그런 세세한 점은 하나도 주의하지 못한 채 능연 귓가에 보고했다.

“능 선생님이 보내신 환자는 저희가 신경 써서 돌보고 있어요. 지금 2번 베드 조금 불안정하고요, 심부전 2번 왔고요. 4번 베드는 오늘 소변량이 좀 적습니다. 다른 건 괜찮은 편이고요.”

ICU에서는 ‘반드시 죽을’ 사람이 서서히 살아나는 걸 제일 많이 본다. 물론 훅하고 바로 죽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심근경색이나 기관 쇠약, 원인 불명으로 들어온, 다른 의사가 보낸 환자하고 비교하면 능연이 ICU로 보낸 환자는 회복이 더 좋은 편이었다. 특히 택일 수술한 환자는 ICU에 머무르는 시간이 모두 짧고 대부분 예방 차원에 들어오는 것이라 능연이 병원 내부에서 좋은 명성을 쌓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병원에서 어느 의사가 기술이 좋은지 가장 잘 아는 건 사실 간호사였고, 어느 의사가 메스를 가장 세심하게 잡는지는 ICU에서 가장 잘 알았다.

사회가 기대하는 미소를 보여준 능연은 바로 자기 환자를 하나씩 살폈다.

ICU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아직 간담췌외과처럼 비굴하게 굴 수는 없었다.

따라 들어가지 못한 좌자전은 왕가 사형제를 배웅한 후 원래 자리로 돌아가 유리창 너머로 관찰했다.

ICU엔 병원에서 상태가 가장 나쁜 환자가 모여있는 곳이고, 대다수 환자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 회진도 주로 검사 위주였다. 의식이 있는 환자도 한마디 정도는 대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정도만으로도 기운이 쏙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니 평소에 회진도 잘 하지 않고 검사 보고서, 각종 데이터를 더 많이 본다. 정규 ICU 환자도 모두 혈액, 객담 검사를 하고 CT, 초음파, 생화학 검사 등등을 다 하고 이렇게 축적된 리스트로 책 한 권도 만들 수 있다.

능연은 일부러 천천히 자료를 넘겼다.

그는 진작부터 심장 수술에 관심이 있었다. 사실 모든 의대생은 병원에 들어올 때 심장 수술을 하고 싶다는 꿈을 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꿈이 졸업 혹은 과 선택할 때 산산이 부서지는 사람도 있고, 심장외과에 들어가려고 할 때 그제야 부서지는 사람도 있다.

심장외과는 신인에게 매우 비우호적이다.

심장외과가 어려워서일 뿐만 아니라 심장외과 내부 경쟁이 센 편이었다. 실력이 충분한 심장외과라면 그곳이 어디든 성숙한 외과 의사가 여러 명, 혹은 수십 명 칼을 갈고 있다는 뜻이었다.

퀘스트가 내건 마스터급 심장외과 보건술은 매우 훌륭한 진입점이 될 것이다.

능연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조용히 보고서를 읽으면서 정상적인 회진 모드로 돌입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간호사도 역시 눈웃음 지으며 능연 곁에서 그를 도왔다.

좌자전은 창문 너머에서 부러워하며 지켜봤다.

사납기로 유명한 ICU 간호사가 저런 미소를 짓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위험이 생긴 환자는 없는 것 같군요.”

왕전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왜 다시 오셨습니까?”

좌자전은 살짝 놀랐지만, 화는 내지 못하고 묻기만 했다.

“밑에는 따분해서요.”

왕전문이 대충 한마디 대꾸했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할 정도로 젊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나마 대꾸해주는 건 상대가 의사이기 때문이었다.

좌자전은 고개를 돌려 그 뒤에 한데 모인 왕전명, 왕전모와 왕전부를 바라보며 이름 참 기억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좌 선생?”

왕전문이 아직 얼떨떨해 보이는 좌자전을 툭 치며 그를 불렀다.

“보아하니, 바라는 대로 안의 상황이 돌아가지 않나 보군요.”

좌자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을 꺼냈다.

“ICU 환자한테 위급한 일이 생기는 건 흔한 일입니다. 계속 평온할 수는 없을 겁니다.”

거기까지 말한 좌자전은 특별히 덧붙였다.

“동생분 병세는 ICU에서는 가벼운 편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동생 걱정하지 말라면서 ICU 환자한테 위급한 일이 생기는 건 흔하다고 하면, 뭘 믿으란 말입니까?”

“중환자실 환자는 온 병원에서 가장 위급한 환자를 모은 것이죠. 그런데 우리 응급의학과에서 보내는 환자는요, 동생분처럼, 심각한 교통사고 환자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몸이 괜찮고 능 선생이 한 수술이라서 동생분 병세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란 말씀입니다.”

좌자전은 멈칫하다가 할 수 없이 진지하게 해명했다.

“문제없으면 됐습니다.”

왕전문은 계속 따져 묻지 않고 다시 ICU 안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좌자전이 대답하기도 전에 왕전문 등 뒤에 서 있던 다섯째 왕전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ICU에 의사랑 간호사가 이렇게 많은데 장식은 아닐 겁니다.”

“그래.”

사실 왕전문도 그렇게 생각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 가까운 쪽에 모니터링 기기가 띠띠띠띠 울리기 시작했다.

능연이 걸음을 서둘러 누구보다 빨리 환자 침대 곁에 다가갔다.

“능 선생?”

주치의가 의아한 듯 능연을 바라봤다.

“도와드릴까 해서요.”

능연이 설명했다.

다른 초짜 의사였다면 분명히 쌍욕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능연이니 주치의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외과 의사가 ICU에서 비상사태를 만나서 돕겠다는데, 허락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억지로 거절할 필요까지는 없겠지?

그 생각이 들자 주치의의 표정도 편안해졌다.

능연은 주치의 얼굴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변화를 조용히 지켜봤다.

하원정도 이런 단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능연은 꽤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과정을 떠올렸다.

“우측 동공 확대, 좌측 호흡 점점 줄어듦.”

주치의가 여전히 주도권을 잡고 신속하게 검사 결과를 읊었다.

능연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복부 진단을 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도파민으로 혈압 유지하고, 좌측 흉강 드레인 준비하고 흉부외과 의사 협진 요청 드려.”

주치의는 명령을 내려놓고 켕기는 듯 능연을 힐끔 봤다.

“좋습니다.”

능연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복부 초음파 준비하고 심전도, 동맥 혈액 가스 분석해.”

능연의 허락을 받은 주치의는 순간 자신감이 높아져서 오더 내리는 목소리도 커졌다.

능연은 권력을 쟁탈할 뜻 없다는 듯 고분고분하게 조연 역할을 했다.

사실 ICU 병실에서 쟁탈할 만한 권력도 없었다. 끝도 없이 응급처치해야 하고, 내려야 할 오더도 끝이 없는데 일을 늘리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이 협력하니 평소보다 수월하기도 했다.

능연이 조수 노릇을 해주니 주치의 선생도 수월하게 흉강 드레인을 해서 약 300cc 혈성 액체를 뽑아내고는 출혈 속도가 두드러지게 느려진 걸 확인한 다음 한숨 돌렸다.

밖에 있던 좌자전도 한숨 돌리고는 왕전문을 향해 웃어 보였다.

“재미없죠? 병원은 원래 이렇습니다.”

“이런 능 선생 모습 보니까 더 마음이 놓입니다.”

왕전문은 조수로서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능연을 보며 완전히 감탄하는 표정을 보였고, 좌자전이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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