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퀘스트: 환자를 살리고 보살펴라.
- 퀘스트 내용: ICU 내 환자 10명 살릴 것. (1/10)
- 퀘스트 보상: 심장 외상 보건술 (마스터급)
능연은 시스템 제시어를 바라보며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응급처치든 ICU 내부에서 하는 응급처치든 따지고 보면 단체 협력이라 조수로도 퀘스트 진도가 오르는 것이야말로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치워.”
능연이 속으로 명령내리자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두 번 깜빡이고는 사라졌다.
모니터링 기기는 한 번 울리면 연달아 울린다. ICU에서 그건 일종의 공식 같은 것으로, 매번 발생하다 보니 연구하고 싶던 마음도 점점 무감각해졌다.
능연은 이번에도 맨 먼저 도착했다.
그의 뒤를 따라 ICU 의사도 덩달아 걸음을 서둘렀지만, 그래도 능연처럼 민감하진 않았다.
“제세동.”
검사를 마친 능연은 ICU 의사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곁에 있는 간호사 역시 가장 빠르게 반응하면서 양손을 환자에게서 뗐다.
“흉부 압박.”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미 가지런하게 누운 환자 몸에서 심폐소생을 진행했다.
원내 구조가 원외 구조보다 성공률이 높은 이유가 바로 적시 판단에 빠르고 퀄리티 높은 구급처치 때문이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심폐소생은 매일 하는 일이고 매번 골든타임 내에 해결한다. ICU 환자가 조금 더 오래 사는 것도 보통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다만, 심폐소생은 힘든 일인데 능연이 나서서 하니까 뒤에 온 의사는 딱히 뺏어서 할 생각 없이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능연은 한 번, 또 한 번 오르락내리락하며 리듬감 있는 모습으로 열심히 움직였다.
그랜드마스터급 심폐소생이라고 해도 흉부 압박 동작은 여전히 기계적이라서, 그저 위치를 더 정확히, 빈도를 더 안정적으로, 리듬을 더 좋게 할 뿐이었다.
“에피네프린.”
능연이 낮은 목소리로 오더 내렸다.
잠시 후, 에피네프린이 바로 환자 몸에 투입되었다.
“제세동.”
능연이 손을 풀자 소리 없는 진동이 환자의 몸에 가해졌다.
“심박 돌아왔다.”
뒤에서 보기만 하던 ICU 의사가 싱긋 웃으면서 돈 안 드는 칭찬을 한마디 했다.
“능 선생, 타이밍 정말 끝내준다.”
능연은 상대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미소를 보이고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모니터링 기기가 다시 울렸다.
“선생님이 하세요.”
한 바퀴 심폐소생을 한 능연 역시 바로 나서서지 않고 겸허하게 ICU 주치의에게 넘겼다.
서른 몇 살 넘은 주치의 선생은 놀랍게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져서 든든한 걸음으로 위치에 섰고 익숙한 구급처치 플로우를 바로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오늘의 주치의 선생은 갑자기 온몸에 기운이 넘쳤다. 그러니까 일종의······ 과시하고 싶은 충동?
그랬다. 본인이 가장 정통한 분야에서 능연이 못 하는 일······은 아니고, 적어도 능 선생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주치의는 주위의 사나운 간호사들을 바라보며, 별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껏 멋진 척하며 후아후아, 제어할 수 없는 힘으로 심폐소생을 진행했다.
잠시 검사한 다음 주치의는 바로 오더를 내렸다.
“마니톨. 기도 삽관.”
간호사는 그 말에 따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선임 간호사가 능연 귓가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비인두암 전이 환자예요. 전부터 뇌종(腦腫)으로 자주 기절했어요. 그래도 자가 호흡은 있고요.”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자가 호흡이라면 ICU에서는 비교적 괜찮은 상태였다. 다만 뇌전이 환자를 되살릴 확률은 거의 0에 가까웠고 계속 ICU에 둘 것인지는 환자와 보호자의 인생관과 긴급 정도에 달려 있다.
능연은 침대 앞으로 와서 주치의가 기도 삽관 키트를 열고 장갑을 낀 다음 성인용 후두경을 꺼내 삽관을 시작하는 걸 지켜봤다.
주치의는 살짝 흥분된 표정을 지었다.
“인후 경색이 조금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동작을 멈추지 않는 걸 보니, 도전해볼 생각인 것이 분명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능연도 말릴 생각은 없었다.
기도 삽관은 음식에 비유하면 면 요리나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각양각색 다양하고 별별 종류가 다 있다. 어려운 것도, 쉬운 것도 있고.
말람파티 점수(Mallampati score: 기관 내 삽관 용이성 점수)로 판단하자면 Ⅰ급 기도는 연구개(velic), 인후, 목젖, 전후 인두궁(pharyngeal arches)이 보이고 컵라면만큼 간단하다.
그러나 Ⅱ급은 인두궁은 보이지 않고 연구개, 인후, 목젖만 보인다. 이때 난도는 파스타 면 삶는 것만큼 훅 올라간다.
그러나 연구개와 목젖 밑 부분만 보이게 되면 말람파티 Ⅲ급인데 진정한 어려움이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Ⅲ급 기도 삽관은 집에서 칼국수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Ⅲ급 기도 삽관은 특수한 상황에서나 하게 된다.
눈앞에 머리가 눈에 띄게 부은 환자는 이미 인후 경색이 시작됐고, 적어도 Ⅲ급 이상일 것이다.
사실 Ⅲ급은 기도 삽관을 하느니 기도 절개를 하는 게 낫다. 하지만, 그것도 현장 의사의 결정에 달렸다.
ICU 주치의는 기도 삽관에 자신 있는 듯하니 능연도 말릴 필요가 없었다.
물론, 능연에게 선택하라고 하면 그는 기도 삽입이 아닌 기도 절개를 선택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기도 절개는 그랜드마스터급인데, 기도 삽관은 지금까지 연습했지만, 기껏해야 고급 입문급이고 전문가급에도 이르지 못한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Ⅳ급일 가능성이 있는 기도뿐만 아니라 Ⅲ급 기도라도 능연은 망설이지 않고 절개를 선택할 것이다.
기도 삽관을 잘못하면 사람이 죽을 테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능연은 조금 더 진지하게 지켜봤다.
“시발, 식도로 들어갔다.”
자신만만하던 주치의가 욕설을 내뱉자, 병상 주위 분위기가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기도 절개 키트!”
능연은 곧바로 나설 준비를 했다.
그로서는 매우 익숙한 장면이었다. 실수한 주치의, 연주를 틀린 기타리스트, 덩크슛 실패한 농구선수가 계속해서 그의 생활에 나타났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ICU 주치의가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기도 삽관은 정말로 자신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은 언제든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특히 Ⅲ급 기도는 누구에게 삽관하든 쉽지 않지만, 식도로 들어가는 일은 그래도 드물었다.
주치의는 무심결에 한숨을 내쉬면서 곁눈으로 능연을 힐끔 보며 이번 잘난 척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제는 어떡해야 하나 쉴새 없이 생각했다.
그러나 주치의가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능연의 ‘기도 절개 키트’라는 말이 들렸다.
주치의가 경악해서 고개를 드니 간호사가 이미 배신한 암사자처럼 기도 절개 키트를 능연에게 건넸다.
진작에 장갑을 끼고 있던 능연은 한마디도 없이 가방을 열었고, 혼수상태인 환자를 힐끔 보고는 마취도 없이 메스를 들어 환자의 목에 절개구를 냈다.
“빠르다!”
“멋지다!”
“능 선생님만 믿어요!”
간호사들이 박수 치고 춤추지 못해 한이라는 듯 동동거리던 모습이 바로 주치의가 기대하던 장면이었다.
주치의는 조금이라도 잘못된 점을 발견하려고 정신을 집중하고 능연의 동작을 지켜봤다. 무슨 소인배 같은 생각이 있는 건 아니고, 찾는다고 해도 십중팔구는 입에 올리지 않을 것이다. 그냥 속이나 후련하고 싶었다.
주치의는 능연이 피하 조직의 목 천근막(superficial fascia)과 광경근 (musculus platysma)을 절개하고 전경근(anterior cervical muscles)까지 문제······가 없는 걸 지켜봤다.
능연은 매우 빠른 속도로 손을 놀리면서, 거의 시진만으로 메스 댈 자리를 결정했다. 물론, 주치의는 ‘나도 할 수 있······을 걸?’이라고 생각했다.
맞은편 절개구에서 훅을 당길 때는 실수할 일이 당연히 없으니, 주치의도 능연이 거기서 실수하리라고는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능연이 고작 몇 번 손을 놀린 다음 중선 박리를 하고 노출하고 당기자 주치의는 참을 수 없어졌다.
‘이렇게 빨리할 필요는 없잖아.’
주치의는 고개를 숙인 채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게 능연의 동작에 대한 평가였다.
능연은 이어서 당기고, 타이하고 봉합을 시작했다.
여전히 빠르고 정확한 동작으로.
주치의는 변함없이 침착한 표정으로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따라 했다.
기도 절개 같은 작은 수술은 ICU 의사인 그 역시 질리도록 했었다. 필요하다면 그도 이만큼 빨리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이만큼 정확하게 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든 주치의의 목이 서서히 치켜들려 올라갔다.
나랑 능 선생, 거의 비슷해.
주치의는 그런 표정으로 간호사들을 보다가 능연을 바라봤다.
“나머지는 선생님이 하세요.”
ICU 주치의의 한가한 모습에 능연은 습관적으로 마무리 일을 그에게 넘겼다.
“오케이!”
주치의 역시 생각도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야 멈칫했다.
병원 생활은 이런 것이다. 위에 의사가 일을 아래 의사한테 맡길 때, 그 대상이 꼭 자기 팀 의사일 필요는 없다.
ICU 주치의 역시 능연이 자기보다 높다고 생각했기에 고분고분 승낙한 것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간호사부터 능연까지, 그리고 ICU에 있는 다른 의사들 역시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ICU 주치의는 쓴웃음을 짓고는 별말 없이 묵묵히 기도 절개 마무리를 하고는 호흡기를 달고 약 처방을 내렸다.
능연은 한쪽으로 물러섰다.
ICU 약 처방은 수술실보다 더 세심하고 응급의학과보다는 더욱더 세심하다. 정맥 펌프, 수액 펌프는 액체 주입 속도를 한 시간에 10cc에서 몇십cc까지 컨트롤 할 수 있다.
능연은 이런 쪽으로 겉핥기만 알고 있으니 당연히 물러난 것이다.
ICU 주치의가 과시하고 싶어도 약 처방으로 과시할 것도 없었다. 내과가 하는 일이 바로 그거니까. 내용이 섬세하고, 돈을 더 잘 벌고, 스트레스가 적고, 책임감도 적고, 야근도 적었지만, 멋은 없었다.
“일단 여기까지. 이따 혈압 체크하고.”
주치의는 침착하게 후속 작업을 마치고 마지막 오더를 내리고는 능 선생을 바라봤다.
“능 선생, 회진 끝났어?”
과시도 할 수 없고, 권위를 빼앗길 가능성을 느낀 ICU 주치의는 능연의 존재를 배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특히 땀도 흘리지 않은 능연 이마는 간호사가 나서서 닦았지만, 자기는 모자까지 젖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젖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자, 반감은 더욱 강해졌다.
능연은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반감을 매우 예민하게 알아챘다.
그는 사교 관계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은 매우 익숙했다.
그리고 그럴 때 능연의 태도는 시종일관 같았다.
그는 살며시 웃으면서 자기 할 일을 착착하기로 결정 내리고 입을 열었다.
“아니요.”
주치의가 입을 뻐끔거리며 ‘정말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게 아닌데?’하고 생각했다.
“능 선생, 능 선생도 봤겠지만, 우리 ICU 지금 바빠서 말이야.”
주치의는 속으로 투덜거린 다음 그렇게 말했다.
“언제는 안 그랬나요? 지난번에 부 원장님 오셨을 때는 이러지 않으셨잖아요.”
선임 간호사가 제 할 일을 하면서 불만스러운 듯 한마디 대들었다.
병원에서 단연코 ICU 간호사가 가장 사납다.
물론 ICU 의사도 보통 사납고 매너도 없다. 중환자실 같은 곳엔 ‘예의’ 같은 게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가장 사나운 의사라도 평범하게 사나운 간호사 앞에서는 기껏해야 동점이다.
슬쩍 미간을 좁힌 주치의 선생이 뒤를 돌아 그 간호사를 바라봤을 때, 간호사는 환자 소변 유도관을 꽂고 있었다. 간호사가 슉슉 손을 놀리자 그 거대한 소변 유도관이 꾹 하고 들어가야 할 자리에 박혀서 깊숙이 들어갔다.
“됐다.”
주치의는 더 말하기 귀찮다는 듯 입을 내밀었다.
“염 선생님, 점심에 얘기했던 그 환자 온답니다.”
“내가 가볼게요.”
전화를 받은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가 보고하자 그 틈을 타 병실에서 나갔다.
능연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회진을 계속했다.
일이 생기면 응급처치하고 일이 없으면 회진 도는 리듬을 능연은 매우 자유롭게 즐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치의 염 선생이 보호자 한 명과 함께 환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운화병원 ICU는 엄격한 면회 시간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엄격하게 운영되진 않았다.
“다시 들어오는 환자거든요. 전에도 염 선생님 환자였어요. 환자도 치료에 협조적이고 살려는 의지가 강해요. 드문 일이죠.”
능연의 시선을 느낀 간호사 하나가 염 선생 대신 설명했다.
“아.”
“이 커플도 참 안 됐어요. 여자 집은 꽤 잘 산대요. 금수저예요. 남자는 흙수저고요. 여자 집에서 심하게 반대해서 결국 집 나왔대요. 어렵게 가게 하나 차려서 사는데, 이렇게 남자가 병이 생겨서······.”
허탈한 듯 가십 이야기를 하는 간호사의 모습에서는 아까까지 사납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능연은 그제야 환자 뒤에 분위기 있는 여자를 주목했다. 서른 좀 넘은 모습인 여자가 눈도 떼지 못하고 병상의 남자를 바라봤다.
산소 마스크를 쓴 남자는 말도 하지 못했고 눈빛도 조금 흐릿했지만, 완전히 정신을 잃을 때까지 최대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병입니까?”
“위암이요. 간에 전이 됐고요.”
능연의 질문에 사정을 아는 간호사가 대답하자 능연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검사 보고서랑 필름 좀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