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63화 (644/877)

운화병원 학술실.

이곳은 운화병원에서 가장 규격을 갖춘 회의실이었다. 이름은 ‘학술실’이지만, 면적이 넓고 테이블이 크고 편안한 앉은 자세가 긴 시간 싸우기에 적합해서 여러 진료과가 얽힌 일, 즉 싸워야 할 때는 학술실의 효과가 발휘된다.

곽종군은 그곳이 제 집처럼 익숙했다. 일찌감치 능연을 데리고 들어가서 입구 사선, 창문을 등진 자리를 찾아 편안하게 앉아서 다리를 치켜들고 껄껄 웃으며 말을 꺼냈다.

“능연, 이게 보게나. 회의도 다 때가 있는 법이지. 회의는 사람과 사람이 이익을 쟁탈하는 전장이야. 학술회의는 의사가 이익을 쟁탈하는 명예와 이익 전쟁이고. 회의마다 진지하게 임해야 하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회의실에 와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곽종군 옆에 앉은 능연이 대답했다.

“그렇지. 일찍 회의실에 오는 건 전투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야.”

곽종은 가르칠 만한 녀석이라는 눈빛으로 능연을 힐끔 보고는 계속 경험을 전수했다.

“내 구역에서 전쟁을 치르는 게 가장 유리한 것처럼, 회의실에서 회의할 때도 사전에 준비하고 연구해야 해. 내 자리 좀 보라고.”

능연은 곽종군이 앉은 자리를 봤지만,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자 곽종군은 팔을 휘두르며 능연을 가르쳤다.

“여기 앉으면 문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볼 수 있지. 그런데 상석은 아니라서 화살받이가 되지 않아. 등 뒤에 창도 굳게 닫혀있으니 바람 불 일도 없고 에어컨도 바로 부는 자리가 아니지. 잠깐 앉아 있어도 편하고 장기전도 할 수 있고, 밤을 새워 회의해도 몸 상태 때문에 타협하는 일도 없지!”

잠시 관찰한 능연은 그 점은 인정하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것 말고도 정수기 위치도 매우 중요하지. 너무 멀면, 다른 사람들이 뜨거운 물을 많이 써서 찬물밖에 못 마실 수도 있어. 찬물을 마시면 배가 꾸르륵거려서 어찌 오래 버티겠나. 그렇지? 이런 건 다 작은 일이고 평소에 쓸 일은 없지만, 30시간짜리 회의할 때는 정말 결정적 포인트가 된다네.”

곽종군은 그렇게 말하면서 싱긋 웃음까지 지었고, 능연은 그런 곽종군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봤다

“하아, 이럴 땐 좌자전이 있어야 하는데. 좌 선생이라면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해낸 건지 물었을 텐데 말이야.”

곽종군이 고개를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막 응급에 왔던 시절에는 구 병동 회의실을 썼었지. 나는 보온병을 사수하면서 우리 쪽 사람이 오면 주고, 나머지는 죽어도 상대에게 주지 않고 노인네들 목을 말려버렸지. 하아, 젊을 때는 신장도 좋았다.”

한창 과거 회상을 마친 곽종군은 능연의 자리를 잡아 주고는 총결을 내렸다.

“자네가 수술실을 좋아하는 건 별문제 아니다만, 병원은 회의도 무시하면 안 돼. 특히 이런 중요한 회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정 모르겠거든, 일찍 와서 이 의자에 앉아서 상대가 자네한테 두들겨 맞고 말도 못 꺼내는 그런 장면을 상상해 보게. 바로 생각이 휙휙 돌아갈 테니까.”

“그러니까, 회의실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격앙됐던 곽종군의 표정이 순간 차분해졌다. 하지만 곽종군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잠시 후에 꽤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 귀찮게 할 일도 없고, 나도 편하고. 좋은 거 아닌가.”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 이름표를 원하는 자리에 놓고 능연의 이름표도 옆에 놓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직원은 바로 옆에 서서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이런 회의에도 순서는 있지만, 곽종군이 자기 자리를 직접 옮기겠다는데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5분 후, 그제야 사람들이 회의실로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바쁜 집단이라, ‘막 비행기에서 내림.’, ‘곧 이륙.’, ‘곧 수술’, ‘곧 끝남’이란 그들의 평소 모습이었고 5분, 10분 늦게 회의실에 도착하는 의사는 이미 시간을 매우 잘 지키는 유형이었다.

곽종군이 냉랭하게 의사들을 바라봤다.

맞은 편 이름표도 이미 바꿨다. 특히 곽종군 맞은편 위치 이름표에 ‘하원정’이라고 똑똑히 쓰여 있었다. 자리에 도착한 하원정은 뚫어져라 바라보는 곽종군의 눈빛에 식은땀이 담낭을 따라 바닥까지 흘렀다.

“부주임 위주로 왔구만.”

잠시 바라보던 곽종군의 표정까지 부드러워졌다.

병원의 과 주임과 주임 의사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일반외과 같은 강력한 진료과에서 과 주임이 왔다면 생각을 잘 정리하고 근거에 맞게 패야 한다. 그러나 부주임 몇이라면 그렇게까지 따질 것도 없고 되는 대로 패면 그만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곽종군은 점점 그윽하게 웃었고, 물을 많이 준 접난처럼 혀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맞은편에 앉은 하원정은 곽종군 한 번, 능연 한 번 보면서 짠지라도 된 기분으로 짜증이 훅 밀려 올라왔다.

“하원정, 병원 안에서 옷을 그렇게 많이 입으니까 이마에 땀을 흘리지.”

곽종군은 껄껄 웃으면서 신경 써주는 듯 하원정에게 말했다.

하원정은 누가 봐도 억지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옷을 얼마나 입었다고. 하얀 가운 안에 수술복 하나였고, 이것보다 덜 입으려면 팔뚝을 내놓고 다니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팔뚝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보다 더 나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생각 중인데 곽종군이 다시 묻는 소리가 벌써 들렸다.

“이번 케이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능연을 지지할 텐가, 아니면 다른 생각이라도 있나?”

마주 앉은 일반외과 부주임 위청이 다급하게 곽종군을 저지하며 반 농담하는 말투로, 하지만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곽 주임님, 회의 아직 시작 안 했습니다. 벌써 본인 이야기하시면 안 되죠. 시작하고 말씀하세요.

그러자 곽종군이 입을 삐죽였다.

“이러나저러나 다 소통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게다가 지금 하는 말 회의 때라고 못 할 것 같습니까? 그냥 의견인데 이야기 좀 하면 어때서요.”

일반외과 의사 중에서 위청은 응급의학과와 잘 지내지 못하는 사이였다.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청이 자주 하는 장 수술이 응급의학과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드러내놓고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운화병원에서 손꼽히는 대형 진료과인 일반외과는 태생적으로 응급의학과가 세력을 넓히는 걸 반대할 명분이 있었다. 응급의학과를 대하는 태도로 파를 나눈다면 위청은 일반외과에서 반대파 두목이었다.

“회의를 하기로 했으면 회의를 해야지요. 그냥 MDT 아닙니까? 그것도 사적으로 편 먹을 필요 있습니까?”

“그래요, 맞는 말이군요.”

곽종군은 모처럼 위청의 말에 동의했지만, 속으로는 이건 능연 MDT거든? 하고 생각했다.

“다들 모였으니 시작합시다.”

마지막에 도착한 소화기 내과 주임이 모두를 재촉했다. 그로서는 이 수술을 누가 하든, 어떻게 하든, 어차피 내과 일도 아니라서 전혀 상관없었다.

“능연, 케이스 소개하게.”

곽종군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응급센터의 속셈을 아직 모르는 다른 외과 의사들 역시 그냥 일반적인 수술 토론으로 여기고 평소처럼 웃기만 했다.

‘니들은 전쟁 준비에서 이미 졌어.”

곽종군은 약체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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