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65화 (646/877)

곽종군은 굳은 얼굴로 회의실에서 나갔다.

혹시라도 웃음을 터트려서 다른 의사들이 난처해지고 다음 일에 영항을 줄까 봐서였다.

그러나 응급센터로 돌아온 다음엔 더는 참지 않고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능연, GS 위청 마지막 표정 봤나? 고소해라.”

고개를 흔들면서 웃는 곽종군의 새하얀 치아가 천장의 조명에 반사되어 번쩍 빛이 났다.

능연은 곽종군을 향해 비교적 평범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걸로 그의 마음도 다독이고 대화도 계속 할 수 있게 했다.

“GS는 항상 보수적인데, 이번에 자네가 제대로 한 방 먹인 거야.”

곽종군은 회의실 장면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났다.

하원정이 발언권을 포기한 후, 일반외과 위청 등 다른 사람도 발언 의사를 포기하면서 환자의 주도권을 양손으로 바친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이 생각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으니, 간 절제 방면에 절대적인 권위가 있는 능연은 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런 회의는 원래 의사, 연구진들이 어떻게든 피한다. 어떤 수준의 회의든지 전문 분야에 관한 화제는 당연히 전문 인원이 외부 인원보다 강하다. 그리고 환자의 생사가 달린 화제에서는 그런 가중치가 더욱 기울어진다.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다들 일부러 대항할 이유가 없다.

간암 전이 수술은 다른 건 둘째치고 능연이 정말로 해낼 가능성만 있다면, 그 점 하나만으로도 현장에 있는 사람, 즉 위청 등이 경쟁할 수가 없었다.

이것 역시 실력이 안 되면 묵묵히 참아야 한다는 병원 생활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수술 능력이 바로 외과의의 가장 중요한 지표이며, 모두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나 공평하게 기술을 논할 여지가 생긴다.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실력 강한 놈이 실력 약한 놈을 깔아 뭉갤 수밖에 없다.

곽종군은 그런 불공평을 매우 즐겼다.

“이러다가 장 쪽 외래도 우리가 하겠군.”

곽종군이 갑자기 한마디 했다. 사실 지금 막 떠올린 생각도 아니었다.

응급의학과에서 장 쪽 외래를 여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전문적인 외래보다는 급성 복통, 설사 같은 흔한 장 질환을 주로 대응해서 일반외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곽종군의 대형 응급 판도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운화병원 일반외과가 강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장 분야 외래를 시작했을 것이다.

“저 그쪽 할 시간 없는데요.”

능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수액이나 놓고 그런 일이야.”

곽종군이 싱긋 웃었다.

“자네는 계속 간 절제 하면 되네. 참, 환자는 좌자전을 보내 처리하도록 하게. 동의서 등등, 모두 두 부 받아야 하네. 환자한테도 받고, 보호자도 받고. 직계 친척 몇 사람도 받으면 더 좋고.”

“친척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 아마 부부뿐일 겁니다.”

잠시 말을 멈췄던 능연이 덧붙였다.

“아, 생각났다. 가출했다고 했지? 여자 쪽이 허락을 안 한다고. 그럼 남자 쪽 부모는?”

“돌아가셨답니다.”

곽종군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가족관계야 단순한 게 좋지. 그래, 그럼 그쪽은 고민하지 말고, 또······ 자네 수술할 때 사진 많이 찍어 두게. 흠, 내가 사람 시켜 영상을 찍겠네. 그래야 나중에 자료로 남지. 실습생, 훈련의 교육할 때도 좋고, 논문 쓰기도 편하고.”

“알겠습니다.”

능연이 대답했다.

메이요 같은 세계 정상급 병원은 수술실에 외과 촬영기사가 아예 배정되어 있다. 물론, 요즘은 촬영 비용이 낮아서 가능했다.

“음, 그럼 여기까지 하지. 다른 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세. 자네는 수술 준비만 잘하면 돼.”

곽종군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 케이스를 홍보할 생각이었다. 위암 간 전이 수술은 국내에서 최근에나 하는 사람이 조금 늘었고, 운화병원 자체는 거의 없었고 창서성 내로 따지면 더욱 귀했다. 수술을 성공한다면 조금만 이용해도 최고의 홍보 재료가 될 것이다.

다만, 괜히 부담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능연 앞에서 할 필요는 없었다. 주임은 조금 전 회의 디테일을 곱씹으며 신나게 웃기나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생각하는 대로 행동했고, 응급센터로 들어선 이래 새하얀 치아에서 번쩍이는 빛이 멈추지 않았다.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가 그런 곽종군의 웃음을 보며 저도 모르게 우울해졌다.

“무슨 중대 사고가 일어난 것만 아니면 좋겠네.”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뒷짐 진 채 밑에 의사가 일하는 걸 지켜보던 주 선생이 대수롭지 않은 듯 물었다.

“주임님 웃는 게 심상치 않아서요. 너무 환하게 웃으시잖아요.”

주 선생이 고개를 들어보았지만, 곽종군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곽 주임님이 무슨 저주 인형도 아니고, 웃는다고 중대 사고가 일어나?”

“선생님, 전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 이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세요.”

주 선생이 웃으며 하는 말에 레지던트가 다급하게 강조했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일이나 해! 너 말이야, 너. 레지던트는 병원에서 사는 것처럼 일하는 건데, 너 지금 레지던트 몇 년 차냐? 아직도 수처나 하고. 능연은 이제 간 연합 수술도 한다.”

외모가 평범해서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레지던트가 고개를 들고 주 선생을 똑바로 바라봤다.

“진심이세요?”

“젊을 때 노력 안 하면 나중에 고생한다. 됐다. 여긴 너한테 맡길 테니 이따 케이스 리포트도 쓰고, 검사 보고서 나오면 살펴보고. 아, 그리고 아까 관찰병실에 있던 여자, 심전도 찍는 거 잊지 마라. 오전에 영감님 약 다시 바르는 것도 잊지 말고.”

주 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뗐고, 점점 멀리 사라지면서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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