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마침 면회 시간이라 왕가 삼형제 문명모가 대기실에 앉아 막냇동생 ‘부’를 먼저 보내 병상에 누워있는 ‘예’를 살피게 했다.
능연이 나타나자 문명모 세 사람이 정중한 환영을 나타내는 모습으로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진 가십니까?”
“동생분은 상태가 안정됐습니다. 며칠 있으면 일반 병실로 갈 수 있을 겁니다.”
왕전문이 공손하게 쓸데없는 소리를 묻자, 왕전문을 알아본 능연이 바로 대답했다.
다른 외과의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병세가 위중할수록 오래 입원하고 의사의 태도는 더 좋고, 말도 더 많고 기억도 또렷해진다.
장기를 여러 개 적출한 왕전례는 당연히 위중한 부류고 능연도 당연히 자세히 기억했다.
황급하게 감사 인사한 왕전문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능 선생님, 그 가출한 젊은이 수술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그럴 생각입니다.”
능연은 그런 질문을 왜 하는 건지 상관하지는 않고 질문에 대답했다. 왕전문은 왕전례의 가족이지 그 환자의 가족이 아니라서 대답이 간단하겠거니 하면서.
하지만 왕전문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능 선생님이 나서면 젊은 부부가 그렇게 고생하진 않겠네요.”
능연은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왕전문을 바라봤다.
“안 됐잖아요. 여자가 가출했으니 집안에서 의절해서 이제 의지할 곳은 남편밖에 없을 테고, 그냥 성실하게 살면 될 것을 남편이 암에 걸렸으니······.”
거기까지 말한 왕전문은 무기력하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긴 하지만요. 내 생각에 아가씨 부모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후회하겠지요.”
능연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능 선생님 수술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왕전문도 그저 자기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ICU에서 동생 돌보느라 본인도 우울하다 보니 몇 마디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능연은 변함없이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다가 문 앞쪽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뒤에 서 있던 왕가 삼형제는 묘하게 마음의 소용돌이를 느꼈다.
환자는 여전히 혼수상태였다. 아내는 따듯한 물을 떠서 조심스럽게 남편의 손을 닦았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수시로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봤지만, 남편은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보호자분도 좀 쉬세요.”
소봉에게 다가간 간호사가 나지막이 속삭이다가 목이 간질거려 헛기침했다.
낮게 속삭이는 건 ICU 간호사에게 드문 일이었다.
거칠게 고함치고 사납게 눈을 부릅뜨고 성질을 부리는 것이야 말로 ICU 간호사의 진정한 특성이었다. 그런데도 소봉의 처지가 정말로 딱하다보니 간호사도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춘 것이다.
“감사합니다.”
소봉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호사가 자기를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걸 아는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이가 처음으로 ICU에 입원했을 때만 해도 빨리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가길 바랐는데······ 매번 나 혼자 집에 가네요.”
“수술하기로 하셨잖아요. 수술 끝나면 조금 더 머무르다가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간호사도 뭐라고 위로해야 좋을지 몰랐다. ICU 환자가 기분 좋게 돌아가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침묵 속에 떠나는 때가 더 많다.
흔한 일이라 간호사 역시 습관이 된 일이었다.
그러나 소봉 같은 보호자는 같은 여자로서 더 연민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유복한 환경을 버리고 용감하게 애인과 가출해서 자기의 작은 가정을 만들고 열심히 살면서 드디어 작은 성과를 이뤘는데, 바로 남편의 위암 소식이 전해지다니.
간호사는 아픈 마음으로 소봉을 바라봤다.
“차라리 남편이 바람피운 게 낫겠네. 호적 정리하고 나가면 돈은 남잖아.”
나이든 간호사가 너스 스테이션에 앉아 멀리 보이는 소봉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것보단 차라리 남편이 죽는 게 낫죠!”
곁에 있던 어린 간호사가 나이든 간호사의 설정에 불만을 표시하며 입을 삐죽였다.
“차 사고가 깔끔하지. 돈이 남을 뿐만 아니라 배상금도 생기잖아.”
선임 간호사가 철저히 연구한 것 같은 말투로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얘기 좀 하면 안 돼요?”
ICU 주치의 염 선생이 못 들어주겠다는 듯 말했다.
“병 안 생기면 제일 좋지만, 그럼 우리가 볼일도 없잖아요.”
어린 간호사가 반 농담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사실 고칠 수 있으면 제일 좋죠. 도매업을 한다던데, 모은 돈은 좀 있나 봐요. 에휴, 조금이라도 벌면 다행이죠, 장사하는 사람들은 회전할 본전은 있어야 하잖아요.”
“고치기가 어디 쉽나.”
염 선생이 의미 모를 웃음을 지으면서 시선을 이제 막 들어온 능연에게 옮겼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나온 능연의 말린 머리카락이 여전히 조금 붕 뜬 상태라 막 눈 뜬 젊은 사자 같았다.
염 선생은 자극 받은 듯 정신을 퍼뜩 차렸다.
능연 앞에서 조금도 태만할 수 없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능 선생, 또 회진 왔어?”
“네. 조윤 씨는 어떤가요?”
능연은 병상 번호가 아닌 이름을 직접 불렀다. 그것도 위암 전이 수술이 그만큼 큰 수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기척을 들은 소봉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당황한 듯 능연을 바라봤다.
소봉으로서는 의사가 나타나면 걱정밖에 들지 않았다.
염 선생은 힐끔 그쪽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안정됐어. 아침에 CT 스캔 했는데, 면적이 조금 늘었더라고.”
“제가 좀 볼게요.”
능연은 직접 나서지 않고 목만 빼서 모니터를 바라봤다. 간호사 하나가 재빨리 조윤의 CT를 꺼내 능연이 보기 편한 각도로 조절했다.
“동공(瞳孔) 현상이 명확하네요.”
능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필름을 바라봤다.
간 전이 종양은 활발한 대사로 인해 혈액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져서 조기에 괴사 증상이 일어난다. 즉, 병소 중심에 종양 세포가 대량 아사해서 중심부에 저밀도 그림자가 생기게 된다.
중심 종양 세포가 죽어서 그레이스케일(gray scale)이 생기고, 범위가 좀 더 큰 종양은 정상 세포와 얽혀 다른 그레이스케일이 생긴다. 그래서 CT에서 보는 이런 종양 병소가 동공 같다고 해서 동공 현상이라고 부른다.
중심부 괴사 범위가 더 커져서 괴사 범위가 종양보다 커지면 Circle cake sign으로 CT에 나타난다.
그 중간 사이즈는 우안(牛眼) 현상(bulls eye sign)이라고 한다.
조윤의 간 전이는 아직 그렇게까지 넓은 범위가 아니었고, 그래서 수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종양 전이가 멈춘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방사선 치료 한 번 했나요?”
“응.”
“내일 수술할 수 있도록 조절해 봐야겠네요.”
능연은 바로 수술을 하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위암 간 전이 케이스는 일정 정도 방사선 치료를 진행한 후 수술하는 게 효과가 더 좋았다.
염 선생도 요 며칠 부랴부랴 관련 논문을 읽었고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소봉을 힐끔 보고는 말을 꺼냈다.
“능 선생, 보호자분 여기 계신데, 몇 마디 해주지그래.”
“뭐라고 해요?”
능연이 단순하고 명확하게 묻자 염 선생이 멍해졌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술 전 면담?”
“좌 선생님이 하셨어요.”
능연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생명을 연장하려고 보호자가 수술을 선택했겠죠?”
“당연하지.”
능연의 뜻을 알아차린 염 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위&간 연합 근치술은 말이 근치술이지, 근치란 불가능했고 극히 일부분만 긴 시간 생존할 기적이 생긴다. 그리고 대부분 환자는 해당 수술을 한대도 3년 생존율이 0에 가깝고, 5년 생존율은 통계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그러나 ICU에서 죽음을 기다리거나 혼수상태에서 사망하는 것보다 1, 2년이라도 살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이 수술의 의미였다. 다만 그로 인해 생길 금전, 에너지 소비 그리고 환자가 겪을 고통은 환자와 보호자의 선택에 달렸다.
염 선생은 저도 모르게 소봉과 조윤을 바라봤다.
‘1년이라도 더 살 수 있길 바라겠지.’
능연도 그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회진을 계속했다. 며칠 전에 간 수술한 환자들도 아직 퇴원하지 않았다.
띠띠.
병상의 모니터링이 보란 듯이 울렸다.
“ST 상승, 심근경색. 심장 내과에 통지하세요.”
방향을 겪어 달려간 능연이 고개를 들어보고는 바로 지시를 내리고는 흉부 압박을 시작했다.
“능 선생은 지금도 직접 심폐소생을 합니까?”
동생과 바꿔서 왕전례를 살피러 들어왔던 왕전문이 몸을 아끼지 않는 능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효과적인 심폐소생은 흉부 압박이 매우 중요했고 병원에서 구조 실력이 제일 좋은 능연이 직접 나서는 건 당연했다.
“그야 능 선생님이 CPR을 가장 잘하니까요.”
곁에 있던 간호사가 양손을 가슴에 모아쥐고 대답했다.
“가장 효과적이고요.”
환자 약을 발라주던 다른 간호사도 눈빛이 멍해져서 칭찬했다.
“정말로 최고죠.”
왕전문을 아는 선임 간호사가 특별히 강조했다.
그러자 왕전문이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