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팔을 뻗은 능연은 다시 거둬들이고 환자의 몸에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의 환자의 배를 전부 열어치울 것처럼 길고, 길고 긴 줄이 그어졌다.
위&간 연합 수술은 환자의 배를 전부 열어야 한다.
간호사들과 어시들은 능연의 선 그리는 동작을 보며 표정이 저절로 엄숙해졌다.
이렇게 대형 절개구를 여는 수술은, 어느 병원, 어느 수술실에서든 엄숙하게 대한다.
능연의 표정은 더욱 진지했다.
조윤 환자의 배를 이미 여러 번 가상 인간으로 모의했기에, 눈 감고도 그 안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복잡한 수술을 실제로 조작할 때는 변함없이 신중했다.
반복 또 반복하면서 모든 디테일을 기억하고, 정밀하게 조작해도 실전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는다는 건 게임 세상에서나 가능했다.
현실은 언제나 훨씬 복잡했다.
환자의 스트레스 반응은 접어두고, 마취의, 어시와의 협조는 언제나 수수께끼 같은 존재이니까.
의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사람이 별 희한한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별 희한한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도, 수술 진도와 방향은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 준비가 충분해도 수술 시간이 긴 수술은 빈번하게 실수가 발생한다.
큰 실수 한 번 일어나기 전에 300번 작은 실수가 있는 법이다. 테이블 데스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수술대에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착착 진행됐다는 걸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외과의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환자 몸에 일어나는 희한한 변화를 막을 수 없고, 환자 몸에 투여된 혈액 제품에 변화가 생길지 아닐지 알 수 없으며, 마취의가 완벽하게 조작하고 있는지는 더욱 알 수 없다.
능연은 환자의 예후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가상 인간으로 수술 조작은 예상할 수 있어도 수술 후 예후는 예측할 길이 없었다.
위암 간 전이 외과 수술 앞에 수많은 문제가 펼쳐지는 것도 바로 예후가 좋지 않아서이다. 물론, 지금은 어떤 치료 수단을 써도 위암 간 전이는 모두 예후가 좋지 않다고 봐도 무방했다.
5년 생존율이 15% 심지어 10% 이하라는 것은, 위암 간 전이 환자 머리 위에 겨냥된 칼날과도 같다.
능연이 아무리 병소를 깔끔하게 제거해도, 암이 재발할지, 전이되지 않을지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물론,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처리하면 전이 확률을 내릴 순 있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위암 간 전이 외과 수술 치료법은 지금까지도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다.
많은 의사가 종양이 일으킨 출혈, 천공, 경색 등 문제를 처리해서 환자의 생존율과 생존 기간을 높이는 완화성 수술(palliative operation: 병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것보다 완화시키는, 임시적인 수술)을 찬성한다.
능연은 그 방면으로도 방안을 준비했다.
어쨌든 배를 정말로 열었을 때 무슨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말이다.
“메스.”
능연은 머릿속에 수천 가지 생각을 정리하며 손은 이미 정한 방안의 스텝대로 차근차근 움직였다.
장안민 등 어시는 밥그릇을 지키는 대형견처럼 눈을 부릅뜨고 수술 구역을 바라봤다.
소가복도 마찬가지로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주시하면서 자기네 부주임이 약 용량을 올리고 내리는 걸 지켜봤다. 오늘 수술은 너무 큰 수술이라, 능연이 동의한다고 해도 단독 진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메스의 움직임에 따라 피부가 빵 껍질이 벗겨지는 것처럼 살짝 열렸다.
누렇게 뜬 지방층이 모던한 과립감과 느끼함을 풍기면서 무영등 불빛 아래 심오한 냄새를 풍겼다.
“뚱뚱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장안민이 낮은 목소리로 한마디하면서 분위기를 조금 풀었다.
고개를 들어 장안민을 힐끔 본 연문빈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곁에 있는 마연린에게 눈짓했다.
장안민 선생 좀 보소. 부주임 되니 다르네. 머리 위 참관실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농담도 하네. 게다가 재미도 없는 농담을 말이야. 요즘 사람들 참 경솔해. 간담췌외과 부주임도 부주임이야? 간담췌외과 주임 하원정 주임도 고개를 납작하게 숙이는데 말이야. 게다가 부주임이나 된 사람이 아직 능 선생한테 아부를 이렇게 심하게 떠네. 뻔뻔해지려고 부주임 된 건가? 매달 더 버는 돈으로 팩이나 좀 사서 하지. 난 족발 졸일 때도 피부 관리하는데 말이야.
마연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복잡하네.”
능연이 환자의 배를 열자, 곁에 있던 장안민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사실 능연을 거들 생각이었다. 위암 간 전이 환자라, 배를 열지 않아도 안에 상황이 얼마나 복잡할지는 뻔했다.
일부러 그 말을 한 것도 능연을 추켜세우기 위해서였다.
“네. 석션 조심해서 하세요.”
능연은 의외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하고는 한마디 코치 후 몰입하기 시작했다.
오늘 수술을 위해서 능연은 20분이나 가상 인간을 활용했다. 뒷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앞부분은 확실하게 파악되었다.
정말로 문제가 생기기 쉬운 부분은 모두 뒷부분인데, 시간제한이 있는 가상 인간으로 몇 시간이나 걸리는 수술 과정을 모두 모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능연은 모든 스텝에 신중하게 임했다.
근치성 수술은 모든 상황이 순조로워야만 진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행할 의미가 거의 없고, 차라리 완화성 수술로 생존 시간을 연장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능연은 근치성 수술을 최대한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그것이 외과 치료 방안의 진정한 장점이었다.
“거즈.”
능연은 허리를 곧추세웠다가 표정 변화 없이 낮게 지시 내렸다.
소봉은 운화병원 응급센터 대기 구역에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초조 불안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런 소봉을 본 중년 남자가 눈을 번뜩이면서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가 옥수수를 내밀었다.
“여기 오래 서 있던데, 아침도 안 먹었죠? 이거, 남는 거예요. 배나 좀 채워요.”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소봉이 완곡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남자는 간질간질한 마음으로 옥수수를 거두고는 대화 모드를 오픈했다.
“가족이 병 난 거예요? 무슨 수술인데요?”
“큰 수술이에요.”
소봉은 그다지 대꾸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고, 중년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 동정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 말아요. 내 동생도 전에 위 천공이 생겨서 위 절제했거든요. 온 가족이 놀라서 난리였는데, 별거 아니더라고요.”
“그래요?”
“그쪽 가족은 이거보다 더 큰 수술?”
“네.”
“뭔데요?”
“위도 절제해야 해요.”
“도? 그럼 위를 많이 잘라내는 건가 봐요? 흠, 큰 수술이긴 하네. 그래도 걱정 말아요. 우리 사촌 누님은 위 4/5를 잘라냈어요.”
남자는 이겼다는 듯 입맛을 다시면서 말을 이었다.
“위챗 추가합시다. 나중에 문제 생기면 나한테 물어보면······.”
“그리고 간도요.”
상대의 헛소리를 들은 소봉은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어 한마디 덧붙였다.
중년 남자는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간 수술이라, 그건 좀 위험하네요. 우리 작은아버지도 한 적 있는데, 나중에 오래 살았어요.”
“같이 하는 거예요.”
“뭐라고요?”
“제 남편이요. 간이랑 위, 같이 수술한다고요.”
소봉이 하는 말에 중년 남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내 외삼촌은요, 한 번에 장을 몇 미터나 잘랐어요. 결장이랑 직장을 동시에 자른 거나 마찬 가지일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