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680화 (661/877)

참관실의 초짜 의사들은 소리소문없이, 그들이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관심 가지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 상태로 사라졌다.

말수가 줄어든 일반외과 과 주임은 의자에 앉아 묵묵히 귤을 벗기고 있었다.

그는 매우 세심하게 귤을 벗겼고, 껍질뿐만 아니라 귤 위에 하얀 귤락까지 벗겼다.

곽종군은 바로 옆에서 그가 껍질을 벗기고 귤락을 벗기는 걸 바라봤다.

“불빛 좀 키우게.”

잠시 기다리던 곽종군은 일반외과 과 주임이 입을 뗄 생각이 없는 걸 보고는 아예 귤을 잘 깔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일반외과 과 주임은 싱긋 웃고는 끽소리 내지 않고 변함없이 귤을 만지작댔다.

커다란 스탠드 불빛이 맨 앞줄에 비추자, 오렌지색 귤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자주 귤 까게 하셨지.”

일반외과 과 주임은 귤의 위부터 아래,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간 처리라도 하는 듯 귤을 떼어냈다.

“음. 왜?”

“인내심 기르라고 그러신 거겠지. 귤 하나를 깔끔하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벗기라고 하셨거든. 게다가 종종 장갑도 끼고 포셉으로 벗기라고 할 때도 있었어. 팀끼리 시합도 하고. 오후 내내 귤 한 상자를 벗겼지.”

“먹을 복은 있었겠구만.”

곽종군의 말에 일반외과 과 주임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교수님 막내가 귤을 좋아했어. 귤락은 싫어하고. 게다가 귤도 모두 교수님 돈으로 산걸?”

“아, 그럼 뭐, 교수님이 억지를 부린 건 아니군.”

“그렇지. 처음에 한때는 짜증도 났는데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나중에 귤 안 까고 있으니까 초조하더라고.”

“아······.”

“능연도 인내심 있는 의사더군.”

일반외과 과 주임이 고개를 들어 곽종군을 바라봤다.

“인내심 있는 의사라야 외과 수술을 잘하는 법이지.”

“그렇지.”

“자네를 10년 기다려 줄 인내심이 있을지는 모르겠구만.”

일반외과 과 주임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더니 관심 있는 모습으로 웃어 보였다.

그 말에 곽종군이 멈칫했다. 그가 은퇴하기까지 적어도 10년은 있어야 했고, 그가 은퇴하기 전에는 응학 다른 의사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주임 의사까지만 오를 수 있지 과 주임은 될 수 없었다.

“능연은 겨우 스물 몇이라네.”

곽종군이 웃어 보였다.

“위, 간 연합 수술일세.”

일반외과 과 주임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나이? 오늘 환자가 살아남는다면, 내일 바로 능연에게 병원을 열어 줄 사람이 나타날 걸세.”

곽종군의 얼굴이 순간 흐려졌다.

“다른 뜻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닐세.”

일반외과 과 주임의 목소리가 갑자기 확 줄어들면서,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만든 이런 화려한 장비, 송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우리 운화병원에서 자란 천재 나무를 다른 병원 대들보로 쓰게 둘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럴 리 없어.”

곽종군의 얼굴이 다시 시뻘게졌고, 붉어졌다 시커메졌다, 얼굴이 쭈글쭈글한 것이 꼭 썩어 버린 귤 같았다.

“소봉 씨 왔어요?”

시간 맞춰 병실로 들어온 염 선생은 과연 남편 침대 옆에 앉아 있는 소봉을 발견했다.

염 선생은 이제 별생각은 없었는데, 그래도 소봉이 온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ICU의 우울한 생활에 약간의 즐거움이라도 있으면 감사한 일이지, 뭘 바라는 게 아니었다.

소봉의 표정은 반대로 억지로 버티는 모습이었고, 심지어 괴로워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에요? 환자분 상황이 안 좋습니까?”

의아해진 염 선생이 바로 다가가서 우선 모니터링 기기를 살펴봤지만, 모든 지표는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

“염 선생님. 우리 그이, 왜 아직 못 깨어나는 거죠?”

소봉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수술 기간 내내 긴장했던 마음은 이제 모두 사라졌는데 이제는 병세가 호전되길 바라는 기대로 일희일비하며 끙끙 앓았다.

염 선생은 저도 모르게 능연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말을 뭐하러 그렇게 해서. 환자가 본인 진료과 병실에 있는 것도 아닌데.

“오래 혼수상태였으니까 회복도 느린 거예요.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염 선생은 몸을 기울여 간단한 검사 두어 개부터 하고 다시 말을 꺼냈다.

“상태는 안정적입니다. 언제 깨어날 수 있을지는 환자 의지에 달렸습니다.”

“아······.”

소봉은 실망한 듯 고개를 떨궜다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염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이 좀 더 불러 볼게요.”

“음, 말을 많이 거는 것도 좋죠.”

염 선생도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그가 경험한 위&간 연합 근치술 환자는 조윤이 첫 번째 케이스였다. 비록 어떤 수술이든 ICU에 있는 환자는 모두 비슷하게 처리한다지만, 무슨 변화가 생길지는 그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소봉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손가락으로 살며시 조윤의 손을 쓰다듬었다.

한때 건장했던 남편은 진작에 초췌해져서 장작처럼 말랐다.

한숨을 폭 내쉰 소봉은 연애할 때 했던 유치한 장난처럼 손가락으로 조윤의 엄지를 한 바퀴 쓰다듬었다.

조윤의 차가운 엄지도 소봉의 손가락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잠시 멈칫하던 소봉은 즉시 자기 손가락을 내려다봤고, 입술을 달달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가락의 차가운 느낌이 잠시 느껴지다가 이어서 사라졌다.

“선생님! 선생님!!”

소봉이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고함쳤다.

“왜 그래요?”

염 선생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저······. 이이가 손가락으로 절 만졌어요.”

소봉은 자신 없이 그렇게 말했고, 염 선생은 의심하지 않고 우선 검사부터 하면서 핸드라이트를 꺼내 조윤의 동공을 비췄다.

“음, 상황 괜찮습니다. CT 한번 찍어 봅시다.”

염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봉을 위로하고 다시 자리를 떴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소봉의 눈에서 또 무기력한 눈물이 흘러나왔다.

병실을 나선 염 선생은 좌우를 둘러보다가 의국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입력했다.

-환자 깨어날 확률 높음.

이어서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낸 다음 편안한 마음으로 의자에 기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나가자마자 다시 돌아왔나?”

부드러운 남자 목소리가 염 선생 등 뒤에서 들렸다.

“아이고, 주임님?”

튀어 오를 듯 자리에서 일어난 염 선생의 얼굴에 식은땀이 고이기 시작했다.

“회진 끝났나?”

“네. 끝났습니다.”

주임이 살며시 묻는 말에 염 선생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음, 그 조윤 환자, 상황은?”

“회, 회복될 기미가 보입니다.”

주임이 묻는 말에 어디 감히 감출 수 있으랴. 염 선생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회복할 수 있다고?”

“깨어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아까 환자가 손가락을 터치했다고 보호자가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각 방면 지표도 올랐습니다.”

“꺼내 봐.”

“네.”

염 선생은 바로 컴퓨터를 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ICU는 각종 기구도 모두 최첨단으로 사용하는 진료과였고, 전자 차트도 최신 버전이라 조윤의 각 항목 보고와 필름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 해준다.

유심히 살펴본 주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를 폈다.

“상황이 괜찮은 것 같군. 자네가 주의해서 잘 살펴보게.”

“네.”

“시간 나면 핸드폰 하지 말고 차트나 자세히 채우고.”

“아, 네!”

뜨끔해진 염 선생은 눈으로 주임을 배웅한 다음 더욱 고민에 빠졌다. 아까 메시지, 주임님도 보셨나? 아니면 왜 갑자기 핸드폰 이야기를 하시지? 의국에서 원래 핸드폰 금지인데? 그래도 다들 하잖아.

느긋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간 ICU 주임 역시 핸드폰을 꺼내 좌우를 둘러보다가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환자 회복 잘 되는 중.

그리고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낸 다음 마음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 긴 한숨을 내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