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 호텔.
거대한 로마식 기둥, 하얀 장갑을 낀 벨보이.
평균 월급을 받는 사람은 성원 호텔에 묵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을 오가는 의사들은 이런 수준의 호텔에 진작 익숙해져 있었다.
“잘 꾸몄군.”
남쪽에서 온 외과의가 접수대에서 이름표를 받으면서 그렇게 칭찬했다.
접수대에 앉아 있는 레지던트가 곽종군이 특별히 팔백 번 당부해둔 말을 꺼냈다.
“저희 운화병원 응급센터가 이런 이벤트를 직접 여는 건 처음이라, 혹시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맞은편 외과외는 바로 그 뜻을 알아들었다.
“응? 직접 했다고? 아니 왜? 제약회사랑 같이 한 게 아니고요?”
“저희 곽 주임님이 간단하게 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레지던트는 더 환하게 웃으면서 살짝 허리를 숙였다.
“이름표 잘 챙기셔서 호텔 프론트로 가서 체크인하시면 됩니다.”
회의에 참석한 외과의가 하하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사라지자 레지던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실에서도 상급 의사의 밥인데 밖에 나와 이벤트를 열면서도 상급 의사의 밥이 되어야 한다니.
“이 선생님. 힘들면 잠시 쉬세요. 나머지 손님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실습생 하나가 뒤에서 레지던트에게 살랑살랑 아부했다.
이 레지던트는 당연히 익숙한 일이라고 대답하지는 못하고 그저 ‘음’하고 대답하고는 웃어 보였다.
“그럼 잠시 쉬고 올게. 어제도 하루 종일 수술했거든.”
“네. 선생님 푹 쉬고 오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실습생이 살랑살랑 대답하자 이 레지던트는 흡족한 듯 허리를 문지르고는 폼을 잡으면서 뒤쪽 사무실로 가서 핸드폰을 만졌다.
남은 세 실습생은 노련하고 익숙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도착한 손님 접수를 하고, 자료 정리했다. 잡일 같은 건 오래 하면 경험이 쌓이는 법이라 조금만 똑똑해도 본인이 편한 쪽으로 개선해서 효율을 올릴 수 있고 그렇게 자랑스러운 잡일 천재가 된다.
곽종군은 본인의 영지를 순시하듯 성원 호텔을 둘러보았다.
그는 경험이 충분한 늙은 늑대처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곁에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도 주임이 함께했다.
도 주임은 팔을 곽종군의 어깨에 걸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돈을 좀 쓰긴 했어. 그래도 지원금이 들어와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나머지 반을 우리가 쓰려고 했나?”
“지원금 들어왔으면 됐지 뭐. 우리 응급센터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지. 센터 이름값도 하고 있고.”
곽종군은 조금 뿌듯한 모습이었다. 왕전례가 자금을 댄다는 말을 듣고 거절하기도 껄끄럽고 자금이 아깝기도 해서 끝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더니 의외로 더 많은 지원금이 들어왔다. 그래서 결국 응급센터 돈은 하나도 쓰지 않고 회의 수준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제약회사의 찬조금을 받지 않고 여는 회의는 병원으로서는 더 골치 아프지만, 효과와 이름값에서 오는 플러스 효과는 좋았다.
곽종군은 골치 아픈 건 안 무서워도,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제약회사의 힘을 빌려야 할까 봐 더 걱정이었다.
물론 후자는 고민할 건 없었다. 충분히 뻔뻔한 응급센터 주임이 제약회사 한두 곳 도움을 받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러나 유명세는 정말로 조금씩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곽종군 님이 지금 신경 쓰는 건 오로지 ‘센터’의 명분이 생기는 것뿐이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는 창서성 유일한 응급센터고 그 간판이 세워진 후 이득은 막대했지만, 이득이라는 건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고 쟁취할 때는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120 구급차 관리만 해도 응급센터가 매우 주시하는 권력이었다. 어떤 도시에서는 120를 위생국 수하 전문 부서에서 관리하고 어떤 도시는 특정 삼갑병원이 관리한다. 아니면 골치 아픈 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형식으로 아예 다른 곳에 떠넘겨 버리는 120도 있다.
그러니까 지방병원에서 환자를 고르고, 많이 받고, 거절하고 싶으면, 120 관리권이 있으면 처리하기 더욱 편하다는 것이다.
곽종군은 당연히 성내 응학과의 아버지가 되고 싶고, 가능하다면야 더 많은 성의 아버지가 되는 것도 괜찮았다. 신생아 아버지는 힘들어도 이미 자란 아이를 기르는 걸 누가 못 하겠냐 말이다.
지금처럼 지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짜릿했다.
“그러니까 이러나저러나 정상급 수술을 해야 하는 거지.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사람은 뭐든 통한다니까.”
곽종군은 지난 며칠을 되새겨 보고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줄까지 대서 돈을 주는 걸 자네가 못 봐서 그런다니까?”
곽종군이 크게 터트린 웃음소리가 성원 로비에 울려퍼졌다.
막 안으로 들어오던 의사 몇 명이 그 소리를 듣고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 로비 소파에 가서 앉아서 끽소리하지 않고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곽종군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
상쾌한 웃음소리가 문 쪽에서 들렸다.
“오자마자 곽 주임을 보다니. 신난 곽 주임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군.”
“박 원장, 왔나?”
곽종군이 웃음을 거두었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던 도 주임은 곽종군의 어깨 근육이 굳은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초대도 안 받고 이렇게 왔지. 하하하.”
키 크고 잘생긴 중년 멋쟁이 박 원장이 껄껄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초대하고 말고가 있나. 이렇게 와주면 다 손님이지.”
곽종군의 말투에 진한 방어태세가 느껴졌다.
그리고 박 원장이 명함을 내밀자 도 주임은 바로 그 이유를 깨달았다.
군안 진료소.
군안 진료소는 의료계에서 유명한 개인 진료소였다. 일반적인 개인 진료소와 달리 군안 진료소는 의료 센터 기관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여러 국가의 여러 병원의 여러 환자를 받고 글로벌급의 치료를 쟁취한다는 건 이미 일반적이지 않았다.
순수한 의료 센터 기관과 비교하면 군안 진료소는 대형 수술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어서 외국의 실력 있는 의사를 중국으로 초빙해 출장 수술도 했다. 그리고 심지어 많은 병원에서 초빙한 외국 출장 의사도 모두 군안을 통해서 연락한 것이고 그런 관계를 빌려서 군안은 국내 출장 의사도 연계해서 본인의 병실과 수술실을 대여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의료 사업을 중개 사업과 부동산 사업으로 하고 있는 의료 기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개인 진료소는 구식 공립병원으로서는 꽤 충격이었다. 실질적인 충격이든, 개념적 충격이든 말이다.
도 주임은 저도 모르게 곽종군을 힐끔 봤다.
곽가는 군의관 출신이라 사상이 더욱 보수적인데······.
“박 원장이 진안 진료소 책임자인가?”
도 주임이 떠보듯 묻는 말에 곽종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연수한 적 있지.”
“아이고, 그럼 박 원장님 참 젊어 보이는군요.”
도 주임이 겸손하게 상대를 칭찬하자 박 원장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곽 주임보다 몇 달 빠릅니다. 확실히 제가 더 한가한가 봅니다.”
“옛이야기나 하자고 온 건 아니겠지?”
순간 곽종군의 얼굴이 흐려졌고 아예 대놓고 물었다.
“음. 자네 과에 능 선생이 마음에 들어서.”
박 원장이 담담하게 하는 말에 곽종군의 안색이 확 변했다.
“능 선생한테 부탁하고 싶은 수술이 있어서.”
박 원장의 다음 말에 곽종군의 얼굴이 풀어졌다.
그냥 수술 하나라면야. 곽종군은 바로 표정을 풀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 않겠네! 군안 방식은 위생국 수의사 놈들이 지지하든 말든 난 모르겠고. 능연은 자네 수술하지 않을 걸세.”
“정말?”
“안 해!”
“그럼 성립 GS로 가야겠군. 까놓고 말해서 위, 간 연합 근치술을 한 성에서 몇 케이스나 하겠나. 두 병원이 경쟁한다면, 자네 쪽에서는 수술팀도 못 꾸릴걸?”
이런 상황에 능통할 대로 능통한 박 원장은 실실 웃었고 곽종군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박 원장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했지만, 곽종군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사나운 눈빛은 여전해서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누가 감히 한다고 나설지, 궁금하구만.”
“위, 간 연합 근치술이 힘들긴 하지. 그래도 기회만 주면 몇 번 만에 해내지.”
“두 번째 사망 토론할 때까지 환자가 살아 있다면 내가 성을 갈지.”
말문이 막힌 박 원장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내 시나리오는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