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 호텔 문 앞에 큰 글자가 걸려 있었다.
운화병원 응급센터 간 절제 수술 1500 케이스 수술 보고회.
사금색 천으로 된 가로 플래카드에 자홍색 천으로 쓰인 글씨가 어찌나 촌스러운지, 패션 쪽 사람들이 봤다면 어느 대가의 야심작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촌스러웠다.
그 아래 놓인 꽃바구니도 촌스러웠다. 자홍색, 오렌지색, 노란색, 녹색, 파란색, 자주색, 특징 하나 없는 꽃들에 바구니 양쪽엔 거의 비슷한 천이 달려 있었고, 대부분 하급 병원이 증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곽종군은 매우 흡족해했다.
오가는 호텔 투숙객들은 이게 뭐냐는 듯 꽃바구니를 바라봤지만, 어차피 그들 보라고 만든 꽃바구니가 아니니 상관없었다. 관례대로 초청한 위생 쪽 간부들이 꽃바구니를 보고 입을 가리고 웃었지만, 상관없었다. 진정한 목표는 어차피 의사들이니까.
곽종군은 아래 의사들이 본인 응급센터가 얼마나 많은 병원의 인정을 받는지, 실력 있는 의사의 인정을 받는지, 우리 능연을 인정하는 의사가 얼마나 많은지를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그런 것들은 평소에 개뿔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사람 팰 때는 모터를 달고 패는 거처럼 효과적이었다.
특히 창서성 안에서 사람 팰 때는 곽종군은 반드시 이득을 얻으려고 팼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패는 게 아니었다.
곽종군 님이 매주 사람을 패는 걸 생각하면 이런 준비는 매우 유용했다.
“능연한테 전화 걸어서 이제 와도 된다고 이야기하게.”
시계를 내려다본 곽종군은 이제 시간이 됐다고 생각했다.
얼굴 들이밀 기회도 없던 수하 레지던트가 냉큼 대답하고는 바로 전화를 하러 갔다.
곁에 있던 조낙의는 보스도 왔는데 능연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니, 기세가 정말 대단하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입을 삐죽였다.
하지만 대놓고 뱉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의사 업계는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단순하다면 단순한데, 현재 조낙의는 능연처럼 실력 있는 의사 밑에 무릎까지 꿇지는 않는다고 해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그해 실습생들을 잘 활용했어야 하는데.”
조낙의의 혼잣말을 바로 알아들은 주 선생이 껄껄 웃었다.
“능연이 나 대신 봉합 엄청 했지롱.”
“지금도 하고 있는 거 아니고?”
조낙의가 곁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맞네. 이걸 어떻게 자랑해야 경박해 보이지 않을까?”
주 선생이 턱을 문지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조낙의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지만, 웃음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주 선생의 그런 게으름 행위를 정말로 자랑해도 될 것 같았다.
가장 기초적인 봉합을 한두 번도 아니고, 꾸준히, 매우 자주 능연에게 시키는 사람은 온 병원을 통틀어도 주 선생밖에 없으리라.
곽 주임도 그렇게는 안 했다. 물론, 곽 주임에게는 그런 자질구레한 일이 없지만,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주 선생은 능연을 부릴 수 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조낙의가 주 선생을 돌아봤을 때, 주 선생은 이미 머리를 벽에 기대고 침착한 척 수면 상태에 진입한 모습이었다.
이 새끼, 진짜 병원 윗선 될 자질이 충분하잖아.
삐익!
그때 스피커에서 귀를 찌르는 소리가 나더니 곧 곽종군이 마이크를 들고 툭툭 두드리더니 싱글벙글 입을 열었다.
“토론회가 곧 시작됩니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니, 최대한 짧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곽종군은 비교적 간단하게 한 5분 이야기하고 난 후에야 마이크를 곁에 있는 젊은 관료에게 넘겼다.
다행히 젊은 관료는 세상 물정에 밝고 인생도 중년 관료처럼 그렇게 공허하지 않은 데다가 잔소리 기교도 부족해서 10분 만에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런 행사에 관원이 나서는 것도 사실 어느 정도 필요했고, 어쨌든 더욱 정식으로 보이긴 하니 의사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운화병원 윗선들이 마이크를 잡았고, 능연에게 마이크가 넘어갔을 때는 3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번 행사는 운화병원 응급센터에서 자금을 모집했지만, 집행 단계에서는 여전히 제약회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그중 운리가 가장 많이 개입했다.
스피커와 음향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맡은 맥순은 일부러 완전히 새 마이크를 골라 소독을 마친 후 능연 전용으로 남겨 두었다.
연단 아래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무선 마이크에 배터리가 없을까 봐 새로운 마이크를 건네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마이크를 든 능연은 멀찍이서 킁킁대고는 흡족한 듯 다시 들어 올렸다.
“간 절제에 관해서 현재 주류 관점은 그래도 지나칠 정도로 정밀하게 간을 잘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의사들은 연단 위 능연을 바라보며 열심히 듣는 사람도 있었고, 창밖을 보는 사람도 있었으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사람도 있었다.
박 원장도 자리 잡고 앉아 한참을 강연을 들은 후에야 곁에 있는 의사에게 물었다.
“어때? 괜찮은 거 같아?”
“1,500건 간 절제라는데,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어. 평생 해도 그렇게 못 하겠네.”
그의 곁에 앉은 의사 역시 60이 다 되어가는 나이로,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질투와 부러움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박 원장은 싱긋 웃고는 자연스럽게 그를 위로했다.
“운이 안 좋아서 그렇지 뭐. 50 넘어서 겨우 간 절제 시작했잖아. 지금까지 그래도 6, 7년 하지 않았어? 능연도 간 절제 한 3년 했나? 젊은 데다가 결혼도 안 했고, 밑에 자질구레한 일도 없으니 온종일 수술만 하잖아. 우리랑 비교할 수 있나, 어디.”
“그러니까. 역시 이름은 빨리 알릴수록 좋아. 우리가 그런 이치를 깨달았을 때 이미 늙었으니 아쉬울 뿐이지.”
60을 향해 가는 의사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능연을 바라보니 더욱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요즘 일주일에 이틀은 회의 아니면 윗선 접대하는 데 쓴다고. 아들놈도 변변찮아서 공부도 못하고 사업을 배우래도 그것도 제대로 안 하고. 에휴.”
“나중에 자네도 여자친구 생기면 진짜로 신경 쓰이는 게 뭔지 알게 될 걸세.”
박 원장도 한숨을 내쉬었다.
60을 향해 가는 의사는 갑자기 인생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져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봤다.
“문제없겠네. 간 절제 방면은 도가 텄을 거야.”
“투자할 만해? ”
“당연하지.”
“순위는?”
“당연히 1순위지. 1,500건 수술하는 의사를 찾을 수나 있어? 게다가 다 간 절제인데?”
60 의사가 콧방귀를 뀌었다.
“쉽진 않겠군.”
“자네 능력이지.”
“가치 있겠어?”
“있어.”
박 원장은 질리지도 않는 듯 다시 물었고 60 의사도 질리지도 않는 듯 대답했다.
“알았어. 한두 명 더 찾고. 에휴, 곽종군 저놈도 잘 설득 해야 하고. 나이 먹더니 더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이 중개 사업은 부동산 중개 사업과는 달랐다.
대다수 의사, 특히 실력 있는 의사들은 단순히 금전만 바라지는 않는다. 단순히 돈만 따지면 그의 중개 사업은 이어갈 수 없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박 원장은 가늘고 길게 감정과 금전을 모두 투자했었다.
하지만 어쨌든 진료소 자금은 제한적이고, 박 원장의 감정도 한계가 있으니 누구에게 투자하고, 어떻게 투자할지 등급을 나눠야만 했다.
박 원장은 상의 주머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중간으로 넘겨 능연 이름 아래 있는 표시에 별 표 하나를 더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