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입니다. 내일도 같은 시간에 회의를 진행하오니 정시에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출구 쪽에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받아가 주세요.”
회의 마지막에 좌자전이 연단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자 의사들은 메뚜기 떼처럼 웅웅대며 신속하게 밖으로 몰려나갔다.
“요즘은 토론회도 사흘이나 합니까?”
앞줄에 앉아 있던 의사 중에 목소리를 높여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내일은 현장 수술 위주입니다. 그리고 회의실과 연결되어서 능 선생에게 질문해도 됩니다.”
좌자전이 하하 웃으며 설명했다. 그것 말고 할 말도 없었다.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이틀로는 다 쓸 수 없고 하루 더 연장해야 후원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모든 기금을 아름답게 써버릴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의사는 일반적인 학술회의에 참석한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밖으로 나갔고, 입구 쪽에 도착해서 작은 선물을 받았을 때나 걸음을 살짝 늦췄다.
“만년필 위에 저팔계 그려있는데?”
뒤에 앉아 있던 박 원장은 빨리 걸어 나가면서 선물을 받아들고는 유심히 지켜봤다.
국산 만년필이라 별로 특별할 게 없었는데 만년필 뚜껑에 수묵화 기법으로 토실토실하고 귀가 큰 저팔계가 그려져 있었다. 얼핏 보면 귀엽다가 자세히 보니 토실토실한 큰 귀가 제법 복을 부르는 느낌이었다.
박 원장은 들고 있던 문서철에서 만년필을 꺼내 보았더니, 그 만년필 뚜껑의 도안은 역시나 삼장법사였다. 금황색 가사(袈裟)로 뒤덮인 만년필은 얼핏 보면 촌스러워 보였지만, 돼지랑 세트가 되자 복을 부르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세트인가요?”
박 원장은 만년필 도안을 보며 감탄한 듯 혀를 찼다.
“그렇습니다. 세트입니다.”
선물을 나눠주던 실습생은 제윤조였는데, 아직 졸업 안 한 실습생답게 멍충망충, 그리고 풋풋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어제 나눠드린 노트는 서경 모양인 거 혹시 눈치채셨나요?”
“아아, 그래 어쩐지.”
박 원장이 하하 웃으며 만년필을 만지작했다.
“내일 오전 선물은 사오정입니다.”
제윤조가 다시 한번 귀엽게 웃어 보였다.
“응? 그럼 손오공은?”
“내일 저녁에요.”
“같이 나눠주면 안 되고?”“일종의 출석 개념입니다.”
제윤조는 웃으면 실수할 일은 없다는 듯 웃기만 했다.
천년 먹은 여우인 박 원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내일 일찍 출발하면 손오공은 못 받는 거겠네?”
“내일 정시에 회의에 참석하시면 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내일은 능 선생의 현장 수술도 있으니까 얼마나 귀한 기회입니까.”
제윤조는 운리가 가르쳐준 대로 웃으며 설명했다.
의사에게 선물을 주는 건 제약회사로서는 문제도 아니다. 다만 비싼 선물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제약회사 부담이 너무 커진다. 특히 이런 회의에서 모두에게 몇백 위안짜리 선물을 돌렸다가는 출혈이 크지만, 문제는, 박 원장 같은 의사에게는 대단한 선물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의미 있는 세트 선물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사람들의 소장 심리는 매우 재미있어서 5위안짜리 선물을 하나 더 받아서 세트를 채우려고 하루를 바쁘게 보내는 외과의도 얼마든지 있다. 멍청하다고 설명하기엔 너무 멍청한 일이었다.
곁에 있는 조금 젊은 의사도 만년필을 받아 들고 껄껄 웃었다.
“귀하기는 뭘. 운리 생중계에서 매일 능연 수술을 보는데. 당직 서느라 새벽 3시에 수술한 적 있는데 나와서 휴게실에 궁둥이를 붙이자마자 능연이 좋은 아침입니다~ 이러는데 미춰버릴 거 같았다고.”
“맞아, 맞아. 나도 그런 적 있어. 새벽 3, 4시에 TV 켜서 생중계 틀었더니 능연이 이 수술 곧 끝나는데 다음 수술 준비됐냐고 물은 적 있었어.”
“저도 있습니다.”
“10년을 한결같이 채널을 독점한다는 말이 바로 능 선생 같은 걸 말하는 거더라고요.”
의사들은 하나같이 재미있는 일 이야기하듯 투덜거리면서 그 김에 나도 일찍 일어나고, 나도 당직 선다고! 를 증명했다.
제윤조는 주변의 목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귀여운 척 말을 꺼냈다.
“이번엔 현장에서 질문할 수 있잖아요. 능 선생이 수술하면서 질문에 대답할 겁니다. 재미있을 거예요.”
“뭘 물으라는 건가?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의사 하나가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터트렸고 곁에 있는 의사는 따라 웃는 사람도, 웃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분위기가 순간 어색해지자 제윤조가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에이, 학교에서는 꼭 공부벌레가 시험 망쳤다고 하더라고요.”
“아이쿠, 아직 학생인가?”
외과의들이 바로 제윤조의 화제를 다른 쪽으로 몰고갔다.
박 원장은 내일 현장 수술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삼장법사와 손오공의 서유기를 생각해 보면 그중에 두 개만 가지고 돌아가면 너무 아쉽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사형은 데리고 가야 할 것 아닌가.
“내일 현장 수술도 운리 생중계 플랫폼에서 방영하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계 플랫폼에서는 질문을 할 수 없어요.”
제윤조는 박 원장이 그래도 돌아가려는 줄 알고 그렇게 대답했다.
박 원장은 그저 웃으면서 딱히 해명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나면서 동가 그룹 회장 홈닥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백억 규모의 오래된 그룹 회사의 이익 창출 능력은 사실 오래전부터 내림세지만, 각종 복지 혜택은 외국 기업 기준이었고 특히 회장의 건강 문제는 당연히 전문 책임자가 따로 있었다. 전문 영양사, 일 년에 두 번 정규 신체 검진, 작은 병만 생겨도 큰 병처럼 호들갑 떠는 임원진 등등 있을 건 다 있었다.
그러나 건강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특히 암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어서 참으로 잔혹하고 냉정했다.
-질문 있으면 현장에서 능연에게 물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박 원장의 메시지에 온 답장은 보낸 사람의 얼굴처럼 딱딱하기만 했다.